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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

11화 장사치가… 악수를?

두정그룹은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재벌기업 중 하나였다.

라면부터 미사일까지.

국내의 산업이란 산업에는 모조리 발을 뻗었고, 실패한 사업도, 성공한 사업도 있지만,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 두정의 영향력은 적지 않다.

게이트의 등장 이후 가장 비상이 걸린 사업은 식량 산업이다.

중국 화베이 평야,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 일대 등 수많은 곡창지대들이 던전 브레이크로 인한 마소 오염으로 폐기되었다.

30년 전 당시에는 마소 오염을 제염하기 위한 마탑의 시약 같은 것도 없었던 탓에 이 오염은 영구적인 피해를 안겼고 당연히 전 세계 단위의 식량난을 야기했다.

각국 정부는 폐기된 곡창지대를 대신할 식량 수급처를 마련해야 했고 이 방면에서 국내 기업들을 대폭 지원했다.

두정 미래식품은 그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국내 식량산업의 3할을 차지하게 된 대기업.

그런 실세기업의 전무이사인 박종찬은 어디에서나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수 있는 실세인 것이다.

그는 어디에서도 천대 따위를 받아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장사치가… 악수를?”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장사치? 현대에 기업인이란 누구보다도 존중받는 사회의 갑이다.

경영인들이 다루는 막대한 자본은 권력을 움직이고, 법조차도 바꾼다.

두정그룹 실세 기업의 전무이사쯤 되면 어지간한 고위 헌터나 국회의원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물인 것이다.

그런 자신을, 아니, 기업인 그 자체를 천대하고 내려치는 저 눈빛과 말투는 무엇이란 말인가?

당장 이 충격적인 발언에 협회 여직원도 경악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건만.

박종찬은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고 비즈니스 스마일을 지었다.

“하하, 레온 생존자님은 현대 지구 문명에 익숙지 않으신 모양이군요. 현대에서 기업인이란 옛 시대의 장사꾼들과는 크게 다른…….”

“천한 장사치가 어찌 왕족에게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본왕은 네놈의 발언을 윤허한 적이 없다.”

뭐지, 미친놈인가. 박종찬은 사업을 위해 몇 명인가의 생존자들을 만난 적이 있지만, 이토록 모멸적인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저, 폐하… 저희 세계에서 기업인은 엄연히 존중받는 직종이옵나이다…….”

그 말에 레온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한 목소리를 흘렸다.

“본디 장사치란 이윤을 위해 존엄과 자존조차 팔아치우는 작자들이다. 그들은 법의 허점을 악용하고 그것을 자랑스레 여기지.”

부정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당장 탈세 문제, 불법 단합, 과도한 이윤 추구로 비판받는 두정 미래식품이었으니.

다른 기업인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도 없었고.

“세계가 다르다 한들 장사치의 본성과 근본이 달라지지는 않을 터. 하여 천한 혓바닥과 천한 본성을 가진 것들이 어찌 고귀한 왕족과 대면할 수 있단 말인가.”

“으음…….”

“더 들어볼 것도 없다.”

그것이 끝이었다.

한껏 모멸과 무시를 안겨준 뒤, 레온은 태연하게 박종찬을 지나쳤다.

쫄쫄쫄 따라나서는 하리. 박종찬은 그 등을 보면서 기가 차서 할 말을 잃었다.

“뭐, 뭐지…….”

* * * *

“이곳이 폐하께서 머무르실 거처입니다.”

“뭐, 그럭저럭이구나.”

현대사회에서 50평형의 오피스텔은 1인가구에게 넘치는 사양이지만, 레온에게는 제 왕궁만 못했다.

그래도 일단 지구인 출신이라는 것과 야전에서 노숙을 하기 일쑤였던 그이기에 크게 따지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고.

“이곳은 협회에서 1년 동안 폐하께 제공해드릴 곳입니다. 월세나 관리비는 전부 협회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사오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레온에게 이것저것 설명하는 하리. 필요할 때면 룸서비스나 관리비로 운용되는 청소부도 있다며 필요한 사항을 정리한다.

‘후… 그나저나 다행이네.’

레온이 박종찬 미래식품 전무이사를 지나친 것은 헌터 협회 소속인 한하리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생존자에 대한 정보는 보통 기밀에 부쳐진다. 탈북민들과 마찬가지로 외딴 사회에서 찾아온 이들도 3개월간 격리해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예 다른 세계라면 당연히 그 괴리감이 어마어마할 터. 본래라면 격리 후 차근차근 교육해야겠지만, 당장 레온을 격리하겠다고 한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헌데 대체 무슨 일로 폐하를 찾아온 것일까요?”

“장사치의 근본이 어디 가겠느냐. 좇아 온 거겠지.”

이윤? 두정그룹의 전무이사가 레온에게 무슨 이윤을… 하리는 무릎을 탁 쳤다.

“쌀 때문이군요? 호남 평야의 그 축복받은 벼 때문에…….”

워낙 상황이 다급했던지라 정보 통제가 제대로 되질 않았었다. 인터넷 방송인이 그것을 촬영했다고 했고.

“분명 농사꾼 박씨… 라고 했던가?”

윱튜버에서 검색한 그녀는 박씨가 올린 영상을 확인했다. 분명 협회가 영상을 정지시키고 권고를 했었는데──

“엇? 이 사람 또 올렸네?!”

* * * *

농사꾼 박씨는 최근에 올린 영상이 정지된 탓에 우울한 기분이었다.

호남 평야 게이트 앞에서 실시간으로 촬영한 충격적인 장면.

분명 마소로 오염되었던 토지가 순식간에 자라났다.

“바, 방금 보셨습니까, 형님들? 벼가… 벼가 확! 하고 자랐는디요?!”

-뭐임? 뭐임?

-마법 아님?

-금발 마탑 쪽 마법사였나? 급속성장 마법 쓴 거 아님?

-근데 아무리 마법이라도 마소에 오염된 땅에서 식물을 성장시킬 수 있나?

-우리가 모르는 신기술일지도 모르지.

썩어 문드러진 땅에서 작물이 자랐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농사꾼인 박씨가 너무나 잘 알았다.

마탑에서 마소 정화기술이 등장한 이후에도 마소에 오염된 땅을 정화하기 위해 1년에서 2년까지 값비싼 시약을 퍼부으며 정화하지 않았던가.

시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한 이웃동네 정씨를 떠올린 박씨는 눈앞의 기적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근데 마법으로 성장시킨 작물은 어차피 못 먹음.

-ㅇㅇ 마력이 깃들어 있어서 일반인한텐 독임.

-헌터들도 몇 번 먹으면 위세척해야 할걸.

하지만 곧 놀라운 광경이 목격되었다. 협회의 직원들이 벼를 탈곡기로 털어보더니 직접 쌀을 지어 먹는 것이다!

“거기 당신! 지금 뭐하는 거야!”

정말로 밥을 먹나 싶어서 좀 더 가까이 접근하던 그때, 협회 직원들에게 들켜 쫓겨났지만, 박씨는 그날 저녁 다급히 밭 주인인 김씨를 찾았다.

“김씨! 김씨! 나가 부탁한 거 챙겨놨는가?

“그럼. 근디 협회 양반들이 절대 반출하면 안 된다고 했는디…….”

“그런 법이 어딨는가! 밭 주인은 김씨 아녀?”

“그렇긴 하지…….”

“오염된 땅도 싹 나았담서? 협회 양반들도 밥 한사발씩 자셨고.”

“그렇지…….

박씨는 윱튜버를 하며 시골의 온갖 야생동물 먹방을 찍을 정도로 호기심이 많았다.

마소로 오염된 땅이 정화된 건 물론이고 순식간에 자라버린 작물이라니. 이걸 어떻게 넘긴단 말인가?

이건 유튭각이다. 하지만 그전에 사전 실험을 해보려는 것이다.

“일단 밥을 지어보고 동네 괭이한테 먼저 먹여보자고.”

“흐음… 좋은 생각이구먼.”

두 사람은 먼저 시범 삼아 딱 한 공기 분량의 쌀밥을 지어봤다.

모락모락 윤기가 나는 쌀밥이 김치 찢어다 얹어 먹고 싶었지만, 혹시 모르니 먼저 동물실험부터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컹!

그때였다. 밥솥에서 밥이 채 되기 무섭게 문밖에서 늙은 개 한 마리가 다가온 것이다.

“천씨네 돌순이 아녀?”

“그러게. 오늘내일 한다던디 왜 여기 있는가?”

돌순이는 올해로 열두 살의 노견이었다. 늙은 짐승들이 으레 그러하듯 관절염을 달고 살았고 운동 부족과 비만으로 이어진 케이스다.

평소에 집에서 꼼짝도 안 하는 돌순이가 왜 여기서 나타난단 말인가?

-컹! 컹컹!

“아니, 이눔이? 어여 집으로 안 돌아가냐?”

그때였다. 문밖에서 이쪽을 바라보던 돌순이가 갑자기 밥상을 향해 머리를 들이민 것이다.

“어이구!”

“이눔의 개새끼가 미쳤나?!”

두 사람은 열불이 났지만, 곧 돌순이의 행동에 화들짝 놀랐다.

“이놈아! 그거 먹으면 안 돼!”

“개새끼가 왜 갑자기 밥을 먹고 지랄이여!”

큰일이었다. 아무리 오늘내일하는 개라지만, 돌순이는 천씨가 애지중지하며 키운 개였다.

그런 개가 쌀밥을 먹고 죽는다면 아무리 노견이라도 슬퍼할 것이다.

“뱉어 임마! 엉? 뱉어!”

박씨는 돌순이의 입을 벌려 쌀밥을 토해내려 했지만, 돌순이는 마치 이것이 제 살길이라는 듯 쌀밥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컹! 컹컹!

우렁찬 소리를 내며 팔짝 뛰는 돌순이. 메뚜기 마냥 펄쩍 뒤던 돌순이는 이내 천씨의 집을 향해 맹질주했다.

“어어?”

“이, 이게 무슨…….”

관절염으로 걷는 것도 힘들어 한다던 노견이었다. 오늘내일하는 돌순이를 안고 꺼이꺼이 울던 천씨를 본 것이 지난주였다.

그런데 대체 저게 당최 무엇이란 말인가? 마치 건강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

“…….”

박씨와 김씨는 같은 생각을 하며 서로를 응시했다. 두 사람은 곧장 새로운 밥을 짓기 시작했다.

“어억! 만성 척추층만증이?!”

“답답했던 가슴이 확 뚫린 것처럼 시원하구먼!”

호남의 한 마을. 그곳에서 일어난 기적들은 금세 마을 전체로 퍼져 나갔다.

한편 불새 길드를 통해 쌀의 정체를 파악하러 나섰던 두정 미래식품 연구실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뭐야,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어떻게 일개 쌀알에 이런 고밀도의 에너지가 뭉쳐 있는 거지?”

불새 길드를 통해 슬쩍한 ‘축복받은 벼’는 감정사들의 교차검증에 의해 하나하나 레어 등급임이 판명났다.

[축복받은 벼]

◆ 등급 : 레어

◆ 상세

생명과 풍요의 신성 데메라 여신의 신성력으로 축복받은 벼입니다.

3등급 질병이 완화됩니다. 지속적으로 섭취 시 높은 확률로 완치됩니다.

“축복받은 벼? 대체 뭐에 축복받았다는 거지?”

“마법이 아니야? 데메라 여신은 대체 어디 종교야?”

“3등급 질병이면 어디까지 완화된다는 거지?”

“초기 대장암 정도입니다.”

“젠장! 이거 증명할 수 있나? 실험용 쥐들로 실험해봐!”

실험 결과,

축복받은 벼의 치유 능력은 진짜였다.

지속적인 실험작물 섭취로 다 죽어가던 실험쥐가 정말로 나아버린 것이다.

“이, 이거 빨리! 위쪽에 보고해야 해! 종자들 최대한 확보하라고 하고!”

그렇게 실험실의 연구결과 보고서가 두정 미래식품 상층부에 전달되었고, 전무이사인 박종찬 이사가 곧장 파견된 것이다.

두정그룹은 헌터 협회에도 눈과 귀를 심어둔 덕에 레온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장사치가… 악수를?」

하지만 레온은 가차없이 그들을 무시했고 박종찬 이사는 씩씩거리며 돌아왔다.

“이 시건방진 야만인 새끼!”

박 이사의 분노가 활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내던진 명패에 보고를 하러 온 연구원들이 눈을 질끈 감았지만, 그는 연구원들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야. 그 벼들. 효과는 확실한 거야?”

“예, 예…! 그렇습니다.”

“임상실험도 안 해봤잖아. 쥐새끼들한테 통했다고 사람한테도 효과가 있다는 보증 있어?”

“그게…….”

비서가 대신 나섰다.

“종자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해당 논밭의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헌데 그곳에서──”

비서는 박씨와 김씨가 경험한 것들을 전달했다.

다 죽어가던 개가 살아난 것. 쌀을 먹자 만성염증이나 비염이 나았다는 것. 온 마을 사람들이 그 쌀을 먹고 자잘한 병부터 심각한 고질병까지 죄 나았다는 것.

“임상실험 데이터는 확보하지 못했지만… 효과는 입증된 거나 마찬가집니다.”

“물건은 물건이라는 거네.”

박 이사의 눈에 탐욕이 일었다. 애초에 감정사의 감정효과를 믿지 않았다면 그가 직접 나서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 쌀은 대박상품이다. 그것도 시대의 대변혁을 일으킬만큼 어마어마한 물건이다.

“미친 또라이 새끼만 아니었어도.”

문제는 그 쌀의 비밀을 쥐고 있는 생존자였다.

그 시대착오적인 야만인 생존자는 천하의 두정그룹 이사인 자신을 천한 장사치라며 천대했다.

“이사님… 무조건 저희가 확보해야 합니다. 그 쌀은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도 알아.”

먹기만 해도 암까지 치료하는 쌀이다. 식량은 물론 의료계에도 대격변을 일으킬 물건이다.

“다시 만나는… 봐야겠지.”

하도 까다로운 미친놈이라 협회를 통해서 만남을 청해봐야 할 듯하다. 협회의 제지가 있기 전에 기습적으로 방문한 것인데 다 어그러졌다.

“이 대한민국에서 기업인 알기를 우습게 알아?”

그는 이 야만인의 코를 납작 눌러줘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수많은 생존자들이 그러했다.

자기세계가 최고인줄 아는 멍청하고 어리석은 야만스러운 문명의 생존자들.

그들은 현대 문명의 압도적인 과학력과 생산력을 보고는 끝내 자신들이 뒤쳐진 존재임을 인정했다.

“그깟 벼 하나 가지고 생색내는 모양인데… 내가 지구를 대표해서 과학의 힘을 보여주지.”

박 이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컬쳐 쇼크’로 압도해주겠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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