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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8

118화 성년의 밤 (3)

118화 성년의 밤 (3)

“디네베?”

한밤중의 방문자는 디네베였다.

왜일까, 흔들리는 원피스 자락을 보자마자 나는 세실이라고 생각했다.

디네베가 내 침대를 눈으로 훑었다. 그러고는 살포시 미소 지었다. 예전에도 성숙한 미소였지만 어른처럼 성장한 지금은 더욱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흐응. 침대에서 날 기다린 거니?”

디네베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뭘 그리 놀라니? 얼굴까지 빨개져서는.”

“그건 술을 마셔서.”

“세실이 아니라서 실망했니?”

어느새 디네베는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말해보렴 데미안. 세실을 기다렸니?”

나는 훅,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화제를 돌릴 필요가 있다.

“너는 지금 신녀인 거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는지 디네베가 피이,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를 구해줬다는 거 아니?”

디네베가 나비처럼 가볍게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나를 구해줬다고?”

“몰랐니? 지금 문밖에 누가 있는지.”

미니맵을 확인했다. 디네베의 말대로 방문 밖에는 우호적 표식이 있었다.

나는 은월섬에서는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미니맵과 통찰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을 엿본다는 행위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세실이 있어. 그것도 아주 예쁘게 단장한.”

언제 다가왔는지 디네베가 내 귀에 속삭였다.

“그래서 걸쇠를 잠근 거야. 그러지 않으면 저 아이가 너를 잡아먹을 것 같았거든.”

“뭐?”

당황한 내 얼굴을 보며 디네베가 웃었다.

“세실은 술을 마시면 제법 용기 있는 아이가 되더구나. 더욱이 세실은 과음했고, 무척이나 본능에 충실한 상태지. 네가 지금 저 아이를 만나면 혼이 빠지도록 당할 거란다. 원래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가 돌변하면 가장 무서운 법이니. 아니지. 너도 건강한 사내이니 도리어 반길만한 상황인지도 모르겠구나.”

디네베의 어투가 바뀌었다.

도대체 이 아이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게다가 세실이 디네베의 목소리를 들을까 봐 조바심이 났다.

“염려 말거라. 너와 나의 목소리는 밖으로 전해지지 않을 것이니.”

어찌 됐든 하나는 확실했다.

디네베는 지금 신녀다.

“그렇게 걱정된다면 문을 열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제법 흥미로운 구경거리도 있을 듯하니 말이다.”

사뿐사뿐 문으로 다가간 디네베가 엄지와 검지로 걸쇠를 쥐었다.

그러고는 다른 손으로 원피스의 한쪽 어깨끈을 내리며 눈웃음을 흘렸다.

“지금의 내 모습에 세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지 않느냐.”

나는 방문으로 달려가 덥석, 디네베의 손을 잡았다.

내가 생각해도 엄청난 속도였다. 쿠훌린의 은월송환도 지금의 나보다 빠르지 않을 거다.

“흐응. 이런 저돌적인 면. 싫지 않느니라.”

“장난은 그만둬. 디네베.”

디네베가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봤다.

그 얼굴이 평소의 디네베와 같아서 나는 조금 움찔했다.

“······알겠느니라. 그러니 내게 그런 무서운 표정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내 손에서 빠져나간 디네베가 방 안쪽으로 걸어갔다.

사르륵 사륵, 그녀의 원피스 자락이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흔들렸다.

“데미안. 너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단다.”

침대에 걸터앉은 디네베가 나를 돌아봤다.

나는 걸쇠가 단단히 잠긴 것을 확인했다. 미니맵 속의 세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세실을 밖에 세워두는 것이 신경 쓰였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 무작정 방으로 들일 수도 없었다.

작게 한숨을 쉰 나는 의자를 끌어와 디네베 앞에 마주 앉았다.

“할 이야기가 뭐지?”

“역시 느끼지 못한 것이로구나. 균열이 일었던 것을.”

“균열이라고?”

나는 놀랐다.

디네베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래. 네가 아는 그 균열 말이다.”

언젠가 디네베가 했던 이야기가 머리를 스쳤다.

‘카인이 시간을 되돌릴 때마다 이 세계에는 어쩔 수 없는 비틀림이 생겨. 아마도 이 세계가 덧씌워진 것과 연관이 있겠지. 그렇게 카인의 회귀가 반복될 때마다 비틀림은 중첩되고, 종래에는 균열이 일고 마는 거야.’

“카인이 회귀했다는 거야? 그것도 균열이 일 정도로 반복해서?”

최근 카인은 나와 함께했었다. 물론 늘 함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만약 카인이 회귀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해답을 찾지 못했던 의문 하나가 해결된다.

‘경은 탈주자를 확보하는 데 전념하시오. 그 안에 내 아우를 죽인 녀석이 있겠지.’

‘그에 대해 들은 것이 있습니다. 조금 전에 잡힌 탈주자들의 말에 따르면 66번이 주모자라고 합니다.’

‘66번?’

3회차의 광산의 숲에서, 나는 카인을 죽이려는 에티엔을 보자마자 보급로로 뛰어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카인은 죽으면 회귀의 분기점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카인과 동기화하지 않은 나는 어떻게 될까. 카인이 부활한 세계선과 지금의 세계선이 분리되는 걸까? 혹 그렇다면 카인이 죽어 없어진 지금의 세계는 더 이상 세계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디네베가 말한 균열이 정말로 카인의 반복된 회귀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면, 나의 우려는 기우(杞憂)였던 것이 된다.

“확실하지는 않단다. 나는 아직 힘을 회복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렇게 보름달이 떠오른 밤에야 너를 찾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균열이 발생한 원인이 카인, 그 아이에게 있을 가능성은 다른 무엇보다도 크겠지.”

디네베의 눈빛이 깊어졌다.

“카인은 달라졌더구나. 나는 더 이상 그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말을 듣자 나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카인에게는 이제 통찰 스킬이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힘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나는 조금 의아했다.

지금의 디네베는 은월병이 완치됐다.

게다가.

‘디네베는 신체(神體)로서 터무니없이 높은 잠재력을 지녔어. 그래서 루나프레나의 운명을 가로챌 수 있었지. 하지만 이 아이의 몸은 신체가 되기에는 너무도 미성숙했고, 그래서 모순되게도 신녀의 소임을 할 수 없게 된 거야.’

디네베는 이미 어른처럼 성장했다.

누가 봐도 미성숙한 몸이 아니다.

그런데 왜.

“이전의 신녀들은 모두 어느 정도 성숙한 육체로 신력을 받아들였고, 은월병을 앓다가 죽었다. 하지만 디네베는 미성숙한 육체로 신녀의 힘을 받아들였지. 그것도 본래는 루나프레나에게 전해졌어야 할 힘을. 그래서 누구보다 빼어난 잠재력을 지녔지만 불완전한 신체(神體)가 되고 말았다. 거기에 더해 반쪽짜리 신녀의 몸으로 은월병을 앓았지. 물론 데미안, 네 덕분에 완치되었지만 말이다.”

말뜻을 알 것 같았다.

디네베에게 닥친 그 전례 없는 변수들이 신력 회복에 어떤 방해 작용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설마 디네베는 영영 완전한 신녀가 되지 못하는 건가?

“그때를 떠올리니 조금 부끄러워지는구나. 나의 나신을 처음으로 사내에게 내보인 것이니 말이다. 그것도 아주 낱낱이.”

디네베가 가늘게 눈을 좁히며 웃었다.

“어떠했느냐. 나의 몸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왜 그때의 기억이 흐릿한 걸까.

“이 아이가 원했느니라.”

······뭐?

“그때 디네베는 데미안, 네가 자신의 몸을 치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내게 도움을 청했고, 너의 기억 일부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던 게지. 자신도 모르는 새 연모의 감정을 품고 있던 이에게 알몸을 내보이는 것은.”

디네베의 두 볼에 홍조가 깃들었다.

“물론 너와 달리 이 아이는 그때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지만 말이다. 또한 나 역시도.”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신녀인 것 같기도, 디네베인 것 같기도 했다.

“디네베의 몸이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자란 것에도 이유가 있단다. 비록 반쪽짜리이기는 하지만 이 아이의 몸에는 신력이 잠재되어 있고, 또한 그 신력은 자신의 힘을 받아들인 미성숙한 육체를 보호할 필요가 있었지. 그래서 은월병이 발하는 음의 마력을 이용했다. 음의 마력은 달의 힘. 달의 힘은 곧 세계수의 힘이니까. 너도 알다시피 세계수의 혼돈에는 생명, 치유와 더불어 ‘성장’의 힘이 담겨있다. 그 힘이 디네베의 발육을 촉진한 거란다. 물론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말이다.”

“부작용이라면 어떤.”

“음의 마력이 지닌 부작용이라면 뻔하지 않느냐. 본래 이 세계의 모든 생명은 음양의 조화를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디네베는 이제 더는 그렇지 않게 되었다. 음의 힘이 너무도 강해진 거야. 그래. 네가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이 아이는 지나치게 순수한 여성의 육체를 갖게 되었다.”

디네베가 유혹하는 듯한 눈으로 나를 흘겨봤다.

“어때. 마음에 드니? 데미안.”

나는 꿀꺽, 침만 삼켰다.

다시 말해 이런 건가?

남성 호르몬이 전혀 없는, 여성 호르몬 백 퍼센트의 여자가 되었다는.

“이런 몸을 지닌 여인은 대륙 그 어디를 찾아봐도 없을걸? 게다가 디네베의 신체 나이는 너와 같은 16살이야.”

디네베가 미소 지으며 내게 얼굴을 가져왔다.

달빛이 내려앉으며 그녀의 눈동자를 아름다운 은청빛으로 물들였다.

“신비로운 일이로구나. 아무래도 나의 일부가 이 아이의 내면과 동화되어 버린 것 같으니 말이다.”

***

세실은 제 방에서 울고 있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 기껏 용기를 내었는데. 리아논이 도와주었는데.

.

.

.

약 반 시간 전, 리아논의 방을 나선 세실은 곧장 3층으로 올라왔다.

그러나 데미안의 방문 앞에서 주저했다.

데미안은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무슨 말을 할까. 혹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자, 용기를 내는 거야. 세실.’

리아논은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녀의 말을 믿고 싶었다.

그러나 터질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때, 세실은 자신의 방에 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성년이 된 넷이서만 밤에 몰래 마시자며 루나가 가져다 둔 술병.

‘아저씨가 엄마 몰래 애지중지 아껴둔 술이야! 기대되지 않니? 분명 엄청나게 맛있을 거라고!’

루나가 잠들어 약속은 깨졌다. 그렇다면.

세실은 호다닥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술병을 들어 입술에 대고 꿀꺽꿀꺽 삼켰다. 맛이 다르다. 게다가 목이 타는 듯이 뜨겁다. 왜지? 아까까지 마셨던 술은 이렇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세실은 꾹 참고 마셨다. 세실은 술의 효능을 몸소 체험했었다. 최대한 많이 마시는 거야. 그러면 분명 용기가 생길 거야. 데미안을 마주할 수 있는.

‘몸이······ 뜨거워······.’

데미안의 방으로 걸어가며 세실은 생각했다. 이상해. 두 다리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바닥이 막 움직여. 춤을 추는 것 같아.

그러던 중 세실은 흔들리는 바닥이 익숙한 형태를 그리는 것을 보았다. 데미안의 얼굴. 돌연 마음속에서 걷잡을 수 없는 욕구가 치밀었다. 데미안이 보고 싶어. 그의 품에 안기고 싶어. 만지고 싶어. 지금 당장.

그리고 세실은 보았다.

눈부시게 흰 원피스를 입은 디네베가 데미안의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어 미끄러지듯 열린 문틈으로 사라졌다. 그 직전, 세실은 디네베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미소 짓는 것을 봤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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