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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1

110화.

난 회사에서 뉴스를 보았다.

TV 화면에는 검찰로 잡혀 들어가는 홍우송 회장과 이세엽 사장의 모습이 보였다.

이세엽 사장은 고개를 푹 숙였지만, 홍우송 회장은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카메라를 응시했다.

자신이 뭘 잘못했느냐는 듯 당당한 표정이다. 아마 교도소에 가더라도 생각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우송기업 노조는 무사히 업무에 복귀했다. 문제가 되었던 밤샘노동은 폐지되었고, 주간 2교대제를 즉시 시행하기로 했다.

택규가 말했다.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대체 왜 이 지경이 된 거야?”

“그러게 말이다.”

증거가 새로 나온 것도 아니고, 그 사이 법이 바뀐 것도 아니다.

그저 검찰과 언론이 제 역할을 안 하고 있었을 뿐이다.

우송기업과 창주컨설팅은 처벌을 받았지만, 은성차는 무사히 빠져나갔다. 회사차원의 지시와 개입에 대해 우송기업도 부인하고 은성차도 부인했기 때문이다.

검찰 역시 은성차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았다.

택규는 소파에 드러누우며 말했다.

“어쨌거나 잘 해결됐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석범 아저씨는 다행이지만, 종수 아저씨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이제 와서 유족들에게 보상해준다고 해도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오지는 않는다.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밤샘노동은 금융권이 제일 심하지 않나? 우리 누나만 해도 골든게이트 들어가고 몇 년 동안 잠 한 번 제대로 못 잤는데.”

실제로 금융권의 노동 강도는 살인적이다. 그럼에도 별 불만이 없는 건 그만큼 보상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년 고생하고 나면, 연봉 1억은 우습다.

“원래 노동 강도는 임금에 비례하기 마련이지. 군대가 괜히 힘든 줄 알아?”

월 몇 십만 원 받고 그짓하려니까 힘든 거다. 한 500만 원씩 주면, 행복하게 복무할 수 있다.

“월 1천 주면 재입대 할래?”

“미쳤냐? 월 5천 줘도 안 가.”

“그래도 예비군은 가야 하잖아.”

“…….”

아, 예비군…….

이거 돈 주고 뺄 수 없나?

* * *

난 오랜만에 유리와 통화했다.

[뭐해요, 선배? 그동안 연락도 잘 안 되고.]

목소리에서 서운함이 느껴졌다.

“미안. 엑스캅 입찰 끝나고 연락하려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우송기업 사건이요? 뉴스에서 봤어요. 거기는 왜 간 거예요?]

“그게…….”

난 그동안의 일을 정리해서 말해 주었다. 얘기를 들은 유리는 깜작 놀랐다.

[진짜요? 어떻게 그런 일이. 그분은 좀 괜찮으세요?]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어.”

[다행이네요.]

유리는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내일 크리스마스인데 뭐할 거예요? 약속 있어요?]

“응. 있어.”

내 말에 유리는 깜짝 놀랐다.

[무슨 약속이요? 혹시……?]

“어머니랑 식사하기로 했어.”

[아, 그렇군요. 맞아요. 원래 크리스마스는 가족이랑 보내는 날이니까요. 아주 건전하고 좋은 생각이에요.]

“…….”

목소리에 힘이 좀 빠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난 미안한 마음에 말했다.

“나중에 회사로 한 번 놀러와. 맛있는 거 사주고, 회사도 구경시켜 줄게.”

[정말이죠? 약속한 거예요, 선배.]

“응.”

전화를 끊고 일하려는데, 택규가 소파에 누운 채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넌 대체 왜 맨날 여기서 게임을 하는 거냐? 아래층으로 가.”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

그 심심함을 견뎌내야 좋은 경영자가 될 수 있다.

얜 진짜 현주 누나 밑에서 경영수업 좀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살 건 다 샀어?”

내가 일하는 사이 택규는 집에 놓을 가전과 가구를 사러 돌아다녔다.

“응. 서성디지털프라자랑 가구점 가서,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제일 비싼 걸로 골라서 배달해달라고 했어.”

“…….”

그걸 또 했어?

택규는 게임패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배고프네. 점심 뭐먹을까? 짜장면 시킬까?”

“……구내식당 가서 먹어.”

CHO인 마이클 리는 처음 말했던 대로 건물 안에 직원들을 위한 구내식당을 만들었다. 식자재는 전부 유기농 최고급에 호텔출신의 쉐프들이 직접 요리한다.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됐을 때쯤, 엘리가 이쪽으로 건너왔다.

“뭐해요, 진후?”

“점심 먹으러 가려구요.”

엘리는 나에게 물었다.

“진후는 크리스마스 계획이 어떻게 돼요?”

난 아까 유리에게 한 대답을 그대로 했다.

“어머니랑 식사하기로 했어요. 아직 이사 전이긴 하지만, 새로 산 집도 둘러보실 겸.”

“아아, 그렇군요.”

“엘리는요?”

내 물음에 엘리는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전 아무 계획 없어요. 타지에서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내려니 너무 우울하네요.”

“아…….”

너무 익숙해서 잠시 잊고 있었다. 엘리의 고향이 홍콩이라는 것을.

원래 홍콩에서 일하던 엘리는 현주 누나가 한국지사장으로 임명되자 스스로 자원해서 따라왔다.

한국에는 가족과 친구가 없는 만큼 많이 외로울 것이다.

“현주 누나랑 같이 보내면 되지 않아요?”

엘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맞아요. 이번 크리스마스도 제시카와 함께 보내겠네요. 어차피 호텔방에 혼자 있으면 제시카가 불러서 일 시킬 테니까요.”

“…….”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최대의 축제. 성공회도인 엘리에게는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날까지 일이라니!

“다들 행복한 크리스마스에 전 담배 냄새 맡으며 일하겠네요. 이만 가볼게요.”

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돌아서는 엘리를 붙잡았다.

“자, 잠깐만요.”

엘리는 바로 발걸음을 멈췄다.

“왜요?”

“괜찮으면, 크리스마스 때 같이 식사해요.”

그녀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니에요. 가족들끼리 모이는 자리인데, 괜히 눈치 없이 끼면 미안하잖아요.”

“무슨 말이에요? 엘리가 오면 어머니도 기뻐하실 거예요. 저번에 한 번 만난 적도 있고.”

“정말 괜찮을까요?”

“그럼요. 어차피 택규도 같이 갈 건데요.”

엘리는 눈을 빛내며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고마워요. 진후 덕분에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예.”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걸 보니, 그동안 혼자서 많이 외로웠던 모양이다.

소파에 누워있던 택규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럼 누나도 같이 가자고 해야겠다. 안 그러면 혼자서 일할 거 아니야?”

“좋은 생각이야.”

그러고 보니…….

타지에 와 있는 건 헨리 역시 마찬가지다. 상엽 선배도 설에나 고향에 내려갈 테고.

아예 전부 초대하는 게 좋겠지?

* * *

사람이 많이 온다는 얘기에 어머니는 오히려 좋아하셨다. 주택에는 엑스캅의 경호원들이 배치되었고, 가사도우미도 새로 뽑았다.

우리는 주차를 한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올라갔다.

어머니는 미리 도착해서 손님맞이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어서들 와요.”

메인주방에 있는 긴 식탁에는 케이크를 포함해 각종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난 깜짝 놀라 물었다.

“설마 혼자서 이걸 다 준비하신 거예요?”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일하시는 아주머니들과 함께 준비했어. 계속 남아있겠다는 걸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보내라고 전부 돌려보냈어.”

“잘하셨어요.”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았다.

난 준비해온 와인을 따서 각자의 잔에 따라주었다.

“한 해 동안 진후랑 같이 일하시느라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차린 건 별로 없지만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어머니는 엘리와 헨리에게 물었다.

“외국에서 와서 다들 고생이네요. 입에는 맞아요?”

헨리는 어색한 한국어로 말했다.

“맛있습니다. 잘 먹고 있습니다.”

엘리는 생글생글 웃었다.

“너무 맛있어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어머님.”

“그럴까요?”

우리는 식사를 끝마친 다음 거실로 이동했다.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올랐다.

이렇게 다 같이 모여 있으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난다.

택규는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역시 집이 좋네. 호텔은 아무리 좋아도 집 같지가 않단 말이야.”

“그건 그래.”

어머니는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집이 참 좋네. 우리 아들이 이런 집에서 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참고로 이 집의 전주인이신 채영은 회장님께서는 현재 구속 상태로 1심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다.

“집 구경은 다 하셨어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여기저기 다 둘러봤어.”

“같이 사시는 건 어때요?”

내 말에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난 그 집이 좋아. 이렇게 큰 데서 자면 잠도 안 올 것 같고.”

“그래도 혼자서 심심하시잖아요.”

“괜찮아. 그보다 아까 요리하면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이랑 얘기를 해봤는데, 다들 좋은 분들이더라. 월급 준다고 해서 그분들한테 함부로 하지 말고. 집에 가면 다 귀한 엄마고 가족이니까. 알았지?”

“알았어요.”

“엄마한테 한 것처럼 짜증부리거나 화내면 안 돼.”

“……제가 언제요?”

엘리는 옆에서 웃음을 지었다.

“어머, 진후가 그랬어요?”

“그럼. 어렸을 때 얼마나 말썽을 피웠는데.”

택규는 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진후가 사고를 많이 치긴 했죠. 제가 잘 보살폈어야 했는데.”

“…….”

처웃지 마. 그 사고 중 절반은 너랑 함께 쳤어.

상엽 선배가 말했다.

“어, 눈 온다.”

우리는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새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엘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무 예뻐요.”

와인 때문인지, 벽난로의 열기 때문인지 엘리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평소와 달리 체크무늬 치마에 스웨터를 입었는데, 매우 잘 어울렸다.

현주 누나는 몸을 일으켰다.

“잠깐. 나갔다 올게.”

“어디가, 누나?”

“담배 좀 피우러.”

엘리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같이 나가요.”

결국 우리는 다 같이 정원으로 나갔다. 그새 정원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현주 누나는 한쪽에서 담배를 피웠고, 엘리는 눈을 만지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홍콩은 눈이 잘 안 와요. 그래서 눈을 보면 너무 신기한 느낌이에요. 진후는 내리는 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나요?”

“저는…….”

난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군대에서 넉가래 하나 들고 죽도록 눈 치우던 게 생각나네요.”

“…….”

* * *

크리스마스가 끝난 후 회사는 연말결산으로 정신없이 바빠졌다.

난 그 와중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은성차그룹의 인수합병팀을 이끄는 서상원 팀장이었다.

[말씀하신 제안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결정하셨습니까?”

만나서 영입제안을 하기는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입찰가를 유출한 배신자로 낙인찍힌 상황. 우리 쪽으로 오면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잠시 후, 서상원 팀장이 말했다.

[대표님께서 하신 약속을 믿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팀원들도 같이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레드스톤그룹에 있을 때부터 함께 일했던 동료들인 만큼 실력은 보장하겠습니다.]

혼자와도 감지덕지인데, 팀원들까지 데려오겠다니!

그야말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셈이다.

난 기뻐하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독립적으로 일하실 수 있도록 보장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정리가 끝나는 대로 찾아뵙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나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좋았어!”

금융권에서 이만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한찬영의 삽질 덕분에 의도치 않게 대어를 낚게 된 셈이다.

* * *

연말파티는 OTK컴퍼니 빌딩에서 열렸다.

어디서 소문이 퍼졌는지(대충 짐작은 되지만) 여기저기서 참석요청이 쇄도했다. 특히 야당과 재야 정치인들의 연락이 폭주했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내가 박시형 대통령과 여당인 한국가당과 사이가 안 좋은 만큼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거라는 논리였다.

몇몇 유력 정치인들은 노골적으로 후원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국에서 사업하는 이상 정치문제에 대해 아예 신경을 안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중에 필요할 때 손을 잡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정치인들을 만나고 다니면 언론들이 뭐라고 떠들어댈지 뻔하기도 하고.

종무식을 겸한 행사인 만큼 외부인의 참석요청을 전부 거절했다.

그런데 파티 당일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골든게이트 아시아지사장 체이스 사우스웰이 한국지사를 둘러보기 위해 건너온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시아의 전설적인 투자자의 등장에 골든게이트는 물론 OTK컴퍼니와 K컴퍼니 직원들 역시 크게 기뻐했다.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끝났고, 드디어 새해가 밝았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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