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12

12화 천한 장사치

지구로 귀환한 레온은 2030년 지구를 파악하며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째, 신앙의 전파.

이곳에는 진실한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호와, 붓다, 알라, 힌두가 말하는 수없이 많은 데바와 데비들.

만약 그들이 실존하는 신이었다면, 적어도 악에 대항하는 성자들이 존재해야 했다.

하지만 추기경이든, 사제든 2030년대에도 알라 후 아크바르를 외치는 광신도들이든 신의 힘을 부여받은 사제나 성자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본디 악을 멸하려면 무엇보다 강력한 힘 성력이거늘 그 성력의 터럭 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성당과 모스크의 사제들에게 신의 힘을 전달하는 힘 따윈 없다.’

본디 신이란 신앙을 품고 그 은혜를 내리는 법이다.

당장 호남 평야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려봐도 땅이 오염되며 흉년이 온다는 개념부터가 틀려먹었다.

생명과 풍요의 여신께 경배하고 축사한 땅이 어찌 오염될 수 있으며 비와 구름의 신이 어련히 비를 내려주실진대, 어찌 흉년이 올 수 있단 말인가?

작물들만 봐도 그렇다.

21세기 최고의 기술력으로 종자를 개량하고 성장시켰다는 쌀이 몸 안의 작은 종양 따위도 치료하지 못한다고?

그 종양 하나 치료하지 못해 중기니 말기니 하며 성소가 아닌 병원이라는 야만스러운 치유행위를 통해 낫기를 바라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애초에 병이 걸린다는 것부터가 문제다. 평소 꾸준히 데메라께서 축복하신 작물을 섭취했다면 병이 날 수가 없었다.

치유행위라는 것은 전장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나 사악한 사교도의 저주를 받았을 때나 받는 것이다.

그깟 매스나 진통제 따위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성력을 활용하기 위해선 신앙부터 퍼뜨려야 했다.

호남 평야에서는 레온의 사자심장이 유지 중인 미약한 성력으로 어떻게 해결됐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거대한 성력이 필요하리라.

레온의 세상이 끝내 악마들에게 패했던 것도 더이상 신앙을 바칠 신도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탓이다.

둘째는 성배 기사단의 재건이었다.

이 세계에는 성력을 사용하는 전투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성배 수호자 사자심왕이 반신이라면 성배 기사들은 그 바로 아랫급인 살아있는 성자들.

그들은 성법을 사용하는 신들의 기사다.

최후의 최후까지 싸우다 승천한 그들이 남긴 성력 덕에 레온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자신과 같은 빛과 정의의 신성 아리아나의 성배기사들.

항구를 수호하며 바다와 파도의 신성 포마를 섬기던 바다의 수호기사 젠킨슨 경.

전쟁과 불꽃의 신성 페토스의 화마를 일으키던 화염의 기사 제노아 경.

생명과 풍요의 신성 데메라의 빛으로 기사들을 지원해주던 성처녀 아냑.

제국이 무너지고, 엘프들의 대산림과 드워프들의 지하도시들이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도 성배기사들은 악마들을 토벌했다.

그들은 악종들의 공포 그 자체였으니.

세 번째 목적.

이 땅 위에서 설치는 악들을 섬멸하기 위해.

신앙을 퍼뜨려 신성을 회복하고, 마땅한 만신전의 조화와 질서를 갖춰 성배기사들을 양성한다.

이 하잘 것 없는 불신자들과 무지몽매한 평민들. 천한 것들에게서 성배기사라는 초력의 성자들이 등장하길 기대하는 건 과한 기대일지도 모르겠으나.

상관없다.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는 그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뿐.

“폐하, 정식으로 알현을 청한 이가 있사옵니다만.”

“흠… 절차를 지켰다면,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할 것도 없지.”

레온은 누가 왔을지를 짐작하며 그의 방문을 허락했다.

* * * *

박종찬 이사는 레온이라는 생존자가 매우 같잖았다.

어디 야만 문명에서 온 놈이 왕족이었답시고 뻗대는 꼴이 현대 지구의 귀족이나 다름없는 자신에게는 고깝게 보였던 탓이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레온이 가진 능력은 탐이 났다.

순식간에 작물을 자라게 하면서도 일반인이 먹어도 괜찮은 작물.

거기다 그 효능이 범상치가 않다. 암을 낫게 한다는 것도 경악스러운데 마소로 오염된 땅을 정화한다는 사실까지 알아내자 눈이 돌아갔다.

이 남자, 꼭 우리 회사에서 포섭해야 한다.

“알현을 허락해주시어 감사드립니다. 폐하.”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이 야만인에게 잠깐 고개를 숙이는 것쯤이야.

“이것은 저희 기업에서 폐하게 바치는 소소한 선물입니다.”

비서진들과 함께 방문한 그는 레온에게 선물을 보냈다.

그 내용물은 한국 10대길드 중 하나인 두정길드 소속의 명공이 만든 웨폰 클로젯이다.

박종찬 이사는 이 웨폰 클로젯 안에 든 위황찬란한 최고급품들로 야만인을 현혹시킬 생각이었다.

‘한번 맛보면 절대 이전으론 못 돌아가지. 제발 우리 매니지먼트에서 관리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게 만들어주마.’

박 이사는 이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고 경악할 한하리 대리와 레온의 반응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래, 내 성의를 보아 받아주마.”

‘바, 받아주마?’

뭐야, 저 태도. 마치 내가 받아주는 거라는 태도.

그 시건방짐에 박 이사는 부아가 치밀었지만, 애써 비즈니스 스마일을 유지했다.

“하, 한번 확인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

“쯧… 천것에게 예법을 설명하기도 귀찮구나. 한하리, 열어보아라.”

끝까지 사람 열불 터지게 만드는 꼰대질을 하며 선물을 열어보게 시키는 레온.

하리가 곧장 그것을 풀어보고는 기함을 삼켰다.

“이, 이건?!”

“후후…….”

깔끔한 소재의 클로젯이 열리자 철컥철컥 이음부가 확장되더니 십수 개의 물건들이 전시된 무기 전시관이 되었다.

“저희 그룹이 자랑하는 최신예 무구들입니다. 무엇이든 마음에 드시는 걸 골라주셨으면 하는군요.”

“두, 두정 길드 직속 명공이 제작한 유니크 등급 무구라고요?”

두정그룹이 운용하는 한국 10대 길드 두정 길드에서 직접 제작한 유니크 등급 무구들이었다.

고위 헌터들도 이것을 구하기 위해 눈이 돌아간다는 값비싼 물건들로 돈이 있어도 못 구한다는 물건들이다.

“앞으로 헌터 활동을 하신다 들었습니다. 이 물건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 말에 하리는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두정 길드 명공급 장인들이 제작한 무구들은 하나하나가 십억을 호가하는 초호화 물건들이다.

게이트에서 운 좋게 손에 넣는 무구가 아닌 이상 정석적인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물건들 중 하나인 것이다.

그것을 하나 무조건 주겠다고? 하리는 아카데미 수행 내내 윱튜버로 구경만 했던 유니크 도검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되었다. 이런 하급의 무구를 어디에 쓰라는 말이냐.”

“하, 하급?”

“폐하! 하급이라뇨?!”

레온의 태도에는 하리마저 경악했다. 아무리 이세계인이라지만, 이 팜플랫 사진으로만 전해지는 귀티를 보고도 저런 태도라니?

“이, 이것들은 최신예 마공학 공법을 적용해 압축한 합금으로 제조한 최고급품입니다. 이만한 물건은 어디에서도 쉽게 구하지 못하는──”

박 이사는 자신이 가져온 물건이 얼마나 대단한 기술력이 적용되었는지, 얼마나 값비싼 소재가 들었는지를 피력했다.

아무리 야만인이라도 이만한 설명이면 어린 아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라며.

하지만 레온의 관점은 전혀 달랐다.

“어찌 명검을 만드는데, 별의 기운을 쬐지도 않고 신성의 축복도 받지 않느단 말이냐? 너희들의 무구는 짐승을 사냥할 때만 쓰는 것이냐?”

저게 뭔 소리야. 뭐, 무기를 고추 말리듯이 햇볕에 말리고 기도문이라도 읊으라는 거야 뭐야.

놀랍게도 그 추측이 정확히 맞아들었다.

“어차피 짐의 성검과 성창에 비교하면 무엇도 이쑤시개 장난감에 불과하다. 쯧쯧… 어찌 축복성사도 읊지 않은 물건을 가져와서는.”

‘이, 이 야만인이!’

이런 놈들이 있었다. 생존자랍시고 자기세계가 최고라 여기는 작자들.

당장 드워프 같은 기술직 종족들만 해도 그런 자부심이 대단했다.

하지만 그들의 자부심은 현대 문명의 소재 기술력과 야금 기술 앞에 처절하게 무너졌다.

제아무리 드워프 명공이 수천 번 담금질 한 강철검이라 한들, 현대 기술과 마공학 기술로 공장에서 찍어낸 노말 장검 앞에 구부러졌으니까.

“하, 하하… 검에 대해 굉장히 자신감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폐하.”

“그저 당연한 사실을 말한 것뿐이다.”

그는 어디에선가 검을 소환했다. 아공간 기술? 하지만 어떤 마법적인 기운이 작용한 것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소환된 검은 낡은 철검이다. 여기저기 이가 빠져 있고, 낡아 무엇도 베지 못할 것 같은 검.

박종찬은 기가 차 그딴 쓰레기로 뭘 할 수 있겠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말문이 막혔다.

“불신이 가득하구나, 장사치.”

“오, 오해십니다.”

“뭐, 좋다. 장사치들이 제 물건을 띄우는 건 어디에나 있는 일이지.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다만 네 헌상품을 시범해주마.”

기가 찼지만, 박 이사는 고민이 되었다. 여기서 확실하게 격의 차이를 보여 저 자신감을 뭉개느냐, 아니면 적당히 져주고 기분을 좋게 만들까.

하지만 감히 두정 그룹의 기술력을 평가절하하다니… 박 이사는 어느 정도 기선제압이 필요하다 여겨졌다.

‘야만인 놈. 진짜 기술력이란 게 뭔지 보여주지.’

그는 금새 웃는 낯으로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야… 폐하의 보검이 내뿜는 광채를 저 또한 견식해보고 싶군요. 한하리 대리님?”

“네…….”

“무엇이든 마음에 드는 무구를 사용해보시겠습니까?”

하리는 레온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그도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4년 동안 동경만 해왔던 명공 박진철의 도검 ‘새벽녘’을 쥐었다.

특수 게이트에서 강렬한 태양의 기운을 쬐며 열흘 동안 단련한 무구다. 그 강도는 실로 최상급. 특수능력인 태양의 기운은 고강도 특수합금도 녹여버리는 융해력을 자랑한다.

불의 축복을 가진 그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상성 좋은 무기다.

“이, 이걸로 정말… 휘둘러도 될까요?”

“장난감을 휘두르는데, 어찌 일일이 어른의 허가를 받으려 드느냐.”

‘저 새끼가 끝까지…….’

정수리 끝까지 열이 뻗치는 것 같았지만, 곧 다가올 통쾌한 사이다를 기다리는 박 이사.

평생의 꿈의 무기를 쥔 하리는 감탄하면서도 레온의 무기가 부러질 경우를 걱정했지만, 대충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녀는 새벽녘의 특수기능까지 발동했고, 시뻘건 기운이 도신을 감싸면서 검날이 붉은색으로 변하였다.

“그, 그럼… 갑니다!”

전력으로 휘두른 검이 레온의 낡은 철검과 부딪친다. 결과는 두말할 것 없이──

-깡!

시원할 정도로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도신. 일격에 잘려나간 건 새벽녘이었다.

“어?”

“어…….”

휘두른 하리도, 박 이사도, 비서들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토막 난 도검을 보면서 무료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레온이 유일했다.

“설마 했지만, 정말로 이쑤시개로 쓸법한 물건을 가져왔구나. 치워라.”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박 이사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머리가 제대로 회전되지 않았다.

새벽녘은 고위 몬스터의 가죽과 뼈까지도 손쉽게 절삭하는 최고의 절삭력을 가진 무기였다.

두정그룹 기술의 정수가 총집합된, 그들이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단 말이다.

‘서, 설마 고유등급 무구?’

저딴 낡은 검이. 그럴 리가.

생존자들이 간혹 그 세계 최고의 무구인 고유등급 무구를 가지고 넘어올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격이 있었다.

저렇게 낡고 이빨 빠진 검 따위가 그런 무구일 리가…….

“‘불괴(不壞)조차 아니었나. 시간낭비였군. 알현의 시간을 줄이도록 하겠다. 3분 내로 할 말을 끝내라.”

“아, 아니… 그, 그… 아니?”

기선제압을 할 요량이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박 이사는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비서가 어깨를 흔들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래… 선물은 어디까지나 환심을 사기 위한 물건일 뿐이다. 십억짜리 무기가 토막 난 건 아쉽지만, 지금 중요한 건 고작 십억이 아니다.

“레, 레온 폐하의──”

“천한 장사치가 왕의 존함을 함부로 입에 담는 것은 어느 나라 예법이란 말이냐.”

“크윽… 폐, 폐하.”

까드득 깨문 이빨이 깨질 것 같은 소리를 낸다. 그는 살면서 이토록 무시당하고 천대받아본 적이 없었다.

“폐하… 께서 키우시는 작물 말입니다만. 저희 두정 그룹에서 독점적으로 공급받고 싶습니다.”

“내가 키우는 작물? 네놈은 짐이 농사꾼으로 보이더냐?”

“아,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폐하께서 호남 평야에서 자라게 하신 작물의 종자를 확보하고 이를 저희가 키우고 싶을 뿐입니다.”

“호오… 개종을 하겠다? 네 녀석의 입에서 그나마 반가운 소리가 나왔구나.”

“예?”

개종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린가.

“그 작물은 생명과 풍요의 신성을 섬기는 사제들이 축복하는 땅에서 자라는 것이다. 네가 그 사제가 되려 한다니. 장사치 주제에 제법 포부를 품었군.”

“아, 아니, 그게 아닙니다.”

“응?”

레온의 말을 따라가기 어려웠던 박종찬 이사는 이자에게는 말을 돌리는 게 무의미하다 여기고 곧장 본론을 말했다.

“저희는 그 쌀의 종자에 대한 특허권을 넘겨받고 싶습니다.”

“뭐라고?”

레온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박 이사는 서둘러 조건을 붙였다.

“물론 그 대가는 치를 것입니다. 저희 경영진의 계산으로는… 예. 1,800억원의 값어치를 가졌다 여겨졌습니다.”

물론 깎아내린 가격이다. 암조차 낫게 하는 슈퍼 쌀의 종자가 고작 1,800억원일 리가 없다.

하지만 이 무지몽매한 야만인에게 1,800억원의 가치를 설명해주면 아마 눈이 뒤집히겠지.

“돈으로 종자를 사고 싶다는 거냐?”

“바로 그렇습니다. 물론 저희 두정 미래식품만이 독점적으로 유통할 수 있다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셔야겠지만요. 아, 원하신다면 협상 여하에 따라 금액을 좀 더 올려드릴 수도 있습──”

박 이사는 어떻게 이 야만인을 농락할까 기대했다.

종자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아쉬운 것 없는 것처럼 굴며 법과 복잡한 유통망에 대해 어렵게 설명하며 상대를 농락한다.

타고난 비즈니스맨인 박종찬은 상대방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자신의 가치를 더하는데 재주가 있었다. 하지만──

“이 천한 장사치가 감히 신성을 모독하느냐!!”

그는 몰랐다.

그의 앞에 있는 건──

모든 신성을 대표하는 대리인이자 가장 신앙심 높은 종교인이라는 걸.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