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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9

118. 소꿉친구 – 논쟁

“다니엘 님! 죄송하지만 잠시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도서관으로 달려들어 온 레나가 늘 한 곳에만 자리를 잡는 다니엘을 불렀다. 그는 책에서 눈을 떼며 레나를 반겼다.

“오, 레나 님. 물론이지요. 무슨 일이신가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다름이 아니라…”

“저기… 레나 님,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여성을 거의 접해본 적이 없던 베로니안이 얼굴을 붉히며 레나에게 붙들린 손을 빼내었다.

그는 도서관에서는 정숙해야 함을 눈짓으로 상기시키고는, 다니엘이라는 급수가 높은 수습생과 함께 시끄럽게 떠들어도 좋을 도서관 로비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 놓인 작은 탁자에 둘러앉기가 무섭게 레나가 질문을 던졌다.

“다니엘 님, 다니엘 님께서는 왜 사제의 결혼이 금지되었는지 아시나요? 알려주세요.”

다니엘은 조금 당황하면서도 기뻤다.

그녀의 질문에는 “당신은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으므로 뿌듯한 마음이 일어 성심성의껏 답변해주었다.

“성직자는 독신생활을 하는 편이 신을 모심에 있어서 좋으리라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제5 성인이신 ‘티고로프’님께서 계실 무렵에 정해진 규칙으로 알고 있어요. 그전까지는 사제의 혼인에 관한 어떤 규칙도 없었지요. 저는 이게 꽤 합당한 금제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말이 길게 이어졌고, 레나는 조금 실망하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혼인한 사제가 파문을 당한 사례들 따위는 레나가 알고 싶은 내용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제가 결혼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또는 사제가 결혼할 방법이 있는지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군요…”

금제가 없던 시절에 얼마나 많은 성직자가 타락했는지를 들으면서 더욱 실망한 레나가 집요하다 느껴질 만큼 재차, 거꾸로 물었다.

“그러면 사제가 결혼할 방법은 없는 건가요? 교회의 허락을 받는다던지… 그런 사례가 있지 않을까요?”

“…없습니다. 이건 꽤 단호하게 답변드릴 수 있겠네요. 왜냐하면 결혼을 위해 사제직을 포기하려는 사람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알고 있거든요. 그들은 일반 신도로 신분이 격하됨과 동시에 받았던 신력을 다른 이에게 양도해야 합니다. 또, 교육기관에서 공부했던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그건 교회에 수년간 봉사하는 것으로 감해주더군요.”

이미 체계가 있다는 말에 레나의 말문이 꽉 막혀버렸다.

분통한 마음이 들어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는데, 베로니안이 말했다.

“그런데 그건 조금 우습지 않습니까? 아니, 유치하다는 생각까지도 드는군요.”

“무엇이 말씀입니까? 설마 교회의 규칙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까?”

놀란 다니엘이 살짝 날을 세웠다.

하지만 베로니안은 자신의 의견을 주워 담을 생각이 없었다. 이 소심한 샌님은 또다시 열정적으로 신학을 논하려는 투사가 되어 있었다.

“네. 신을 모시는 사람을, 그것도 사제까지 된 사람을 쫓아내는 악습이라 생각합니다.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고작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게 이유라면 정말 유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니엘이 잠시 어버버 놀란 사이, 그가 주장했다.

“교회는 신을 모시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라 그분을 향한 인간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발칙하시군요.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으나 거룩한 교회가 어떤 규칙을 세운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교회를 ‘도구’라 말씀하시는 걸 보아하니 ‘우데안 강독(講讀)’ 수업을 들으신 모양인데, 아직 공부를 끝내지 못하셔서 그런 것이겠지만, 우데안 님께서도 교회라는 조직의 필요성을 긍정하셨습니다.”

다니엘이 조금 언성을 높였다.

“이상적으로는…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네, 베로니안 님의 말씀처럼 이상적으로는 인간의 마음이 최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 대륙에는 수만에 달하는 성직자가 있습니다. 그 거대한 조직이, 말씀하신 대로 도구라고 해보지요. 그 거대한 도구가 효율적으로 쓰이려면 규칙이나 규범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제4 성인이신 우데안 님께서도 교회의 존재를 긍정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으며, 저도 우데안 님의 저서를 끝까지 읽어보았습니다. 저는 단지 우데안 님께서 ‘방랑하는 목자(牧者)’를 더욱 긍정하셨다는 점을 짚고 싶습니다. 그분께서는…”

고작 하나의 수실이 달린 베로니안이 꼬집듯이 논박을 이어갔다.

레나는 저 때문에 일이 커졌다고 생각하면서도 귀를 쫑긋 세웠다.

“…성직자의 ‘관료화’를 경계하라 하셨습니다. 성직자가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 신을 모시는 데에 더 중요한 마음가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입니다. 제 생각에 교회는 이미 그 경고를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죄송하지만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저희 십자교회는 역대 어느 때보다도 많은 신도를 가르치고 있으며, 이제는 대륙 곳곳에서 빈민을 구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확실히 새 교회를 짓고, 세를 넓히는 데 바빴지요. 저도 근래에 레나 님께 들어 알았습니다만, 이제는 궁벽한 산골 마을에도 교회가 있을 정도이니까요. 허나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교회가 도처에 지어짐으로써 신도들에게 선생님이 생기고, 치료받을 기회가 주어졌으니까요. 인구로 대비할 때, 오히려 도시에 교회가 부족할 지경이지요.”

다니엘이 반박했으나 베로니안은 의외로 순순히 동의를 표했다.

그도 사람이 많지 않은 작은 마을에서 자랐고, 부모를 잃은 베로니안을 아들로 받아 키워준 사람이 바로 그 마을의 교회에서 일하는 수도사였기 때문이었다.

교회의 업적에 충분히 동의한 뒤, 베로니안이 말했다.

“…하지만 관료화는 다른 문제입니다. 작금의 성직자들은 고대의 성직자들과 비교했을 때 형편없습니다. 고대의 성직자들은 오로지 인간을 위한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사제나 수도사로 받들어지지 않으면서도 기꺼이 촌부들과 농사를 지었고,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고자 최선을 다하였지요. 그분들이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이유는 오직 자신의 신념 하나로 역경을 헤쳐나갔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잠시 그의 말을 수긍한다는 듯이 가만히 있어서 베로니안의 차례가 이어졌다.

“그런데 지금은 ‘십자교회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건 개인의 신념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관료화의 꼭대기에 이른 추기경과 같은 분의 명령을 따르는 것에 불과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최근 몇십 년간 얼마나 많은 성전사가 동원되어 야만인들을 학살하였습니까. 제가 교회에 와서 가장 먼저 알아본 것입니다만, 성전사가 명령 불복종으로 처벌받은 사례가 야만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한 이후로 급격하게 늘었습니다. 그건 최근에 다시 감소 추세인데, 그 까닭은 그릇된 신을 믿는 야만인 부족이 이제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한 가지입니다. 성전사들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교회가 ‘십자교회의 이름으로’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베로니안이 헛웃음 쳤다.

“십자교회의 이름이라니… 저는 이것이 너무나도 우스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교회가 언제부터 성직자의 신념보다도 교회의 이름을 앞세우게 된 것입니까? 저희의 위대한 주신께서는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으셨는데 말이죠. 이는 교회의 관료화가 심각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은 교회라는 조직의 효율성이 아니라 개인의 신념입니다. 물론, 이 신념은 ‘배치’되지 않은 인간의 자유로운 신념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베로니안 님께서는 ‘피조물의 굴레’와 ‘피조물의 책임’을 읽으셨군요.”

다니엘이 휘유- 한숨을 내쉬었다.

이는 더욱 깊이가 있는, 만만찮은 논쟁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피조물의 굴레’는 제2 성인인 ‘콘스티노 라오노’가 쓴 책으로서 신과 피조물의 관계를 설명한, 대단히 철학적인 서적이었다.

신학의 근본을 이루는 철학도 이 책의 몇몇 장(章)에서 파생되었을 정도로 ‘피조물의 굴레’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었다.

“네, 저는 ‘피조물의 굴레’를 읽었지만, 신께서 인간을 배치해 두셨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두 서적을 모두 읽으셨다니 더 세밀하게 논해보아도 괜찮겠군요.”

다니엘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정말로, 정말로 피곤하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피조물의 굴레’ 다섯 번째 장에서 나온 단어였지요? 그 배치라는 단어는 말입니다. 저도 조금 과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네, 그렇습니다. 인간이 주신의 의도에 맞추어 태어나고, 배치되어있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지요. 저는 이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라자르 라오노’님께서 쓰신 ‘피조물의 책임’에 따르면…”

“잠시만요. 그쪽으로 넘어가기 전에 앞서 했던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네요. 그러니까 아까 베로니안 님께서 십자교회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을 반대하시는 까닭이 바로 인간에게 부여된 ‘자유의지’ 때문이었군요.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또, 그렇게 생각하시는 까닭이 제3 성인이신 라자르 님께서 쓴 ‘피조물의 책임’ 때문이고요. 그러시다면…”

중간에 끼어서 이야기를 듣는 레나는 슬슬 두 사람의 논쟁을 이해하기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녀도 신학 공부를 나름 열심히 하였고, 이는 다니엘이 인정할 정도였으나, 기초가 탄탄하다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콘스티노 라오노의 ‘피조물의 굴레’도, 자신의 증조부의 책을 일부 반박하며 쓰여진 라자르 라오노의 ‘피조물의 책임’도 아직 읽어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레나는 “저기… 죄송한데요. 조금만 더 설명해주시면 안 될까요? 라며 부연(敷衍)을 요구하였고, 다니엘과 베로니안은 기꺼이 설명해주었다.

아마 본격적으로 논쟁을 하기에 앞서서 서로가 무엇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전제가 어떠한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피조물의 굴레’에는 각 인간이 살아갈 방식을 주신께서 결정해두셨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만물의 절대적인 소유주인 주신께서는 그러시기에 모자람이 없을 힘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레나 님께서 알고 계시는 신학은 대부분, 이건 강조를 해야겠습니다. ‘모두’가 아닌 ‘대부분’은 피조물에게 그 굴레가 걸려있다는 걸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감사히 여기고,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다니엘이 ‘피조물의 굴레’를 간략히 설명하자 베로니안이 ‘피조물의 책임’을 설명했다.

“‘피조물의 책임’은 ‘피조물의 굴레’를 반박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주신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셨고, 인간은 그 의지를 불태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를 권리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마는, 피조물의 삶이 어찌 권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왕족과 귀족을 위한 터무니없는 주장이지요.”

“크흠.”

다니엘이 조금 불편하게 헛기침했다.

사실은 그도 귀족이기 때문이었다. 십자교회의 수습생으로 들어오면서 자신의 성을 버리긴 했지만.

다니엘이 말했다.

“아무튼, 대강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레나 님께서도 곧 공부하셔서 알게 될 내용이니 그렇게 실망한 표정을 짓지 않으셔도 됩니다.”

“…헤헤, 괜찮아요. 제가 여기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하지만 그녀의 옆에는 그녀보다도 더 늦게 온 사람이 있어서 레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다니엘과 베로니안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고, 다니엘이 선공을 취했다.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죠?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그냥 생각나는 데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래서 베로니안 님께서 아까 사제의 혼인을 금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신 것이로군요. 교회의 규칙보다 성직자의 자유의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겠지요. 맞나요?”

“네,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 성직자의 결혼하고픈 마음 또한 굴레에 얽매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군요. 그렇다면 어떻게 말해도 논쟁이 성립되지 않으니 제가 ‘피조물의 책임’을 인용해야겠군요.”

다니엘은 자신이 믿지 않는 사상을 받아들이기 위해 잠깐 고개를 높이 치켜들어 허공을 응시하다가 이내 고개를 정상으로 되돌렸다.

역시, 무리다.

“…모든 사람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교회의 규칙을 만든 사람에게도 자유의지가 있을 것입니다. ‘피조물의 책임’에서도 선을 그어두었듯이 그 의지는 올바르게 행해져야 하는 책임이지 방종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규칙을 만드신 분들께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셨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모든 이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서로의 의지가 맞부딪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다른 이의 의지가 꺾이게 된다면 그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승자도 떳떳하지 못하고, 패자는 무기력하게 될 것이지요.”

다니엘이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이것이 마치 흔히 일어나는 일처럼 보이겠지만, 이는 잘못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신을 진정으로 믿지 않는 이들의 생각이지요. 저희의 운명은 정해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으로 태어나 어떤 승리와 패배의 순간을 가질 것인지, 어떻게 살다가 죽을 것인지가 이미 결정된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러한 삶이 주어졌음에 감사하며 예정된 운명의 부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힘껏 살아가야 할 뿐입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한 가지만 더 말하고 싶습니다. 좀 전에 교회는 도구이고 인간의 마음이 더욱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굴레가 씌워졌다고 해서 인간의 마음이 가진 가치가 덜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굴레라는 표현보다도 운명, 또는 신께서 내려주신 ‘사명’이라고 높여 부르는 것이지요. 아까 나왔던 성전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끝내겠습니다. 성전사들이 명령 불복종으로 처벌받은 사례가 그릇된 신을 믿는 야만인들을 처벌하면서 늘어났고, 이것이 ‘십자교회의 이름으로’ 강요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셨었죠?”

다니엘이 베로니안을 응시해 맞는지를 확인하고 단언했다.

“이는 잘못된 추론입니다. 왜냐하면, 그릇된 신을 믿는 야만인들을 몰아내는 것이 수십 년 전 교회에서 주요 목표로 선정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사들이 대대적으로 동원된 일이 그 당시에 많았던 것이고, 그래서 명령 불복종의 사례가 늘어난 것뿐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그 결과 현재 십자교회가 보유한 성전사단은 그 수에서도, 질에서도 역대 최고라 평해집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분들이 품은 신력과 신앙심에 있어서요. 그럴 수 있었던 까닭은 야만인을 벌하는 사건이 솎아내기의 과정이 되어, 자신의 운명이 성전사가 아님을 깨달은 기사는 나가고, 성전사의 사명을 깨달은 기사들은 남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주장이 끝났다. 차례가 돌아온 베로니안은 그의 말을 곱씹다가 조금 늦게 입을 열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명은 잘못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지요. 인간이 굴레에 쓰여 있어서, 자신의 성격부터 환경까지 모두 결정되어 있던 것이라 한다면 사람에게는 더욱 나아지고자 할 동기가 부여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신께서 바라는 일이겠습니까? 신께서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렇기에 그 증거로 이 땅이 ‘노력한 만큼 풍요로운’ 것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피조물의 굴레’에 적혀있는 ‘배치’라는 표현에 반감을 품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배치되어 삶이 결정되어 있다는 것은 잔혹한 일입니다. 또한,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볍게 심호흡한 베로니안이 레나와 자신을 번갈아 지목하며 예시를 들었다.

“저도 그렇고 레나 님도 그렇고, 추천을 통하여 수도교회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레나 님께서는 어떻게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마을 사람들과 아버지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이곳에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단히 감사한 일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제 주위의 인물들이 저를 위해 ‘배치’된 덕분이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여기에 신께서 관여하신 일이 없습니다. 그분들의 따뜻한 심성에 불을 지펴주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마을 사람들이 수년간 저를 위해 돈을 모아준 덕분에,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공부했던 수도사님이 교육 시설에 계셔서 도와주신 덕분에 제가 이곳에 가까스로 입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건 인간의 마음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과정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굴레로 묶여있었다! 라고 한다면 그 주장에서 헤어나올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피조물의 굴레’에서조차 결정되어 있을 수도 있다고 추론했을 뿐, 단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베로니안과 다니엘의 말을 듣는 레나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의 삶은 결정되어 있는가.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도 결정되어 있던 일이었나?

‘피조물의 굴레’에 따르면 결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오필리아 사제님께서 가을에 데모스 마을을 지나가는 것부터가 이미 필연이었고, 나는 처음부터 이곳 수도교회에 올 운명이었던 거다.

허나, 그녀에겐 반론이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건 레브가 내게 사제가 되어달라고 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걸 내가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난 포기했었다.

정말로.

그리고 레브에게 고백해 그와 결혼하고 싶었다. 행복하게, 데모스 마을에서 평생토록 함께 살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 “나는… 네가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레브는 “너는 내가 사제 되러 갔으면 좋겠어? 안 갔으면 좋겠어?”라는 질문에 저렇게 답했다.

그런데, 그는 엄청나게 망설였다.

떠나지 말라고 정반대로 말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망설였기에 레브가 나를 교회로 보내도록 ‘배치’된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또,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그의 조언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나는 네가 좋은데.”라며 재차 고백할지… 그것도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였다.

고민 끝에 레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 난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어. 이건 나의 의지이지 결정되어 있던 게 아니야.’

왜냐하면 레브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겠다는 결정 또한 바로 직전에 있었으니까.

어떤 걸 선택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두 선택지가 가까웠기에, 결정되어 있던 순리라고 믿기 어려웠다.

레나가 상념에서 벗어나 보니, 다니엘과 베로니안은 여전히 그 문제를 두고 언쟁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조물의 굴레’라는 것은 너무나도 광범위한 추론이었기에 그 논리에서 벗어날 길이 마땅치 않았고, ‘피조물의 책임’은 우리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 자체를 지지하는 내용이었기에 쉽게 공감을 샀다.

“그런데… 이건 성녀님께 여쭤보면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

레나가 물었다. 그러자 다니엘과 베로니안이 입을 열기도 전에 뒤에서 답변이 튀어나왔다.

“성녀께서는 그런 질문에 잘 답해주지 않으신단다.”

언제 다가왔는지 레나의 뒤에 한 노인이 서 있었고, 다니엘이 기겁하며 일어났다.

“미하에르 추기경님!”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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