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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9

109화 별철무구

천소연은 그날의 기억을 톡톡히 기억하고 있다.

영웅인 할아버지와 그런 할아버지의 뒤를 착실히 이어가는 자랑스러운 아버지와 어머니.

울산에 출몰한 게이트를 공략하고 가족여행을 즐기자는 계획으로 함께했던 그 소소한 여행이, 소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소연 아빠! 제발 정신 차려!」

그녀는 보았다.

게이트를 공략하고, 공략대원들과 함께한 뒤풀이. 그곳에 유성처럼 떨어진 ‘검’. 그녀의 아버지는 홀린 듯 검을 쥐었고… 동고동락하던 공략대원들을 모두 살해했다.

그를 말리던 엄마까지도.

[아…빠?]

그것이 그녀가 본 마지막 부모님의 기억.

천소연이 두 사람에게 복수를 맹세한 날이었다.

* * * *

“후우…….”

천소연은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섰다.

빠르게 깜빡거리는 눈. 가쁜 호흡. 이를 감추기 위해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시작되는 거야.”

만신전의 일본 입국이 결정됐다. 다시 말해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를 필두로 한 방랑의 마검 공략이 시작된다.

‘이건 기회야.’

그녀의 삶에 있어 단 한 번뿐일 기회. 설사 할아버지의 조력을 받는다 해도 불가하리라 여겼던 순간이, 이 만신전과 함께한다면 가능하다.

[발칙하구나, 계집아.]

숨이 덜컥거리는 음산한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인다. 소연은 파르르 떨리는 몸을 붙잡으며 기숙사를 나왔다.

껌벅이는 전등과 몰려드는 벌레들. 덜컥거리는 기숙사의 계단을 내려와 어두운 길가를 걷는다.

온전히 홀로임을 확신하고서야 천소연은 입을 열었다.

“그런 거래였잖아요.”

[그래, 그런 거래였지.]

소연의 대답에 긍정하는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이 말했다.

[나의 복수자는 이미 가르침을 주었을 것이다. ‘신성과 거래하려 들지 말라’고.]

신성과 거래하려 들지 말라.

오직 신심을 쌓으라.

간단하나 실행하기는 어려운 가르침이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그 가르침을 납득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거래’를 제안한 신이 있었다.

[나만은 네 발칙한 거래에 응하지. 너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나만은 힘을 준다. 그 행운을 가벼이 여기지 마라.]

“벤타시스님.”

어둠과 복수의 신성 벤타시스.

레온이 생도들을 신들과 연결시켜 줄 때, 천소연에게 속삭인 벤타시스는 줄곧 그녀에게 연결되어 있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공물을 바치면… 저도 성배기사가 될 수 있는 건가요?”

-그흐흐흐흐흐…….

벤타시스의 사이한 음성이 무겁게 내리깔아졌다. 마치 무거운 열기가 바닥에 가라앉듯이.

[착각하지 마라, 너 따위가 나의 복수자를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네 하찮은 업은 사자심왕의 발목 끝자락에도 미치지 못한다.]

복수자.

벤타시스는 틀림없이 레온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레온 또한 벤타시스의 힘을 빌었다는 것일까?

[네 복수를 나만큼은 도우리라. 허나, 그 대가는 처음 말했던 대로다.]

“…….”

기적을 손에 넣는 대가. 천소연은 그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

[둘. 둘이다. 너의 복수가 이뤄지는 순간, 네 영혼은 영원불멸토록 내 것이 되리니.]

벤타시스.

레온이 평가하기로 가장 위험한 신성.

그는 세상의 어둠을 관장하는 존재요 복수를 대리하는 자.

악신에 가까운 존재였다.

* * * *

만신전의 일본 입국과는 별개로 야피는 바쁘게 기계팔을 움직이고 있었다.

야피의 공방은 작은 공방이다. 야피의 작은 몸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은 입구에 빽빽하게 들어찬 시설 때문에 사이사이를 통과하는 건 야피의 작은 동체뿐.

이는 기밀 보호라는 측면에서도 최적이었기에 야피는 별다른 공방 확장을 삼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한계에 달했다. 만신전은 별철이라는 희대의 광물을 확보했고, 이를 대량양산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야피 경. 안에 계신가요?”

야피의 공방에 베아트리체가 찾아왔다.

야피는 빠르게 작업을 중단하고 비좁은 원통형 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무슨 볼일?

“장비 준비는 다 되었나 싶어서요.”

혜성이 떨어진 이래 야피는 서둘러서 작업에 진입했다.

그중에서도 서두른 것이 레온과 야피 자신의 업그레이드 플랫폼이었는데, 이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리하여 먼저 기사 생도들용의 검과 창, 갑주부터 제작하기로 했고, 이건 생각보다 쉬웠다.

성배기사급의 장비가 아닌 기사급의 장비는 별철 함유량도 비교적 적었던 덕분이다.

-문제없음. 3세트만 더 마무리하면 끝남.

“놀랍네요. 정말로 그 짧은 시간만에 그 많은 장비들을 제작할 줄이야.”

베아트리체는 이 기계거미가 24시간 쉬지 않고 동작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작업에 있어 ‘기계’라는 특성은 구상된 설계도의 1mm도 빗겨나가지 않는 정확한 작업을 반복했다.

하물며 강인공지능인 야피는 철과 대장장이의 신성 헤토가 알려주는 지식과 설계사상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99.9%로 이행한다.

“0.1%는 왜 비는 것이죠?”

-모름. 미묘한 오차가 발생. 재현불가 영역.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기계적인 작업을 통해서도 헤토가 알려주는 지식의 재현이 완벽하진 않았다.

비교적 손이 덜 드는 기사용 장비야 별문제 없지만, 다름 아닌 레온의 갑옷에서 그 차이가 벌어진다.

-폐하의 장비제작이 늦어지는 이유. 0.1%의 오차가 결정적인 차이를 낳음.

“신성의 힘이란 신비로운 일이군요.”

이 기계거미조차 재현이 불가능함을 인정할 정도다.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야피 경. 잉여 별철이 있나요?”

6km짜리 혜성이었던 만큼 재료가 부족하지는 않았다.

99%를 걸러내야 했고, 그중에서도 상급품과 하급품을 또 걸러냈지만 그래도 6km라는 아성은 너무나 거대했으니까.

-끼룩?

“괜찮다면 저도 준비해주고 싶은 게 있거든요.”

자줏빛 눈동자의 여왕은 싱긋 미소 지었다.

* * * *

방랑의 마검 공략을 위해 만신전의 일정은 일부 미뤄졌다.

정확히는 기사단 창설식. 대의식을 통해 별을 끌어들이고, 그 별을 이용해 별철 대장간을 지은 야피가 장비를 두드리고 있다.

레온이 계획했던 ‘기사단 창설’의 단추가 거의 맞추어진 셈.

“너희들은 짐과 함께 연합의 한축을 이루는 군단이 될 것이다. 호명하는 이들은 앞으로 나와 보급품을 수령하라.”

이번 연합공략을 위해 레온은 천여 명의 맨앳암즈 중 절반과 기사생도 전원에게 소집령을 내렸다. 그 뒤로 만약을 위해 예비대가 편성되긴 했지만, 워낙 많은 헌터들이 합류할 예정인지라 총 동원병력에 제한이 있었다는 모양이다.

-한빛궁도 참전하는 모양인데?

-일단 우리하고는 별개의 병력이래.

하지만 부족한 숫자는 한빛궁주 박용신을 비롯해 휘하 헌터들이 참전함으로 충분했다.

그들은 악마의 씨앗을 제거해준 레온을 새로운 교주로 여기고 있었으며 베테랑 헌터들이기도 하다.

“위대한 구원자님의 종인 저 박용신 이하 정예 제1, 제2 공략대! 기꺼이 만신전을 지원하겠습니다!”

A급 공략대만 2개를 차출할 수 있는 건 역시 10대 길드의 저력이라 할 만했다.

“아… 광신의 방향이 바뀐 것뿐인 거 같은데.”

재혁은 박용신과 한빛궁 출신 헌터들을 보면서 혀를 찼다. 옆자리의 하리가 말했다.

“그래두 좋은 방향으로 광적이니까 괜찮지 않겠니?”

“진짜 신님들이니까 틀린 건 아닌가요?”

“그거지 그거. 그리고… 나 이상하게 저쪽에서 떠받들리고 있거든.”

“여윽시 신녀님. 존경합니당.”

바다와 파도의 포마, 전쟁과 불꽃의 페토스의 신녀는 이 원정대에서 나름 넘버4다. 작위까지 받아 서임식만 미뤄졌을 뿐이지, 장원까지 받은 만신전 기사.

거기에 신녀이기까지 하니 박용신은 헌터협회의 말단 대리에 불과한 하리에게도 깍듯이 대했다.

“그래서 저한테도 그렇게…….”

그리고 김재혁 또한 하늘과 천둥의 신 울티마의 성법을 사용하는 기사. 신녀에 비할 정도는 아니어도 나름 급이 있다.

“근데 하리 선배. 소연이도 이번에 참전하는 검까? 광검자 할배가 반대했다던데.”

“으음, 나도 그걸 좀 물어봤는데… 폐하가 자신이 나설 일이 아니랬어.”

“폐하께서요?”

레온이 거부한 게 아니라 아예 권리가 없다고? 대체 누가 사자심왕에게 법도를 논할 수 있단 말인가.

“한하리, 한수호. 김재혁, 천소연은 앞으로 나오라.”

그때였다. 레온이 호명한 이들이 차례차례 단상에 선다. 옥좌를 대신하는 상석에는 레온이 있었고, 그 옆에 베아트리체와 야피가 있다.

하리나 재혁은 언젠가 자신도 저 옆자리의, 즉 성배기사가 되는 날을 꿈꿨다.

“그간 너희들의 성취는 짐이 기대했던 대로였다. 특히 한하리.”

“아, 예! 폐하!”

“신들께서는 순수한 자를 총애하시지. 너는 너의 순수와 재능을 증명했고, 그럴 만한 인재다.”

레온의 말에 하리는 긴장한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 자리에서 사자심왕을 동경하지 않는 자는 없다.

넘쳐흐르는 기품과 권위. 그 명예로움은 현대의 냉소적 가치관을 뛰어넘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람이란 영웅을 동경하기 마련이다.

“너에게 검과 창, 경갑과 마갑을 수여한다. 네 본래의 힘을 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스피너 경이 맞춤으로 제작한 것이니 긴히 쓰도록.”

건너편에서 무구들을 가져온 건 다름 아닌 협회 소속의 감정사 박수진 과장이다.

그녀는 하리가 쓰던 검과 별다를 게 없는 도검과 마상창 그리고 움직이기 편해 보이는 사슬갑옷을 가져왔다.

“갑옷은 옷 안에 입으면 될 거고, 마갑은 따로 축사에 대기해놨어요.”

“오, 오오…….”

하리는 감탄하면서 검과 창 그리고 사슬갑옷을 보았다. 별철을 재료로 야피가 성법을 사용하며 제작했다는 무구들은 척 봐도 보통 때깔이 아니다. 그리고 그녀가 무구를 받아든 순간──

[싸워라! 이 전쟁의 신녀로서 적을 불태우는 겁화가 되어라!]

전쟁과 불꽃의 신 페토스가 하리의 검과 창을 축복했다.

[무한한 대해 속에 몸을 맡기거라. 신의와 신앙과 신뢰로 가득 찬 심장을 품거라.]

바다와 파도의 신 포마가 하리의 갑옷을 축복했다.

별철이라는 신의 금속으로 제작된 무구가 필요한 이유. 그것은 바로 신의 축복이 깃들기 위해서였으니 신들은 자신들의 총애하는 아이들을 보살피기 때문이다.

“신녀 한하리에게 하사된 무구들은 다음과 같은 힘을 품고 있습니다.”

[불꽃이 축복한 별철검]

◆ 등급 : 레전더리

◆ 상세

전쟁과 불꽃의 신성 페토스가 불꽃의 권능을 담아 축복한 별철검입니다.

────

────

[파도가 축복한 별철갑주]

◆ 등급 : 레전더리

◆ 상세

바다와 파도의 신성 포마가 파도의 권능을 담아 축복한 별철갑주입니다.

────

────

하리가 받은 무구를 보란듯이 감정하는 박수진 과장.

이에 그를 지켜보던 생도와 맨앳암즈들이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레전더리 아이템이라니? 그것도 신이 축복한 아이템이라니?

족히 수백억… 아니,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보물이었다.

“김재혁, 앞으로 나오라.”

김재혁 또한 검과 창, 갑옷과 마갑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무구에도 신이 나타나 축복했고.

[네게 천둥의 힘이 깃들 것이다. 사자심왕을 도와 악종들을 벌하는 심판관이 되어야 할 것이야!]

하늘과 천둥의 신 울티마는 김재혁의 무구에 하늘과 천둥의 축복을 부여했고, 그 탓인지 파지직 뇌기가 흐르는 힘은 감탄과 탄성을 자아냈다.

뒤이어 한수호 또한 빛과 정의의 여신 아리아나의 축복을 받았고 이 또한 레전더리. 마지막으로 천소연의 차례였다.

“천소연.”

“예, 폐하.”

레온은 묵빛처럼 검은 머리 소녀를 내려다봤다. 다른 편력기사 소년소녀들과 달리 이 소녀에게 깃든 신은 여타 신들과 달랐으니까.

“네 할아비가 너를 공략대에서 빼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

천소연의 할아버지. 그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었다.

신검길드의 길드장, 한국 최강의 헌터 광검자 천진수.

그런 그가 손녀딸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번 토벌이 그 손녀딸의 아버지를 토벌하기 위한 일이라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너는 어쩌고 싶으냐.”

“……참전하고 싶습니다. 아니, 참전해야 합니다.”

“그러하냐.”

레온은 천소연을 지긋이 바라봤다.

이 여아를 주시하는 어둠과 복수의 신성은…….

“그렇다면 그리하라.”

거리낌 없이 소녀의 귀에 파멸을 속삭이고 있었다.

천소연에게도 무장이 주어졌다. 그녀에게는 특이하게도 이검이 주어졌는데, 자로 재단한 것처럼 똑같은 쌍둥이 검이다.

[복수자여.]

그녀의 무구를 축복하기 위해 나타난 어둠의 신. 그는 검은 연기무리의 로브를 뒤집어썼으며, 그 안에는 눈도, 코도, 입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오직 끝없는 어둠뿐. 벤타시스는 다른 신들과는 그 기운이 판이하게 달랐다.

보는 것만으로 신성함을 느끼고 따스함을 느꼈던 다른 신들과 달리 벤타시스는 불길하고 차가운 성력을 주변에 내리깐다.

그 목소리는 음험하고 음산했으며 어떤 사랑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긍정하는 건 인간의 잔혹한 이면뿐이니… 그곳에 인간성 따위는 결여되기 마련이다.

[너의 복수를 내가 긍정하노라. 네게 주어진 선물이 파멸의 어둠을 결집하리라. 오직 나만이 너의 바람을 이루리라.]

천소연의 검에, 갑옷에, 창에 어둠의 기운이 휩싸인다. 그에 녹아들듯 검도, 창도, 갑옷도 어둡게 물든다.

그것은 신들의 선물이라기보다는 저주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불길하고 음험했다.

그렇게 벤타시스의 축복이 마지막 남은 검에 닿으려는 순간──

“……!”

레온이 그 검을 붙잡았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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