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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9

108. 소꿉친구 – 상단주

– 푸르륵. 푸르륵.

레브가 탄 말이 투레질하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토리토의 어느 상인에게 구입한 그 말은 엉덩이 부근이 검은색으로 얼룩덜룩한 갈색 말이었는데, 바라는 게 많은 성격이었다.

초가을 너른 들판을 보거든 풀을 뜯고 싶다며 제 갈기를 흔들기 일쑤였고, 언덕길을 넘으려 하거든 은근슬쩍 엉덩이를 뒤로 빼면서 느릿하게 걸었다. 또, 부근 지리를 모조리 외워 놓은 모양인지 달리다가 이유 없이 속도를 줄이거든 틀림없이 물가가 근처였다.

“능구렁이 같은 녀석이 말로 태어나가지고는…”

– 히히힝!

그래도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면 부지런히 달렸기에, 레브는 냇가에 멈춰서서 ‘반테’에게 물을 먹였다.

앞다리가 짧던 암컷 말, ‘아우디’의 ‘아’씨 성을 따서 수컷인 이 녀석의 이름을 지어준 것이었다.

물통을 미처 챙겨오지 못한 레브는 바짓단을 둘둘 걷어 올리고 냇가에 발을 담갔다. 허리를 숙여 물놀이 하듯 반테에게 물을 튀겼다.

달려오느라 몸에 열이 올랐을 녀석을 식혀주려는 것이었는데…

반테는 그런 주인을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반대쪽에도 물을 끼얹으라는 행동이다.

대체 누가 상전인지…

한창 그렇게 물을 끼얹는데, 두두두두-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상단이 냇가에 도착했다.

레브는 놀라지 않았다.

조금 전에 한 용병이 먼저 도착해 냇가에 도적들이 없는지를 확인하러 기웃거린 것을 봤다.

‘슬슬 빠져줘야겠다.’

곧 있으면 상단의 마부들이 각자의 말을 끌고 와서 냇가를 차지할 터였다. 레브는 물배가 불러 배가 불룩해진 반테를 끌어내며 막 도착한 상단을 훑어보았다.

마부들은 마차에 묶인 말들을 풀어주며 각자의 물통을 챙겨 들었고, 용병들은 한가로이 몰려들어 잡담하고, 마차에서 내린 상인들은 몸을 비틀어 아린 몸을 푸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낯이 익다.

‘내가 이 사람들을 어디서 봤었나? 앗!’

그때, 레브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어으, 새색시랑 첫날을 보낸 마냥 허리가 저리는구먼. 나도 이제 늙었나 봐. 하하하.”

두툼한 뱃살과 빙빙 꼬인 수염을 가진 상인이 마차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연초에 불을 붙이며 입에 붙어버린 섹드립을 날렸다.

‘저 자식이 여기에 있었구나!’

그는 예전에 레브와 레나를 팔아넘긴 상단주였다. 여행이 처음이었던 우리가 네비스로 간다는 말에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여비는 여비대로 받고, 다른 상단주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라고 넘겨준 놈이다.

당시에는 저놈을 큰 마을(토리토)에서 만나 함께 서쪽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시기상으로 볼 때, 저들은 그 상행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임이 틀림없었다.

– 으드득.

레브가 어금니를 악물었다.

레나가 납치당하고, 마구간 기둥에 묶여 밤새도록 발버둥 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레나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레오만이라도 살려달라며 애원했었다.

그리고 왕자들의 노리개가 되어 쉬이 벗겨질 옷을 차려입고 시커멓게 눈이 죽어버린 레나… 그 사진을 내가 어찌 잊겠는가.

‘넌 오늘 죽었다.’

레브는 허리춤의 검을 매만지면서 놈에게 다가갔다. 허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주위에 용병들이 있었다. 저 상단주를 죽이면 상단을 호위하는 용병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

‘싸워 이길 수는 있지만…’

용병들은 상단주가 여행객을 팔아넘기는 것과 무관했다. 그들은 상단을 호위하는 대가만을 받았을 테고, 상단주의 단독 범행일 것이니 그들에겐 죄가 없었다.

잠시 어물쩍, 걸음을 번복하던 레브가 반테의 등에 올랐다. 따그닥거리며 상단주를 스쳐 지나갔다.

놈을 용서한다거나 복수를 미루려 함은 아니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

나는 빨리 네비스로 가야 하고, 이 녀석은 토리토를 향하고 있으니 지금이 아니면 만날 일이 없었다.

마음 같아선 고통스럽게 죽여주고 싶지만… 그는 선처를 베풀기로 했다. 어쨌거나 이놈은 우리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은’ 놈이기도 하니까.

“응? 뭐야? 아 거참. 말 좀 조심해서 몰…”

– 촤악!

상단주의 목이 날아올랐다. 레브의 검이 깔끔한 궤적을 그리며 놈의 목을 쳤다.

[ 업적 : 민간인 살해 – 민간인 ‘3’명을 살해했습니다. 미약하게 불행해집니다. ]

“허어억! 뭐, 뭐야!”

함께 연초를 태우던 상인들이 기겁해서 외쳤다. 대낮의 난데없는 피분수에 놀라 벙-쪄버렸다.

엉겁결에 상단주의 날아든 목을 받아든 상인은 자지러지게 놀라더니 머리를 떨구고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앗?! 웬 놈이냐! 서라!”

용병들이 깜짝 놀라 외쳤지만, 레브는 상단주의 목을 쳐버리기가 무섭게 말을 몰아 달아나고 있었다.

멀리 냇가의 마부들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물을 뜨는 데 열중이었다.

레브가 생각하기론 이게 그나마 나은 방법이었다.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지 않으면서 상단주에게만 복수할…

하지만 용병들이 재빨리 말을 타고 쫓아오면서 상황이 곤란해졌다. 그들의 기마술은 레브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 업적 : 최초의 승마 – 레오의 기마술이 소폭 상승합니다. ]

레브의 기마술은 그닥 훌륭하지 못했다. 지난 소꿉친구, 약혼관계 시나리오에서 말을 제법 몰아보았으나, 여행이 목적이었기에 말을 전력 질주시켜본 경험이 드물었다.

결국, 용병들이 그를 바짝 따라잡았고, 레브는 혀를 찼다.

“서라! 야, 저놈 말을 쏴버려. 저 개자식을…??”

용병들이 당황했다. 달아나던 놈이 말을 세우더니 땅에 내렸다.

“뭐, 뭐야?”

‘서란다고 진짜 서는 놈이 있네?’

당혹스러워하며 그들은 각자 말에서 내려 무기를 뽑았고, 레브는 이십여 명의 용병에게 포위당하고도 침착하게 말했다.

“전 그놈에게 원한이 있었습니다. 원한을 해결했을 뿐이니 관여하지 마십시오.”

“원한? 쬐끄만 자식이 상단주한테 무슨 원한이야?”

“그놈은 무고한 여행객을 속여 노예로 팔아넘긴 놈입니다. 모르셨습니까?”

“개소리! 우리는 물건을 팔러 다니는 상단이지 노예상이 아니…”

그때, 용병대장이 손을 들어 화를 내는 용병을 제지했다. 그는 상인들이 종종 여행객을 노예로 팔아넘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뱃살을 길게 늘어뜨리고 천박한 언행을 일삼던 상단주, 그놈은 그랬을 법도 하다.

용병대장이 물었다.

“증명할 만한 것이 있는가? 빚으로 팔려간 것도 아니고, 야만인도 아닌 평민이 노예가 되었다면 명백한 불법이다.”

“…”

“만약 증거가 있다면, 관청에 신고하는 걸 도와주겠다. 그리한다면 네가 상단주를 죽인 죄도 다소 참작될 것이다.”

타당한 말이었으나, 레브는 멀뚱멀뚱 눈을 돌릴 뿐이었다.

예전 시나리오에서 있었던,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라 증거나 증인, 무엇이 됐건 간에 있을 턱이 없었다.

“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레브가 우격다짐했다.

이들 모두를 매혹할 수는 있지만, 결혼반지를 착용한 사람이 여럿 끼어있어서 신력이 많이 필요했다.

이만한 일로 신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왕을 매혹할 것을 생각하면 부족할까 걱정인데…

용병대장의 얼굴에 노기가 어렸다.

“증거가 없다면 너는 단순한 살인자일 뿐이다. 자네같이 멀쩡해 보이는 청년이 한 짓이니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지금이라도 무기를 버려라. 그러면 마을에서 재판을 받게 해주겠다.”

대장이 최대한의 호의를 보였건만, 끝내 청년이 검을 버리지 않자 용병들이 서서히 포위를 좁혔다.

“물러서는 게 좋을 겁니다. 저도 피를 보고 싶지는 않…”

“검을 버려라! 당장!”

“대장님! 이런 살인자한테 무슨 재판입니까. 우리가 호위하는 상단주가 죽었는데, 이놈을 살려두면 저희 밥줄 끊깁니다!”

좀 전의 용병이 불만스럽게 말하더니 불쑥 창을 찔렀다. 우리 대장은 너무 물러서 탈이다.

“잠깐! 그래도 아직 어린 청년인데 무슨 사정이… 앗!”

용병대장은 청년이 무참히 창에 찔리리라 예상했는데, 청년은 되려 찔러오는 창을 검으로 내리치더니 기울어진 창대를 밟고 빙글, 몸을 돌렸다.

검면으로 관자놀이를 강타당한 용병이 나뒹굴었다.

“악!”

“호센! 저놈이!”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자 레브가 으름장을 놓았다.

“다 죽이고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러고 싶지 않으니 돌아가십시오.”

허나 용병들은 기죽지 않았다. 그들의 눈은 용병대장에게 향해 있었다.

용병대장은 놀라면서도 조금 화가 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어린 녀석이 어디서 검술을 배운 모양인데… 그 잘난 검술 실력으로 용병단을 만만히 본 것이라면 후회하게 해주겠다.”

검을 뽑는데, 하필이면 양손검이다.

기사를 제외하면 양손검을 쓰는 경우가 드물었다. 대단한 공격력을 뽐내는 만큼 다루기 어려운 무구이기 때문이다.

십중팔구 이자는 기사 출신…

– 째앵!

용병대장이 달려들었다. 매서운 검격이 레브의 검을 내리찍었다.

‘브렌더’라는 이름의 이 용병대장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아뮤스 백작가’의 기사였다. 그리고 그가 모셨던 아뮤스 백작은 크게 책잡을 곳이 없는 평범한 귀족이었다.

하지만 백작은 ‘쓰레기 왕자들’이 정권을 잡자 빠르게 변했고, 참다못한 브렌더는 하사받은 검을 집사의 발치에 던져버렸다.

백작가를 나와 자그마한 용병단을 차린 그는 나름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민생의 안전에 힘쓰며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이 청년도 뭔가 사정이 있는 모양이니 일단 제압하고 도와줄 수 있으면 도움을 줘야겠…

– 카앙-!

용병대장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무모한 청년의 검술이 상상 이상이다.

“이런…!”

“대장님이 위험하시다!”

그가 깜짝 놀라서 상대의 검을 빗기듯 흘려내는데, 검술에 조예가 없는 용병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양손검의 위태로운 공방이 생소해 대장이 형편없이 밀린다고 생각하고는 손을 거들었다.

“안 돼! 빠져라! 이놈은 위험…!”

“죽어라!”

머리를 얻어맞았던 용병이 재차 달려들어 창을 찔렀다.

‘이크!’

레브는 조금 전처럼 사정을 봐줄 여력이 없었다.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갖췄지만, 어쨌거나 그는 하체만 다소 튼튼한, 평범한 체구의 청년이었다. 레오 덱스터처럼 강인한 전사가 아니어서 기사를 앞에 두고 여유를 부릴 순 없었다.

레브가 급히 옆걸음질 쳐서 창을 피했다. 동시에 용병의 간격에 침범하는 걸음이었다.

“어엇!”

“호센! 위험해!”

다른 용병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한손검과 원형 방패를 든 녀석이다. 놈은 친구를 도우려 레브의 등을 내리쳤으나…

“컥!”

레브의 검이 더 빨랐다. 레브는 호센이란 놈의 숨통을 끊기가 무섭게 목이 꿰뚫린 시체를 끌어안았다. 휙 돌아서자 달려든 용병의 검이 죽은 친구의 가슴을 베어버렸다.

“이, 이 개자식아!”

“안 돼! 모두 빠져라! 당장!”

친구의 시신을 베어버린 용병의 눈이 돌아갔다. 그는 대장의 말을 무시하고 재차 레브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용병은 결코 레브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는 레브가 아래에서 위로, 묘한 각도로 검을 올려치자 당황해버렸고, 왼손에 든 방패가 무색하게 오른손에 칼을 맞았다.

잘려나간 소지와 약지가 빙그르르, 회전하며 검과 함께 땅에 떨어졌다.

결국, 분노한 용병들이 가세하자 어쩔 수 없음을 느낀 용병대장이 외쳤다.

“조심해라! 만만찮은 놈이다! 혼자 달려들지 말고 내가 버티고 있을 때 뒤를 노려라!”

스무 명의 무장한 용병들이 진형을 갖추고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어떤 용병은 멀찍이서 창을 찔렀고, 어떤 용병은 방패로 밀어붙였다. 뒤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용병도 있었다.

레브는 일이 곤란해졌음을 느꼈다.

단순한 용병 스무 명이라면 상대할 만했지만, 개중에 기사급의 실력자가 끼어있었다. 이래서는 정말로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몰랐다.

레브는 용병대장의 검격을 막아내면서도 좌우로 옆걸음질 치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차 하는 순간 등을 찔린다.

그러면서도 저돌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수비적이어서는 결코 홀로 다수를 상대할 수 없었다.

– 캉!

레브가 용병대장의 검을 쳐냄과 동시에 검에서 한 손을 떼어냈다. 뒤에서 찔러오는 창대를 붙잡아 확! 잡아당겼다.

{검술.3v : 바르트류(流)}다.

“어엇?!”

그러고는 용병대장이 찌르는 검에 녀석의 몸을 밀어 넣어주는데, 브렌더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기사가 아니었다. 그는 얼떨결에 앞을 막아선 부하에게 “가만히 있어!”라고 외치곤 발차기를 날렸다.

뒤에 있는 청년의 허리를 노리고.

그때, 레브의 눈이 작게 반짝였다.

용병대장이 멈칫, 발길질을 거두는 사이, 왼손으로 양손검을 휘둘렀다.

아무래도 무게가 무게이다 보니 휘둘렀다기보다는 아래로 떨어지는 원심력을 이용해 올려친 것이지만, 사타구니에 검을 맞은 용병이 풀썩 쓰러졌다.

“이, 이놈!”

용병대장은 무고한 청년을 죽이려는 게 아닐까 고민했던 자신을 책망했다. 마음을 다잡고 검을 내리찍으려는데, 반짝, 또 머뭇거렸다.

레브가 한 용병의 허벅지를 찔렀다. 좀 전에 손가락과 친구를 잃어버린 용병이었는데, 그는 방패를 세운 채 뒤로 물러나려던 중이었다.

“크윽!”

용병이 악에 차서 노려보았으나 레브는 그를 등지고 뒤돌아섰다. 어차피 이놈은 전투력을 상실했으니 등을 맡겨도 좋았고, 당장 레브의 머리로 도끼가 떨어지고 있었다.

“죽어라!”

한 용병이 힘껏 내리찍었다. 하지만 빈틈이 너무 많아서 레브는 되려 어디를 찌를지 고민이었다.

지금 정면에서도 달려드는 놈이 있으니까… ‘우’ 사선베기가 좋겠다.

용병이나 깡패 같은, 검술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한 이들은 대체로 아래에서 쳐올리는 공격에 잘 대처하지 못했다. 단순히 무구를 내려 검을 막으려 할 뿐, 무게중심이나 자세가 틀려먹어서 이렇게,

“흐읍!”

검에 밀려나며 몸에 칼침을 허용했다. 합 하나하나가 강력한 양손검을 상대해본 경험이 드문 탓이었다.

사선으로 올려쳐진 레브의 검이 도끼를 내리찍던 왼쪽 용병의 가슴과 정면에서 달려들던 용병의 이마를 연달아 베고 지나갔다.

동시에 레브는 떨어지는 도끼를 피해 펄쩍 뛰어올랐다. 휘둘린 검을 따라 공중에서 회전하여 ‘우’로 베어 올렸던 검으로 다시 베었다.

도끼를 찍었던 녀석이 얼굴에 칼을 맞았다. 깨진 광대뼈가 시원한 바깥 공기를 쐬었다.

“죽여!”

“빨리 쏴!”

피 튀기는 싸움이 이어졌다. 고함이 오가며 차가운 병장기가 맞부딪쳤다.

용병들을 차근차근 썰어버리던 레브가 어깨에 활을 맞았을 때는 정말 위험했다. 오른손잡이로 보이는 청년이 오른쪽 어깨를 다치자 용병들은 용기백배하며 그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좌우 어느 쪽이든 전혀 상관이 없는 바르트의 검술 덕분에 레브는 끝내 승리했다.

아마 중간중간 레브의 눈이 번쩍이고, 용병들이 멈칫거린 것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끄으으윽…!”

용병대장은 처절하게 죽었다.

그는 자꾸 마음이 약해져서 청년을 제압하는 쪽으로 갈피를 잡았다.

검을 맞부딪친 채 힘으로 놈을 밀어붙이는데, 청년의 검이 유려하게 돌았다.

성큼 안쪽으로 발을 딛고 들어오더니 어깨에 기대듯 몸무게를 실어 왔다.

이게 무슨 짓이지? 어리둥절하며 뒷걸음질 쳤지만, 용병대장은 덜컥 시체에 걸려 넘어져 버렸다.

청년에게 눌린 브렌더는 아주 서서히, 제 팔에 힘이 빠지는 만큼씩 목이 잘려 나갔다.

“도, 도망쳐!”

대장까지 죽어버리자 몇 남지 않은 용병들이 전의를 잃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피투성이가 된 레브는 비틀비틀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허억… 허억…”

유혈이 낭자한 땅바닥. 널브러진 열댓 구의 시체와 피가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수풀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만든 참상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레브는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복수의 대상이 아닌 이들마저 참혹하게 죽여버렸음에도 ‘결국 이렇게 됐네.’ 정도의 감상밖에 없었다.

‘첫 살인 업적 때문이겠지…’

달아나는 용병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정신 상태를 덤덤히 체크하는데, 전투의 흥분 때문일까? 심장이 쿵쾅거리며 저들을 뒤쫓으라 독촉했다.

그리고,

[표적 사냥]

바르바토스의 능력이 개방되었다.

레브는 능력이 개방됨과 동시에 이것이 {추적술}보다 월등한 능력임을 알았다.

거리에 제약이 있는 듯했지만, 오직 방향만을 알려주는 {추적술}과 달리 [표적 사냥]은 ‘사냥감’의 위치를 정확하게 집어주었다.

레브는 망설이다가

– 죽여라.

손을 들었다.

달아나는 용병들을 손가락질하자 오른손바닥의, 바르바토스의 사도임을 증명하는 문양이 빛났고, 차례대로 그들의 머리 위에 나팔 문양이 떠올랐다.

“뭐, 뭐야…!”

말을 타려던 용병이 피를 쏟았다. 말안장으로 쏟아지는 코피에 놀라 코를 훔쳤지만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디버프(de-buff)다. 저 출혈은 절대로 멎지 않을 것이다. 사제의 치유를 받지 못한다면 저자는 과다출혈로 사망할 터였다.

디버프 시간이 넉넉함은 레브도 알고 있었다. 고작 코피만으로도 충분히 살해하고 남을 ‘년 단위’의 시간이었고, 상처 입고 달아나는 다른 용병들이 말 등에서 휘청거리는 게 보였다.

저들은 직접 죽일 필요가 없겠다. 레브는 코피 흘리는 용병의 말에게도 디버프를 걸고선, 반테의 등에 올랐다. 쫓아가 용병의 등에 칼을 박았다.

적막이 깔렸다. 간간이 주인을 잃은 말이 울었을 뿐, 그를 추격했던 용병들은 모조리 주검이 되어 조용히 쓰러져 있었다.

말을 타고 달아난 용병들도 출혈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낙마한 것이다.

레브가 피에 흠뻑 젖은 검을 털었다. 검집에 꽂아 넣고선 죄없이 죽은 용병들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아니, 그리 미안하지도 않다. 처음부터 그냥 보내줬으면 모를까 무기를 뽑았으면 패배의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

나는 네놈들이 달아나 신고하면 일이 꼬일까 걱정이고…

‘어지럽다.’

레브는 현기증을 느꼈다. 죽은 용병의 품을 뒤졌다.

활에 맞은 것을 제외하면 큰 상처가 없었지만 자잘한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치료약을 찾아내 몸에 바르고, 붕대를 감은 뒤, 레브는 다시 반테의 등에 기어올랐다.

‘일단 여길 벗어나자…’

무수한 시체를 뒤로하고 다시금 네비스를 향해 달리는데, 바라는 게 많은 갈색 마(馬), 반테는 전보다 얌전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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