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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3

112화.

완성차업체는 딜러사와 계약을 맺고 판매량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인센티브를 올려주면 딜러사가 가져가는 몫이 그만큼 커진다. 당연히 좀 더 적극적으로 영업해서 한 대라도 더 팔려고 할 것이다.

때문에 판매량이나 점유율이 떨어질 경우 딜러사에 인센티브를 올려주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인센티브를 올려도 예상만큼 판매량이 늘지 않는다면, 오히려 적자를 보게 된다. 딜러사의 몫을 올려주면 그만큼 우리 몫의 이익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결과니까.

자동차는 다른 제조업에 비해 영업이익률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BMW나 벤츠 같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조차 10퍼센트를 간신히 넘는 수준이고, 5퍼센트 이하도 수두룩하다.

은성차의 경우 판매량이 정점을 찍었을 때 10퍼센트를 넘었지만, 현재는 6퍼센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딜러사들이 판매를 보이콧할 경우 공장가동을 부분중단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3대 거짓말 중 하나가 ‘밑지고 판다’는 장사꾼의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때로는 사실이기도 하다.

기업은 재고가 가득 쌓였을 경우 원가이하로라도 판매한다. 적자를 보면서도 파는 이유는 그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자동차회사는 고정비용이 크다. 차가 잘 팔리든 안 팔리든 고정비용은 계속 지출된다. 만약 생산을 줄이기 시작하면, 그때는 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택규가 나에게 말했다.

“다른 회사들도 다 딜러사들 눈치를 보는 거야?

“딱 하나 예외가 있어.”

“어딘데?”

“니콜라.”

딜러사와 계약을 맺고 판매하는 다른 완성차업체들과는 달리, 니콜라는 대도시에 직영점을 만들어 전시와 시승을 하고,판매는 인터넷을 통해서 한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로 니콜라는 신생회사다. 애초에 딜러사와 맺은 계약이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마찰 없이 인터넷 판매 방식을 채택할 수 있었다.

둘째로 전기차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알아서 찾아 구매하기 때문에 굳이 딜러사의 영업망에 기댈 필요가 없다.

얼마 전, 출시한 모델TH가 대표적인 예다.

출시 1년 전부터 예약을 받았는데, 선금 1000달러를 내야함에도 불구하고 예약자만 50만 명이 몰렸다.

따지고 보면 니콜라가 그동안 엄청난 적자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딜러사에 떼어주는 마진이 없기 때문이다.

택규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돈만 투자하면 다 잘 될 줄 알았는데. 역시 현실은 만만치가 않네.”

“그러게 말이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런데 판매량이 줄어드는 이유가 대체 뭐야?”

답은 뻔하다.

“다른 회사 차가 더 좋으니까.”

난 세르게이에게 물었다.

“현재 여유자금이 얼마나 되나요?”

“100억 달러에 조금 못 미칩니다.”

OTK컴퍼니는 카로스에 250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중 인수합병과 공장건설에 이미 150억 달러 이상을 썼다.

러스트벨트의 공장설립은 속도를 늦추기 힘들다. 미국 제조업의 일자리를 늘리는 건 로날드의 핵심공약이고, 이것 덕분에 당선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와서 발을 빼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러스트벨트 유권자도 로날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공장이 완공되면 생산량은 두 배 이상 늘어난다.

하지만 판매가 되지 않으면, 공장은 오히려 돈 먹는 하마가 된다. 유지비용만 계속 늘어나며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될 것이다.

기술개발, 신차개발, 공장건설, 인수합병 등등.

돈 나갈 곳은 천지다.

반면 들어오던 돈은 끊길 상황이다. 잘못하다가는 제대로 된 신차를 내놓기도 전에 고사할 수도 있다.

라이언이 말했다.

“부분변경 모델을 출시하고, 판촉을 강화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게 과연 얼마나 가겠습니까?”

제때 투자를 하지 못해 프레임과 엔진 모두 노후화 되었다. 디자인과 내장재만 바꾸는 것도 이제 한계다.

난 경영진들을 둘러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크라이슬러가 카로스를 인수한 게 아니라, 카로스가 크라이슬러를 인수했습니다. 여러분들은 크라이슬러의 경영진이 아닌, 카로스의 경영진입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경영진들은 일제히 나를 보았다.

“앞으로 크라이슬러라는 브랜드는 없어질 겁니다. 여러분들이 만들어야 하는 건 크라이슬러의 차가 아닌, 카로스의 차입니다.”

라이언이 말했다.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딜러사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향후 판매 역시 지장을 받게 될 겁니다.”

“딜러사와의 마찰은 신경 쓰지 마세요. 소비자들이 사고 싶은 차를 만들기만 하면, 알아서 손을 내밀 겁니다.”

언제까지 딜러사에 끌려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번 기회에 아예 니콜라처럼 직접 판매를 하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그 정도로 매력적인 차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문제지만…… 카로스의 기술력을 믿어봐야겠지.

“제가 카로스에 투자한 건 여러분들에게 그동안 아무도 만들어내지 못한 차를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금문제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다른 회사를 매각하든 IPO를 하든 어떻게든 마련해서 지원할 테니까요. 그러니 만들고 싶은 차를 만드세요.”

* * *

카로스의 CEO 데릴 세이건 역시 취임식에 초청받았다.

같이 워싱턴D.C.로 가기 위해 준비하는데, 골든게이트 CEO 제임스 C. 골드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미국에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걱정해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었다.

[헨리는 그곳에서 잘하고 있습니까?]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제임스는 웃음을 지었다.

[하하, 다행입니다. 이제 이틀 후면 취임식이로군요.]

“제임스께서도 참석하시나요?”

대선 당시 금융회사들은 거의 전부 다이앤의 편에 섰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골든게이트다.

골든게이트는 막판에 다이앤 캠프에서 발을 빼고 로날드 편에 섰다. 아마 그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저 대신 다른 사람이 갈 예정입니다. 사람 많은 곳은 질색이라서요.]

“그렇군요.”

역시 은둔의 투자자답게 공식적인 자리에는 나서지 않는구나.

[디트로이트를 들렸다가 워싱턴D.C.로 간다는 얘기를 듣고, 공항에 전용기를 준비해두었습니다.]

나를 위해 굳이 전용기까지?

좀 부담되긴 하지만, 베풀어준 호의를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배려에 감사합니다.”

[그럼 조만간 만날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난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택규가 물었다.

“제임스가 뭐래?”

“비행기 티켓 취소하래.”

* * *

공항에는 걸프스트림이 대기 중이었다.

데릴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덕분에 전용기도 타보는군요.”

우리는 편하게 마주보며 앉았다. 저번에도 한 번 타봤지만, 좌석은 넓고 안락했다.

“한국 대통령 취임식도 안 가봤는데,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을 받을 줄이야.”

“그러게 말이다.”

생각해보면 굉장히 신기한 일이다.

택규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우리 예전에 일본 갈 때 껴서 갔던 거 생각나?”

“응.”

저가항공사 이코노미석이 그렇게 좁은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때가 재밌었는데.”

“……난 재미없었어.”

3박4일 동안 제대로 관광은 못하고 아카하바라니, 코미케니, 이곳저곳 끌려 다니기만 했다. 정작 내 쇼핑은 하나도 못하고, 캐리어에 만화책과 게임CD만 꽉꽉 채워서 돌아왔고.

숙박비 대준다고 꼬실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하지만 택규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았겠지.

난 데릴에게 물었다.

“현재 로날드에 대한 여론은 어떤가요?”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러스트벨트에서의 지지도는 여전히 높습니다.”

“다행이네요.”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아닙니다.”

“…….”

그럴 줄 알았다.

보통 새 정부가 출범할 때는 기대감으로 지지율이 오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로날드는 당선 이후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는 추세였다.

현재 지지율은 본인 득표율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여전히 미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로날드에 대한 반대시위가 벌어졌다. 비즈니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로날드가 좀 잘 돼야 할 텐데.

난 데릴과 향후 상황에 대해 계속 얘기를 나누었다.

“서두르면 올해 안에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한 내연기관차를 출시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미래자동차는 자율주행기술을 탑재한 전기차나 수소차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소프트웨어 기술만 확보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운영체제를 만들어도 그걸 돌리기 위해서는 CPU, 반도체, 메인보드 등이 필요하다.

“문제는 배터리입니다.”

전기차는 기름통 대신 대용량의 배터리가 필요로 한다. 하지만 자동차배터리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한정되어 있다.

때문에 전기차 출시를 위해서는 배터리회사와 손을 잡는 것이 필수다.

완성차업체 입장에서는 전기차를 만들어서 팔면 배터리업체와 이익을 나눠야 한다. 때문에 다들 그동안 전기차 확대를 주저한 것이다.

그러나 변화를 늦출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다.

완성차업체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신생업체인 니콜라가 일본 배터리업체 테크닉스와 손을 잡고 재빨리 시장에 뛰어들었다.

니콜라가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하자 손 놓고 있던 완성차업체들도 일제히 전기차 개발과 출시에 나섰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니콜라의 뒤를 쫓아가는 상황이다.

“코닥이 필름카메라만 고집하다가 디지털카메라의 변화를 놓친 것과 비슷한 거지.”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롬 카트리지를 밀던 닌텐도가 CD를 택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에 밀린 것처럼?”

놀랍게도 정확한 비유다.

카로스가 만든 운영체제는 단지 자율주행만이 아닌 자동차 전체를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런 만큼 내연기관차보다는 전기차에 걸맞다.

“배터리업체를 인수하거나, 협력하는 방향을 생각해 봐야겠네요.”

문제는 결국 돈인가?

얘기를 하는 사이 전용기는 워싱턴D.C.를 향해 날아갔다.

* * *

대통령 취임식은 국회의사당 앞의 캐피털 힐(Capitol Hill)에서 열렸다.

보안은 삼엄했다. 초청장을 검사하고, 마치 비행기 탑승 때처럼 철저하게 몸수색을 받아야 했다.

검문검색은 지나치다 싶었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갖지 않았다. 911테러 이후 이 정도는 미국인들의 일상이 된지 오래다.

며칠 전부터 날씨가 안 좋다 싶더니,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았다. 그러나 보안문제로 우산 소지는 금지되었다.

취임식장 바깥에서는 반 로날드 시위가 한창이었다.

수백 명이 피켓을 든 채 기습시위를 벌였고, 경찰들은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키고 연행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취임식장에는 관중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로날드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92개국의 사절단이 참석했다.

택규가 말했다.

“저 아저씨 우리나라 국무총리 아니야?”

고개를 돌려보니, 국무총리 황규상을 비롯해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거리가 멀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난 정신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택규에게 말했다.

“정신 사나우니까 그만 좀 둘러봐.”

“왜? 신기하잖아.”

“…….”

사실 나도 그래.

“와아! 다이앤도 왔네.”

그녀의 등장에 취임식장에 가벼운 술렁임이 일었다. 다이앤이 대선 패배이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여러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표정이 밝아 보이는데.”

“속은 그렇지 않을걸.”

다이앤은 정치명문가 언더우드 가문출신이자 상원의원과 국무장관을 역임한 엘리트 정치인. 정치이단아인 로날드 스탬프가 상대후보로 정해졌을 때만 해도 역대 가장 쉬운 선거가 될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투표결과 다이앤은 로날드보다 300만 표 이상 앞섰지만, 선거인단 숫자에서 크게 밀렸다. 이번 대선 패배로 그녀의 정치생명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던 다이앤이 갑자기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택규는 내 옆구리를 찔렀다.

“너한테 오는 거 아니야?”

“설마…….”

그런데 정말로 다이앤은 내 앞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다이앤 언더우드예요.”

표정과 목소리에서 자연스런 위엄이 느껴졌다.

난 얼떨결에 그 손을 맞잡았다.

“반갑습니다. 강진후입니다.”

그녀는 나에게 뼈있는 말을 건넸다.

“예전에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처음 보게 되네요.”

내가 대선 전에 만남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다이앤은 그 요청을 거절했고, 난 그 길로 로날드를 찾아갔지.

“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내 말에 그녀는 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요.”

만약 그랬다면, 오늘 취임식을 하는 사람이 로날드가 아닌 다이앤이었을까?

뭐,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한 법이지.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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