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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5

115화 각자의 마음 (2)

115화 각자의 마음 (2)

“세실!”

숲으로 들어가려던 세실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해맑게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루나. 마치 따스한 햇살처럼.

“오늘도 혼자 훈련하러 가니?”

세실은 최근 단독 훈련을 시작했다.

영력을 활용하는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장소는 밤마다 쿠훌린과 몰래 훈련하던 대나무 숲으로 정했다. 왜인지 그곳은 쿠훌린과 세실 외에는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으므로.

물론 쿠훌린에게 허락은 받아두었다.

“아아. 세실. 세실리아······.”

세실을 껴안은 루나가 세실의 볼에 제 볼을 문질렀다.

지금처럼 둘만 있을 때 루나가 꼭 하는 행동이었다. 어쩌면 이러려고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세실은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으나 지금은 그러려니 했다.

솔직히 싫지 않았다.

부끄러울 뿐.

“세실도 우리랑 함께하면 좋을 텐데. 네가 혼자 훈련해서 조금 서운해. 카인도 그렇고······.”

요즘 카인은 엘리샤에게 마법을 배우고 있다.

“근데 카인 생뚱맞지 않니? 여태껏 검만 수련해 놓고 갑자기 마법이라니.”

루나가 아랫입술을 내밀며 들풀을 툭툭 발로 찼다.

“똑같은 검을 갖게 되어서 함께 훈련하는 날을 기대했었는데······. 기억나니? 예전에 우리 2대2 대련 많이 했었잖아. 세실은 데미안이랑, 나는 카인이랑 한 팀으로. 사실 나, 이번에 카인과 팀을 이룰 거로 예상하고 멋진 팀 이름도 생각해 두었거든. 그런데 카인은 엘리샤랑 마법 훈련만 하고. 힝······. 나만 기대했었나 봐.”

세실은 종종 헷갈렸다.

루나는 카인을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데미안을 좋아하는 걸까.

혹시 둘 다?

“루나.”

저도 모르게 루나에게 물을 뻔한 세실이 흠칫 놀라 입을 가렸다.

“아. 아니.”

“응? 왜? 뭔데 세실리아? 응? 응?”

루나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눈동자를 깜빡였다.

빠르게 머리를 굴린 세실은 곧 적당한 질문을 생각해 냈다.

“팀 이름. 뭐야?”

루나가 반색하며 외쳤다.

“불타는 쌍둥이 검! 어때? 근사한 이름이지 않아?”

세실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나 루나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불타는 쌍둥이 검’이라니. 왜인지 조금 불쌍해 보이는 이름.

세실의 속도 모르고 루나는 마냥 좋아했다.

“이만 가야겠다. 곧 대련하기로 했거든! 물론 우리가 이길 거야! 데미트리 팀이 우리를 한 번도 못 이긴 거 세실도 알지? 아하하하!”

‘데미트리’는 데미안과 트리스탄의 팀 이름이다.

루나와 케일라의 팀 이름은 ‘루나케’.

세실은 자신이 생각해 둔 예쁜 팀 이름을 소리 없이 읊조렸다. 데미실리아.

“훈련 열심히 해 세실리아! 이따가 봐!”

왔던 길을 호다닥 달려가며 루나가 손을 흔들었다. 세실도 마주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루나가 쪼옥, 손 키스를 날렸다.

세실은 차마 그것만은 따라 할 수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루나가 까르르 웃었다. 세실은 저 음악 같은 웃음소리가 좋았다.

점점 작아지는 루나를 바라보던 세실이 대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세실. 할 말이 있어.’

며칠 전 데미안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데미안은 모르가나의 마법진에서 아버지를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를 세실에게 전해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세실은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아야 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그가 굳이 내게 이런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어찌 됐든 세실, 너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세실은 데미안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데미안이 전해준 이야기는 크쉬에게 들은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의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그림자 군주.’

데미안은 블레오파드 가문을 지배하는 의문의 존재가 있다고 했다. 그자 때문에 세실은 어머니를 잃고, 레이븐을 잃고, 아버지를 증오하며 살았다.

세실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세실이 이곳에서의 훈련을 결심한 이유였다.

‘받거라.’

불현듯 아버지의 목소리가 머리를 스쳤다.

그 순간 세실은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을 상기했다.

아버지가 건네주었던 그림자 망토.

‘이제 네 것이다. 다만 착용하지는 말고, 항상 몸에 지니고 있거라.’

왜 아버지는 내게 그것을 주었지?

‘나는 네몬과 함께 임무를 떠난다. 네 훈련은 크쉬가 대신해 줄 거다.’

세실의 가슴이 불안하게 뛰었다.

그림자 망토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망토는 레이븐의 수의가 되어, 땅에 묻혔다.

‘너에게 블레오파드의 절기(?技) 하나를 알려주마.’

훈련을 시작하며 크쉬가 했던 말.

그 말대로 크쉬는 세실에게 특별한 기술을 가르쳤다.

어쩌면 그날이 세실의 마지막 훈련이라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그림자 폭풍.

기술의 이름을 듣고서야 세실은 언젠가 아버지가 같은 기술을 보여준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아니다 세실. 다시 해 봐라.’

크쉬는 반복해서 가르쳤지만 세실은 그림자 폭풍을 익히지 못했다.

당시의 세실이 터득하기엔 너무 난도가 높은 절기였다.

그리고 지금, 세실은 홀로 그림자 폭풍을 수련하고 있다.

‘······이게 아니야.’

세실은 답답했다.

크쉬의 동작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죽었던 그날의 기억은 듬성듬성 구멍 나 있다.

‘······이것도.’

아버지가 시범 보였던 동작을 떠올리려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의 세실은 많이 어렸다. 너무 오래전의 기억이다.

그럼에도 세실은 그림자 폭풍을 연습했다.

어떻게든 머릿속 기억을 더듬어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

“아하하하! 또 이겼다!”

환호하는 루나를 보며 나는 후우, 한숨을 뱉었다. 오늘도 우리는 루나와 케일라 팀에게 패배했다.

순수 검술 대결이기에 루나의 존재감은 컸다. 그러나 나는 이전만큼 루나와의 격차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내가 성장했다는 의미겠지.

하지만 역시 패배는 속이 쓰린 법.

“야, 트리스탄. 너 진짜 똑바로 안 하냐?”

“무슨 소리야! 나 열심히 했어!”

트리스탄이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안 되겠다. 너 대신 케일라와 한 팀이 되는 편이 낫겠어.”

“그게 무슨······!”

사실 그저 화풀이로 하는 말이다. 트리스탄은 케일라보다 강하니까.

트리스탄이 씩씩대며 나를 노려봤다. 내가 케일라와 한 팀이 되면 트리스탄은 루나와 팀을 이루게 되니, 어찌 보면 녀석에게는 반길만한 일인데도.

하지만 나는 트리스탄의 성정을 안다.

“한 번 더 해! 이번에는 우리가 이길 거야!”

트리스탄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발전시키는 인물이다. 그래서 섣불리 루나에게 마음을 전하기보다는, 자신을 갈고닦아 루나가 호감을 느낄만한 사내로 거듭나려는 쪽을 택했다.

그 방법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루나는 자신보다 강한 사내에게 더욱 매력을 느끼니까. 소설 속의 카인에게 그랬듯이.

‘그건 그렇고 카인 녀석은 왜 마법사가 되려는 거지?’

카인이 엘리샤에게 마법을 배우겠다고 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소설에서 카인은 마법을 배우지 않는다. 그런데 이 세계의 카인은 지금껏 지속하던 검술 훈련을 내팽개치고 마법 훈련에만 집중하고 있다.

설마 내가 먼저 오러를 발현했기 때문에? 아니, 그럴 리 없다. 이런 상황에 카인은 도리어 호승심을 불태울 녀석이다.

“흐응? 너희들이 이긴다고오? 그게 가능할까 트리스타안? 으으응?”

루나가 쿠훌린 같은 표정을 지으며 트리스탄을 놀렸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나도 울컥해 검을 쥐었다.

“가자! 트리스탄!”

***

“감지. 흡수. 정제. 발현.”

엘리샤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마법 발현을 위한 4단계.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야. 알지?”

그녀는 카인과 함께 바람 부는 들판에 서 있었다.

“즉 마법이란, 이 세계에 떠도는 마력을 ‘감지’하고 ‘흡수’한 뒤 ‘정제’를 거쳐 ‘발현’한 결과물이라는 것.”

엘리샤는 지난 수일간 카인에게 마법 이론을 꼼꼼히 가르쳤다. 마법은 실습에 앞서 체계적인 이론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칫 몸 안에서 마력이 역류하기라도 하면 재앙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니까.

엘리샤는 카인이 왜 마법을 배우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카인은 소서러다. 엘리샤는 소서러가 얼마나 강력하고 위험한 존재인지 안다. 그녀는 모르가나와 흑기사의 힘을 직접 경험했다.

물론 엘리샤는 카인이 소서러의 힘을 발현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루나를 통해 들은 것만으로도 짐작이 가능했다. 카인은 강하다. 굳이 이제 와 마법을 배울 필요가 없을 만큼.

‘엘리샤. 듣자 하니 요즘 카인에게 마법을 가르치고 있다지?’

‘아. 아하하······.’

‘무슨 바람이라도 분 게냐. 네가 스승 역할을 자처하다니. 게다가 그 아이는.’

며칠 전 마주친 스카자하의 얼굴에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당연한 일이다. 엘리샤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질색하는 인간이었고, 또 이 시기에는 대개 라이칸과 함께 대륙에 있었으니까.

그러나 카인이 엘리샤를 강제로 섬으로 데려왔다.

‘엘리샤. 당신이 해줘야 할 일이 있어요.’

그녀에게 마법을 배우기 위해.

“마력을 감지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음. 그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마법사마다 제각기 다르기도 하고. 내 방법을 가르쳐주자면, 두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며 공기 중의 마력을 느끼려 노력하는 거야.”

카인이 눈을 감았다.

그의 심호흡 소리가 차분히 공기를 울렸다.

“네 주위의 마력이 물결처럼 흐르는 이미지를 상상하면 도움이 될 거야. 나는 그렇게 처음 마력을 감지했었거든. 만약 네가 데미안이나 루나처럼 오러를 발현할 수 있다면 한결 수월할 텐데. 기사의 오러와 마법사의 마법은 본질적으로 같은 힘이니까. 하지만 너는 소서러잖아? 나도 소서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뭔가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을까?”

마력은 짓궂은 생명체 같아서, 간혹 마력을 감지한 이에게 장난치듯 반응한다.

그 현상은 마력의 잔잔한 파동으로 드러난다.

지금 카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처럼.

‘이렇게 빨리?’

보통은 마력을 감지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린다.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엘리샤도 한 달이 다 되어서야 일말의 마력을 감지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런데 카인은 실습에 들어가자마자 마력을 감지했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흡수하고 있다고?’

카인은 마력을 감지하는 것을 넘어, 체내로 흡수하고 있었다.

엘리샤는 서둘러 카인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흡수한 마력을 심장 주변으로 끌어와. 그러면서 느끼는 거야. 네 심장을 타고 흐르는 혈액의 움직임을. 마법을 정제하고 발현하는 과정은 그와 상당히 유사하거든.”

흡수된 마력이 카인의 심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래. 그거야. 흡수한 마력이 달아나지 않도록 꽉 붙잡아. 그러면서 심장 바깥에 ‘마력 회로’라는 이름의 새로운 혈관 더미를 건설하는 거야. 그 안에서 더욱 응축되고 정제된 순도 높은 마력을 회로의 심장부에 새겨넣으면 돼. 천천히.”

엘리샤는 거푸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카인은 믿어지지 않는 습득력을 보이며 엘리샤의 말을 즉각 실행하고 있었으니까.

‘이것이 소서러의 잠재력인가? 아니면 빌어먹을 마법 천재라도 되는 거야?’

카인은 이제 감지와 흡수를 넘어, 작지만 마력 회로까지 구축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낼 셈이 아닌 듯했다.

희미하게 한쪽 눈을 뜬 카인이 엘리샤를 응시했다.

‘발현까지 하겠다고?’

말도 안 된다.

그러나 엘리샤는 어느새 주문 영창에 관해 설명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주문 영창은 마법을 발현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야. 이론 수업 때 설명한 적 있지? 그것에는 단순히 주문을 외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어. 정제된 마력을 의도된 마법의 형태로 변환하는······.”

카인이 속삭이듯 주문을 읊었다. 이어 화륵! 그의 손에 붉은빛이 서렸다. 엘리샤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났다.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강해질까.

정말로 이 녀석에게 마법을 가르쳐도 되는 걸까.

엘리샤는 두려워졌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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