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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8

107화.

석범 아저씨는 얘기를 시작했다.

“우, 우송기업이라고 아니?”

“들어봤어요. 자동차 엔진 부품업체죠?”

“으, 은성차 1차 협력업체야.”

회사는 코스닥에 상장되어 있고, 직원 숫자는 700명 정도의 중견기업이다.

문득 얼마 전에 본 기사가 생각났다.

“거기 파업 중 아니에요?”

기사는 우송기업 노조의 불법파업으로 완성차업체들의 생산차질이 우려된다는 내용이었다. 박시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노동자들 불법파업으로 국가경쟁력이 훼손된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석범 아저씨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 조, 종수와 나는 거기 들어갔어.”

석범 아저씨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처, 처음에는 더 좋은 회사로 이직했다고 좋아했는데, 무, 문제가 있었어.”

우송기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직원을 더 뽑거나 설비를 늘려야 하지만, 기존 직원들로 공장을 24시간 돌리는 방식을 택했다. 그 편이 돈이 훨씬 덜 들기 때문이다.

밤샘노동이 이어지자 다들 피로를 호소했고, 2년 사이 여섯 명이 과로로 사망했다.

노조와 사측과 협상 끝에 밤샘노동을 금지하고, 주간 2교대제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합의 후에도 회사는 차일피일 시행을 미뤘고, 밤샘노동은 계속되었다.

이후 양쪽은 계속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노조는 주간 2교대제 즉시 실행을 요구하며 부분파업을 벌였다. 몇 시간 후, 사측은 경비용역을 동원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용역은 출근하려는 노조를 막았고, 이에 조합원은 공정점거로 맞섰다. 노조에 가입되어 있던 석범 아저씨와 종수 아저씨 역시 여기에 동참했다.

파업이나 공장점거는 건 다 같이 죽자는 뜻이 아니라, 협상하자는 뜻이다. 하지만 우송기업 홍우송 회장은 협상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이때부터 극한 대립이 시작되었다.

“회, 회사에서는 몇 달 전부터 생산현장관리라는 명목으로 작업실은 물론, 휴게실, 심지어는 탈의실에까지 CCTV를 설치했어. 조, 종수와 나는 천과 테이프 등으로 CCTV를 가렸지.”

회사는 그 행위에 대해 업무방해와 재물손괴로 고소했다.

택규는 당황하며 물었다.

“업무방해야 그렇다 치고, CCTV를 부순 것도 아니고 가린 건데 왜 재물손괴예요?”

“그, 그게 CCTV 커버에 테이프를 붙이는 바람에 끈끈이가 묻어서 못 쓰게 되어서 재물손괴래.”

“…….”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검찰은 CCTV를 가린 종수 아저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그리고 옆에서 청테이프를 끊어 전달해준 석범 아저씨에게 징역 6개월을 구형했다.

“다, 다행히 법원에서 무죄가 나왔어.”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회사는 이번에 아스팔트에 묻은 페인트를 문제 삼았다. 노조는 시위과정에서 현수막을 바닥에 놓고 페인트로 글씨를 썼다. 이때 아스팔트에 페인트가 묻었으니, 재물손괴라는 것이다.

“그게 진짜에요?”

석범 아저씨 말이 아니었다면, 농담인 줄 알았을 것이다.

놀랍게도 이번에도 검찰은 글씨를 쓴 조합원들에게 각각 징역 1년씩을 구형했다.

“새, 새벽에 용역직원이 운전한 차가 노조를 향해 돌진하는 일이 있었어.”

그 일로 그 자리에 있던 여덟 명은 타박상을, 세 명은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용역직원은 그대로 차를 몰고 도망갔다.

경찰에 신고하자 하루 만에 용역직원은 자수했다.

그는 차에 누워 자고 있는데 조합원들이 몰려오자 위협을 느껴 무작정 차를 몰고 도망치다가 사고가 났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그 진술을 받아들여 뺑소니가 아닌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고, 검찰은 11명이나 다친 사건에 대해 불구속기소했다.

용역과 대치가 이어지며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공장을 점거한 노조와 용역은 수차례 물리적 충돌을 벌였고, 결국 공정점거 일주일 만에 조합원들은 전부 밖으로 쫓겨났다.

“그, 그 과정에서 용역이 내던진 소화기를 머리에 얻어맞았어.”

조금만 빗겨 맞았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중상이었다.

바로 병원으로 실려 간 석범 아저씨는 두피를 절개하고 부서진 뼛조각을 꺼내서 접합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지만, 후유증 때문인지 그때부터 발음이 어눌해지고 말을 조금씩 더듬는다고 한다.

난 할 말을 잃었다.

처음에는 불법사채 같은 걸 쓰는 바람에 조폭들에게 맞은 줄 알았다. 차라리 그랬다면 이해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파업과정에서 용역에게 맞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지금이 무슨 군사정권 시대도 아니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게 말이 되나?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범인은 잡았어요?”

석범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경찰은 용역들이 전부 마스크를 쓴데다가 소화기 연기가 자욱해서 당사자를 특정할 수 없다며 수사를 포기했다.

당시 찍은 영상을 보면 소화기를 들고 있던 사람은 고작 세 명이었다.

용역직원들을 불러다가 누가 소화기를 들고 있었는지만 밝혀내도 어렵지 않게 당사자를 찾을 수 있을 텐데, 경찰은 그 쉬운 일조차 하지 않았다. 고소하고 싶으면 알아서 당사자를 특정하고 증거를 가져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용역에 대해서는 별다른 수사의지를 보이지 않는 경찰이지만, 노조에 대해서는 달랐다.

몸싸움을 벌인 조합원들을 3D안면인식 기법까지 동원해 마스크 속의 얼굴을 일일이 분석해서 찾아냈다. 그리고 한 명도 빠짐없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역시나 검찰은 전부 징역 1년씩을 구형했다.

택규는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뭐만 하면 징역 1년 구형이야? 징역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파업이 길어지며 날씨는 점점 추워졌고, 조합원들은 점점 지켜갔다. 사측은 대체인력을 투입해 공장을 가동했다.

결국 파업 두 달 만에 노조는 업무복귀를 선언했다. 사실상 백기투항을 한 셈이다. 그러나 회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홍우송 회장은 노조탈퇴 없이는 업무복귀도 없다고 못 박으며, 이번 기회에 노조를 완전히 무력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조합원들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과 검찰에서 출석요구서가 날아왔다. 여기에 사측은 불법파업으로 손실을 입었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시작했다.

“그, 그럼 종수 아저씨는……?”

석범 아저씨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스, 스스로 목을 매달았어.”

“…….”

장례식이 끝난 후, 석범 아저씨는 TV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시 힘겨운 시간이 흘렀다. 우편함에는 벌금통지서와 함께 경찰출석요구서와 검찰출석요구서가 꽂혀 있었다.

수술비는 빚으로 남았고, 벌금 낼 돈도 없었다. 가족들을 볼 면목도, 다시 일할 자신도 없었다.

“더, 더 이상은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무작정 차를 몰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리고 인적 없는 곳에 차를 세운 다음 헌옷으로 배기구와 환기구를 틀어막고 번개탄을 피웠다. 눈을 감으니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어서 예전 사장님과 같이 일했던 직원들의 얼굴들이, 마지막으로 내 얼굴이 떠올랐고 한다.

“저, 정신을 잃기 전 간신히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어. 그, 그리고 날이 밝자마자 널 만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지. 조,종수는 죽었는데, 혼자 와서 미안하다.”

“…….”

살기 위해 찾아왔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나?

택규는 나를 보며 물었다.

“우송기업인지 뭔지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이라며? 이런 일이 있었는데 왜 안 알려진 거야?”

“언론이 보도를 안 했으니까.”

세상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언론은 그중에서 기사가 될 만한 것들을 선별해서 보도한다. 아무리 큰일이 일어나도 언론이 눈을 감으면,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는다. 또한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사슴을 말로 바꿀 수도 있다.

“어째서 경찰과 검찰이 우송기업 편만 드는 거죠?”

“호, 홍우송 회장이 경찰서장이랑 형동생하는 사이고, 거, 검사장과도 친해.”

“…….”

지역유지인 셈인가?

한 지역에서 오래 사업을 하는 사업가가 공무원들과 결탁하는 건 흔한 일이다.

“그, 그리고 뒤에 은성차가 있어.”

난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석범 아저씨는 설명을 해주었다.

공장점거 과정에서 서류봉투를 하나 발견했다. 안에 든 서류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것은 우송기업의 비밀회의 문건이었다. 거기에는 파업 대응요령이 적시되어 있었다.

용역경비원 배치, 정문봉쇄, 통근버스 운행중지, 직장폐쇄, 출입통제, 언론자료 배포, 대체인력투입, 노조의 불법행위와 태업 채증 등등.

회사는 파업 이전에 창주컨설팅이라는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고, 채증을 위해 캠코더와 녹음기까지 주문했다.

이는 애초에 사측이 노조와 협상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원청인 은성차가 노조파괴 계획을 직접 지시하고 보고 받은 서류가 함께 있었다.

노조는 서류를 전부 찍어서 지방노동청에 고소했다.

하지만 홍우송 회장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했고, 은성차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조사도 하지 않았다.

택규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또 은성차야?”

“…….”

이쯤 되면 지독한 악연이다.

자동차에는 약 3만 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그중 하나만 없어도 차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완성차업체는 부품조달과 관리에 신경 쓴다.

우송기업은 엔진의 핵심부품을 생산하는 1차 밴더인 만큼 파업은 은성차에게도 큰 걱정거리였을 것이다.

은성차는 생산과 납품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구매본부 담당자를 통해 우송기업에게 사측의 파업 대응, 창주컨설팅과의 계약, 대체인력 투입 등을 일일이 지시했다.

난 이제야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은성차 뒤에는 박시형이 있다. 그래서 경찰과 검찰이 우송기업 편에 서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것이다.

노사갈등에 권력과 재벌이 얽혀서,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건가?

석범 아저씨는 고개를 푹 숙였다.

“너, 너한테 이런 얘기해서 면목이 없다. 부,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는 없어서.”

돈이 많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 주변 사람의 어려움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

난 아저씨의 손을 꼭 붙잡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석범 아저씨는 또 다시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고, 고맙다, 진후야. 정말 고맙다.”

* * *

난 일단 석범 아저씨를 돌려보냈다.

택규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그쪽 방식대로 해줘야지.”

난 엑스캅 사장에게 연락했다. 입찰이 끝난 후 잠깐 통화를 나눈 이후로는 처음이다.

[안녕하십니까, 강진후 대표님. 엑스캅 김효명 사장입니다. 무슨 일로 연락 주셨습니까?]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설명할 테니, 지금 바로 경비용역 쪽 전문가 한 명 이쪽으로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바로 보내겠습니다.]

얼마 후, 한 남자가 CEO실로 들어왔다. 나이는 40대 초반으로 키는 약 190에 온몸이 돌덩이 같은 근육으로 덮여있었다.

그는 깍듯하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진후 대표님. 엑스캅의 이철진 과장입니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소파에 앉았다.

난 바로 질문했다.

“혹시 창주컨설팅이라고 아시나요?”

이철진 과장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뭐하는 회사에요?”

“인사와 노무관리를 컨설팅해주는 노무법인입니다.”

“유명한가 보죠?”

“예. 이쪽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명목상 노무법인이라 치고. 실체는 뭔가요?”

내 물음에 그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노조파괴를 전문적으로 하는 용역깡패회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직원들 중 절반은 깡패입니다.”

“그럼 나머지 절반은요?”

“조폭입니다.”

“…….”

그 둘이 무슨 차이야?

난 소파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

“꽤나 위험한 놈들이네요. 만약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엑스캅 직원들이 상대할 수 있을까요?”

이철진 과장은 표정을 굳히며 진지하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엑스캅은 최정예 요원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수부대 출신은 물론 해외 용병 출신도 많습니다. 깡패나 조폭 따위를 상대하는 건 일도 아닙니다.”

은근 자존심 상한 것 같은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엑스캅은 대한민국 2위의 보안업체. 머릿수, 장비, 자금력 등 모든 면에서 용역깡패회사와 비교할 레벨이 아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네요. 이번 기회에 실력 한 번 보죠.”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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