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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

11화.

눈을 뜬 건 점심때쯤이었다.

“으윽!”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어제 적당히 마셨어야 했는데.

그런데 여긴 어디야?

바닥에 널려있는 만화책을 보니 택규네 집이라는 걸 알겠다.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앉아 있는데, 택규가 말했다.

“잘 잤냐? 너 해장하라고 햄버거 시켜놨어.”

“······.”

니가 먹고 싶어서 시킨 건 아니고?

해장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 육개장이나 짬뽕을 시켰어야지!

그러나 얻어먹는 처지였기에 난 군말 없이 바닥에 앉아 햄버거 포장을 뜯었다.

“어제 뭔 일 있었냐?”

“그게······.”

헤어진 전여친을 만났고, 뭔가를 예지했지.

난 말을 하려가다 멈칫했다.

내가 OTK컴퍼니 CEO가 된다는 걸 예지했다고 하면, 자기 회사를 뺏으려 한다고 오해하지 않을까?

그럴 마음은 조금도 없지만, 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얼버무렸다.

“잘 기억 안 나는데.”

택규는 당황했다.

“그럼 어젯밤 우리의 맹세는?”

“뭔 맹세?”

“친우여!”

난 택규의 입에서 날아오는 햄버거 파편을 손으로 막았다.

“알았으니까, 일단 먹고 얘기하자.”

빈속에 술을 마셔서 그런지 어쨌거나 배가 고프긴 하다.

난 햄버거 포장지를 벗기며 현실적인 질문을 던졌다. 

“너 투자해 본 적은 있냐?”

“나는 없지만, 넌 있잖아.”

택규는 금융과는 거리가 멀다. 반트코인도 투자목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온라인 게임 캐릭터와 장비를 처분하며 현금 대신 받았을 뿐이다.

그게 대박이 터질 줄은 본인도 몰랐겠지. 

뭐, 같이 WTI에 배팅한 게 투자라면 투자지만.

다행히 나는 투자경험이 좀 있는 편이다.

입학하자마자 ‘실전투자동아리’에 가입해 스터디도 하고, 계좌를 개설해 직접투자도 해봤다.

문제는······.

“그래봐야 100만 원으로 짤짤이 하는 수준이었지.”

더 큰 문제는······.

“그 중 절반은 날려먹었고.”

열심히 투자한 끝에 50만 원이 날아갔다. 수익률로 따지면 무려 ?50퍼센트다.

“그래도 한국대 경영학과 다녔으니, 뭐 좀 배웠을 거 아니야?”

“고작 1년 다녔는데?”

경영학과라고 하면 대단히 거창한 거 배우는 줄 알지만, 1학년 때는 전공과목은 고작 세 개뿐이다. 그나마도 수박 겉핥는 식의 원론적인 내용들뿐이고.

지금 내가 아는 지식들은 대부분 동아리 활동을 하며 배운 것들이다.

“지금 계좌에 얼마나 있지?”

“1255만 달러 정도.”

“대충 138억인가?”

“니 돈 빼면 딱 130억이네.”

WTI를 매수한 덕분에 63만 달러가 늘었다.

일반인들은 평생 동안 구경도 못해볼 거액이다. 과연 이 돈으로 뭘 할 수 있을까?

투자에 있어서 자본의 크기란 대단히 중요하다.

1000만 원으로 1억을 벌기 위해서는 1000퍼센트의 수익을 내야 하지만, 100억으로는 단 1퍼센트 수익만 내도 된다.

택규가 WTI에 투자해 7억을 쉽게 벌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뭐, 자본이 크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날려먹을 때도 크게 날려먹는다는 거지만······.

어쨌거나 짤짤이 할 때보다는 상황이 낫겠지.

“그럼 뭐부터 시작해볼까?”

택규는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봐왔지만, 이렇게 의욕 넘치는 모습은 오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대체 130억이나 있는 놈이 뭐가 아쉬워서 투자를 하고 싶어 하는 거야?

이자만 받아도 평생 먹고 사는데 지장 없을 텐데.

“돈 벌어서 뭐하고 싶은데?”

내 물음에 택규는 눈을 껌뻑거리며 되물었다.

“뭘 하고 싶어야 하는데?”

돈만 있으면 할 게 넘쳐나는 세상이다. 다들 돈이 없어서 못할 뿐이지.

“좋은 집이라든지, 좋은 차라든지.”

“이 집도 살 만하고, 지금 차도 마음에 드는데.”

택규는 음식은 아무거나 잘 먹고, 옷은 있는 대로 주워 입었다. 취미활동을 제외하면 딱히 손을 쓰는 곳도 없다.

“그럼 왜 돈을 벌려는 거야?”

택규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돈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야.”

“······.”

너무 맞는 말이라 반박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재밌잖아.”

원래 벌 때는 재밌다. 잃을 때 재미없어서 그렇지.

이번에는 택규가 나에게 물었다. 

“그러는 넌? 돈 벌어서 하고 싶은 거 있어?”

“나중에 말해줄게.”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지를 해야 한다.

저번처럼 눈앞에 홀로그램이 떠올라야 하는데. 그런데 이게 언제 어떻게 떠오를지 분명하지가 않다.

난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확실하진 않지만, 특정 정보를 접했을 때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느낌이었다. 

과연 택규의 말대로 금융에 관련된 것들을 예지할 수 있을까?

“일단은 정보가 필요해.”

* * *

난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당분간 택규네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며칠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최근에 올라온 경제 관련 기사들을 모조리 읽어보았다. 그리고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대형주들을 시가총액 순위대로 일일이 살펴보았다.

매일 같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들이 올라왔다. 투자에 있어서 정보는 자본만큼이나 중요했다. 

그 정보에 따라 주가, 유가, 금값, 환율, 채권수익률 등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요즘은 공시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어서 기관과 기업들은 의무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올려놓았다.

때문에 클릭 몇 번으로 얼마든지 호재와 악재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가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는 정보는 정보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호재든 악재든 가격에는 이미 선반영 되어 있었다. 

좋은 일이 있을 주식은 충분히 올라 있었고, 나쁜 일이 있을 주식은 충분히 떨어져 있었다.

공시된 정보를 보고 매매에 나섰다가는 뒷북치기 십상이다.

마운틴힐 파산이나, 오펙 감산합의처럼 다른 사람은 모르나 나만 아는 정보가 필요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눈알이 빠져라 모니터를 들여다봤지만, 눈앞에 떠오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좀 반응이 와?”

“전혀.”

알게 된 거라고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개판이고, 경제상황이 IMF 때만큼이나 힘들다는 것뿐이다.

“예지를 한다고 해도 바로 뭐가 이뤄지는 건 아니잖아. 천천히 생각해.”

“······.”

내가 지나치게 조급해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택규가 말했다.

“그런데 하기 전에 계약서부터 써야 하는 거 아니야?”

“무슨 계약서?”

“번 돈을 반반씩 나눈다는 계약서 말이야.”

“그런 것도 받을 놈한테 받아야 의미가 있지 않나?”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다.

얘가 약속을 안 지킬 놈이었다면, 애초에 나한테 5억을 보내지도 않았겠지. 8억이라는 돈을 택규 계좌에 맡겨 놓고 있으면서도 걱정되지 않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규는 굳이 계약서를 써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손실은 택규가 전부 책임지고, 수익은 반씩 나눈다는 내용이었다.

“누나가 그러는데 친한 사이일수록 이런 건 확실히 하래. 너도 사인해.”

우리는 각자 두 장의 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한 장씩 나눠가졌다. 

난 계약서를 접어 지갑 안에 집어넣은 다음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나 한 잔 마셔야겠다.”

냉장고를 열자 안에 맥주와 콜라, 주스 등이 들어 있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택규는 음료는 무조건 달아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니 살이 찌지.

커피를 사러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띠리링!

처음 보는 번호였다. 스팸인가?

난 일단 받아보았다.

“여보세요.”

[강진후 선배님 핸드폰 맞나요?]

여자 목소리였다.

“그렇긴 한데, 누구······?”

[아! 저 신유리예요, 선배님.]

“신유리······?”

[예. 기억하시죠?]

난 술자리에서 봤던 신입생을 떠올렸다. 금발이라는 특징 때문인지 금방 기억났다.

“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전역 후 새로 개통한 핸드폰이다. 때문에 번호를 아는 사람도 몇 명 없다.

[민영 선배님께 물어봤어요.]

“아아.”

이 자식이 남의 개인정보를 이렇게 함부로 넘겨주다니.

[혹시 지금 어디세요?]

“강남인데······.”

그러자 유리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잘됐네요. 저도 강남인데.]

“그래?”

그런데 뭐가 잘됐다는 거야?

[지금 뭐하고 계세요?]

“커피 사러 나가려고 하는데.”

[더 잘 됐네요. 저도 커피 마실 생각이었는데. 괜찮으시면 같이 카페 가실래요?]

“응?”

갑자기 보자고? 왜?

[강남 어디세요?]

“여기 언주역 쪽.”

[그럼 논현동에 있는 리디아 커피랩은 어때요? 선배님 계신 곳에서 가까울 거예요.]

어차피 커피 마시러 나가려고 했으니.

“알았어. 언제까지 가면 돼?”

난 전화를 끊고 옷을 대충 챙겨 입었다.

게임을 하던 택규가 물었다.

“어디 가게?”

“커피 좀 마시고 올게.”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도시락 좀 사와.”

“······.”

돈도 많은데, 좋은 것 좀 먹자. 

* * *

유리가 말한 카페는 택규네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걸어서 15분?

횡단보도를 건너고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자 언덕 중간에 있는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입구 쪽 야외테이블에 패딩을 입은 20대 초반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짧은 스커트 아래로 타이즈를 입은 늘씬한 다리가 드러나 보였다.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스마트폰을 보던 그녀는 내가 다가가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 안녕.”

난 손을 들어 인사를 받았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머리카락이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경영학과 학생 중에서 이렇게 화려한 머리스타일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한국대 분위기가 보수적인 데다가 교수들도 깐깐해 왠지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조명이 어두워 자세히 못 봤는데, 밝은 데서 보니 꽤나 미인이다. 어째서 경일이가 그렇게 친절하게 대했는지 알 것 같다.

그나저나 왜 보자고 한 거야?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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