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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8

117화.

다음날.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짐을 찾아 입국장으로 나가자 이철진 과장이 보낸 경호원들이 대기 중이었다.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택규는 입국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오면 보통 취재 같은 거 하러 오지 않나?”

“오늘 귀국하는지 몰랐나 보지.”

우리가 로날드를 만난 사실은 이미 CNN을 통해 알려졌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별 관심이 없었다.

누가 보면 언론사들이 정권의 압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기사를 안 내보내는 줄 알겠네.

뭐, 내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다.

우리는 경호원들과 함께 입국장을 빠져나갔다. 밖에는 S클래스 마이바흐가 대기 중이었다.

“어! 이거 누나 찬데.”

현주 누나가 기사를 보내준 건가?

차에 올라타자 운전석에 앉아있는 미녀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여행은 어땠어요?”

난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엘리가 여기 어쩐 일이에요?”

“마중 나왔어요.”

“누나가 보내준 거예요?”

엘리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아니요. 제시카 몰래 빠져나왔어요.”

“…….”

그래도 되는 거야?

난 뒷자리에서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다음 안전벨트를 맸다.

엘리는 차를 출발시켰다. 홍콩과는 운전석이 반대임에도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진 모습이다.

운전하는 모습에서 생기가 넘쳤다.

“로날드는 잘 만났어요?”

“예. 잠깐이지만.”

“미국 대통령을 직접 만나본 소감이 어때요?”

전에 만났을 때는 후보였으니, 진짜 미국 대통령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글쎄요. 좀 신기하네요.”

“CNN에서는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 될 거라고 평가하던데.”

“지켜보면 알겠죠.”

예지는 로날드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까지만 알려주었다. 그 뒤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

보통 집권초기에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강력하게 정책을 밀고 나간다. 그런데 로날드는 집권하기도 전부터 지지율이30퍼센트로 폭락했다. 이는 표를 준 사람들조차도 돌아섰다는 것을 의미했다.

더 큰 문제는 상하원 모두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소야대의 상황인 만큼 앞으로의 국정운영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만약 의회의 협조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그가 내건 각종 공약들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때문에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불안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누나는 회사에 있죠?”

“그럼요.”

“다들 지사장실에 모이라고 해야겠네요.”

내 말에 엘리는 눈을 반짝 빛냈다.

“무슨 일인데요? 재밌는 일이에요?”

“도착해서 얘기할게요.”

* * *

지사장실로 올라가자, 미리 얘기해 놓은 대로 현주 누나와 함께 상엽 선배, 헨리가 모여 있었다.

현주 누나는 하던 일을 멈추며, 엘리를 쏘아보았다.

“내 차는 언제 끌고 나간 거야?”

엘리는 재빨리 내 뒤로 숨으며 변명했다.

“전에 필요할 때 써도 된다고 했잖아요.”

현주 누나는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물었다.

“라이터가…….”

헨리는 재빨리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주었다.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상엽 선배가 물었다.

“로날드는 잘 만나고 왔어?”

“예.”

“무슨 일인데, 모이라고 한 거야?”

난 앉자마자 얘기를 꺼냈다.

“취임식이 끝난 뒤 임진용 부회장이 찾아왔어요.”

내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서성그룹 부회장이? 어째서?”

“저한테 도와달라던데요.”

난 그의 제안을 정리해서 말해주었다.

상엽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서성SB 주식을 매수하라고 했구나.”

현주 누나는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배터리사업에 투자하고 싶다면, 다른 방법도 많을 텐데.”

“배터리뿐 아니라 전장사업 전반에 걸쳐 협력할 생각이에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잠시 생각하던 현주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생각이야. 카로스는 소프트웨어를 확보하고 있고, 서성전자는 하드웨어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 정도로 괜찮은 파트너를 찾기도 쉽지 않겠지. 그런데 단지 협력 때문이야?”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서성SB가 은성SB가 되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

서성SB를 갖게 되면 은성차는 본격적으로 전기차 개발과 양산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하지만 실패하면 그 만큼 시간을 잃게 되겠지.

“골든게이트가 얼마가 가지고 있나요?”

“기다려 봐. 자료 좀 찾아볼게.”

현주 누나는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렸다.

“1.8퍼센트. 연결법인이 가지고 있는 것까지 포함하면 2.2퍼센트.”

골든게이트가 우리 편을 든다고 하면, 1.5퍼센트만 사들여도 상대보다 많은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유통주식수는 얼마나 될까요?”

“많아야 20퍼센트 수준일 걸.”

연소현 관장, 임승용 사장, 국민연금이 가진 지분이 26.6퍼센트. 서성전자, 자사주, 골든게이트 지분이 25.2퍼센트.

이것만 해도 50퍼센트가 넘는다. 나머지는 기관, 외국인, 소액주주들이 나눠서 가지고 있다. 이중 유통물량은 절반도 안 될 것이다.

그 중 다시 절반만 매수하려 해도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치게 될 것이다.

엘리가 말했다.

“어느 한쪽이 과반의 지분을 확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네요.”

현주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더 주주들의 표심을 끄느냐가 관건이겠지.”

“임진용과 임승용 중 누가 더 유리할까요?”

“글쎄. 소형배터리 분야만 생각한다면 임진용 쪽이 낫겠지. 서성SB는 매출 대부분을 서성전자에 의존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전기차용 대형배터리를 생각한다면 임승용이 유리해. 임승용이 된다고 해서 전자의 관계가 끊기는 것도 아니잖아.”

상엽 선배도 말했다.

“임승용이 은성차와의 협력카드를 들고 나온다면, 정부에서도 대놓고 밀어줄만 하지. 두 대기업이 협력해서 미래차 개발에 나선다는데 국민연금이 찬성 안 할 이유가 없잖아.”

서성SB가 은성차와 배터리 독점납품 계약을 체결하는 건 주가 상승요인이다. 당연히 주주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서성SB에 이득이 될지는 모를 일이다.

난 임진용 부회장의 말을 떠올렸다. 돈 앞에서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고 했지?

은성차는 과연 임승용을 얼마나 믿고 있을까?

연소현 관장과 임승용 사장의 지분을 합쳐봐야 10.5퍼센트다. 만약 자사주를 받게 되면 은성차는 6.3퍼센트를 갖게 되고, 이후 국민연금이 매각할 지분을 사들이면 15퍼센트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이야 임승용에게 맡긴다고 해도, 이후 얼마든지 경영권을 빼앗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내 말을 들은 엘리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는 필요 없을 테니.”

현주 누나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있어?”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오면서 생각해 놓은 게 있어요.”

“알겠지만 특정 기업의 지분을 5퍼센트 이상 매수하면 공시를 해야 돼. 일단 최대한 조용히 장내에서 매입하며 지분을 늘려. 자사주 매각을 발표하면 그쪽에서도 가만히 안 있을 테니까. 협력하려면 적어도 10퍼센트 이상은 들고 있는 게 좋을 거야.”

“예.”

난 헨리를 보며 말했다.

“그 일은 헨리에게 맡길게요.”

이번 기회에 골든게이트 후계자 솜씨 한 번 봐야겠다.

헨리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좌를 분산해서 여러 증권사에서 매수하겠습니다. 지분 5퍼센트가 넘기 전까지는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 * *

난 데릴과 통화하며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해주었다.

[서성그룹과의 협력은 잘된 일입니다. 하지만 무리하게 투자하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모든 게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겠지요.”

제조업 경영에 있어서 수요 예측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너무 적게 잡으면 주문을 받아놓고도 제때 물량을 공급하지 못하고, 너무 많이 잡으면 설비와 인력만 놀리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수요가 증가할 거라는 예상 아래 인수와 공장 건설에 투자했다. 하지만 예상만큼 수요가 따라주지 않으면 잘 팔고도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될 거다.

지금까지 벌려놓은 것도 수습하지 못한 상황에서 배터리에까지 투자하는 게 옳은 일일까?

난 예지를 떠올렸다.

예지는 카로스가 서성SB 배터리만 탑재한다고만 했지, 그게 얼마나 팔릴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시고, 일단 개발에만 집중하세요. 내연기관차가 당장 수익에는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결국은 전기차로 가야 합니다.”

모두가 간 뒤에 따라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 * *

임일권 회장은 쓰러진 후부터 송파구에 있는 서울서성병원 25층 VIP병실에 입원해 있었다.

VIP병실은 의료진과 가족을 제외하면 누구도 접근이 불가능했다.

몇 번 취재진이 찾아가 의료진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환자의 개인정보는 극비라며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랜 기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임일권 회장의 건강상태에 대해서 여러 루머가 떠돌았다.

임진용을 후계자로 밀기 위해 아픈 척 하는 거다, 치매에 걸렸다, 혼수상태다, 이미 죽었다 등등.

그러나 서성그룹 측에서는 어떠한 발표도 하지 않았고 모든 것은 추측의 영역에서만 머물렀다.

그런데 최근 임일권 회장이 위독하다는 얘기가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루머라고 생각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임수미 실론호텔 사장과 임수경 네버랜드 사장은 며칠 동안 회사가 아닌 병원으로 출근했고, 연소현 관장과 임승용 사장은 아예 병실 안에 머물렀다.

임진용 부회장 역시 원래 미국에서 기업인들을 만나는 일정 등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로날드 취임식만 참석하고 서둘러 귀국했다.

그리고 며칠 후, 충격적인 속보가 떴다.

[임일권 회장 사망!]

[재계 전체가 충격에 빠져]

[서성그룹의 앞날은?]

[박시형 대통령, 한국 경제사의 별이 졌다며 안타까운 심정 밝혀……]

?임일권 회장의 일생은 곧 서성그룹의 역사이자 한국 산업화의 역사였다.

모든 재벌그룹들이 그러하듯 정경유착을 통해 성장했고, 각종 불법을 저질렀다. 탈세, 횡령, 배임, 비자금, 편법승계 등등.

그로 인해 실형(징역3년에 집행유예5년)을 받았지만, 금방 사면되었다.

이러한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국경제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만큼 그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서성전자를 포함해 서성그룹주가 거래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30퍼센트다. 서성그룹주들이 충격을 받자 순식간에 코스피 지수가 1퍼센트 폭락했다.

서성그룹 측에서는 서둘러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임일권 회장의 죽음을 애도하며, 임진용 체제 아래 안정적인 경영을 해내갈 거라고 발표했다.

따지고 보면, 임일권의 죽음은 펀더멘털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때문에 낙폭은 금세 회복되었다.

재계는 침통한 분위기였다. 일부는 예정되어 있던 행사마저 취소하며 애도의 뜻을 나타냈다.

반면 우리는 바빠졌다.

그룹 회장직은 물론 서성SB 대표이사를 포함한 여러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각 계열사에서 대표이사 선임에 나설 것이다.

그럼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겠지.

난 임진용 부회장과 통화했다. 먼저 조의를 표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기업인’ 임일권은 존경한다. 한 번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 되었구나.

“그보다 자사주 매각을 발표하면, 언론과 정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임진용 부회장은 내 말에 동의했다.

[아마 조중일보가 먼저 포문을 열겠지요.]

이전까지 조중일보는 철저하게 서성그룹의 편이었다. 다른 언론들이 임진용의 편법승계 문제를 지적할 때도, 유독 조중일보만은 조용했다.

하지만 연소현 관장이 반대편에 선 만큼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아무리 지분을 많이 확보해도 소액주주들이 돌아서면, 표 대결에서 지게 될 텐데요.”

[주주환원 정책과 전자와의 협력 강화 등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겠죠. 임승용 사장 역시 똑같은 얘기를 할 테구요.”

[그렇겠지요.]

“제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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