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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

10. 소꿉친구 – 한스

이른 새벽, 레나와 레오는 마을을 떠났다.

먼저 큰 마을에 들르기로 했는데, 둘이서만 떠난 건 아니고 마을의 수레도 그들과 함께했다.

데모스 마을은 한 달에 두 번씩 큰 마을로 수레를 보냈다. 수레는 큰 마을에서 격주로 열리는 장터로 팔 물건을 싣고 출발해서 필요한 물건들을 싣고 돌아왔다.

물건을 팔기 위해 어른들이 동행하기도 했지만, 보통은 아들들에게 맡겼다. 빵집 아들 한스도 작은 상자를 수레에 실었다.

청년들은 다 함께 수레를 밀었고 레오도 그에 동참했다.

“야, 레오. 떠나는 마당인데 한 번은 괜찮다니까.”

“아니에요.”

떠나는 레오가 수레를 미는 게 미안한지 청년들이 말렸으나 그는 계속 수레에 달라붙었다. 아무리 떠나는 상황이라 해도 다른 사람들이 힘들게 수레를 미는데 레나와 노닥거리며 따라갈 생각은 없었다.

레나는 수레를 따라오면서 청년들에게 물을 나눠줬다. 가을이 가까웠지만, 날씨는 아직도 더웠다.

청년들은 쉴 틈 없이 목을 축이고 머리에 물을 조금씩 뿌리며 힘껏 수레를 몰았다.

무거운 수레가 가속을 받아 쭉 달리면 편하겠지만, 이 길은 정비되지 않았고 일직선도 아니었다.

그때그때 완급조절을 하며 바닥을 살펴야 해서 앞뒤로 힘이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빨리 가야 했다. 큰 마을은 제법 멀어서 청년들은 시간을 맞추려고 밥 먹는 시간도 아끼며 부지런히 수레를 몰았다.

수레는 해 질 녘이 되어서야 멈췄다. 그리고 청년들은 수레를 큰 마을 어귀에 세우고 천막을 둘러싸듯 쳤다.

노숙 준비였다.

숙소를 잡으면 숙박비가 아깝기도 했지만, 남의 동네에서 물건이 실린 수레를 함부로 맡길 수도 없었다. 아무리 뻔한 도난 사고라도 이곳 마을 사람들이 외지인의 편을 들어줄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청년들은 수레를 지키듯 천막을 치고 노숙을 했다.

“우리는 갈게.”

“잘 가라! 조심하고!”

레나와 레오는 마을 청년들과 인사하고 떠났다.

그들은 숙소에서 묵을 계획이었다.

레오는 자기 혼자라면 모를까 레나를 노숙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괜찮다고 하겠지만, 돈이 있는데 쓸데없이 고생시킬 필요는 없다.

두 사람은 뒤로 한스가 따라오는 것도 모르고 한 숙소에 들어갔다.

난생처음으로 숙소에 들어와 본 레나는 입구에서부터 흥분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녀는 자기가 숙소를 잡아보겠다며 나섰다.

“…그리고 방은 하나만 주세요.”

“더블이에요, 트윈이에요?”

“어…? 네?”

“트윈이요.”

“네. 안내해드릴게요.”

레오가 끼어들어 트윈을 골랐다.

주인장이 촛대를 들고 앞서가는 동안 레나는 방금 뭘 고른 거냐는 듯한 얼굴로 레오를 돌아봤다. 하지만 레오는 어깨를 으쓱하고 알려주지 않았다.

알려주면 매우 부끄러워할 테니까.

‘더블을 골라버릴 걸 그랬나?’

레오는 속으로 킬킬 웃었다.

숙소 주인장은 두 사람을 방으로 안내했다.

앞서가는 주인장의 펑퍼짐한 엉덩이가 좁은 계단을 가득 메워서, 그가 든 촛불은 레나와 레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윽고 주인장이 복도에 있는 한 방문을 가리켰다.

“여기에요. 내일 나가실 때 말씀하셔야 해요.”

“네, 감사합니다. 내일 뵐게요.”

주인장은 다시 불빛을 가리며 밑으로 사라졌다.

방에 들어가 촛불을 켜자 레나는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우와! 침대가 있잖아!”

레나네 집에는 침대가 없었다.

아마 침대에서 자본 적도 없을 거다.

“당연히 바닥에서 잘 줄 알았는데. 너무 좋다! 그런데 바닥에서 자는 곳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형편에.”

“그런 곳은 싸긴 한데 여자들이 갈 곳이 못 돼.”

침대 없이 큰 방에서 지붕만 빌리는 숙소도 있었다.

가장 저렴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곳이었지만,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자야 해서 여성들이 머물만한 곳이 아니었다. 남자도 혼자 이용하기를 꺼릴 정도였으니까.

레나는 침대에 엉덩이를 걸치고 둥실둥실 몸을 튕기며 물었다.

“너무 비싼데 온 건 아니지? 아까 수레에서 노숙했어도 괜찮은데.”

“아냐. 방을 하나만 잡아서 저렴했어.”

레나는 물가를 잘 몰랐다.

레나뿐만 아니라 큰 마을로 물건을 팔러 오는 게 남자들뿐이라 마을 여성들도 정확한 시세를 몰랐다. 가격을 물물교환의 형태로 어렴풋이 아는 정도였다.

그래서 여성들은 큰 마을에서 사야 할 것이 있으면 물건을 얼마나 건네주어야 하느냐고 물어봤다. 그러니 레나가 화폐만 받는 숙박비를 알 턱이 없었다.

레나는 양쪽 침대를 왔다 갔다 하며 비교해보더니, 뭐가 떠오른 모양인지 나름 무서운 인상을 쓰며 레오를 노려봤다.

“잠깐! 레오 너, 방 같이 쓴다고 이상한 짓 하면 가만히 안 둘 줄 알아!”

주먹을 흔들면서 위협한다.

저런 행동은 오히려 역효과인데 ─ 라고 생각하면서도 레오는 알겠다고 했다.

역시 레나는 귀엽다.

방에는 양초가 몇 개 구비되어 있었지만, 많이 쓰면 주인장이 돈을 더 달라고 할 것이 두려워 두 사람은 곧 촛불을 끄고 각자 침대에 누웠다.

처음으로 푹신한 침대에 누웠지만 레나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분명 어제도 마을을 떠난다는 생각에 밤을 설쳤는데 눈이 말똥말똥했다.

옆 침대에선 레오가 낮게 숨을 쉬었다. 벌써 잠든 모양이다.

레나는 눕힌 몸을 세워 레오를 향했다. 어두웠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가 또렷이 보였다.

정말 고마운 친구다.

사실 지난 주말에 산버섯을 따면서 그에게 고백하려 했다. “사제 공부는 그만두겠다.”, “레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네가 좋다.” 등등의 말을 꺼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레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불쑥 여행을 권했다.

그에겐 그녀의 꿈을 위한 계획이 있었다. 레오뿐만 아니라 부모님, 사제님, 수도사님까지 그녀에게 도움을 주려 준비하고 계셨다.

‘나는 거의 포기했었는데….’

또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레나는 돌아누우며 얼굴을 베개에 묻었다.

그때, 레오가 사나운 꿈을 꾸는지 낮은 신음을 흘렸다.

슬그머니 일어나 그의 베개를 고치고 이마를 짚어주니 신음이 잦아들었다.

레오는 “레나야… 레나야…”라며 잠꼬대했다.

내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레나는 잠시 침대에 걸터앉아 그의 얼굴을 뜯어봤다.

푸석푸석하고 제멋대로 자란 머릿결, 반듯한 이마에 꼿꼿이 누운 눈썹, 건강하게 그을린 뺨과 잠잘 때도 굳게 다물어진 입술.

어쩌면 연인이 될 수도 있었던 남자였다.

레나는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방에서 주위를 살피고 그의 입술에 몰래 다가갔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레나의 입술이 살짝 닿았다.

– 레오 미안해! 비나르 님! 용서해주세요.

악행을 계도하는 신, 비나르 님께서는 이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지만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제 레오와는 영원히 친구로 남을 것이다.

레나는 그와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짧은 입맞춤으로 태워버렸다.

다행히 레오는 깨지 않았다.

“레오, 나 정말 나빴지?”

그녀는 친구의 흐트러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게 속삭이고 침대로 돌아왔다.

순수하게 도움을 주던 친구에게 못된 짓을 한 게 미안했다. 대신 내가 사제가 되면, 첫 축복은 무조건 너한테 내려줄게…

그녀는 뒤척거리다 어렵게 잠이 들었다.

* * *

다음날, 레오는 먼저 일어나 문밖으로 나왔다. 문 앞에는 물통과 두 장의 수건이 걸려 있었다. 씻는 용도로 보인다.

‘서비스가 좋은걸.’

그렇지 않아도 씻을 물을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번거롭지 않아서 잘됐다고 생각하며, 그는 물통을 방안으로 옮겼다.

레나는 아직 한밤중이었다.

레나가 자는 틈에 상의만 탈의하고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닦았다. 젖은 수건으로 머리도 박박 감았다.

간편하게 씻는 게 당연한 현대사회의 기억들이 불편했다. 실내에선 젖은 수건으로 이렇게 몸을 씻는 게 당연한 건데, 영 만족스럽지가 않다.

몸을 다 씻은 레오는 레나를 흔들어 깨웠다.

“레나야 일어나.”

그녀는 벌떡 일어났지만 비몽사몽, 꿈자리가 머리에 걸렸는지 주욱 늘어지는 말투로 답했다.

“레오~~ 잘 잤어~?”

“응. 난 방금 씻었어. 여기 물이랑 수건 있으니까 천천히 씻어. 그리고 여기서 밥 먹고 나갈 거니까 짐은 놔두고 내려와.”

레오는 눈을 감고 앉아있는 레나에게 또박또박 할 일을 알려주고 아래로 내려왔다.

주인장에게는 조금 있다가 밥을 먹고 떠날 거라는 말을 전하고, 그는 레나를 기다릴 겸 잠시 밖으로 나왔다.

길거리는 이른 시간부터 시장통이었고, 데모스 마을의 청년들도 일찍 일어나 물건을 팔러 들어온 듯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레오가 웃으며 몇몇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데 어디선가 한스가 나타나 그에게 다가왔다.

“오! 레오. 여기서 잤나 보네.”

“한스구나. 넌 벌써 다 팔았어?”

“내껀 금방 팔리거든. 밥은 먹었어?”

“아직. 조금 있다가 여기서 먹으려고.”

“잘됐네~ 나도 같이 먹자.”

굳이 같이 먹자는 걸 내쫓을 이유는 없어서 레오는 순순히 그러자고 했다.

한스와 레오가 딱히 친한 건 아니었다.

일단 둘은 서로 접점이 없었다. 레오는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나가거나, 레나와 먹거리를 채집하러 돌아다니거나, 마을 청년들과 가끔 밭일을 했을 뿐,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과거의 기억이 없으니, 레오에게는 한스나 다른 마을 청년들이나 똑같은 타인이었다.

한스가 도통 일을 하지 않고 어디로 숨어버린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레오는 그것도 딱히 나쁘게 생각되지 않았다.

한스네 집은 여유가 있어서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거다.

그리고 현대사회의 기준에서 그 나이에 그 정도 게으름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고, 게으름의 절정을 찍었던 민서가 탓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는 잘 모르는 남의 일에는 입을 닥치기로 마음먹었다.

한스가 물었다.

“그런데, 레나랑 했냐?”

“뭘?”

“뭐긴 뭐야.”

“……”

이 나이 때 애들이 그럼 그렇지. 얘가 왜 왔는지 알 것 같았다.

레오는 불쾌하다기보다는 다른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진짜 레오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진짜 레오는 여기서 화를 냈을까? 농담으로 받으며 웃어넘겼을까? 아니면 그냥 무시했을까?

그는 다른 생각을 하며 한스의 말을 무시하거나 적당히 받아주며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레나가 내려오자 세 사람은 다 같이 식사를 주문했고, 레나는 불청객을 보고도 내색하지 않았다. 식사 중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여행을 주제로 잡았다.

한스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영주님 성으로 간다고? 방향이 잘못된 거 아니야?”

영주성은 여기서 북쪽에 있었는데 네비스는 서쪽이었다. 수도교회가 있는 루테티아로 간다면 서북쪽으로 가야 해서 영주성을 향하는 게 잘못된 선택지는 아니었지만, 네비스에 갈 거라면 길을 돌아가는 셈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상단에 끼어가야 하는데, 여긴 상단이 없지 않아?”

“에헤이~ 세상 물정을 모르는구만. 지금 여기에 장터가 열렸는데 어떻게 상단이 없어.”

한스는 기가 차다는 듯 쯧쯧거리며 다리를 꼬았다.

“당장 서쪽으로 갈 상단도 제법 있을걸? 내가 소개해줄까?”

“아는 사람이 있어?”

“내가 이 토리토에 좀 빠삭하지.”

이 마을의 이름은 사실 토리토였지만 데모스 마을 사람들은 여길 그냥 ‘큰 마을’이라고 불렀다.

“그럼 오늘 당장 출발할 수도 있을까?”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지.”

레나와 레오는 자기만 믿으라며 큰소리 치는 한스를 뒤따랐다. 그는 익숙하게 장터를 휘저으며 몇몇 상인들에게 질문하더니 곧 돌아섰다.

“오늘 나가는 건 없대. 아까 저기서 물어봤던 아저씨네 상단이 내일 아침에 간다는데, 그게 제일 빠른 것 같아.”

“흐음…”

“갈 거면 그 상단주 아저씨까지 소개해줄게. 나도 친한 건 아닌데, 몇 번 만나봐서 알아.”

상인들은 상단주를 중심으로 무리를 이루어 각 마을의 장터를 순회했다.

큰 상단의 경우 자체적으로도 충분한 규모를 꾸렸지만, 작은 상단들은 다른 소상인들을 모아 규모를 맞췄다. 그렇게 모인 상인들은 돈을 걷어서 호위를 고용했다.

레나와 레오 같은 개별적인 여행객들은 상단에 묻어가는 게 무난해서 레오는 한스의 소개를 받았다. 굳이 북쪽에 있는 영주성에 가는 건 시간 낭비였다.

한스가 안내한 상단주는 뱃살이 두툼하고 수염을 빙빙 꼰 남자였는데, 그는 장터 한구석에서 한가롭게 연초를 태우고 있었다.

그는 한스를 보더니 반갑게 손을 들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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