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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8

118화 복수자들

승전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렸다.

비록 마검사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하진 못했지만, 현재 일본 열도는 침울한 분위기였다.

국가를 대표하는 S급 헌터들이 넷이나 죽었다. A급 헌터들은 백 명이 넘게 죽었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패배를 잊기 위해선 승리를 보다 포장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그를 상징할 인물은 있다. 바로 레온이다.

-킹갓엠페러 레온 폐하 만세 흑흑!!

-인류의 미래는 레온 폐하에게 달렸다!

일본 정부도, 전일협도 뼈저린 손실과 그 손실에도 불구하고 마검을 쓰러뜨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덮고 싶었다.

하물며 마검 공략전에서 유의미한 활약을 한 게 만신전 뿐이라는 것도 불편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더욱 이번 공략의 결과를 ‘승전’으로 포장해야 했다.

“와아~”

연회장의 화려한 광경에 감탄하는 하리.

호텔 외부에 마련된 연회장은 일본식 정원은 길쭉한 산책로에 정원수와 연못으로 꾸며져 시원한 식재를 자랑했다.

평소에는 웨딩 촬영장으로도 자주 쓰인다는 일본식 석등길을 지나니 각 길드의 간부들만 모인 자리치곤 대단히 많은 요리들이 좌우로 촤악 늘여져 있다.

전통 일본식 정원인가 싶더니 이런 부분에서는 또 서양식 연찬장을 섞어 외국의 손님들을 배려했다는 느낌이다.

연회장 한켠에는 일본 전통악기인 샤미센을 연주하는 악사들이 느긋한 음악을 연주하고 급사 차림의 직원들이 손님들의 편의를 봐주는 호화로운 연찬장.

“와~ 누나, 나 이런 거 처음 봐.”

“나두. 아, 술은 저만 주세요.”

하리는 샴페인을 권하는 급사에게서 잔 하나만 받았다.

“잉… 누나, 나도 술 마시고 싶어.”

“어허! 안 돼. 아직 어린애가 무슨 술이야?”

“아니 이제 몇 달만 지나면 성인이거든?”

수호가 칭얼거렸지만, 하리는 까르륵 비웃으면서 샴페인을 홀짝거렸다.

수호는 일본 정부에서 제공한 드레스를 입고 한껏 연회를 즐기는 하리를 퉁명스러운 시선으로 응시했다.

“근데 누나. 누나는 협회 직원 아니야? 오강혁 협회장님하고 저쪽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뜨끔!

하리의 시선이 연회장의 중심을 향한다. 그곳에는 후지사와 총리와 오강혁 협회장이 덕담을 나누고 있다.

오강혁 협회장의 뒤로는 김진수 과장을 비롯해 협회 직원들이 정장 차림으로 대기하고 있었고.

엄밀히 말하면 만신전 길드원이 아닌 협회 직원 한하리는 저쪽에 속해 있어야 한다는 소리.

“수호야.”

“응?”

“누나가 살면서… 언제 이렇게 호강해보겠니?”

조용히 하고 있어. 하리의 금빛 눈동자에서 불꽃이 이글거렸다.

“뭠까, 선배?”

그때, 재혁이 까불거리며 끼어들었다. 그도 꽤 멋들어진 정장 차림이다.

“재혁 후배님도 축제 즐기고 있어?”

“저야 뭐. 만신전 소속이면 VIP 대우를 해주고 있어서 편함다.”

호텔에 정장과 드레스에 연회까지.

마검전 이후 만신전 길드는 거의 국빈급 대접을 받고 있다. 말단 병사 한 명 한 명까지도 말이다.

“바다 위를 뛰어가서 전투를 벌인 게 인상적이긴 했나 봄다. 하리 선배도 꽤 인터뷰 요청 들어오고 있지 않슴까?”

“완전! 나 협회 직원이니까 그런 데 막 불린단 말이지.”

일본 열도에서 만신전은 대단한 핫이슈다.

레온의 신화적인 전투를 담은 영상은 조회수가 3일 만에 1억 회를 넘었다.

듣기로는 하이라이트만 쪼갠 5분짜리 영상들 하나하나에 백억 대 광고수익을 약속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한빛궁을 그대로 흡수한 만신전은 안 그래도 빠른 신도 육성속도를 보장하고 있었는데, 이번 전투를 기회로 엄청난 관심이 쏠렸다.

그런 만신전에서 레온이 엄청난 관심을 받는 건 당연지사.

“폐하는 일일이 인터뷰에 응해주는 타입도 아니니까.”

“베아트리체 여왕님도 바쁘신 모양이야.”

일본에 와 있는 만신전 넘버 원과 넘버 투에게 접근하기란 요원한 일.

일본의 각 업체들은 자연스레 만신전 소속 인물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하리 헌터님! 길드원들을 바다 위에 걷게 한 성법이 한하리 헌터님이 하신 게 맞습니까?

-성법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과 불을 동시에 사용하시던데,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겁니까!

-일본에서 헌터 활동을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으… 조금 무서웠어. 나 몰래카메라도 당했다? 그 무슨 백 명이 갑자기 우르르 몰려드는 그거.”

“고위 헌터는 반쯤 연예인 취급이라지만… 뭐하는 방송임까?”

조직의 대간부들이 두문불출하니 자연스레 밑에 사람들이 표적이 된 셈이다. 재혁도 요 며칠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과 고액의 스카웃 제의까지.

“두 사람 다 고생이 많네. 성법 사용자들한테는 다들 관심이 많으니까.”

그럴 수밖에.

부대 단위로 바다를 달리게 하며 파도를 일으켜 적을 휩쓸고, 마른하늘에 벼락을 떨어뜨리는 존재들.

고유스킬이 마법과도 같은 현상을 일으키는 일이야 꽤 있었지만, 성법은 그것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힘이었다.

“그런데 천소연 고 기집애는 어디 있데? 개도 성법 사용자라서 제법 주목받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폐하도 안 보이시네.”

세 사람은 두 사람을 찾아 시선을 두리번거렸지만, 연회장 어디에도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 * * *

소연은 연회장의 2층 테라스에 저벅저벅 걸어왔다.

곧 성인이라지만, 오프 숄더에 옆트임으로 다리 라인이 돋보이는 파티 드레스는 부끄러울 법도 한데, 옛날부터 가문의 파티에 참여했던 그녀에겐 익숙한 차림이다.

-천소연 양! 신검 길드의 차기 길드장이신데, 어째서 만신전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겁니까?

꽤 끈덕지게 돌발 인터뷰를 요청하던 일본인 기자.

그래, 그녀는 언젠가 돌아갈 생각이었다. 만신전에 남은 건 어디까지나 ‘성법’을 손에 넣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런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신에게 힘을 내어주는 신들은 없었다. 오직 한 신만 제외하고.

「나만은 네 발칙한 거래에 응하지. 너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나만은 힘을 준다. 그 행운을 가벼이 여기지 마라.」

영혼을 걸었다.

복수를 위해.

엄마의, 길드 아저씨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선 그래야만 했다.

최후의 마무리까지 자신의 손으로 이루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상대조차 되지 않았어.’

성법을 손에 넣고, 그 전능감에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강해졌겠지.

하지만 충분치 못했을 뿐이다.

「너는─그─기사들─이─아니다──너는─그─오크─가─아니다.」

너는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은 너무나 사무친 말이었다.

복수의 대상으로부터 무시당한 그 순간이 어찌 사무치지 않을까.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래,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귀에 속삭이는 어둠. 그 말대로다.

레온은 이 공략을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다. 성배기사 제레아의 성물 호송단 게이트 때처럼 스스로 게이트를 열어 추적할 생각이다.

그녀에겐 아직 기회가 남은 것이다.

[허나, 너 따위에겐 과분한 원수로구나. 나름의 재능은 있으나 녀석에 비하면 하찮다.]

“폐하… 말씀이신가요?”

벤타시스는 자신의 축복을 받은 존재가 악마대공에 미치지 못할 것임을 안다. 당연했다.

악마대공은 악마군주의 바로 아랫 서열의 2인자. 본래라면 군주의 자리를 걸고 경쟁하던 가장 강력한 악마들이다.

벤타시스조차 오랜 역사 동안 악마대공에 대적할 수 있는 강자들은 몇 보지 못했다.

성배기사 중에선 전쟁의 성배기사 정도겠지. 레온이 너무나 규격 외인 것일 뿐.

[허나, 네게 방법이 있다. 나의 아이가 실제로도 성공했지. 녀석은 나태의 악마대공을 쓰러뜨렸으니 말이다.]

“그게… 정말인가요?”

어둠과 복수의 신. 그의 축복을 받고 악마대공을 쓰러뜨린 자가 있었단 말인가.

[원한다면 그 힘을 건네주지.]

“이미 저는 영혼을 대가로 걸었습니다. 더는 드릴 게…….”

[악마 놈들을 죽이는 거라면 대가 따윈 필요 없다. 영혼은 힘을 받는 조건에 불과해.]

천소연은 벤타시스의 유혹에 이끌렸다. 아니, 이건 유혹 같은 게 아니다.

자신과 벤타시스는 같은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니까.

“그렇다면…….”

“그쯤 해두어라. 돌아오지 못할 강은 건너는 게 아니다.”

“……!”

등을 돌리니 턱시도 차림의 레온이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폐하…….”

일어서 허리를 숙이는 소연. 레온이 말했다.

“정도(正道)를 벗어난 힘은 대가가 비싼 법이다.”

“……복수를 포기하라는 건가요?”

소연은 자신을 만류하는 레온에게 반발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하려는 말은 결국 할아버지나 다른 어른들처럼 진부한 고견일 것이 뻔했기에.

“복수의 허망함 따위나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런 말을 하시려는 거라면──”

“본왕이 누구라 생각하느냐. 본왕이야말로 복수신이 으뜸으로 삼는 복수자노라.”

[크흐흐흐… 그렇기야 하지.]

벤타시스가 이에 동조했다. 그러더니 즐겁다는 듯이 무용담을 늘어뜨리기 시작한다.

[계집아. 저 사내를 본받거라. 백성을, 전우를, 나라를, 세계를 잃고 누구보다도 처절한 복수를 맹세한 자니라.]

그것은 벤타시스조차 광오하다가 느낄 정도로 위대한 복수였다.

[저 사내는 말이다. 자신이 잃은 것에 복수하기 위해 홀로 200년을 싸워온 존재다. 불가능을 상대로 승리한 위대한 복수자다.]

세 명의 악마군주와 두 명의 대공을 소멸시켰으며, 사십이 넘는 대악마의 목을 쳤다.

그 과정에서 끝내 사냥한 악마가 수백 만.

행성의 끝에서부터 끝을 횡단하며 단 한 마리의 악마도 남김없이 모조리 소멸시켰다.

복수의 신인 벤타시스조차 황홀할 정도로 위대한 복수의 여정이었다.

그런 그가 복수를 부정할까? 아니다.

“짐은 복수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긍정하지. 짐은 복수를 위해 그토록 오랜 세월을 싸워왔으니까.”

“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요?”

“겸사겸사다. 공통된 목표였을 뿐이지.”

“그럼 어째서…….”

자신의 복수를 만류하는 것처럼 구는 것인가.

“복수는 달콤한 것이다. 허나, 차갑게 이뤄내야 하는 것이지. 복수를 위해 스스로를 포기한다면 그건 온전한 복수가 아니다.”

레온은 소연의 등 뒤 얼굴 없는 어둠의 신을 보며 말했다.

“필멸자인 아해들은 쉽게 힘에 유혹되고 스스로를 버리기 일쑤요. 당신께서는 아해의 파멸을 조건으로 내놓고 있소.”

[미학의 차이로구나. 나는 모든 복수를 긍정한다. 저 아해에겐 복수를 이룰 힘이 부족하니 응당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지.]

“이 아해에겐 뒤가 있소. 미래가 있지. 그 눈부심을 앗아갈 생각인가? ‘그 아이’ 때처럼?”

그 아이. 천소연은 문득 비슷한 대상을 벤타시스에게 들었던 것 같았다. 별철무구에 벤타시스가 축복할 때, 레온이 개입했을 때──

「’네 딸’을 잃었을 때처럼?」

레온의 딸. 그녀가 벤타시스와 관련이 있는 걸까?

[드라고니아 대공은 내게서 걸맞은 힘을 빌렸다. 그리고 염원을 이뤘지.]

“결국 대가도 받아내지 못했지 않았나.”

[그래, 이해할 수 없는 사고가 벌어졌으니까. 이제는 알 것 같다만.]

“그 계약은 이미 끝났소. 짐이 대가를 치렀으니까.”

[나는 네 공로를 부정할 생각이 없다. 가장 위대한 복수자야. 허나, 이것과 저것은 다른 일이다.]

“…….”

레온과 벤타시스 사이에 잠시 침묵이 있었다. 결국 항복한 건 벤타시스 쪽이었다. 그는 사자심왕의 후의를 잃는 것보다 타협하는 쪽을 택했다.

[대안을 말해라. 어둠과 복수는 ‘레온’의 말만큼은 귀를 기울일 것이다.]

“짐이 이 아이의 복수를 도울 것이오.”

“폐하…!”

천소연의 반발에 레온이 다그쳤다.

“너에게 직접 복수의 기회를 마련할 힘은 얻을 수 있겠지. 어둠과 복수의 신은 능히 그럴 만한 힘이 있다. 허나, 그것은 끝내 ‘네 영혼’을 소멸시킬 것이다.”

“그런 것쯤이야──!”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그리 말하려던 천소연은 레온의 분노한 시선을 마주하고 다물 수밖에 없었다.

“영혼이 소멸되는 것을 가벼이 여기지 마라. 신을 배반한 사교도조차 영혼만큼은 보존해준다. 마땅한 벌을 받고 정화의 기회를 가진다.”

“반백 년조차 살지 않은 어린 것아. 네 혈기에 눈이 멀어 치러야 할 대가를 과소평가하지 마라.”

“너는 신들의 만찬장에 들어서지도 못할 것이며, 영혼이 찢기는 고통 속에 죄 사함을 받을 기회도 없을 것이다. 어둠과 복수의 복수자로서 남겨지지도 않을 것이다.”

“네가 지금 치르려 하는 대가는 네 영혼을 태우는 것이다. 어찌 그것을 모르느냐.”

레온은 천소연에게서 잃어버린 딸을 겹치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회한 같은 것이 아닌 순수한 만류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어린 것아. 이 어린 것아. 복수를 입에 담으려거든 먼저 머리를 식혀라.”

“힘이 부족함을 느꼈거든 채울 것을 찾되 자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

“복수의 끝에서는 웃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레온은 관용과 자비 또는 망각을 논하지 않았다.

잘 사는 것이 진정한 복수라는 말을 하기엔 그는 너무나 많은 복수를 행한 자다. 그리고──

“진정 복수하고 싶은 자가 누구더냐.”

“그거야 당연히…!”

“네 어미와 친구들을 죽인 아비더냐? 아니면… ‘마검’의 선택을 받았던 자신이냐.”

“……!”

천소연의 반응에 레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빌어먹을 정도로 제 딸과 비슷한 아이지 않은가.

증오할 대상을 찾고, 아비를 원망하며 결국에는 자신을 탓하던──

「당신 때문입니다, 폐하. 당신과 제가… 죽인 겁니다.」

부녀는 너무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끝내 실패한 아버지만이 남았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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