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110

110화 귀환 (2)

110화 귀환 (2)

엘리샤의 얼굴에서 쩌적, 균열이 일었다.

하지만 이내 평소처럼 웃는 낯으로 바뀌었다.

“배신자라니. 아하하!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짐승 꼬마.”

깔깔대는 엘리샤의 입술 끝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그런 엘리샤를 카인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래. 이제 확실해졌군.

카인은 지금까지 모르가나를 두 번 만났다. 처음에 봤을 때는 다소 의구심이 들었지만, 두 번째 만남에서는 확신했다. 모르가나는 소서러다. 그것도 아주 향이 짙은.

‘말해라. 너는 어떻게 우리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거지?’

모르가나에게 ‘오필리아 플랑브아즈’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후 카인이 던진 물음이었다.

카인은 자신이 처음 모르가나에게 습격당했던 일과, 쿠훌린과 엘리샤가 흑기사에게 다친 일, 그리고 모르가나의 마법진에 소환된 지금의 일 모두가 연관이 있다고 여겼다.

‘당신은 이미 짐작하고 있지 않나요?’

모르가나의 반문은 카인에게 충분한 대답이 됐다. 내통자가 있다.

처음에는 세실을 의심했었다. 그러나 금세 용의선상에서 지웠다. 세실에 대해서라면 잘 알고 있다. 비밀이 많은 녀석이지만 적과 내통할 만한 위인은 못 된다. 설령 녀석이 암영의 수장인 일루산 블레오파드의 핏줄이라 해도.

‘재미있군요. 당신이 세실, 그 아이를 믿고 있다니.’

세실을 믿는다고? 천만에. 나는 녀석에 대해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심중을 꿰뚫어 보는 듯한 모르가나의 말투가 거슬린다.

구역질이 치밀 정도로.

‘그래요. 당신의 생각대로 세실은 아니랍니다? 그렇다면 누굴까요? 당신이 찾는 내통자는.’

데미안과 루나는 아니다.

‘데미안과 루나프레나는 아니겠죠?’

저 긴 혀를 당장 잘라버리고 싶군.

‘그 밖의 힘없는 말단 단원일 리는 없을 테고요. 그렇다면 설마 쿠훌린 아르테미스? 아하하! 그건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억측이죠? 그럼 대체 누구일까요? 아아, 어서 말해드리고 싶어 입술이 간질거린답니다? 하아아······.’

모르가나가 자신의 두 팔을 감싸 안으며 달콤한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겠죠?’

모르가나가 품속에서 자그만 검은 돌을 꺼냈다. 카인이 아버지에게 건네받았던 검은 파편과 비슷하지만, 다른.

‘당신은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그 말대로다.

카인은 내통자를 특정했다.

그리고 엘리샤와 단둘이 마주한 이 순간까지, 그것을 숨겼다.

“흰 새 여관으로 돌아오자마자 알 수 있었어요. 당신의 병이 혼돈에 침식된 결과라는 것을.”

“아하하. 아까부터 대체 무슨 소리를 하······.”

“둘러댈 생각은 말아요. 나는 이미 그런 것을 본 적이 있으니까. 세르펜타인 산맥의 바람숲에서.”

엘리샤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눈의 혈관이 불거지고 있다.

“그 혼돈은 모르가나가 심어놓은 것이겠죠. 어쩌면 당신은 그 힘이 ‘혼돈’이라는 사실은 몰랐을 거예요. 그저 모르가나의 특별한 마법이라고만 생각했겠죠. 어찌 됐든 몸 안에 침식의 시한폭탄이 들어선 당신은 모르가나와 협력할 수밖에 없었어요. 거부하면 죽을 테니까.”

“······카인.”

“아니라고 말할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아요. 그 여자가 내뿜는 혼돈의 향은 아주 독특하고, 진하니까.”

엘리샤의 입술은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모르가나는 당신의 몸 안 깊숙이 혼돈을 숨겨놓았어요. 마치 자연 상태에서 잠복기를 보내는 혼돈의 조각처럼. 이유는 뻔하죠. 은월섬의 누군가가 눈치채면 곤란했을 테니까.”

카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은월섬에는 혼돈을 감지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가 있는 듯해요. 뭐, 의심되는 이도 있고요. 모르가나도 알고 있었을 거예요. 당신이 말했을 테니까.”

엘리샤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사실이 발각되는 것을 우려한 이는 모르가나보다는 오히려 당신이었어요. 그 여자의 입장에서 당신은 그저 소모품에 불과하니까. 그래서 당신은 모르가나에게 매달렸어요. 은월섬의 ‘특별한 존재’가 당신의 몸에 자리 잡은 혼돈을 눈치채지 못하게 해달라고. 당신이 섬에 들어가지 않고 대륙에서의 생활을 이어갔던 것도 그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겠죠. 물론 모르가나는 당신의 청을 흔쾌히 받아들였어요. 그 여자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으니까. 또, 그런 식으로 자신의 힘을 드러내어 당신에게 더욱 단단한 목줄을 채울 수 있으니까.”

엘리샤가 말없이 카인을 노려봤다.

새빨갛게 충혈된 두 눈은 깜빡이는 것을 잊은 듯했다.

“모르가나는 당신의 마법 성취에도 도움을 줬어요. 당신의 몸속 혼돈이 기폭제 역할을 했을 테고요. 그거 알아요? 당신처럼 반영구적으로 머리색을 바꿀 수 있는 마법사는 대륙 전체를 뒤져도 흔치 않아요. 게다가 은월섬에는 마법사가 드물죠. 당신의 스승이 될 만한 빼어난 마법사는 없다시피 하고요. 그래서 당신은 섬에서 그리 수준 높은 마법을 배우지 못했어요. 하지만 무슨 일인지 지금의 당신은 대륙의 그 어떤 마법사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실력자죠. 말해볼래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카인이 엘리샤의 귀에 속삭였다.

“그래서 내통했나요? 모르가나에게 마법을 배우기 위해. 혹시 강압적으로 당한 게 아니라 스스로 그 여자의 개가 되기를 자청했나요? 그러면 당신은 더욱 강해질 테니까.”

“아니야!”

인형처럼 굳어있던 입술이 바락 소리쳤다. 카인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당신의 몸속 혼돈을 자극해 퍼뜨린 자는 흑기사겠죠. 쿠훌린을 돕기 위해 그자와 맞섰으니까. 개새끼 주제에 감히 주인을 물려고 했으니까. 그래서 ‘혼돈의 침식’이라는 이름의 형벌을 받았죠. 아니, 당신은 그저 흑기사에게 맞서는 척을 했던 거예요. 그 상황에서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의심받을 테니까. 그래요. 당신은 사실 쿠훌린을 도울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가 흑기사는 당신의 혼돈을 완연한 침식 상태로 비틀어버렸죠. 왜일까요. 그들의 목적인 ‘쿠훌린의 죽음’이 달성될 거라 확신해서? 그렇게 당신의 이용 가치가 사라져서? 그러고 보니 듣고 싶네요. 당신은 흑기사가 쿠훌린을 습격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나요? 당신이 그들의 움직임을 모르가나에게 보고했나요? 그 여자의 명령이었나요?”

엘리샤가 얼굴을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손가락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흥미로운 점은 흑기사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당신은 침식의 징조를 느꼈다는 거예요. 루나가 그러더군요. 혹한의 땅에서 만난 눈새가 당신이 병들었다는 것을 알려줬다고. 당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고, 숨기려 했다고.”

“그만······!”

“눈새의 말을 들었을 때 당신은 당황했어요. 짐작이 확신으로 변한 순간이었을 테니까요. 모르가나에게 배신이라도 당했다고 생각했나요? 그래서 흑기사에게 이빨을 드러냈나요? 재미있네요. 당신 자신이 바로 배신자이면서.”

“제발 그만해!”

엘리샤의 눈에서 뚝뚝 눈물이 떨어졌다.

“아니야······! 그런 것이 아니야······! 나는 단장을 구하려고······! 어머니를 구하려고······!”

“당신은 이게 뭔지 알고 있죠?”

카인이 품에서 자그만 검은 돌을 꺼냈다.

“어때요. 오랜만이라 반가운가요?”

“그······, 그건······!”

“데미안이라면 알아보겠죠. 당신의 몸에서 몰아낸 침식과 이 돌이 같은 기운을 머금고 있다는 것을. 아까 말했었죠? 그 여자의 혼돈에서는 아주 독특하고 진한 향이 난다고.”

엘리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이 사실을 쿠훌린과 라이칸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카인이 비웃듯 입가를 올렸다.

엘리샤가 파들파들 입술을 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제발······!”

“숨기고 싶은 건가요?”

엘리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눈동자가 그녀의 심중을 대변하고 있었다.

“데미안이 침식을 몰아낸 덕분에 당신은 모르가나의 목줄에서 해방됐어요. 하지만 아쉽게 됐네요.”

그의 눈동자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그 목줄. 이제 내 손에 있으니까.”

***

이튿날, 우리는 오랜만에 은월호를 마주했다.

하룻밤 만에 멀쩡해진 엘리샤와 달리 쿠훌린은 서서히 회복했다. 그러나 스스로 몸을 가눌 정도는 되었기에, 그는 지금 은월호의 뱃전에 우뚝 서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내가 왔다! 푸른 바다여! 하하하하하!”

물론 쿠훌린은 금세 숨넘어가는 듯한 기침을 시작했고, 그래서 루나에게 잔뜩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루나의 허리에는 카인의 것과 같은 모양의 검이 채워져 있었다. 잃어버렸던 검을 라이칸이 챙겨두었던 것이다.

쿠훌린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뭐야 큰 공주! 설마 카인과 뽀뽀라도 한 것은 아니겠지! 빌어먹을 짐승 꼬마, 내 이 녀석을 당장······!”

“악! 아악!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화, 환자는 얼른 선실로 들어가 누워 있기나 하라고요! 아 진짜! 하지 마요! 하지 말라고요! 아아아!”

우체통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빼액빼액 소리치던 루나는 이내 뱃멀미를 시작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쿠훌린이 루나를 품에 안고 덩실덩실 선실로 사라졌다. 아. 노렸구나.

“라이칸이 함께 가자고 하지 않았어요?”

그림처럼 연갈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엘리샤에게 다가가 물었다.

엘리샤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돌아봤다.

그녀의 분위기는 묘하게 평소와 달랐다.

“아. 금발.”

라이칸을 포함한 몇몇 단원은 대륙에 남았다.

은월의 단은 늘 대륙에 적정 인원을 남겨둔다. 달빛나무 축제일을 제외하면 말이다.

“뭐, 내가 그 녀석 말을 꼭 들어야 해? 라이칸 녀석. 가끔은 나 없이 고생도 해 봐야지. 아하하하!”

엘리샤가 깔깔 웃었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왜인지 그늘이 드리운 것 같았다.

“고마워 금발. 덕분에 살았네. 나도, 단장도.”

그녀답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

“리아논과 디네베도 살릴 거예요.”

“아하하! 암. 그래야지! 그건 그렇고, 그 조막만 하던 금발 꼬마가 이렇게나 든든하게 성장하다니. 하아앙 너무 멋지잖아······! 나 오빠한테 시집가도 돼?”

······평소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취소다.

“으응? 오빠아앙.”

그렇게 엘리샤가 어울리지 않는 교태를 부리고 있는데, 돌연 세실이 달려왔다.

“시. 시집?”

“뭐야. 귀도 밝네 우리 예쁜이? 왜. 내가 데미안과 결혼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 이렇게나 예쁘고 착한데? 데미안한테 지극정성으로 헌신할 건데?”

“거. 거짓말.”

엘리샤가 억울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어머? 거짓말이라니? 내가 그동안 드러내지를 않아서 그렇지, 얼마나 순수하고 참한 여자인데. 게다가 밤에는 백팔십도 돌변할 수도 있어! 아마 데미안이 나랑 결혼하면 아침에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할걸? 그게 바로 성숙한 여인의 특별한 기술이라는 거란다. 아하하하하!”

“이. 이잇······!”

세실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엘리샤가 내 반대편 팔에 팔짱을 끼며 깔깔댔다.

“슬슬 날개가 펼쳐질 시간이네.”

엘리샤의 목소리에 나와 세실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느새 머리 위에는 흰 새들이 가득했다. 엘리샤가 환히 웃으며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에 맞춰 흰 새들이 길게 좌우로 늘어섰다.

바다 위로 아름다운 은빛 날개가 펼쳐졌다.

***

“엄마아아!”

성문을 밀어 연 루나가 허겁지겁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루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마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