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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0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120화

37장 기억(2)

“……지워졌다고?”

퀴니에는 부채를 펼쳤다.

경계를 위한 자세였다. 한눈에 봐도 이 남자 우호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기억이 ‘지워졌다’니. 마치 이 남자가 일부러 기억을 지우기라도 했다는 듯이.

퀴니에 본인이 정말로 기억이 지워져 있는지는 둘째 치고, 누군가의 기억을 지우려 한다면 그 저의에 악행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무슨 소리죠? 제 기억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만.”

“아하하하. 그게 인간의 신기한 점이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도록 맞춰져 있다는 거. 분명 과거의 너라면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 지금 네 모습에는 심각한 모순이 있다는 걸.”

“……과거의 저라고요?”

퀴니에가 되묻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가면 안쪽에 무슨 얼굴을 하고 있는지 퀴니에는 알 수 없었으나.

“그래. 13년 전의 너 말이야.”

그 목소리는 분명 한층 낮아졌다.

퀴니에는 섬찟한 한기를 느끼고 잠깐 입을 다물었다. 다시 열린 그 입술이 살짝 떨렸다.

“……그때는.”

“그래. 너의 ‘시체 공포’가 시작된 날이지.”

이 남자는 퀴니에의 과거, 약점을 알고 있다. 즉 콘스텔의 마법 대자보도 이 남자가 썼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도, 남자의 말을 허투루 흘릴 수 없게 되었다.

“이상하단 말야. 그 날의 ‘사건’을 겪고 공포를 갖게 된 네가, 어떻게 그 들짐승을 데리고 다니는 거지?”

“……들짐승? 설마 당신.”

“그래. 코라 말이야.”

코라, 코라가 왜? 그 아이의 이름이 지금 왜 나오지?

그 날의 사건과 코라가 무슨 관계가 있길래.

“이상하단 말이지. 퀴니에.”

남자는 말했다.

“그놈이 대량 학살을 저지르는 꼴을 눈앞에서 봤잖아. 6살의 나이에.”

“……!”

“주변의 인간들을 평등하게 찢어죽인 꼴을 보고, 바닥에 여기저기 널린 시체들을 보고, 상체는 여기에, 하체는 저기에 가 있는 우스운 꼴을 보고, 시체가 무서워졌잖아?”

“……개소리 마. 내가 공포증이 생긴 건 저택을 습격한 늑대 때문에.”

남자는 퀴니에의 반론에 크크크,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런 식으로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런 식이라니. 그게 아니면 뭔데.

코라가 사람을 죽여? 대량학살?

그딴, 그딴 개소리를 내가,

타타타탓-!

그때 퀴니에의 방을 향해 뛰어오는 발걸음이 들렸다.

사람이 뛰어온다기엔 너무 잦은 발걸음 소리. 이건.

“오, 완벽한 타이밍.”

남자는 말했고, 퀴니에는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오지 마! 코라!”

벌컥!

방문이 열리고, 퀴니에는 다시 창가 쪽을 바라보았다. 분명 가면을 쓴 놈이 코라를 노린다고 생각했기에.

허나 놈은 없었다.

“어?”

남자는 도망쳤는지, 창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퀴니에 괜찮아? 누가 왔었지?”

코라가 다가와 물었다.

퀴니에가 끄덕이자, 코라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그 코를 찡긋거렸다.

“퀴니에의 방 근처에서 낯선 냄새가 났어. 기분 나쁜 냄새야. 악취를 가리려고 더 악취를 만들어냈어. 처음엔 맡기 어려워도 눈치챈 다음부터는 아주 역겨운 냄새가 나.”

코라는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그의 특출난 눈으로도 남자를 찾진 못한 듯했다.

퀴니에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코라가 학살을 저질렀다고?’

나는 그것 때문에 공포증에 걸렸고?

믿을 수 없어. 당연히 거짓말이다.

……다만 그 때 사건의 기억은 분명 희미하다. 분명 늑대가 습격한 것으로 머리 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그 이미지는 하얀 털이 수북한, 네발짐승의, 붉은 눈을 하고…….

“퀴니에?”

“……!”

퀴니에는 코라의 목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코라가 그녀를 걱정스러운 듯 보고 있었다.

“퀴니에, 어디 다친 거야?”

“아, 아냐. 괜찮아.”

퀴니에는 코라를 보았다.

13년 전의 일. 기억이 희미하다. 희미한 건지, 아니면 남자의 말대로 정말 지워진 건지.

……코라가 아냐. 그럴 리가 없어.

퀴니에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 * *

“흐음. 역시 날 기억하지 못하는군.”

가면의 남자는 높은 나무의 가지 끝 위에 서 있었다. 뾰족한 가지 위에 발 하나를 딛고 균형을 잡았다. 그것이 외려 편하다는 듯.

“퀴니에가 가진 나에 대한 기억은 내가 지운 거지만, 그 과정에서 사건에 대한 기억에도 변화가 생긴 모양이야. 흥미로워.”

남자는 마치 연구하듯이 중얼거렸다.

오늘은 13년 전의 사건 당시의 자신을 퀴니에가 기억하고 있는지 재확인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기억을 없애긴 했어도, 퀴니에의 입장에선 너무 강렬한 충격이라 미처 지워지지 않았을 수도 있기에.

그런데 뜻밖의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사건에 엄연히 존재하는 자신의 기억을 쏙 빼고 나니, 그 빈자리의 모순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퀴니에의 기억이 알아서 재조정된 것이다.

“물론 코라마저 그 기억에서 삭제된 건 의외이긴 했지만.”

어쩐지. 코라를 옆에 두고 있는 게 이상하다 싶더라니. 이대로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코라를 먼저 제거해야지.”

그리 어려울 건 없다.

그저 13년 전을 반복하면 될 뿐.

“때가 됐어, 퀴니에. 가주의 자리에서 물러날 때야.”

남자는 이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퀴니에가 다시 가문을 부흥시켜, 주변 가문들과의 관계까지 안정화할 이 때를.

“망각의 삶은 지쳤어.”

중얼거리며 남자는 가지 끝에서 바로 아래 나뭇가지로 훌쩍 뛰어내렸다.

이제 코라를 없애고 계획대로만 된다면.

비에트 가문은 그의 것이 된다.

“응?”

문득 시선을 느껴 남자는 좌측을 보았다.

까악-

까마귀가 있었다.

까마귀는 그를 보고 좌우로 고개를 갸웃하다가, 푸드덕 하고 날아올랐다.

그걸 잠시 보다가, 남자는 다시 비에트 가문의 저택을 보며 풋 웃었다.

“그럼 또, 콘스텔에서 보자. 퀴니에.”

* * *

[재수 없는 놈이었어.]

“그러네.”

나는 창가에 앉은 까마귀에게 퀴니에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셀레나에게 고대어를 가르치던 도중 어떤 생각이 닿아 그레고리에게 서둘러 일을 맡겼다.

수확은 충분하다 할 수 있었다.

“……기억이라.”

아무래도 적은 타인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것 같다.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추측이 맞아떨어진 모양인데.’

나는 ‘코라’라는 캐릭터를 알지 못한다. 그 정도로 희귀한 수인인데도 불구하고, 본 적도 없고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러나 그게 이미 ‘코라’라는 존재가 게임 내에서 지워진 것이라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기에, 게임에선 처음부터 언급조차 되지 않는 거라면.

‘주인공 아스터는 퀴니에와 제대로 된 접점을 가지는 건 졸업 이후.’

즉 코라가 그 이전에 모두에게 잊혀진다면, 당연히 플레이어도 코라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코라의 존재를 아무도 모른다. 플레이어조차도.

[놈은 코라를 죽이려는 것 같은데.]

“그러게. 개인의 기억을 지우는 건 그냥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그 존재를 모두의 기억 속에서 없애려면 죽여야 하는 조건이 필요한 것 같네.”

내 말에 까마귀가 고개를 까닥였다. 그게 그레고리가 그러고 있는 건지, 까마귀의 반사적인 행동인지는 내 눈으로 구별이 가지 않았다.

[기억을 지우는 것만도 어마어마한 능력인데, 그 사람의 존재를 모두의 기억 속에서 없앤다고? 아무리 ‘살인’이라는 조건이 붙는다지만 그게 가능한가?]

그러게 말이다.

나는 그레고리의 말에 너무나 깊이 공감해 의자에 몸을 푹 눌렀다.

그리고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신이지.”

[신……. 놈에게 신력이 있단 말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의 기억을 잃게 하는 건 그렇다쳐도, 모두의 기억에서 존재를 없애버린다?

그런 게 가능한 건 내가 알기로 하나뿐이다.

“망각의 여신, 레테. 아마 그녀의 신력일 거야.”

[레테……. ‘레테의 강’의 그 레테인가?]

“그래. 사람이 환생하기 전에 레테의 강물을 마시면 이전 삶의 기억을 전부 잊는다고 하잖아.”

어디까지나 게임 속, 그러니까 이 세계에서의 이야기지만.

죽은 사람이 레테의 강물을 마신다는 건, 본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잊혀진다는 뜻이다.

흔히들 말하는 ‘두번째 죽음’.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기억에서마저 사라진다는 그것이다.

그래서 죽은 영혼이라도 환생은 백년이 넘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레테의 강물을 마시고,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도 현생을 사는 사람들의 괴리가 커지지 않도록.

[그러면 그 가면 쓴 남자가 사람을 죽이는 건.]

“그래. 신력을 이용해 레테의 강물을 마시게 하는 거지.”

[무서운 신력이군.]

“그래도 약점은 있어. 약점이라기보단 한계 지점이랄까.”

[뭐지?]

“너무 유명한 인간은 레테의 강이 통하지 않아.”

[유명……? 아, 그렇군.]

사람들의 전승으로 오르내릴 정도의 업적, 문헌에 기록될 정도의 무훈,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영웅적 서사.

이들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는다. 더욱 미화되고 신성화 되어 그 존재가 강력해진다.

사람이 기억을 잊은들, 그 기록과 역사의 증거들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오히려 화려하고 과장되게 쓰여진 기록들만이 남아 영웅을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

“그래서 환생도 못해 영웅들은. 신의 자리에 오른다든가, 별자리가 된다든가 하는 얘기 들어봤잖아?”

[그렇지. ‘조디악’ 말인가.]

테르스트 제국에서 지정하는 12명의 인간병기, 조디악.

지금은 그저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12명을 칭하고 있으나, 본래는 그 이름답게 사후 별자리에 오를 것이 예정된 사람들임을 뜻했다. 그들은 그만한 업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나도, 퀴니에도, 코라도 이렇다 할 업적이 없으니.”

[전혀 막지 못한다는 거로군.]

그렇다.

아마 가면 쓴 남자가 코라를 노리고 있다면, 코라뿐만 아니라 퀴니에까지도 위험할 거다. 코라가 죽으면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질 테니, 아무런 이변도 깨닫지 못한 채 퀴니에가 다음 타겟이 되겠지.

‘하지만 퀴니에는 분명히 캐릭터로서 존재한단 말이지.’

남자가 코라처럼 퀴니에를 죽였다면 당연히 두 캐릭터 모두 다 내가 몰랐어야 정상이다. 둘 다 게임 내에서 지워졌을 테니.

즉 본래의 세계에서는, 남자는 코라를 죽이는 건 성공했지만 퀴니에는 실패했다는 얘기인데.

……아니면.

‘놈은 애초에 퀴니에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놈을 어떻게 할 거지? 가면은 쓰고 있지만 그 체구는 기억했다. 어디서 나타날지만 알면 눈대중으로 어림잡을 수 있을 텐데.]

“어디 나타나는지는 뻔해. 콘스텔이야.”

놈은 십중팔구 콘스텔의 학생이다. 아니면 학생인 척을 하고 있거나.

코라의 떠벌림을 이용해서 퀴니에를 노리고 소문을 퍼트렸을 테니, 분명 평범한 사람처럼 퀴니에에게 접근했겠지.

[그럼 내일 퀴니에에게 물어보면 되겠군. 놈은 그녀와 가까운 사이일 테니.]

“말했잖아. 놈은 기억을 지울 수 있어. 퀴니에랑 대화를 한 뒤에도, 퀴니에 본인은 기억을 못할 수 있다고.”

[귀찮은 놈이군.]

나는 잠시 생각했다.

놈은 분명 귀찮은 상대다. 한걸음 잘못 내디뎠다간 녀석에 대한 기억을 까먹고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생각을 정한 나는 세이지폰을 들었다.

우선 보험 정도는 깔아두자.

나는 퀴니에에게 문자를 전송했다.

[선배. 안경을 구비해 주세요. 항상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걸로.]


           


The Academy’s Weapon Replicator

The Academy’s Weapon Replicator

AWR,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Etius, a game that no one has cleared. [GAME OVER] The moment all possible strategies failed, “Student Frondier ?” I became an Extra in the game, I became Frondier! [Weaving] •Saves and replicates images of objects. However, it is an illusion. All I have is the ability to replicate objects as virtual images! [Main Quest: Change of Destiny] ? You know the end of humanity’s destruction. Save humanity and change its fate. “Change the fate with this?!” Duplicate everything to carve out my dest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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