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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7

107화 방랑의 마검

“13년 전 런던에 흑색 게이트가 출몰했습니다.”

오강혁 협회장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흑색 게이트는 등장 때마다 불합리한 난이도에 의해 그 어떤 공략대도 공략하지 못한 최악의 재난.

거대한 대국을 수십 개로 찢어버린 상하이 참사를 떠올린 유럽연합은 자국의 S급 공략대를 파견해 런던 게이트를 공략하려 했다.

“당시에 S급 헌터만 스물 네명이었지요. 그뿐만일까요. 유럽의 13개국 32개 길드에서 A급과 B급 헌터로만 이루어진 1,834명의 사상 초유의 연합 공략대를 파견했습니다.”

사실상 유럽 전체전력의 절반이 런던 게이트를 공략하기 위해 집결한 셈이다.

이 초유의 연합 공략대는 세계마탑의 창시자 시계탑의 대마법사 콘월 옹이 이끌었다.

“실패했나?”

그 말에 오강혁 협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성공했습니다. 무려 두 달여간의 격전이었습니다만, 콘월 옹과 마탑의 마법사 사단만 해도 대단한 실력자들이었으니까요.”

에픽급 아이템 십이환장을 가진 콘월 옹과 마탑의 마법사들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런던 게이트를 공략했고 끝내 클로징했다.

[유럽연합 공략대. 런던 게이트 공략 성공!]

[콘월 옹,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공작위 수여.]

[최초로 공략된 흑색 게이트! 인류의 저력이 증명되다!]

흑색 게이트가 공략된 대사건은 유럽 전역이 들끓 정도로 대단한 사건이었고, 하나의 신화였다.

당시에는 게이트 내부의 마소에 저항하며 촬영이 가능한 장비가 없었지만,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이야기만 해도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문제는 런던 게이트의 공략 이후에 벌어졌다.

[살육과잉]

◆ 등급 : 에픽

무려 에픽 등급의 검. 런던 게이트에서 획득한 수많은 전리품 중에서도 단연코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30년 역사 속 최고의 아이템 중 하나였다.

그 후의 일은 레온도 짐작하기 쉬웠다.

“누가 차지할지 아비규환이었겠군.”

“그렇습니다. 당시에도, 지금도… 전 세계에 열 개도 채 되지 않는 에픽 아이템이었으니까요.”

이 초유의 에픽 아이템은 런던 게이트에서 콘월 옹의 활약으로 증명됐다.

에픽 아이템은 홀로 전장의 국면을 바꾼다. 그만한 가치를 가진 초월 아이템. 참전한 13개국 모두가 그걸 원할 수밖에 없었다.

-런던 게이트는 우리 영국에서 등장한 게이트다. 당연히 권리도 우리에게 있다.

-웃기지 마라. 영국을 돕기 위해 자국의 안보구멍을 감수하고 지원을 간 우리에게 권리가 있다.

-영국은 이미 십이환장을 가지고 있지 않나. 우리 프랑스는 가장 많은 헌터들을 파견했다.

-에픽 아이템이 있다고 해서 분배에서 제외되는 건 있을 수 없다.

32개 길드는 물론이고 각국 정부의 대통령들까지 나서서 이 아이템을 확보하려 했다.

결국 이 아이템은 경매에 붙여졌는데, 국가 단위의 예산이 붙여진바, 결국 낙찰자는 영국정부였다.

당시 낙찰가는 1조 4천억원.

아이템으로서는 사상 초유의 가격이었으며 어지간한 이지스 순양함 가격을 웃도는 경매가였다.

에픽급 아이템 살육과잉은 당대 최강의 검사 중 하나라 불리던 젠틀맨 리그의 길드장 제임스 스펜서에게 대여됐다.

그리고 그가 검을 쥔 순간──

“대재앙의 시작이었지요. 설마 그것이 사용자를 타락시키는 마검일 줄은…….”

제임스 스펜서는 마인으로 변모했다. 끝없는 살육을 갈망하는 마인으로.

“87만 명의 시민들이 죽고, 런던이 날아갔지요. 헌터만 육백 명이 넘게 죽었습니다.”

“6대째의 마인이라 했지? 결국 토벌에 성공했나?”

“예, 숙주였던 제임스 경을 쓰러뜨리는 데는 성공했지요. 하지만… 마검이 도주했습니다.”

“도주했다?”

살육과잉은 제임스가 죽음과 동시에 하늘로 사출되더니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2년 뒤, 마검은 호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방랑의 마검은 그 뒤로 토벌과 새로운 숙주를 찾는 과정을 반복했다.

호주.

멕시코.

캄보디아.

스페인.

“마지막으로 4년 전 한국. 신검 길드의 차기 길드장으로 내정되었던 천재 검사 천지호. 그에게 쥐어진 것입니다.”

“신검 길드?”

“예, 한국 굴지의 최강 헌터 천진수의 아들이자 폐하께서 거두신 천소연 양의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4년 전, 6대 째의 마검사가 등장한 이후, 방랑의 마검은 아직까지도 토벌되지 않았다.

* * * *

“후….”

이용완은 문앞에 멈춰서 긴장을 풀려했다. 그런 용완을 하유리가 슬쩍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괜찮아?”

“안 괜찮아요.”

“하긴. 사안이 사안이긴 하지.”

“그것도 있지만…….”

“요즘 연합회의 쌩깐 거 때문에?”

“쌩까긴 무슨… 그냥 좀 아파서 못 간 거죠.”

그 말 같지도 않은 핑계가 정말 먹힐 거라 생각했느냐는 무언의 시선. 용완은 꺼질 듯이 한숨만 푹푹 쉰다.

“이게 다 그 사자심왕인지 사자왕인지 뭔가 하는 양반 때문이에요.”

게오브릭과 그 위대한 병사들의 희생… 용궁 게이트를 함께 공략하던 사자심왕의 조언… 그날 이후로 용완은 차츰차츰 바뀌었다.

청성길드를 중심으로 한 10대 길드 중 여섯이 동참한 세금 개혁안. 그 거대한 연합의 모임에 몇 번이고 불참했던 것이다.

“인제와서 빠지기에도 좀 애매하긴 하지만. 차라리 아예 만신전에 합병되지 그래? 이번에 한빛이 먹혔던데.”

“미쳤습니까? 이게 다 얼마짜린데…….”

“뭐, 그쪽으로 들어가면 십구조 내야 해서 좀 그렇긴 해.”

“대체 그쪽 양반들은 무슨 생각으로 십구조를…….”

하여튼 간에 레온의 등장은 여러모로 국내를 뒤흔들었다. 무엇보다 이 수전노가 조금은 사람다워진 것만 해도 그렇다.

“뭐~ 난 너 따라갈게. 결정은 네가 하는 거야.”

“당연한 소릴.”

그 말을 끝으로 이용완은 심호흡을 하며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이미 선객들이 있었고 원탁에 둘러 앉아있다.

“어머~ 용완 씨 오랜만? 유리 양도~”

두 사람을 우선 반긴 것은 긴 머리카락을 비녀로 꼽고 새하얀 백의를 입은 미녀였다.

“윤 선생님, 여전하시군요.”

윤수아. 한국 유수의 종합병원인 주원병원의 산하 사업체 주원메디컬의 길드장. 죽지만 않으면 어지간해선 살려낸다는 명의로 공략대에선 S급 힐러로 활약하는 여걸이다.

“불새 쪽에 우리 영양제 광고 맡겼는데, 아직 수락 안 했더라?”

“그런 게 있었습니까?”

이용완이 하유리에게 힐끗 시선을 보내자 하유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 길드 이미지하고 안 맞아서 반려했어.”

“뭐였는데요?”

“발기부전 치료약.”

“…….”

이용완의 게슴츠레한 시선이 윤수아에게 향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천박한 제스처를 취했다.

“윤 선생님 한의사 아니었습니까? 왜 자꾸 양학을 하세요?”

“그건 치료할 때 쓰는 거고 양학은 약팔이용. 그리고 자격증은 둘 다 있는데? 사업허가증도 다 있어.”

“침술로 고정하시죠? 침으로 탈모도 치료하시는 분이.”

그 말에 윤수아가 키득거렸다.

“침팔이는 손님이 적어서 안 돼.”

“탈모 침 한 방에 1억을 받으시니까 그렇죠.”

“그 정도가 아니면 내 시간이 더 아깝잖아.”

자신도 돈독 오른 놈이지만, 이 여자는 더한 독종이다.

이용완의 시선이 원탁의 다른 이들에게로 향한다.

“앉지 그러나, 용완 군. 유리 양.”

자리를 권유한 것은 꽁지머리에 가늘게 눈을 뜬 노인이었다.

청성 길드의 길드장이자 S급 헌터 강진성. 규격외 광검자 천진수를 제외하면 한국제일검이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은 솜씨의 달인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르신.”

이용완이 드물게 극도의 예를 갖추며 인사했다.

광검자 천진수, 무쇠 오강혁, 무한검 강진성.

이 셋은 국내에서도 근본 중의 근본이라는 1세대 멤버들이다.

30년 전, 대격변 사태에서 최초로 각성한 헌터들. 사실상 국가의 기틀을 지킨 전설의 헌터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모임에 나오지 않았더군. 이유가 뭔가?”

강진성이 말하는 모임이란 10대 길드 대부분이 참여한 연합을 말했다.

그곳에서 대형길드의 ‘면세 법안’에 대해 논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제주도 게이트에서 나온 이용완은 심경의 변화로 참여하지 않았었다.

“하하… 조금 몸이 불편해서 어쩔 수 없이.”

“자네가?”

강진성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젠장, 늙은 요물 같으니라고… 시선에 마력을 담다니.

이용완은 모임에 불참하긴 했어도 강진성에게 대적할 생각은 없다. 이 나라에서 그와 대적할 수 있는 강자는 단 둘뿐일 테니까.

“적색 게이트였던 제주도와 악마대공이 출현했다는 용궁 게이트를 연달아 클리어했으니 몸에 부담이 온 거 아니겠습니까, 선배님.”

무거운 분위기를 완화시킨 것은 이용완이나 강진성보다 두 배는 클법한 거구의 사내였다.

“박종수 선배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무진길드의 박종수. 국내 최고의 S급 탱커. 딜탱으로 분류되는 황금사자의 황금철과 달리 오직 방어에 특화된 헌터다.

‘단순 방어력이라면 그 게오브릭 경과도 견줄만할 거다.’

이용완은 뒤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하유리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맞은 편의 힙한 느낌의 금목걸이 청년이 손짓으로 인사한다.

“안녕하심까.”

“반갑군요.”

진심이었다.

황금사자 길드의 황금철. 연배 높은 선배들이 가득한 이곳에서는 그나마 속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상대였으니까.

“다른 분들은 아직입니까?”

이용완과 하유리의 불새,

강진성의 청성

박종수의 무진,

윤수아의 주원 메디컬,

황금철의 황금사자.

10대 길드 중 절반이 모인 셈이었으나 반대로 말하면 절반밖에 안 온 셈이다.

그 의문은 윤수아가 해소해 주었다.

“김진철 이 약쟁이 망나니 새끼야 어디서 퍼질러 자고 있을 거고. 한빛궁주 박용신은 합병으로 바쁜가? 운석 떨어졌다잖아. 자고 일어나니까 인류가 멸종할 뻔 했네?”

“…….”

이용완도 6km짜리 혜성이 떨어졌다는 소식에는 가슴이 철렁했었다. 물론 무조건 레온을 의심했지만.

‘그 양반이야 뭔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지.’

본인이 신들의 대리인이라는데 어쩌겠는가.

“신검 길드장님 입장하십니다.”

그때였다. 소란스러웠던 원탁회의장의 분위기가 변모했다.

협회직원의 안내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희끗한 수염과 백발을 길게 늘어뜨린 시대착오적인 노인.

그러나 올드한 백발의 노인에게서는 끝을 알 수 없는 사나운 기운과 강렬한 시선은 그 자리의 모두를 압도하고 있다.

무쇠 오강혁 협회장, 무한검 강진성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헌터.

한국 최강의 S급 헌터 광검자 천진수.

올해 일흔을 넘긴 그의 등장에 소란스러웠던 원탁 회의장이 침묵했다.

천진수는 자연스럽게 원탁의 상석에 앉았다. 그리고 사나운 시선으로 원탁의 S급 헌터들을 응시한다.

“강혁이는.”

“…….”

“…….”

침묵 속, 눈치를 보던 박종수가 서둘러 대답했다.

“곧 오신답니다, 어르신.”

“환갑 잔치도 안 하더니만 아주 그냥 다리에도 쇠를 달았구만.”

협회장 오강혁과 천진수는 오랜 친구 사이로 유명하다. 그는 헌터 협회의 협회장을 가볍게 부르면서 하유리에게 시선을 보내더니 혀를 차기 시작했다.

“쯧쯧. 기지바이가 옷 꼬라지가 그게 뭐야?”

하유리 특유의 노출은 하지 않았지만, 착 달라붙어 몸매를 드러내는 바디슈트가 몹시 고까운 모양이었다.

“시, 시정하겠습니다.”

“유리 양, 일단 내것 덮어요.”

용완은 얼른 자신의 코트를 하유리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도사처럼 긴 수염을 쓰다듬는 천진수.

“그래, 두 사람은 언제 애를 낳을꼬?”

“푸흡…!”

“아, 아니, 어르신… 저희 그런 관계 아닙니다.”

기겁하며 손을 절래절래 젓는 용완. 유리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용완을 응시했으나 잠시뿐이었다.

“허허, 선남선녀가 모이면 무릇 남녀상열지사를 누려야지. 나~때는 말이다. 그 나이에 애가 여섯이었어!”

광검자 천진수.

그는 한국 최강의 헌터로 세계 헌터랭킹에서도 최상위권에 있는 정진정명 최고수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런 그를 동경하는 헌터들도 마냥 그 앞에서는 편할 수가 없었는데…….

‘꼰대 양반.’

‘불편해…….’

한국 최고 명문가 천씨 종가의 가주. 다시 말해──

대한민국 대표 꼰대.

살아있는 화석.

그런데 한국 최강임.

“그래, 쪽발이 놈들이 구원요청을 했다 이거지. 어디 도시가 날아갔나?”

“아직입니다, 어르신. 아무래도 오사카를 지날 것이라고 예상 중입니다.”

“내 자식 새끼지만, 그래도 나한테 뒈지기 전에 애국하고 가겠구만.”

가차 없는 천진수의 말에 헌터들은 난색을 표했다. 사실 이런 국제적인 환난에는 주변국들이 연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가 있다면──

“근데 그 새끼들은 양심이 없나? 울산이 쑥대밭이 될 때는 나 몰라라 하더니.”

한국 울산에서 여섯 번째 마검사가 탄생했을 때, 일본은 갖은 핑계를 대가며 지원을 거부했고, 결국 울산이 박살 나고야 말았다.

“그… 일본 정부에서는 당대의 마인이… 천지호 씨인지라, 한국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랄 똥 싸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원색적인 욕지거리였으나 모두가 거기에 동감했다. 울산에서 마검사 천지호에 의해 S급 헌터만 네 명이 죽어나갈 때도 일본은 자국방어를 한답시고 나서지도 않았으니까.

“됐고. 난 어차피 천지호 그놈 죽이러 갈 거니까 니들은 알아서 해.”

“어찌 그리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시오.”

그때였다. 문이 열리며 등장하는 세 사람.

오강혁 협회장과 만신전 길드장 레온 그리고 한빛궁주 박용신이 함께 입장했다.

“어?”

그때였다. 이용완은 레온의 등장으로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것이다.

‘저 양반도 한 꼰대 하지 않나?’

꼰대 양반과 꼰대 킹이 한 자리에 마주쳤다. 이 자리에서 절대적인 존재감을 가진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마주했고──

“비켜라.”

상석을 요구하는 레온의 선빵으로 시작되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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