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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4

114화 각자의 마음 (1)

114화 각자의 마음 (1)

“물론 당시의 루나가 너무 어린 탓이 컸겠지. 생후 일 년 만에 배를 타야 했으니 말이다.”

쿠훌린의 말이 맞다.

잘은 모르지만 한 살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배의 흔들림을 견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다.

그렇다면 지금의 루나가 뱃멀미하는 이유는 그때의 후유증일까.

“섬으로 돌아온 나는 은월의 단장이 됐다.”

그러나 쿠훌린은 스카자하가 고대하던 ‘은월섬의 맹주’ 자리에는 오르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루시엔과 이자벨, 그리고 데미안을 찾기 위해.

쿠훌린은 스카자하에게 말했다. 그들을 찾으면 꼭 맹주의 자리에 오르겠다고. 이후 최선을 다해 맹주의 본분을 다하겠다고. 그러니 그때까지는 자유롭게 대륙을 유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안 됩니다. 제발 스스로의 위치를 생각하십시오. 은월의 단장과 은월섬의 맹주는 서로 다른 직위가 아닙니다. 은월의 단장이 곧 은월섬의 맹주입니다.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려 하십니까!’

스카자하는 극구 반대했다.

그러면서 꾸짖었다.

‘쿠훌린. 너는 이제 홀몸이 아니다. 네가 돌보지 않는 섬의 가신들은 차치하고서라도, 너에게는 아내와 딸이 있다. 그들마저 두고 떠날 셈이냐. 정녕 너는 맹주의 책임에 더해 남편과 아비의 책임마저 내동댕이칠 셈이더냐!’

쿠훌린은 움찔했다.

그 말대로, 그는 이제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결국 쿠훌린은 섬에 남았다. 리아논의 곁에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루나를 지켜봤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루시엔과 그의 가족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녀가 예언했다.

‘새로운 소서러가 등장할 것입니다.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존재가.’

불길한 예언이었다.

소서러는 이 세계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이레귤러(Irregular).

소서러가 발현하는 힘은 보편적인 마법과는 궤를 달리한다. 마치 악마라는 존재가 실재한다면 사용할 것만 같은 어둡고 위태로운 힘. 그 초월적인 힘을 가장 오랫동안 연구하고 이해하려 한 이들이 바로 마법사다. 그들은 소서러를 이렇게 불렀다.

악마의 숨결을 삼킨 자.

‘새로운 소서러의 등장으로 세계는 격변을 마주할 것입니다. 기존 질서가 흔들리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이어 신녀는 새로운 소서러가 이 세계에 파멸을 불러올 수도, 구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머지않아 대륙 곳곳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그것이 세계를 병들게 할 것이라고.

‘아빠. 어디 가아?’

‘응, 큰 공주. 아빠는 잠시 섬을 떠나야 해.’

‘왜애?’

‘하하하. 아빠는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거든. 그래서 가야 해.’

‘영웅? 그게 뭔데에?’

‘나쁜 놈들을 혼내주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을 영웅이라고 불러.’

‘와아, 그럼 나도 영웅 할래. 루나프레나도 나중에 커서 아빠 같은 영웅이 될 거야!’

‘그래, 큰 공주. 하하하하!’

‘······그래도 안 가면 안 돼? 지금처럼 루나프레나와 함께 있으면 안 돼? 엄마랑 디네베 곁에 있으면 안 돼?’

쿠훌린은 어린 루나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 그는 이제 섬의 생활에 익숙해졌다. 최근에는 귀여운 둘째 딸도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떠나야 했다.

새로운 소서러의 등장이나 대륙의 이상 현상 때문이 아니다.

리아논에게서 은월병의 징조가 나타났다.

‘아빠 가지 마아! 가지 마아아! 흐아아앙······!’

엉엉 우는 루나를 뒤로하며, 쿠훌린은 수년 만에 대륙으로 돌아갔다.

“나의 최우선 목표는 은월병의 치유법을 찾는 것이었다.”

쿠훌린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리아논을 섬으로 데려가는 바람에 그녀가 은월병을 앓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신녀의 예언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은월병의 치유법과 더불어, 새로이 등장할 소서러와 대륙의 이상 현상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

그러면서 쿠훌린은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오랜 목표를 상기했다.

루시엔과 이자벨, 그리고 데미안을 찾겠다는.

“그렇게 나는 섬과 대륙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쿠훌린이 부드럽게 내 머리를 헝클었다.

“데미안, 너를 만났다.”

***

루나는 벌컥,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꿈에서 깨어났다.

눈을 떴지만 시야가 부옜다.

그런데 무슨 꿈을 꾸고 있었더라?

“루나.”

눈을 몇 번 깜빡이자 초점이 잡혔다. 카인의 얼굴.

그 옆으로 세실의 옆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동그랗게 눈을 뜬 세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아마도 루나를 꿈속에서 끌어낸 범인으로 보이는 데미안이 문고리를 쥔 채 서 있었다.

돌연 루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어라? 왜 데미안을 보자마자 갑자기.

“괜찮은 거야? 루나.”

카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루나는 손가락으로 슬쩍 눈물을 닦아내며 씩 웃었다.

얍!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켰다. 이어 쭈욱 두 팔을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개운한 기분. 오랜만에 익숙한 침대에서 잤기 때문일까.

창밖에서는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너희들이야말로 나 때문에 못 잔 거 아니니?”

루나의 물음에 세실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번갈아. 잤어.”

그 모습을 보며 루나는 당장 세실을 끌어안고 볼을 문지르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어쩜 저렇게 예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안 돼. 카인은 아직 세실이 여자아이인 줄 모르니까.

“맞다! 엄마는? 디네베는?”

“두 사람은 무사히 회복 중이야.”

카인이 미소하며 말했다.

루나는 당장 두 사람의 방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런 그녀를 데미안이 막았다.

“리아논과 디네베는 안정을 취해야 해. 지금은 푹 쉬도록 두는 편이 나아.”

데미안은 많이 초췌해 보였다. 피곤해도 금세 회복하던 평소 모습과는 다르게.

루나는 코끝이 찡해졌다.

“······고마워 데미안. 네 덕분이야. 나, 이 은혜는 정말 평생 잊지 않을 거야.”

루나는 데미안을 안으려다가 멈칫했다. 카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에 생각이 닿자마자 루나는 얼굴을 붉히며 서랍장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친구들 몰래 손거울을 꺼내 얼굴과 머리매무새를 정돈했다.

뒤돌아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얼른 아침 먹으러 가자! 그러고 나서 트리스탄하고 케일라를 불러내는 거야!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있거든! 카인에게도!”

***

“오러!”

트리스탄이 깜짝 놀라 외쳤다. 케일라도 마찬가지였다.

“아하하! 봤니? 나 이제 오러를 발현할 수 있어! 무려 소드 엑스퍼트 님이라고! 아하하하하!”

은월검을 발현한 루나가 붕붕 검을 휘둘렀다. 그러고는 은근슬쩍 카인의 곁으로 다가가, 카인의 검과 제 검을 나란히 했다.

“뭐, 뭐야! 둘의 검이 똑같잖아!”

트리스탄이 루나와 카인을 번갈아 봤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트리스탄의 얼굴. 나는 녀석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있다. 루나를 좋아하니까.

“왜······, 왜 이런 일이······.”

점점 울상이 되어가는 트리스탄을 곁눈질하던 케일라가 와아! 환호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러자 루나는 더욱 신이 나 ‘카인! 이거 봐! 카인! 이거 봐!’ 하며 폴짝폴짝 검을 휘둘렀다.

성년이 될 날이 머지않았건만 루나는 아직도 저렇게 아이 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언제까지고 저 환한 미소를 지켜주고 싶다고.

“데미안! 이제 네 차례야!”

얼마나 뛰었는지 땀방울이 송골송골한 얼굴로 루나가 외쳤다.

트리스탄과 케일라가 마치 쌍둥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 설마······?”

붕어처럼 입을 뻐끔대는 트리스탄에게 나는 씩 웃어 주었다.

그러고는 검을 뽑아, 오러를 발현했다.

“크흑······! 데미안까지······!”

트리스탄이 거친 신음을 뱉으며 주저앉았다. 내가 오러를 발현한 것이 상당한 충격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트리스탄. 너는 훗날 라이칸의 뒤를 이어 흑월의 소드마스터가 될 테니까.

오러를 갈무리하며 나는 카인을 돌아봤다. 녀석이 소드 엑스퍼트가 되었을지 궁금했다.

카인이 싱긋 웃었다.

“와, 정말 대단하네 데미안. 나는 아직 오러를 발현하지 못하는데.”

그러고는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보기 좋게 역전당해 버렸네? 나도 더 노력해야겠어.”

옆에서 루나가 다시 오러를 발현하며 카인의 주의를 끌었다.

카인은 루나에게도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루나가 헤헤 웃으며 좋아했다.

[대상이 통찰에 저항했습니다.]

슬쩍 카인에게 통찰을 시전했지만, 역시나 저항했다. 카인이 나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웃지 마.

“으하하하! 라이칸에게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 큰 공주가 오러를 발현하다니! 으하하하하!”

“꺄아악!”

언제 다가왔는지 쿠훌린이 루나를 덥석 뒤에서 안아 올렸다.

당황한 루나가 사지를 버둥버둥 휘저었다.

“화, 환자가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거 놔요! 바람이 차니까 얼른 성으로 들어가기나 하라고요!”

“그럼 같이 가자 큰 공주! 으하하하하!”

우렁찬 목소리로 외친 쿠훌린이 루나를 끌어안은 채 성으로 달려갔다.

루나가 우리에게 손을 뻗으며 도와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누가 감히 쿠훌린을 대적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애지중지 루나를 품에 안은 그를.

***

쿠훌린은 침대에 누워 쉬라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며칠 내내 루나를 끼고 살았다. 아마도 지금이 아니면 루나와 사이좋게(?) 지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듯했다.

루나도 말로는 빽빽 소리쳤지만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아악! 그렇게 너무 꽉 안지 말라고요! 아파요!”

“하하하하! 터뜨려 버릴 거다!”

“엄마아아아!”

리아논과 디네베는 순조롭게 회복 중이었다. 워낙 상태가 위중했었기에, 우리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야 했다. 사실 내가 그렇게 하자고 했다. 괜히 방에 들락거리다가 빛이 새어 들어가면 위험했고, 무엇보다 안정이 최우선이었으니까.

두 사람의 간호는 스카자하가 맡았다. 틈틈이 그들의 몸을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카자하는 성에 머물렀고, 우리는 여러모로 생활에 주의를 기울였다. 스카자하에게 꾸중 듣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식사 자리에 디네베가 나타났다.

“디네베······?”

루나가 펑펑 눈물을 흘리며 디네베를 끌어안았다. 그런 둘을 쿠훌린이 한꺼번에 품에 안았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니 디네베를 바라봤다. 눈앞에 있는 이는 분명 디네베인데, 디네베 같지 않았다. 카인과 세실도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어라? 디네베. 키가······.”

포옹을 마친 루나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그제야 쿠훌린도 놀란 눈으로 디네베를 봤다.

왜 치유할 때는 알아채지 못했을까. 디네베는 키가 자랐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래서 평소 그녀가 즐겨 입던 긴 원피스 자락이 무릎 위로 껑충 올라갔다.

“나, 나보다 큰 것 같은데······?”

루나의 말대로였다. 아주 조금이지만 디네베는 루나보다 키가 컸다. 게다가 루나보다 어른스러웠다. 작아진 원피스가 아름다운 몸의 굴곡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그녀의 하늘빛 눈동자가 카인과 세실에 이어, 내게 고정됐다. 그러고는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미소 지었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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