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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

11. 소꿉친구 – 검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한스는 상단주와 친근하게 가벼운 잡담을 나누다가 본론을 꺼냈다.

“여기 제 친구들인데 네비스로 가고 싶대요. 경로가 있나요?”

“네비스로 바로 가지는 않지만, 중간까지는 가지. 거기서 네비스로 가는 다른 상단을 소개해주는 정도면 되겠나?”

상단주의 눈빛에 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상단주는 무슨 계산을 하듯이 중지를 엄지로 긁으며 말을 쏟아냈다.

“마차에 둘이 타려면 은화 다섯 닢은 받아야 해. 가는데 이 주일이나 걸리니까. 두 사람 잘 공간을 마련해주려면 상품을 많이 빼야 하거든. 그리고 먹을 건…”

이후로는 자잘한 조율이 이어졌다.

결국, 레나와 레오 모두 마차를 타되 밤에는 레나만 마차에서 잘 수 있게 한 사람 잘 공간만 마련하기로 했다.

다행히 중간에 한 마을에 들려 이틀간 장사를 한다는 것 덕분에 가격을 좀 깎을 수 있었다.

거기서 다른 상단을 구하면 되는데 이틀을 낭비하는 건 아깝다. ─ 는 것이 레오의 논지였고, 상단주는 조금 망설였지만, 한스가 옆에서 거들어줘서 결국 수긍했다.

돈을 내고 출발 시각과 장소를 약속하니 오늘 하루 여유가 생겼다.

레나와 레오는 물건을 다 팔고 돌아가려는 마을 청년들과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도움을 준 한스에게도 고맙다고 했다.

레나는 한스를 다시 봤다.

아무 일도 안 하는 놈팡이인 줄 알았는데 큰 마을에서 인맥을 쌓으며 뭔가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언젠가 데모스 마을과 큰 마을을 이어주는 역할을 맡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그동안 오해했던 미안함을 담아 한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한스는 머쓱했는지 “하하하. 고맙기는 뭘. 잘 가.”라며 웃어넘겼다.

마을 청년들이 떠난 뒤 레나와 레오는 간식을 사 먹으며 여유롭게 장터를 둘러보았다. 장터를 처음 구경해보는 레나에겐, 이곳은 신기한 것들투성이였다.

그녀는 꺅꺅거리며 바쁘게 돌아다녔고 두 사람은 해가 떨어질 때가 돼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 * *

다음 날 아침, 레오는 새벽같이 일어나 씻지도 않고 급히 나왔다. 어제 레나랑 노느라 깜박 챙기지 않은 게 있었다.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 하나뿐이라는 대장간을 찾으니, 대머리 대장장이가 화로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검을 보여달라고?”

“예. 양손검 중에서 저렴한 것이 있을까요?”

그의 질문에 대장장이는 어처구니없어하며 손사래를 쳤다.

“뭘 잘못 알고 있나 본데, 그런 무기는 영주님의 요청이 아니면 만들지도 않아.”

“네?”

“네는 뭐가 네야? 평소에 팔려야 만들어 놓지. 비싼 철만 잔뜩 들어가는 걸 왜 만들어? 검이 정 필요하면 도시에 가서 찾아야지.”

대장간에는 검이 주렁주렁 달려있을 것으로 착각한 레오는 당황했다.

이 세계에서 검이라는 건 현대사회로 따지면 총과 같은 것이었고, 그런 것을 아무렇게나 만들어 팔지는 않았다.

게다가, 검은 총처럼 아무나 들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특히 양손검은 초심자에게 매우 불친절해서 호신용이라면 몽둥이 같은 것이 훨씬 나았다.

레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물었다.

“그럼 다른 무기는 없나요?”

“사냥용 단도 같은 것밖에 없는데? 식칼이랑. 아! 투창이 하나 있던가?”

“…알겠습니다.”

실망해서 돌아가려는 레오의 뒤로 대장장이는 조언이랍시고 몇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검은 반출 금지라 허가 없이는 사지도 못해. 도시에서 몰래 사고팔 수는 있겠지만, 그럼 이미 저렴하긴 틀렸지.”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오는 숙소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지난 시나리오에서 검술을 익혔고 시나리오 보상으로 {검술}도 계승 받았는데, 정작 검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아니, 게임이면 기본적으로 무기를 주고 시작하는 게 정상 아닌가?’

투덜거리며 별생각 없이 방문을 벌컥 열었다.

방에선 레나가 수건으로 몸을 씻고 있었다. 레나의 나신을 본 레오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고, 그녀는 빽! 소리를 질렀다.

“꺄악! 레오! 문 닫아!”

“앗! 미, 미안해.”

레오는 황급히 문을 닫고 후다닥 도망쳤다.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기를 잠시, 레나가 눈치를 보며 내려왔다.

레오는 싹싹 빌었다.

“진짜 미안해. 고의는 아니었어. 노크해야 했는데…”

“…아니야. 문을 안 잠근 나도 잘못이 있으니까. 문을 잠그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둘은 아침을 먹으면서도 얼굴을 붉혔고 상단이 모이는 약속장소로 가는 동안에도 어색하게 떨어져서 걸었다.

도착해보니 쉰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상인들은 출발 시각을 맞추려고 다들 분주히 짐을 싣고 있었고, 스무 명쯤 되는 용병들은 한가하게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상단주가 다가와 레나와 레오가 탈 마차를 지정해줬다.

“자네들은 이 마차를 쓰게. 한 사람 들어가서 잘만한 크기로 비워놨네. 둘이 앉아서 가는데도 충분할걸세.”

살펴보니 마차엔 짐이 가득 실렸지만, 앞쪽은 자리가 넉넉했다. 두꺼운 가죽으로 천장을 씌운 마차라 잠을 자기에도 알맞았다.

“두 사람이 들어가 눕기엔 좀 비좁을걸세. 아니지, 잘 겹치면 그렇지도 않나? 하하하!”

상단주는 섹드립을 던지고 떠났다. 레나는 다시 홍당무가 됐고 레오는 헛기침하며 딴청을 피웠다.

이윽고 열대가 넘는 마차들이 연달아 출발했다. 각 마차 마부석에는 마부와 용병 한두 명이 자리를 잡았다. 용병 몇몇은 말을 타고 앞뒤를 호위했다.

레나와 레오는 마차 뒤편에 나란히 앉았지만, 서로 고개를 반대로 돌린 채 어색한 침묵을 이어갔다.

달리는 짐마차는 예상보다 더 불편했다.

가끔 크게 덜컹거렸고, 양옆과 천장이 막혀있어서 구경할 거리도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뒤를 쳐다보면서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뒤따라오는 마차였다.

그 마차에는 마부와 용병 둘이 타고 있었는데, 그들도 할 일이 없는지 한가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서 민망했다.

이대로 일주일이나 달려야 한다.

결국, 레오가 어색함과 심심함을 참지 못하고 레나를 불렀다. 그녀는 새초롬한 척하면서도 부름에 응했다.

“저기 레나야. 끝말잇기라도 할래?”

“…그게 뭔데?”

“말로 하는 놀이인데, 어떻게 하냐면…”

둘은 끝말잇기를 하면서 정적을 깨뜨렸다. 처음에는 무심하게 툭툭 단어를 뱉다가 나중에는 웃고 떠들면서 놀이를 즐겼다.

마차는 생각보다 자주 멈췄다.

특히 냇가같이 물이 있는 곳이면 반드시 멈춰서 지친 말들을 쉬게 했다.

마부들은 물통에 물을 길어 말에게 먹이고, 물을 끼얹어 열을 식혀줬다.

그때마다 레나와 레오도 마차에서 내려 아린 몸을 풀었다.

기분이 완전히 풀린 레나는 싱글벙글 웃었다.

“흐흥~ 레오. 생각보다 똑똑하진 않은데?”

“쳇. 네가 너무 잘하는 거야.”

이 세상을 잘 모르는 그가 레나에게 끝말잇기를 제안한 게 멍청한 짓이었다. 어휘력에서 너무 밀렸다.

“다른 걸 하자.”

“뭔데? 끝말잇기도 재밌는데?”

“이번엔…”

이곳 청년들의 놀이는 대부분 야외에서 하는 것이었다. 가만히 마주 앉아서 하는 놀이는 거의 없었다.

레오는 현대사회의 게임들을 소개해 줄 생각이었다.

정신을 집중해서 대학을 다니며 갈고 닦았던 게임들을 떠올렸지만 레나가 요령을 순식간에 익혀서 대부분 졌다.

여행은 지루하게 흘러갔다. 레오가 여러 가지 놀이를 쥐어짜 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보내기엔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었다.

상단은 밤에는 마차를 세웠다. 상인들과 용병들은 천막을 쳤고 마부들은 마부석에 잠자리를 폈다. 레오는 마차 밑에서 노숙할 생각이었지만, 레나의 강권을 이기지 못하고 같이 잠을 잤다.

공간이 좁아서 등을 맞대고 칼잠을 자는 수밖에 없었다.

등으로 레나의 체온이 느껴졌다. 레오는 그녀가 아직 잠들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레나도 그가 깨어있는 것을 알았는지 말을 걸었다.

“레오.”

“왜?”

“도착하면 거기서 일 년은 일해야겠지?”

“…그렇겠지.”

레나는 수도에서 돈을 벌어 신성 왕국으로 갈 여비를 모으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사실 일 년이 아니라 몇 년을 일해도 루테티아까지 갈 여비를 모으긴 힘들 거다.

그녀는 레오의 손에 이끌려 네비스에 고립되는 셈이었다.

레오는 맞댄 등 너머로 죄책감이 전달될까 두려워졌다.

레나가 한숨이 섞인 말투로 물었다.

“거기 가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빵집에서 일해보는 건 어때? 한스 아주머니가 칭찬 많이 하시던데.”

“반죽밖에 못 하는데 무슨.”

“그래도 수도에선 돈 많이 준다더라.”

“…그렇겠지?”

어쩐지 레나는 미래를 예감한 듯했다. 그리고 레오는, 지금쯤 수도교회로 향하는 사제님이 마을에 들린 걸 알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속이 쓰라려 왔다.

‘레나, 미안해. 대신 널 꼭 공주로 만들어줄게.’

그놈의 공주가 뭔지.

레나와 레오는 몇 마디 걱정을 더 나누다 잠이 들었다.

앞에 탄 마부는 우렁차게 코를 골았다.

* * *

상단은 중간에 작은 마을에서 이틀간 장사를 하고 다시 출발했다. 그리고 오랜 지루함 끝에 레오는 허리를 펼 수 있었다.

“드디어! 도착이다!”

“아니거든. 반밖에 못 왔거든. 레오는 바보.”

상단은 제법 큰 도시에 도착했다.

도시 이름을 들었지만, 곧 다른 상단에 끼어 수도로 출발할 계획이어서 금방 잊어버렸다.

상단주는 친절하게도 네비스까지 가는 다른 상단주를 소개해줬고, 비용과 조건은 전번과 같았다.

이번에는 레나가 돈을 냈다.

그녀의 주머니에서 부모님과 수도사님이 모아 건네준 동화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돈을 받는 상단주는 두 사람의 사정이 딱해 보였는지 값을 더 깎아줬다.

이번 상단도 내일 출발한다고 해서 숙소를 잡았다.

레오는 피곤해하는 레나를 숙소에 두고, 문 꼭 걸어 잠그고 있으라고 일러준 후, 다시 대장간을 찾았다.

“검? 허가는 받았어? 없다고? 그러면 안 돼.”

도시에는 대장간이 여럿 있었지만, 검을 쉽게 팔아주는 곳은 없었다. 조금씩 체념하면서 발품을 팔던 차에 한 대장간은 반응이 달랐다.

“허가증이 없는데 검을 달라고?”

“네. 어떻게 안 될까요?”

“흠… 너 혹시 깡패냐?”

“네? 아니요. 그럴 리가요.”

“그럼 팔에 그 문신은 뭐야? 너네 패밀리 문신 아니야?”

대장장이가 레오의 팔을 가리켰다.

레오의 팔에는 여러 개의 나팔이 교차하는 문신이 있었다.

“이건 우리 아버지께서 새겨주신 거예요. 제 아버지도 똑같은 문신이 있고요.”

“네 아버지는 뭐 하시는데?”

“사냥꾼이신데요.”

“그래? 어쨌거나 여기 깡패는 아니라는 거지?”

“여기 깡패도 아니고, 딴 데서도 아니에요.”

“좋아. 따라와 봐.”

젊은 대장장이를 따라 들어가니 안에는 온갖 장비들과 뜨거운 용광로가 있었다. 바닥은 크고 작은 철, 나무 부스러기로 가득했다.

벽에는 여러 개의 방패와 몇 개의 검이 걸려 있었는데, 대장장이가 다가가 손짓했다.

“골라봐.”

“한손검밖에 없어요?”

“어쭈. 진짜 깡패는 아닌가 보네.”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요.”

“믿을 수가 있어야지. 딱 깡패짓을 시작할 나이구만… 잠깐 기다려.”

대장장이는 그제야 서랍장에서 양손검 세 개를 꺼냈다. 레오는 검을 차례로 쥐어보고 돌려줬다.

“더 없어요?”

“왜?”

“전부 균형이 안 맞는데요.”

“하하하. 그러니까 판다는 거지. 사실 난 방패밖에 만들 줄 모르는데 이것들은 재미 삼아 만들어 본 거야. 한손검은 어찌어찌 만들겠는데 양손검은 영… 어때? 살 거야? 어차피 안 팔리면 녹여버릴 녀석들이니까 싸게 해줄게.”

균형이 안 맞는 검은 타격점도 쉽게 흔들리고 금방 지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레오는 가장 짧은 걸 골랐다.

어차피 균형이 안 맞는다면 짧은 게 나았다.

그런데 대장장이가 부른 값이 생각보다 비쌌다. 조금 깎아보려 했지만 이미 깎아줄 만큼 깎아줬다며 요지부동이다.

레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디 가서 여기서 샀다고 하지 마. 어차피 인장도 안 찍었으니까. 혹시나 와도 난 모른척할 거야.”

“…이런 건 검으로도 안 치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조금 열 받은 레오가 빈정거렸다. 그가 할 수 있는 소심한 복수였지만 대장장이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이런. 그 검에 맞는 검집도 있는데 필요 없나 보군.”

“…죄송합니다.”

검집까지 준다면 불법으로 산 것치고 아주 비싼 건 아니었다.

레오는 경솔하게 말을 뱉은 걸 후회하며 사과했다.

진짜 레오였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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