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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1

110. 소꿉친구 – 불신자

후작이 반색하며 물었다.

“어떤 묘안이 있으십니까?”

“아직 말씀드리기는 어려우니 차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실망스럽지는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왕을 알현하시지요. 제가 연락을 넣겠습니다.”

하르베이 가이단 변경백은 그를 굳게 믿는다는 듯이 환히 웃어보였다. 레브도 환한 웃음을 돌려주고는 대화를 마무리했다.

이윽고 후작이 집사를 불러 “이분께 가장 좋은 방을… 아니지, 동쪽 세 번째 방을 내어드리게.”라고 알렸다.

경칭을 붙이지는 않았는데, 레브가 한동안은 자신을 방문객으로만 대해달라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놀란 얼굴로 안내하는 집사, 레브는 그의 뒤를 따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레나를 공주로 입양시킨 뒤에 귀족 세력을 모아주자.’

사실 레나를 쓰레기 왕자들이 있는 이 오른 왕국의 공주로 들이는 게 불안했다.

해서 다른 왕국으로 가야 할지를 고민했으나,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콘라드 왕국은 매혹해야 할 왕이 병상에 쓰러져있는 데다가 오리아스의 사도인 에릭 왕자가 있으니 제외해야 했고, 신성왕국의 프레데릭 왕가는 십자교회의 율법에 단단히 얽매여 있어서 왕을 매혹한다 해도 교회에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 절차도 번거롭겠지만 십자교회의 코앞에서 아신의 힘을 사용하기는 부담스럽다.

그러면 가까운 왕국 중에 남은 건 벨리타 왕국인데, 여기만큼 정통성에 민감한 왕국이 없었다.

아카이아 제국의 수도였던 오르빌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제국의 역사를 이어받았다고 자신하는 벨리타 왕국이다.

평민에 타국인인 레나를 공주로 들인다고 하면 귀족들은 물론, 오르빌의 시민들까지도 반발하리라.

이렇게 세 왕국을 제하고 나면 북부의 아스틴 & 아스터 왕국, 마법왕국으로 불리는 아이셀 왕국이 남는데, 이곳들은 솔직히 좀 멀었다. 남부와 문화가 많이 다르기도 하고.

그러니 레나가 태어난 이 오른 왕국이 그녀를 공주로 만들기에 그나마 나은 선택지였다.

‘평민을 공주로 옹립하는 것도 이상한데, 심지어 타국인이라면 매혹된 왕도 곤란하겠지.’

물론, 이곳 오른 왕국이라고 평민인 레나를 공주로 들이는 데에 반발이 없지는 않을 테지만… 가이단 변경백과 대화를 나누다가 좋은 방안이 떠올랐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직 왕자들에게 붙지 않은 가문들이 제법 남아 있었다. 대체로 희롱당할 딸이 없거나 왕자들에게 알랑거리기를 거부한 ‘정상적인’ 귀족들이었는데, 개중에는 가이단, 드라진 가문과 같은 대가문도 끼어있었다.

만약 이들에게 결집할 구심점을 마련해준다면 이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레나를 두둔할 터였고, 레나도 그들의 보호하에 공주로서 든든히 살아갈 수 있으니 레브로서는 최선의 방책으로 보였다.

아, 이것 외에도 한 가지 방법이 더 있기는 했다. 그것도 상당히 간단하게 레나를 공주로 만들 수 있는…

바로 가이단 후작에게 레나를 양녀로 들여달라 한 뒤에 하리에 대신 그녀를 왕자와 결혼하게 하는 것이었다.

허나 그 방안은 일고의 가치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생각을 이어가는 그때, 앞서가던 집사가 청옥으로 장식된 문을 열었다.

“이곳입니다. 모심에 불편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편히 불러주십시오. 전속 시녀도 붙여드리겠습니다.”

방에 들어선 레브는 만족스럽게 감탄했다. 후작이 그에게 내어준 방은 채광이 좋고 두꺼운 양탄자가 모서리까지 덮인 방이었다.

‘레오’가 귀족의 저택에 몸을 들이기는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런데 이곳의 분위기는 전에 들렸던 곳과는 아주 달랐다.

전에 몸담았던 타티안 후작가는 전체적으로 굵직굵직하고 싸늘한 분위기였다.

반면 이곳 가이단 후작가는 자잘한 장식품이 많고, 따뜻한 색감의 커튼과 녹색 벽이 어우러져 평화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더군다나 돌아다니는 사용인들이 밝게 웃으며 재잘거려서 그 평온함이 더했다. 타티안 후작가의 사용인들이 딱딱한 안색으로 인기척도 없이 숨어있는 것과는 매우 달랐다.

방에 들어선 레브는 집사를 돌려보내고, 짐을 서랍장에 대강 욱여넣었다. 미소가 만연한 시녀를 불러 물을 달라 청한 뒤,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르베이 변경백과 얼마나 오래 대화했는지 창밖에는 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레브는 입가로 흐르는 물을 손등으로 쓰윽, 닦아내며 앞으로의 일을 떠올렸다.

좀 전에 생각하던 것의 연장선이었다.

‘그 쓰레기들에게 레나를 시집보낼 수는 없지. 공주로 입양되는 편이 나아. 왕자 놈들이야 내가 박살을 내주면 되니까… 그래. 그놈들에겐 갚아줄 빚이 있지.’

레나를 추잡한 정치의 도구로 사용한 개자식들! 여태까지는 힘이 없어서 복수할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절대로,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뽀스라운 침대에 몸을 묻은 그가 천장에 대고 복수를 다짐했다. 붉게 끓어오른 눈동자와 창밖의 노을은 초록빛깔 널찍한 방을 온통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흔들린 커튼에 비친 노을이 얼핏 나팔 문양을 그렸던 것은 아마 우연일 것이다.

* * *

다음 날, 왕성으로 알현을 청하는 전령을 보낸 가이단 변경백은 딸에게 돌아오라 알리기 위해 네비스 교회를 향했다.

이 역시 사람을 시켜 알릴 내용만 전달하면 될 일이었지만, 그는 직접 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통신하는 사제 곁에서 이야기하는 편이 딸과 원활히 대화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교회로 들어가는 후작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울어버릴 것 같기도 하면서 이를 악문 그 표정은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걸었고, 후작을 알아본 교회 사람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한편, 레브는 할 일이 없어서 저택에 남아 있었는데, 문득 자신에게 배정된 방이 단순한 손님방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군데군데에 남은 생활의 흔적들. 방에는 공부하던 책이 놓이고, 손때가 탄 네나토(Nenato, 젬베를 닮은 허리 높이의 원통형 타악기)가 구석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악기가 조금 작은 것으로 보아, 그리고 책이 다소 험하게 다루어진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방을 사용했던 이는 제법 어린 소년이었다.

시녀에게 물어보니 이 방은 가이단 후작의 아들, ‘하브니 가이단’이 사용했던 방이었다. 하리에 가이단의 남동생이자 가이단 가의 후계자였던 그는 오 년 전에 죽고 없었다.

후작은 죽지 않았더라면 비슷한 동년배였을 레브에게 아들의 방을 내어준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후작 부인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아직 인사를 드리지 못했네요.”

질문하자, 시녀의 안색이 조금 경직되었다. 항시 걸려있던 어딘가 과장된 미소가 흩어져버렸다.

“…부인께서는 가이단 영지의 저택에 계십니다. 인사드리기는… 아마 어려울 겁니다.”

묘한 덧붙임이다.

그녀의 말투는 후작 부인이 여기에 있지도 않을뿐더러 있었더라도 인사를 드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귀족 사회} 정보 덕분에 한 토씨, 한 토씨의 말에도 민감한 레브가 물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런데 시녀는 조금 주저하는 기색이었다. 말하지 못할 것은 아닌데, 껄끄러워하는 것 같아서 레브는 매혹을 걸어주었다.

그제야 시녀의 입이 터졌다.

“오 년 전의 일 때문이에요. 그날은 도련님께서 하얀 조랑말을 타신 화창한 날이었죠…”

+ + +

“이럇!”

나이에 걸맞지 않게 조숙한 눈빛을 지닌 소년이 조랑말에게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실상은 말의 배를 차지도, 고삐를 당기지도 않은 호기롭기만 한 외침이어서 작은 조랑말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하브니 가이단은 고삐를 함부로 당겨서는 안 된다는 아버지의 당부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들아, 사람보다도 힘이 강한 말이 고삐를 당기는 대로 순순히 고개를 돌리는 까닭에는 사실 조금 잔인한 원리가 담겨 있단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근사한 조랑말을 앞에 둔 소년이 반짝반짝, 눈을 밝히며 물었다. 그는 당장에라도 말을 타고 저택의 마당을 뛰어보고 싶어 안달이었다.

“고통이란다.”

그런데 아버지는 끔찍한 이야기로 어린 아들의 들뜬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재갈을 찬 말은 혀와 잇몸이 심하게 눌린단다. 어찌나 강하게 눌리는지 혀가 파랗게 변할 정도인데, 고삐를 당기면 그것이 밀리면서 말에게 격한 고통을 주지. 그래서 말은 고삐가 당겨지는 것 같거든 재빨리 고개를 돌리는 것이란다.”

백색의 조랑말을 쓰다듬으며 싱글벙글하던 소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조랑말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고, 그의 왼손에는 고삐가 들려 있었다.

“그러니 명심하거라. 쥔 고삐에 항상 일정한 힘을 가하고, 당겨야 할 때는 부드럽고 은근하게 당겨주어야 말의 고통이 덜하다는 것을.”

“여보.”

곁에 있던 후작 부인이 눈을 흘기며 끼어들었다. 남편의 과한 충고를 끊은 그녀는 아들의 경직된 왼손을 자상하게 감싸주며 말했다.

“네 아버지의 말은 사실이지만 너무 깊이 마음 쓰지 말려무나. 지금 당장은 미안하겠지만 막상 타보면 되레 고맙게 느껴질 거야.”

어머니의 다독임에 용기를 되찾은 소년이 조심스럽게 말 등에 올랐다.

다행히 조랑말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걸었고, 하브니 가이단은 감탄해 탄성을 질렀다.

훌쩍 높아진 시야가 상쾌하다.

키가 큰 아버지의 정수리가 내려다보이고, 저택의 2층 난간이 손에 잡힐 듯하다.

흔들리는 말의 걸음이 나의 걸음인 것만 같고, 말 머리 너머로 보이는 넓은 마당이 비좁다. 이것은 아마도 말이 보는 세상이겠지.

떨어지면 어쩌나, 말 등에 오를 때 가졌던 두려움이 깨끗이 사라졌다.

고삐를 마음 내키는 대로 휘두르며 힘차게 말을 몰아보겠다는 치기 어린 생각도 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중간에 한 번 “이럇!” 소리뿐인 박차를 가해본 것을 제외하면 얌전히, 조랑말이 알아서 걷게 내버려 두었다.

‘우린 참 신기한 관계구나…’

하브니 가이단은 손에 쥔 고삐가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고통을 주는 도구.

하지만 그 도구는 그와 조랑말을 하나로 이어주고 있었다. 이것이 없었더라면 말 등에 오르지도, 조랑말과 이렇게 교감을 나누지도 못했을 터였다.

하브니 가이단은 그제야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씀이 이해가 갔다.

“고마워… 날 태워줘서.”

그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작게 속삭였다. 나를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교감해준 이 녀석에게 정말 잘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고삐를 살살 잡아당겼다. 조랑말은 푸르륵, 고개를 돌려 처음 출발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의 누이는 마당의 작은 탁자에 둘러앉아 하브니가 말을 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머나, 잘 타는구나. 처음 타보는 것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인걸, 우리 아들.”

후작 부인이 돌아온 아들을 칭찬했다. 하르베이 가이단 후작도 그를 기특하게 바라보다 조언을 해주었다.

“얘야, 아직 그 말은 어리단다. 오랫동안 타고 있으면 말이 힘들어하니 이제 그만하는 게 좋겠구나.”

그의 충고에 하브니 가이단이 조심조심 말에서 내리고는 활짝 웃었다.

“아버지,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너무 좋아요. 전 이제 얘와 평생 함께할 거예요!”

“허허, 녀석도…”

하브니는 처음으로 말을 타본 소감을 아직 승마해보지 않은 누이, ‘하리에’에게 속사포처럼 쏟아내는데 곁에 있던 시녀가 그를 말렸다.

“잠시만요, 공자님. 땀을 닦으셔야지요.”

그녀가 건네준 것은 땀을 닦아낼 젖은 수건과 마른 수건이었다.

소년은 마른 수건으로만 제 얼굴을 얼른 훔치고는 젖은 수건으로 조랑말의 목을 닦아주며 물었다.

“얘는 언제쯤 다 자랄까요?”

재갈을 물리는 훈련까지 마쳤지만, 아직 치아도 다 자라지 않은, 오직 후작의 어린 아들만을 위한 조랑말이었다.

가이단 후작은 녀석이 주인을 태우고도 오래도록 걸으려면 2년은 더 자라야 한다고 알려주었고, 하브니는 아쉬워하며 말 갈기를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아주 잠깐씩만 타는 것이 한계라니… 너무 아쉽다.

“축복을 받아보는 건 어떨까요? 애가 저렇게 아쉬워하는데…”

후작 부인의 제안이었다.

사제는 동물에게도 축복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효과가 인간에게 내려지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축복은 인간에게는 악을 물리치고,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해주는 등의 균일한 가호를 부여해주었지만, 동물에게는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녀석은 힘이 세지기도, 어떤 녀석은 성장이 빨라지거나 지구력이 좋아지기도 했다.

그리고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경우도 왕왕 있었기에 큰돈을 들여 말에게 축복을 내리는 건 말 장사치들에게 도박으로 통하는 일이었다.

물론, 오른 왕국의 대귀족인 가이단 후작에겐 도박도 뭣도 아니었다.

“흐음… 그것도 좋겠지요. 꼭 빨리 자라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손해 볼 것도 없으니까요. 말이 나온 김에 지금 교회에 가서 축복을 받고 올까요?”

“와아! 정말요?!”

하브니 가이단이 기뻐서 팔짝팔짝, 누이의 손을 붙들고 마구 흔들었다.

하리에 가이단이 질렸다는 얼굴로 말했다.

“어휴, 다녀오세요. 저는 먼저 들어갈게요. 햇볕을 오래 쬐었더니 피곤하네요.”

어린 영애는 곱게 인사하고는 시녀를 대동해 안으로 들어갔다. 시녀가 힐끗 뒤돌아보니 가이단 후작과 후작 부인, 하브니 가이단이 조랑말을 이끌고 저택을 나서고 있었다.

+ + +

“그런데 사고가 있었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고가요.”

마당이 보이는 2층 테라스에서 레브와 마주 앉은 시녀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부터는 그녀도 남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였다.

네비스 교회에 간 후작은 아들의 조랑말에게 축복을 내려달라 청했고, 큰돈을 기부받은 교회는 두말할 것 없이 축복을 내려주었다.

그런데 순수하게 기뻐하는 하브니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었을까? 사제는 평소보다 더 강하게 축복을 내려주었는데, 그게 문제가 됐다.

어린 조랑말은 제 몸에 내린 새하얀 빛에 깜짝 놀라서, 바로 뒤에 서서 두근두근 기대하던 소년을 걷어차 버렸다.

어처구니없게도 하브니 가이단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후작님의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셨어요…”

시녀는 돌아온 후작이 악을 지르는 모습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는 거룩한 주신을 향해 저주와 불경의 말을 쏟아내었고, 저택에 있던 교회와 관련이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때려 부쉈다. 광기와 울분에 휩싸여 방에 틀어박혔다.

그 방에서는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때때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파괴가 자행되었다.

시녀는 존경하는 후작님께 식사를 날라드리느라 갖은 고생을 하였다.

식사를 거부하며 씻지도 않으려 하셨기에 그녀는 기사의 도움을 받아 후작을 제압해야만 했다.

못돼먹은 주인이었다면 시녀도, 기사도 그런 고생을 자청하지 않았을 터였다.

허나 하르베이 가이단 후작은 언제나 상냥한 사용자였고, 죽어버린 하브니 가이단은 깜찍한 미소를 가진, 시녀에게 잔소리를 들어도 “죄송해요.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게요.”라며 솔직하게 사과하는 소년이었다.

저택의 모든 사람이 후작을 깊이 동정하여 그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노력 덕분일까, 터무니없이 죽어버린 아들을 가까스로 가슴에 묻는 데 성공한 후작이 초췌한 몰골로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시금 일손을 잡았는데… 그때는 이미 가이단 후작가가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후작이 미쳤다느니, 감히 거룩한 신을 욕했다느니, 하나뿐인 후계자가 천벌을 받았다느니… 온갖 악랄한 소문이 판치며 가이단 가의 명성을 깎아내렸다.

정신을 되찾는 게 조금만 늦었더라면 변경백의 직위를 빼앗겼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만약 후작의 친우인 에브니 드라진이 남몰래 힘써주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빼앗겼으리라.

가문을 존속시키기 위해 다시금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 하르베이 가이단 후작, 하지만 그와는 달리 후작 부인은 끝내 일어서지 못했다.

몇 달간이나 졸도하고 깨어나기를 반복하던 그녀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말문도 닫아버리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할 뿐, 곁에 누가 다가오더라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나마 반응하는 사람이 자신의 남편과 딸이었는데, 그들을 보거들랑 왈칵 울어버리며 기절했기에 그녀는 요양을 핑계로 가이단 영지의 저택으로 보내졌다.

“…거기서도 방에 틀어박혀서 지내신다는데… 그렇게나 화목했던 집안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시녀는 딱하다는 기색을 차마 숨기지 못하고 탄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레브는 하르베이 가이단 후작이 어째서 불신자가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왜 이 저택의 사람들이 다들 애써 밝은 얼굴로 돌아다니는지도… 그들은 그들의 상냥했던, 불쌍한 주인을 배려함이었다.

“앗! 죄송해요. 저는 이만 가봐야겠어요. 주인님이 오셨어요.”

그때, 테라스 아래를 내려다보던 시녀가 벌떡 일어났다. 레오가 고개를 돌려보니 가이단 후작의 마차가 정문에 당도해 있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저택에 다가온 후작이 테라스 위의 레브를 알아보고는 조금 크게 말했다.

“왕을 알현하실 날짜가 잡혔습니다. 내일모레 저와 함께 왕성에 가시지요.”

아들이 처음으로 말을 탔던 테라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그 불신자의 초록색 눈동자에는 짙은 피로가 담겨 있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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