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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

13화 비밀

13화 비밀

“저 고문관 새끼 하룻밤 만에 말짱해져서 돌아다니는 거 봐라.”

나는 몇 차례 눈을 깜빡거렸다.

저 목소리와 대사. 들은 적이 있다.

“역시 아픈척했던 게 맞다니까?”

이것도.

“빌어먹을. 나 여태 속은 거야? 119번은 그렇게 죽어 버렸는데.”

이것도.

‘······.’

걸음을 멈췄다.

멈춰 선 내 발등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어이. 138번.”

나는 이 상황을 알고 있다. 게다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고개를 들자, 예상했던 표정 그대로의 테오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음엔.

“저, 저 빌어먹을 새끼 눈깔 좀······!”

“닥쳐. 족제비.”

예정된 대사를 읊으려는 족제비의 말을 잘랐다.

이후 전과 같은 전개가 펼쳐졌다.

족제비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고, 테오가 박장대소를 하고, 그렇게 나만의 족제비는 모두의 족제비가 됐다.

“아직 잠이 덜 깬 거냐 138번. 아니면 역시 몸이 좋지 않은 건가.”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만 움직이자. 늦으면 또 감독관이 지랄할 테니.”

저들은 지난 회차에서 모두 죽었다.

고블린과의 첫 전투에서 죽은 11명.

나도 모르는 사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린 8레벨 삼인조.

제 숨이 멎어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료들을 구한 덩치.

나의 등에 업힌 채 숨이 멎은 족제비와, 홀로 팔랑크스 방진을 펼치던 테오의 뒷모습.

“······.”

나는 묵묵히 조원들을 따라 걸었다.

“······뭐지 저 새끼? 조금 전까지는 발정 난 쥐새끼처럼 돌아다니더니 갑자기 얌전해졌잖아.”

“뭐야 족제비. 네가 발정 난 쥐를 봤어?”

“아 씨! 족제비라고 하지 말라고!”

◎ 데미안 라플라스 [14세], [Lv.16]

16레벨.

역시 지난 이틀간 벌어진 일은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어.’

그렇다면 왜일까.

무슨 이유로 나는 다시 이 시점으로 회귀한 걸까.

댓글창을 열어봤다.

————————

– 수달꼬리팡팡: 엥? 뭐야 또 회귀하나?

[RP가 1만큼 상승합니다.]

– 딱풀전사: 시간이 되감긴다 했으니 그런 거 같은데

– 바토리바라기: 데미안 안 죽지 않았음? 왜 회귀하는 거임?

└ 딱풀전사: 몰루

[RP가 3만큼 상승합니다.]

– 박쥐인간: 오 데미안 기사 잡는 거 존잼 ㅋㅋ 리메이크 스킬 개꿀

[RP가 1만큼 상승합니다.]

[RP가 1만큼 상승합니다.]

– 딱풀전사: 아 박쥐새끼 태세전환 시작했다 ㅋㅋㅋㅋ

└ 박쥐인간: ㄲㅈ

[RP가 2만큼 상승합니다.]

– Flapdlzmgo: 근데 검은 괴물은 정체가 뭐냐

└ 세실사랑: 카인은 뭔가 아는 거 같음

[RP가 2만큼 상승합니다.]

– 먼지털이간질: 먼지 불쌍해 ㅠㅠㅠ

[RP가 1만큼 상승합니다.]

.

.

.

이번의 댓글로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선플은 RP를 추가로 상승시킨다.

‘내게는 잘된 일이야.’

나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두 가지다.

죽지 않은 내가 왜 회귀했느냐는 것과, 검은 괴물들이 왜 지난밤에 등장했느냐는 것.

‘놈들은 원래 하루 뒤에 등장했어야 했어. 그것 때문에 결행일을 지난밤으로 잡았던 거니까.’

이상한 점은 또 있다.

카인의 계획은 아마도 검은 괴물과 기마병들, 정확히 말하면 검은 괴물과 오러 블레이드의 기사를 서로 싸우게 해 공멸시키는 것.

그렇다면 카인은 지난밤에 괴물들이 나타날 것을 알았다는 말이 된다.

‘이틀 뒤, 나를 포함한 C조 전원은 광산을 탈출할 거다.’

그때는 카인이 검은 괴물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이틀 뒤로 결행일을 정한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카인은 이틀 뒤에 괴물이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고, 그에 맞춰 결행일을 잡았다.

그렇다면 왜 검은 괴물들은 하루 앞서 등장한 걸까. 그리고 카인이 놈들의 등장 시점을 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이번 회차에서 괴물들은.

“테오.”

나는 테오에게 달려갔다.

족제비가 앞을 막았지만 힘으로 밀치고 들어갔다.

8레벨의 족제비는 16레벨인 나를 막을 수 없다.

“이, 이 약골 새······! 히엑······!”

“어이 데미안.”

테오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조원에게 완력을 사용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할 말이 있어. 테오.”

예상대로 테오는 후우, 한숨을 쉬더니 족제비에게 조원들과 먼저 가라고 말했다.

조원들이 멀어지자마자 나는 본론을 꺼냈다.

나의 예상이 맞는다면 이번 회차는.

“내일 밤 광산을 탈출할 거야.”

결행일을 하루 앞당겨야 한다.

.

.

.

이후 지난 회차와 비슷한 대화가 오갔다.

테오가 내 멱살을 잡고, 또 고자질할 생각이냐고 으르렁대고, 놀라 달려오는 족제비를 돌려보내고.

“내일 밤, 광산에서 큰일이 벌어질 거야.”

“뭐?”

당연히 테오는 내 말을 믿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그 짓을 또 해야 했다.

“증명할게. 내 직감이 진짜라는걸.”

나는 이전처럼 조식 메뉴를 맞히고, 마석을 캐고, 감독관의 등장 타이밍을 예언했다.

결국 테오는 나의 말을 믿었다.

“서, 설마 데미안 너······ 지난번에 감독관에게 고자질했던 것도······?”

역시나 마지막에는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사과했고.

“크흑······! 나야말로 미안하다! 데미안!”

그렇게 지난 회차와 비슷한 테오를 만든 나는 발 빠르게 탈출을 준비했다.

시간이 없다.

지난 회차에서 이틀간 준비했던 것을 이번에는 하루 만에 끝내야 한다.

생각지 못한 행운은 아공간에 넣어둔 물건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거다.

“사다리 두 개가 필요해. 인원에 맞는 나무창과 방패도.”

갱도의 작업이 끝난 뒤, 테오에게 준비해야 할 것을 일렀다.

조원들은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탈출 도구를 만들었다.

“······시발. 우리한테는 이런 거 시키고, 왜 금발 약골 새끼는 처놀고 자빠졌는데.”

작업의 진행 상황을 보던 내가 테오에게 말했다.

“오늘 밤, 벽을 넘을 생각이야.”

“뭐? 탈출은 내일이라고 했잖아.”

“네 말대로 탈출은 내일이야. 오늘은 숲을 탐색할 예정이고.”

“혼자서?”

“아니. 너하고 덩치, 족제비도 함께.”

나는 이들의 레벨을 최대한 올려놓을 생각이다.

“히익! 저, 정말이야 테오? 오늘 밤 벽을 넘······.”

“쉿. 작게 말해, 조.”

이후 나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졌다.

검은 괴물들이 내일 밤 출현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해소되지 않은 다른 문제는, 지난 회차의 내가 왜 회귀했느냐는 것.

결론은 하나였다.

‘카인의 죽음으로 발동된 회귀의 힘이, 카인뿐 아니라 나까지 회귀시켰다.’

이유는.

‘카인과 동기화했기 때문에.’

내가 카피한 회귀 능력에는 이질적인 면이 있다.

어쩌면 ‘동기화’와 ‘카피’라는 시스템에 내가 깨닫지 못한 맹점이 있는지도 모른다.

‘전부터 시스템의 설명에는 불분명한 면이 있었으니까.’

아울러 지금까지 내가 취합한 정보를 토대로 생각할 수 있는 위험한 가설이 존재한다.

죽지 않은 내가 카인의 죽음으로 회귀한 것처럼,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

가령 회귀를 카피한 내가 죽어도, 회귀의 주인인 카인이 죽지 않는다면.

‘나는 회귀하지 못할 수도 있어.’

이전부터 나를 불안하게 했던 직감.

물론 가정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시험해 볼 수도 없는 일이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 문제들의 답을 찾기 위해 난 오늘 밤 카인을 만날 것이다.

.

.

.

깊은 밤, 나는 카인의 숙소를 향해 움직였다.

우려되는 것은 아스트라 열매가 맺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회차의 카인은 분명 열매의 유무를 확인했을 테니까.

점차 목적지가 가까워졌다.

나는 미니맵의 표식을 아스트라로 바꿔봤다.

‘오.’

운 좋게도 카인의 숙소 위로 아스트라가 보였다.

나는 최대한 지난 회차와 비슷하게 움직이며 유리창을 들여다봤다.

그때였다.

“누구냐.”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내가 이곳을 처음 찾은 듯 연기하는 것처럼, 카인도 나를 낯선 사람 대하듯 연기하고 있었다.

뒤를 돌아봤다. 지난 회차와 동일한 장소에, 동일한 표정의 카인이 서 있었다.

“다시 묻지. 누구냐 넌.”

나는 침묵을 지켰다. 지난 회차의 나와 동일한 인상을 심어줘야 했으니까.

“대답하지 않겠다면.”

그 말과 동시에 카인이 달려들었다. 녀석의 오른손에서 단검이 번득인다. 뭐야. 이것까지 똑같이 하겠다고?

나도 품에서 마석 단검을 꺼냈다. 카인의 움직임은 지난 회차보다 빨라졌다. 달라진 점은 내 눈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었다는 거다.

[관찰력을 발현합니다.]

나의 무기를 본 카인의 눈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그는 내 마석 단검에서 이상을 감지하지 못했다. 이것이 내가 이 무기를 라이프 스톤 단검으로 개화하지 않은 이유다.

파앙!

카인이 내 발목을 걷어찼다. 동시에 내 몸이 허공으로 밀쳐졌다. 그 와중에도 나는 카인의 동작을 관찰했다. 나는 이것이 카인의 ‘밀어내기(Lv.2)’ 스킬이라는 것을 알았다.

떠올랐던 내 몸이 바닥에 꽂혔다. 이어 서늘한 단검이 나의 목에 드리워졌다.

“지난 회차보다 강해졌군. 넌.”

카인이 나를 노려봤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포식자 같은 눈이었다.

“아니면 여전히 실력을 숨기고 있는 건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섣불리 입을 여는 것보다 침묵을 지키는 편이 낫다.

“지나친 침착함은 여전하군.”

카인의 눈길이 나의 목을 훑었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카인은 지난 회차에서 내 목에 남긴 상흔을 찾고 있었다.

흡사 뱀이 기어가는 듯한 섬뜩한 시선. 하지만 그는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다. 지난 회차의 내가 힐링 블룸으로 말끔히 치유했으니까.

“말해라. 너는 왜 이곳에 왔지?”

지난번과 달리 ‘오늘’이라는 낱말이 빠져있다. 이번에도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지난 회차의 내가 그랬으므로.

“대답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카인의 단검이 나의 목을 파고들었다. 그의 눈에서는 조금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자식. 그래. 끝까지 가보자는 거냐.

나는 통찰을 시전했다. 하지만 지난번처럼 하센베르크 격투술(Lv.2)을 카피할 수는 없다. 동기화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 그 눈이다. 138번.”

예상대로 카인은 통찰을 감지했다. 그의 눈동자가 미묘하게 표정을 바꿨다. 내 눈에 비친 그 모습은 웃는 것처럼 보였다.

몸을 일으킨 카인이 내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잠깐의 침묵을 보낸 내가 입을 열었다.

“나는 F조에서 왔어.”

“그 정도는 네 번호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카인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표정은 평온했지만, 날카로운 눈빛만은 내게서 어떤 흠결이라도 찾아내려는 듯 집요했다.

내 말이 끝나자 카인도 전과 동일한 대사를 읊었다. 연극이라도 하는 기분이다.

“나의 이름은 카인이다.”

“데미안.”

“데미안. 내가 너에게 이름을 밝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뭐야. 이건 약속된 대사가 아닌데.

“나는 번호로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 기억해 뒀으면 좋겠군.”

······설마 지난 회차에서 내가 66번이라 부른 걸로 아직 꽁해있는 건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아무튼 탈출할 거라면 가급적 빨리 시도하는 게 좋을 거다. 데미안.”

“왜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이어진 카인의 말은 나의 짐작을 확신으로 만들었다.

“내일 밤, 나를 포함한 C조 전원은 광산을 탈출할 거다.”

***

카인은 생각했다.

데미안은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을 넘어 다급한 상황일 때 오히려 웃음을 보이는 미친놈이다.

‘정신 나간 녀석.’

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카인은 혹시 ‘데미안이 자신과 함께 회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근거는 없다. 직감일 뿐.

그래서 카인은 데미안을 시험했다.

그는 나와 동류일지도 모른다. 나의 몸에 각인된 ‘무한회귀의 저주’를 공유하는 단 하나의 동종(同類)일는지 모른다.

“너는 놀라지 않는군. 데미안.”

“아까 말했을 텐데. 나도 탈출할 생각이라고.”

“혼자 힘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혼자라고 한 적은 없어.”

카인은 데미안을 향한 의심을 지우지 않았다.

그리고 카인은, 데미안이 아직 죽지 않기를 원했다.

“데미안. 너에게 제안하지.”

그래서 다시 한번 말했다.

“너희도 탈출에 동참해라.”

***

이번에도 카인은 내게 탈출에 동참할 것을 제안했다.

지난 회차의 나는 단칼에 거절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접근할 생각이다.

“왜.”

“뭐라고?”

나의 되물음에 카인도 조금 놀란 모양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밤이면 너무 시간이 촉박하니까. 우리는 아직 탈출 준비를 마무리하지 못했어.”

“네가 계획한 날은 언제지?”

“말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카인의 얼굴이 조금 찌푸려졌다. 소설과 달리 지금의 카인은 기분 나쁜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하지만 나의 목적은 카인의 성질을 긁는 것이 아니다.

나는 카인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

‘검은 괴물의 정체.’

카인은 괴물들이 언제 나타날지 알고 있다.

그렇다는 건 괴물의 정체 또한 알고 있을 수 있다는 거다.

카인이 아는 정보를 나도 알아야 한다.

“카인. 너에게는 내일 탈출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거야?”

일부러 카인의 이름을 부르며 물었다.

카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소설 속 카인이라면 뒤도 안 보고 돌아갔을 테지.

하지만 지금의 카인은 그러지 않았다.

“내일 밤, 광산은 무너질 거다.”

카인이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모르는 척 카인에게 되물었다.

“광산이 무너진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다. 내일 밤 광산은 무너진다.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게 될 거다.”

“뭐야. 네가 무슨 예언자라도 된다는 거야?”

“마음대로 생각해라. 하지만 내 말은 사실이다.”

“광산이 무너지는 이유가 뭔데.”

카인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녀석이 상대를 의심할 때 종종 나오는 표정이다.

한 번 더 이름을 불러줘야 하나, 하던 찰나에 카인이 답했다.

“차원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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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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