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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

12화 균열 (2)

12화 균열 (2)

나는 테오를 도왔다. 힐링 블룸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한 송이도 남지 않았다.

테오는 묵묵히 족제비의 상처를 동여맸다. 나는 응급처치를 마친 테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가야 해, 테오. 큰 소리가 들렸으니 병사들이 이곳으로 올 거야.”

테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족제비를 등에 업으려는 테오를 내가 말렸다.

“내가 할게.”

나는 기사를 죽이며 두 단계 레벨업했다. 게다가 이곳에 오는 길에 획득한 전력질주(Lv.1) 스킬도 있다. 상처 입은 테오보다는 내가 업는 편이 낫다.

테오는 순순히 내게 족제비를 맡겼다. 조금 의외였다. 평소의 테오라면 무조건 자신이 업겠노라고 우겼을 텐데.

하지만 이내 납득할 수 있었다. 살아남은 건 우리 셋뿐이다. 심지어 족제비는 두 팔을 잃었다. 이 암담한 상황이 조원들을 아끼는 테오의 정신을 나약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전력으로 달려. C조를 따라잡아야 해.”

자세한 설명을 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족제비를 등에 업은 채 달렸고, 테오가 내 뒤를 따랐다.

카인과 C조의 흔적은 이상할 정도로 선명했다. 마치 자신들을 따라오라며 손짓하는 것처럼.

“숲 안으로는 군마가 들어올 수 없으니 조금은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테오는 많이 힘들어 보였다. 나는 테오에게 무장을 해제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테오는 창과 방패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허억······! 허억······!”

테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내 등에 업힌 족제비가 병든 고양이처럼 몸을 떨었다. 하지만 속도를 늦출 수는 없다.

“미안······해······. 데미안······.”

족제비가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쉼 없이 발을 움직였다.

“그동안······ 못되게 굴어······서······.”

“됐으니까 그만 말해.”

“나는 괜찮으니······ 두고······.”

나의 등 위로 뜨거운 것이 방울져 떨어졌다.

“난 이미 틀렸······어······. 나 대신······ 테오······를······.”

족제비가 온몸을 들썩거렸다. 녀석은 또 울고 있었다. 빌어먹을 울보 자식. 정말 지겹게도 눈물이 많은 녀석이다.

“나와 테오는······ 같은······ 시설에 있었어······. 테오가 없었으면······ 난 벌써 죽었······을······.”

족제비가 말을 잇지 못하고 쿨럭쿨럭 기침했다. 흩어지는 핏방울이 나의 어깨를 적셨다. 나는 그것에서 묘한 아픔을 느꼈다.

“그러니까 데미······안······ 테오를······ 부탁······.”

“닥쳐. 족제비.”

이후 족제비는 조용해졌다. 이상하다. 이렇게 내 말을 잘 들을 놈이 아닌데.

조금 더 달린 후에야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아래로 축 늘어진 족제비의 반쪽짜리 팔에 생기가 없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족제비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무너지는 그의 몸을 테오가 받았다. 두 소년은 함께 바닥에 허물어졌다.

“조······. 조······.”

테오가 족제비의 어깨를 흔들었다. 족제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차례 족제비의 몸을 흔들던 테오가 녀석을 끌어안고 흐느꼈다.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며.

“테오. 가야 해.”

테오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미니맵을 봤다. 우리 뒤를 추격하는 병사의 무리가 있었다.

“병사들이 우리를 쫓고 있어. 어서 가야 해, 테오.”

“데미안.”

테오가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떨군 테오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테오가 고개를 들었고, 놀랍게도 그는 언제나와 같은 시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먼저 가, 데미안.”

“테오.”

“미안해.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는데 더는 안 될 것 같아.”

테오가 반듯하게 잘린 가죽옷의 틈새를 벌렸다. 그 안에는 너저분하게 감긴 천 조각이 있었고, 쉴 새 없이 피가 흘렀다. 붉게 젖은 천 사이로 비죽 내장 조각이 튀어나온 것이 보였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오지 마! 데미안!’

내가 조원들에게 도착했을 때 테오는 입에서 피를 뿜고 있었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테오는 기사에게 치명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통증을 견디며 여기까지 달려왔다. 족제비를 지키기 위해.

“쉬지 말고 달려 데미안. 내가 병사들을 막아보겠어.”

그렇게 말한 테오가 뒤를 돌았다. 족제비를 보호하듯 자세를 낮추며 방패를 들고, 창을 뻗었다. 익숙한 모습이다. 테오는 홀로 팔랑크스 방진을 펼치고 있었다.

“어서 가, 데미안.”

“······.”

“어서.”

“하지만 테오.”

“어서 가라고! 이 빌어먹을 새끼야!”

나는 테오의 뒷모습을 봤다. 그의 곁에 누운 족제비를 봤다. 두 사람 너머로 희미하게 드러나는 병사들의 그림자를 봤다.

뒤돌아 달렸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다만 가슴속이 이상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움켜쥐고 흔드는 것 같다.

“꼭 탈출에 성공해라! 데미안!”

등 뒤에서 전투의 소음이 들렸다. 하지만 길지 않았다. 무기가 부딪는 소리는 맥없이 사라지고, 병사들의 외침과 발소리만이 남았다.

[전력질주(Lv.1)를 발현합니다.]

나는 달렸다. 오직 달리는 것에 집중했다. 병사들의 소음이 듣기 싫었다. 어서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시간 감각이 흐릿하다. 그와 반대로 정신은 기이할 정도로 또렷해졌다.

나는 지금 카인의 흔적을 따라 달리고 있다. 카인은 여전히 보급로가 아닌, 숲을 가로지르는 중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의 흔적이 보급로와 가까워지고 있다.

‘이것은.’

나는 잠시 내려놨던 머릿속 생각을 끄집어냈다.

카인은 일부러 기마병의 추격을 유도했다. 그러고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점점 보급로로 근접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도 주머니 안에서 두려움을 내비치는 먼지는.

등줄기로 쭈뼛, 소름이 끼쳤다.

아니다.

나는 잘못 알고 있었다.

먼지가 이런 기색을 보인 것은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

왜 잊고 있었을까.

지난 회차에서 내가 죽었던 이유.

테오와 나를 찢어발겼던 정체불명의 괴물들.

놈들이 나타났을 때 먼지는 지금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었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을 부유하던 단서들이 하나로 합쳐졌다.

카인은.

저 빌어먹을 정신병자 녀석은.

‘그래. 그런 거였나 카인.’

마침내 C조의 뒷모습이 보였다. 고개 돌린 카인의 옆얼굴.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린 그의 눈동자는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대상과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나는 카인과 동기화했다. 녀석이 지닌 ‘회귀의 권능’을 카피했다.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카인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C조는 물론이고 나도 여기서 죽는다.

“이제야 따라붙었나. 138번.”

카인이 어딘가를 눈짓했다. 내 시선이 그와 같은 곳을 바라봤다. 숲 너머의 하늘. 그곳에서 기이한 균열이 일고 있었다.

“지금이다! 이동!”

카인의 외침과 함께 C조가 보급로로 튀어 나갔다. 그곳에는 기마병들이 있었다. 보급로로 난입한 카인과 소년들이 저마다의 무기로 군마를 습격했다.

이히히히힝!

말은 겁이 많은 짐승이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자 사방팔방으로 날뛰었다. 그 와중에 몇몇 소년이 말발굽에 맞아 머리가 터졌다.

쩌억······! 하늘의 균열이 열렸다. 놀랍게도 균열은 전투 현장으로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그 안에서 시커먼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으악!”

“저, 저게 뭐야!”

“끄아아아악······!”

병사들이 울부짖고 말들이 날뛰었다.

그들이 흘린 피가 허공을 붉게 물들였다. 비릿한 피 냄새가 여기까지 났다. 지옥도가 펼쳐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저 괴물들의 타깃은 카인이다.

‘하지만 왜. 카인을.’

이것은 소설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전개다. 아니, 소설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약 일 년 후. 그렇다면 지금 보는 광경은 소설에서 생략된 내용일까. 아니면 언데드의 등장처럼 새롭게 추가된 설정일까.

머릿속 의문을 밀쳐내며 나는 달렸다. 섬뜩한 소음이 쉴 새 없이 귀를 울렸다. 할 수만 있다면 고막을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보았다.

차아아앙!

눈부신 광채가 밤의 어둠을 갈랐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이 세계 최상급 기사들의 전유물인 ‘오러(Aura)’라는 것을 알았다.

‘오러를 쓰는 기사라고?’

기사는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하고 있었다. 내가 죽인 기사의 갑옷과는 확연히 달랐다. 눌러쓴 투구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괴물들의 몸이 갈라졌다.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는 저 괴물을 상대할 수 있다.

‘아니야. 저 기사의 실력은 단순히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기사는 오러를 칼날에 깃들이는 것을 넘어, 뚜렷한 형태로 방출하고 있었다.

나는 저것의 정체를 알고 있다.

‘오러 블레이드(Aura-blade)!’

나는 정신 없이 달리면서도 기사의 검 놀림에 주목했다.

어떻게든 눈에 담아두어야 한다. 오러 블레이드를 발현하는 기사의 전투를 직관한다는 것은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관찰력 특성이 해금됩니다.]

오러의 움직임이 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운 궤적. 나는 저도 모르게 기사에게 통찰을 시전했다.

그 순간 보이지 않는 반발력이 내 몸을 강타했다.

[대상이 통찰에 저항했습니다.]

나는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졌다. 달리는 중 벌어진 일이었기에 나는 데굴데굴 바닥을 굴러야 했다.

“크흑······! 컥······!”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피를 토했다. 심장이 깨질 것처럼 아팠다. 기사의 투구가 이쪽을 돌아봤다. 나는 확신했다. 투구 속에 감춰진 그의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쿨럭······!”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나는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과연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기사였다. 저자는 수많은 괴물과 싸우는 도중에도 나의 통찰에 저항하고, 반격까지 성공했다.

생각지도 못한 괴물 기사가 이곳에 있었다. 그제야 나는 카인이 벌인 이 무모한 행각을 완전히 납득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눈앞의 광경에 산산이 부서졌다.

콰득······!

카인의 몸에서 피가 뻗쳤다.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기사. 그의 검이 카인의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옆구리까지를 반듯하게 잘랐다.

카인의 입에서 주르륵 피가 쏟아졌다. 그 와중에도 녀석은 비릿하게 웃으며 중얼대고 있었다. 나는 그 입 모양을 또렷이 알아봤다. 빌어먹을. 이번 회차도 실패인가.

[대상이 죽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일그러지고, 왜곡됐다.

둘로 쪼개졌던 카인의 몸이 하나로 합쳐졌다. 허공으로 솟구치던 피가 카인의 몸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이런 광경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이 세계에 떨어지기 전, 점멸하듯 툭 툭 끊기던 디지털 화면.

키이이잉!

익숙한 이명이 머리를 울렸다. 바닥에 흩어졌던 피가 떠올라 입 안으로 되돌아왔다. 오러 블레이드의 기사가 투구 속 눈동자로 나를 노려봤고, 내 몸이 관성을 무시하며 데굴데굴 뒤로 굴렀다.

몸을 일으킨 나는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앞이 아닌 뒤로 움직였다. 허공을 가르던 오러 블레이드가 기사의 칼날 속으로 갈무리됐고, 오러 블레이드에 갈라졌던 괴물의 몸이 하나로 복원됐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시간이 되감기고 있다. 점점 빠르게 감기는 시간은 순식간에 나의 인지를 벗어났다. 머리가 부서질 것 같다. 숨조차 쉬기 힘든 고통 속에서 눈앞의 세상이 암흑으로 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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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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