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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9

109화 귀환 (1)

109화 귀환 (1)

데미안을 끌어안는 카인을 보며 세실은 깜짝 놀랐다. 저렇게 다급하고, 안도하고, 또 기뻐하는 카인의 얼굴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데미안도 처음에는 카인을 밀어내려는 듯했지만, 그의 진심 어린 마음을 느꼈는지 어색하게 카인을 마주 안았다.

두 사람의 친근한 모습을 보니, 그리고 다친 곳 없이 건강한 카인을 보니 세실은 모르가나의 마법진에서 데미안과 루나를 무사히 만났을 때만큼이나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렇다면 만약. 정말로 만약의 일인데 말이다. 데미안과 카인이 사이가 안 좋아져서, 그래서 서로 싸워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세실, 너는 어떤 선택을 할 거야?’

언젠가 쿠훌린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세실은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무서웠던 이야기. 하지만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저렇게나 가까운 사이인걸.

그렇게 생각하던 세실은 돌연, 자신이 얼마나 카인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와 단둘이 여행했던 경험 때문일까. 아니면 데미안, 루나, 족제비와 함께했던 험난한 여정 때문에?

푸른 매의 단에서 활동할 당시 카인은 세실에게 자주 위험한 임무를 맡겼었다. 그러나 카인은 단 한 번도 임무를 강요한 적이 없다. 그뿐 아니라 누가 봐도 다른 단원들보다 세실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구하러 간다. 내 목숨을 걸고.’

세실이 적에게 붙잡히기라도 하면 어떡할 거냐며 족제비가 따졌을 때, 카인이 했던 말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세실은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었다.

‘세실은 내 친구다. 나는 친구를 버리지 않아.’

그래서 세실은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했다. 물론 카인이 막무가내로 명령했어도 군말 없이 따랐을 것이다. 세실은 위험한 임무가 맡겨질 때마다 도리어 마음이 놓였다. 카인의 명령을 따르고 싶다. 세실에게 그것은 이성의 손이 닿지 않는 무의식적인 욕구이자, 본능이었다.

데미안과 포옹을 마친 카인이 루나와 세실을 돌아봤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세실은 흠칫 몸을 떨었다. 불현듯 크쉬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센베르크의 망자를 믿지 마라. 세실.

“······카인은 데미안만 반가운 거야?”

루나가 아랫입술을 내밀며 서운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카인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고, 그래서 세실은 다시 한번 놀랐다.

“······나도 안아 줘.”

종종거리며 다가간 루나가 카인의 품에 안기며 속삭였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카인. 그리고 보고 싶었어. 엄청 많이.”

은월의 단원들이 휘파람을 불며 환호했기에 루나는 서둘러 카인에게서 떨어졌다. 그러고는 새빨개진 얼굴로 단원들에게 빽빽 소리쳤다.

난처한 표정을 짓던 카인이 세실을 돌아봤다. 크쉬의 말이 다시금 떠오른 세실은 갑자기 두려워졌다. 혹시 카인은 모르가나의 마법진 속에서 무언갈 알게 된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내가 암영의 살수라는 것이라든지. 혹은 아버지에 대한······.

“카. 카인. 무. 무사해서······.”

혼란스러운 상태로 중얼대던 세실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데미안과 루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카인이 세실을 품에 안았기 때문이다.

카인은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세실이 하려던 말을 대신했다. 세실은 차마 카인을 마주 안지 못한 채 바르르 팔다리를 떨었다.

“카인. 무. 무사해서.”

그때, 루나가 헉! 하는 신음을 뱉으며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카인을 만나 순간적으로 잊었던 목적을 상기한 것이다. 세실도 데미안과 함께 2층으로 향했다.

벌컥, 방문이 열리며 루나가 빨려들듯 사라졌다. 뒤따라 들어간 방 안에는 쿠훌린과 엘리샤가 누워 잠들어 있었다. 못 본 사이 많이 야위었다. 루나는 절반은 안도한 얼굴로, 나머지 절반은 슬프고 다급한 얼굴로 데미안을 돌아봤다.

“걱정 마. 루나.”

데미안이 그간 모아뒀던 치유제의 재료를 꺼냈다. 라이칸과 브란델, 카인, 그리고 몇몇 단원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데미안이 치유제의 재료를 모두 모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데미안이 루나를 마주 보며 말했다.

“반드시 성공할 테니까.”

***

쿠훌린은 깊이 잠들었지만 입 안으로 해의 엘릭서를 흘려 넣자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이후 쿠훌린의 숨소리는 한결 평온해졌다. 루나가 나를 끌어안으며 울었다. 고맙다고.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다고 되뇌며.

다음은 엘리샤 차례였다. 나는 병색이 완연한 엘리샤의 얼굴을 보며, 얼마 전 라바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 그대는 놀라운 물건을 가지고 돌아왔군.

이어 라바다는 말했다. 내가 가진 검은 파편의 가루로 엘리샤를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심호흡한 뒤, 세계수의 혼돈을 엘리샤의 몸 안에 불어넣었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엘리샤의 몸은 엉망이었다. 나는 이제 엘리샤의 병이 무엇인지 안다. 이전에는 감지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나는 세계수의 혼돈을 전보다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내게는 ‘녹음심장’도 있다.

‘라바다의 말이 맞았어.’

엘리샤는 혼돈에 침식됐다. 라바다와 아리아나스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더욱 지독하다. 그녀가 한낱 인간의 육체를 지닌 탓이겠지.

‘음. 모르겠어. 나는 그 혼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니까. 아니다. 분명 경험한 적은 있는데. 아아, 언제였더라?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단 말이지. 아하하하!’

언젠가 엘리샤가 내게 했던 말이다. 그 말대로 엘리샤는 혼돈을 경험했다. 언제, 어떤 경로로 접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때 엘리샤는 혼돈에 오염됐을 것이다. 그 상태로 시간이 흐르며 침식 상태로 접어들었겠지.

내가 지닌 세계수의 힘만으로는 저 단단하게 눌어붙은 침식을 떼어낼 수 없다. 그러나 라바다를 통해 방법을 찾았다. 그래서 나는 검은 파편의 가루를 손에 쥔 채로 세계수의 혼돈을 발현했다. 그렇게 엘리샤의 몸속을 탐험하며 혼돈의 메스를 들었다.

.

.

.

검은 파편이 소멸한 대가로 엘리샤의 안색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루나가 재차 나를 안으며 고맙다고 말했고,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소설 속의 루나는 남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법이 없었다. 아니, 우는 일 자체가 극히 드물었다. 심지어 웃는 모습도 쉬이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세계의 루나는 자주 울고, 웃는다. 이 모습이 본래의 루나겠지. 소설 속의 루나가 얼마나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갔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세계의 루나는 부디 행복하기를.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게. 반드시.

“조아킴은 페르디나로 돌아갔다.”

카인이 족제비의 소식을 전했다.

쿠훌린과 엘리샤의 치유를 마친 나는 카인, 루나, 세실과 한 방에 모여 있었다.

“조조아킴도 무사했구나······! 정말 다행이야!”

루나가 두 손을 맞잡으며 환히 웃었다. 그러나 뒤이은 카인의 말에 울상을 지었다.

레소빅이 죽었다고 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레소빅은 모르가나의 마법진에 나타났고, 위험에 처한 족제비와 야니카를 돕다가 전사했다. 분명 족제비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었겠지.

“너희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라이칸 말로는 갑자기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또 사라졌다던데.”

그렇게 묻는 카인의 눈빛은 묘하게 날카로웠다. 대답은 루나가 했다. 루나는 살림바르 왕성의 보물고에서 얻었던 목걸이를 언급하며, 검은 파편에 관해 이야기했다. 님피엘의 말대로 파편에는 아주 특별한 힘이 담겨 있었다고.

카인은 보기 드물게 매우 흥미로운 눈으로 루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루나가 잔뜩 신이 나 각종 손짓과 발짓을 하며 이야기에 열중했다. 꼭 쿠훌린처럼.

“그래서 세실과 함께 나타난 데미안이 나한테 다가오더니 뿅! 하고······!”

이어 루나는 ‘부서진 땅’에 대해 말했다. 조각난 섬으로 뒤덮인 이상한 바다였다고. 무서운 괴물들도 만났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곳에서 발견했던 하센베르크 가문의 흔적을 떠올렸다.

하센베르크의 문장이 그려진 천막 조각. 다른 사람은 몰라도 카인은 알아야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카인은 자신이 하센베르크 가문의 후계자였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한 적이 없다.

‘아니. 그것 때문은 아니야.’

이상하게 그 일에 대해 카인에게 말하는 것이 꺼려졌다. 그래서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말을 꺼내면 카인도 적잖이 놀랄 것이다. 자신이 하센베르크라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고 공언하는 셈이니까.

‘카인이 정체를 밝힌 뒤에 말해줘도 되겠지.’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하던 나는 세실과 눈이 마주쳤다. 세실은 내가 하센베르크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내 눈치를 보다가 눈이 마주쳤겠지.

조금 당황한 것처럼 눈을 굴리던 세실이 나를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엘리샤는 이상하게 몸이 가뿐한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 엘리샤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분명 올해를 넘기지 못하고 뒈질 것 같았는데 갑자기 이렇게 말짱해졌다고?

“······설마 나는 이미 뒈져버렸고, 여기는 저승인 건가?”

저승치고는 이승과 너무 똑같은데, 라고 생각하며 엘리샤는 주위를 둘러봤다.

쿠훌린을 발견한 그녀의 눈에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단장······! 단장도 결국 뒈진 거예요······?”

엘리샤는 쿠훌린의 침대로 달려가 엉엉 울었다. 평생 안 뒈질 것 같더니. 루나와 디네베는 어떡하라고. 리아논은 어떡하라고. 그런데 단장. 막상 뒈지니 몸은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요.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 봐요 단장. 으헝헝헝.

작게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엘리샤는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흐에엥 짐승 꼬마······! 너는 또 왜 뒈진 거야······!”

물끄러미 엘리샤를 보던 카인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루, 루나는? 예쁜이는? 금발 녀석은? 혹시 걔들도 다 뒈진 거야······? 서, 서서서설마 라이칸도······? 왜! 대체 왜애애애애애!”

오리처럼 꽥꽥대는 엘리샤의 입을 카인이 막았다.

“아무리 죽다 살아났다지만 너무 팔팔한 거 아니에요? 엘리샤.”

“······뭐와워?”

카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엘리샤의 입을 막은 손바닥에 눈물, 콧물, 침이 뒤섞여 묻었기 때문이다.

“멀쩡해진 것 같으니 따라와요. 할 말이 있어요.”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두 사람은 밤의 바다를 보고 있었다.

엘리샤는 데미안의 도움으로 자신이 살아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쿠훌린도.

“그렇게 된 거였구나! 어쩐지 이승과 저승이 너무 똑같더라니! 아하하하!”

엘리샤는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봤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건강한 몸을 지녔다는 것이 이렇게나 행복한 일이었다니.

하긴. 인간이란 본디 상실을 겪은 뒤에야 소중함을 깨닫는 존재라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짐승 꼬마.”

“엘리샤.”

무심한 목소리로 카인이 말했다.

“당신이 배신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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