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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1

120. 소꿉친구 – 회의

고풍스럽게 장식된 수도교회의 한 회의실에서 열여덟 명의 노인이 거대한 원형 탁자에 둘러앉았다. 모두가 남성이었고, 백색의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면 벨리타 왕국과 아스틴 왕국의 전쟁에 대해서는 성녀님의 말씀대로 왕실더러 불참하라 이르도록 하지요. 다음으로 넘어갈까요?”

그들이 바로 수도교회의 중추를 이루는 열네 명의 대사제와 네 명의 추기경들이었다.

밝은 노란색 숄(shawl)을 두른 사람이 대사제, 진한 보라색 숄을 두른 사람이 추기경이었는데, 개중에 미하에르 추기경만이 어떤 장식도 없는 남루한 사제복 차림이었다.

“이번에는 아스터 왕국입니다만, 여기는 현재로서는 특기할 만한 소식이 없었습니다. 최근 왕이 파블로 드 클라우스 왕자를 아이셀 왕국의 공주와 만나게 하려고 하였으나 왕자가 완강히 거부하는 바람에 무산됐다는 걸 제외하면요.”

노인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북부 왕국에 관한 안건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다음 차례를 받은 대사제가 서류뭉치를 나누어주었다.

아이셀 왕국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대륙을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것이 분명했다.

“아이셀 왕국의 정계는 다소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작년에 제1 왕자인 ‘비비안 드 이사도라’가 후계자로 선정되었음에도 제2 왕자인 ‘오스카 드 이사도라’를 따르는 세력이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력이 워낙 강성해서…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왕위를 놓고 피바람이 불지도 모를 상황입니다.”

놀랍게도 그는 대륙 동부에 있는, 신성왕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마법 왕국의 정계 상황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하지만 둘러앉은 이들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곳이 수도교회이기 때문이다.

십자교회는 대륙의 모든 통신을 담당했다.

사제들은 거룩한 신력을 이용해 거리와 관계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이를 통하여 대륙 각지의 정보를 수집해 수도교회(십자교회의 본단)로 보냈다.

귀족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도 통신하는 사제의 귀에 들어와 보내졌기에 수도교회는 대륙 최고의 정보기관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었다.

“피델리오 추기경께서 따로 언급한 사항은 없으십니까?”

미하에르 추기경의 질문이었다.

서로가 대등할 수밖에 없는 원형 탁자였고 말투도 젊잖았으나, 그는 마치 상석에 앉아 묻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다른 세 명의 추기경들은 그런 그의 태도에 불만이 없어 보였다. 대사제가 공손하게 답했다.

“그분은 정보를 전달해주셨을 뿐,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피델리오 추기경께 조심하라고 전해주십시오. 그분이 아이셀 왕국에 발령이 난 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었습니다. 이리저리 친분이 생긴 귀족들이 많을 것인데… 자칫 정치싸움에 휩쓸려 봉변을 당할까 걱정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더 공유할 사항이 없으시다면 다음으로 넘어가지요.”

“콘라드 왕국입니다. 에릭 드 예리엘 왕자가 스스로 후계를 자처한 이후로 큰 변화는 없습니다만, 최근 온 왕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이 벌어졌습니다. 테르탄 공작의 손자가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또요?”

보라색 숄을 두른 추기경이 놀랍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만한 대귀족의 후계자가 살해당하는 일이 또 벌어졌다는 말입니까? 작년에는 벨리타 왕국에서 포르테 백작가의 후계자가 살해당하지 않았습니까. 그… 길버트 포르테였던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닌 듯하답니다. 루티나 교회에서 전달해온 사항에 따르면, 십여 년 전 레오 드 예리엘 왕자를 따르던 근위기사가 벌인 짓이라고 하더군요.”

“언제 벌어진 일입니까?”

“그것이… 작년 늦가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크흠.”

좌중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루티나 교회.

콘라드 왕국 수도에 있는 그 교회는 수도교회의 일에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왔다. 그 까닭은 콘라드 왕국으로 파견된 ‘베르크 추기경’ 때문이었는데…

열일곱 명의 노인들이 헛기침해 어색한 분위기를 풀려고 했다.

“…베르크 추기경은 매년 그즈음에 순례를 다녀오지요. 아마 그것 때문에 전달이 늦어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자,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지요. 오른 왕국 차례이겠지요?”

미하에르의 말에 분위기가 눈에 띄게 밝아졌다. 하지만 그가 수습을 했다기보다는 당사자가 용인하고 넘어가서 다행이라는 분위기였다.

베르크 추기경과 미하에르 추기경의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개인적인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들은 십육 년 전에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 이는 [만인사제설] 이후 수도교회를 다시 한번 뜨겁게 달군 설전이었다.

두 사람 모두가 현존하는 최고의 신학자이기 때문이다.

그 논쟁에 딱히 승자가 있지는 않았다.

다만, 얼마 있지 않아서 갓 추기경이 된 베르크 추기경이 멀리 콘라드 왕국으로 발령이 났다.

아주 우아한 방식으로 수도교회에서 쫓겨난 것이다.

“네, 오른 왕국에서는 올해 아키네를 치른다고 합니다. 예상대로 제1 왕자인 ‘애톤 드 로그넘’ 왕자가 후계자로 지목되었고, 아이셀 왕국과는 달리 분쟁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키네가 열리는 날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아마도 쌍둥이 왕자의 생일에 열릴 것으로 사료됩니다.”

오른 왕국을 담당하는 대사제는 이렇게 말함과 동시에 더 이상 보고할 것이 없다는 듯이 꺼냈던 서류를 정리했다.

미하에르 추기경이 물었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건 어떻게 되었습니까? 네비스의 깡패조직이 몰살당했다는 것 말입니다.”

“아, 그것은 별것이 아니었던 듯합니다. 그때 이후로 불법으로 무기 사업을 하던 깡패조직에서도 학살극이 벌어졌다는데… 네비스 교회에서 알아본 바에 따르면 가이단 후작이 벌인 일 같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연달아 벌어졌는데도 따로 보고가 없었단 말입니까?”

미하에르 추기경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교회에는 대량의 살인 사건, 또는 연쇄적인 살인이 벌어지면 반드시 급보를 올리게 되어 있었다.

그의 추궁에 당황한 대사제는 다시 서류를 뒤적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게… 네비스 교회의 보고에 따르면 깡패들을 두고 귀족들이 신경전을 펼쳤으리라 예상했던 것이 옳았다고 합니다. 늦가을 즈음에 테오빅 패밀리라는 무기 사업을 하는 깡패조직이 대규모 상단을 보냈는데, 그것이 습격을 당했고, 무기를 실은 마차들이 은밀하게 가이단 후작의 영지로 보내졌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가이단 후작은 왕자들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정황을 미루어 볼 때, 후계자 수여식을 앞두고 그 알력다툼이 불거지려는 듯하다는 게 네비스 교회의 결론입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경계의 끈을 놓지 말라고 전해주십시오. 악신을 믿는 이들은 아직 박멸되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안심할 단계가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네비스 교회에 조사를 게을리하지 말라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방금 대규모 무기 상단이 습격당했다고 하셨는데, 규모가 어떠하였습니까?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다는 거지요?”

미하에르 추기경이 세세하게 질문하자 다른 추기경들은 그의 병이 또 도졌다고 생각했다.

‘고대 신학사’에 정통한 미하에르 추기경은 유독 악신의 위협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아즈라 성인 이래 천 년간 큰 문제가 발발한 적이 없어서 그의 걱정은 다소 지나쳐 보이는 것이었다.

간혹 자잘한 악신의 추종자들이 사고를 쳤다는 기록은 있지만, 금방 제압되었고, 그것이 악신이라는 초월자에 의한 사건이었는지 아니면 잘못된 신앙을 가진 이들이 미쳐 날뛴 것이었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병이 도진 미하에르가 심각하게 되물었다.

“사백 명이 호위하는 상단에서 생존자가 없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가능이나 한 일입니까?”

“가이단 후작이 기사들을 동원했다면 그 정도는 간단했을…”

“그것은 말이 안 됩니다. 방금 후작과 대립하는 귀족들이 아키네를 기다리며 관망 중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후작이 그렇게 대놓고 일을 벌였다면 그들도 무슨 행동을 취했어야만 합니다. 그러지 않고 있다는 건… 후작이 일을 벌였음을 그들이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만약 기사를 동원했다면 분명히 알아챘을… 잠깐.”

미하에르 추기경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무언가 한 가지가 더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가이단 후작은 불신자이지요?”

후작의 과거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축복을 받은 조랑말에게 걷어차여 사망한 사건이다.

많은 신학자들이 신의 뜻을 해석하기 어렵다는 점을 예시로 들 때 반드시 언급되는 사건이기도 해서 추기경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 그렇습니다.”

“…성전사단을 네비스 교회로 보내세요. 이건 어쩌면 끔찍한 재앙의 전조일지도 모릅니다.”

“재앙이라 하시면…?”

“악신의 사도가 등장했을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가이단 후작이 사도일지도…”

어이쿠, 또 시작이로구나.

미하에르 추기경이 “이럴 때가 아닙니다. 성녀님을 뵈어야 하겠습니다.”라며 벌떡 일어나 달리자, 추기경들과 대사제들은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악신의 사도라니.

그런 전설을 이렇게까지 믿고 경계하는 이는 미하에르 추기경이 유일했다.

사실 그릇된 신을 믿는 야만인 부족을 축출하는 교회의 사업도 삼십여 년 전에 미하에르 추기경의 주창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그런데 수많은 야만인 부족을 몰살하면서도 사도라던지 하는 것은 등장하지 않았다.

조금 요상한 술수를 쓰는 제사장이 드물게 있었으나, 그것도 사제의 신성주문 앞에서 무력했기에 미하에르 추기경은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아서, 이제는 ‘훌륭한 성직자이지만 다소 노망이 들었다’는 취급을 받았다.

거의 사십 년 전에도 추기경이었던 인물이라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어쨌거나 추기경들은 미하에르 추기경을 따라갔고, 역시나, 성녀로부터 별 볼 일 없는 답변을 받았다.

“아무도 신탁을 내려주지 않으시네요. 비나르 신께서만 말씀해주셨는데 지난번과 같아요. 주신께서 놓은 세 가지 강물이 순리대로 흐르고 있을 뿐이라고…”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큰일은 아닌 모양이군요. 호들갑을 떨어서 죄송합니다.”

“아, 한 가지 말씀이 더 있으셨어요.”

안도하려는 미하에르에게 성녀가 말했다.

“저더러 무슨 일이 있어도 수도교회에서 움직이지 말라 하셨어요. 올해 가을까지요. 그때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시네요.”

“가을에요?”

“네. 무슨 뜻인지는 저도 알 수가 없네요. 제가 가을에 할만한 일은… 글쎄요? 수습생들에게 의식을 치러주는 것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는데…”

텄다, 텄어.

추기경들은 혀를 찼고, 미하에르 추기경이 말했다.

“…하오면 성전사단을 오른 왕국으로 파견해도 괜찮겠습니까? 무언가 조짐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도록 하세요. 신께서는 보내라고도 하지 않으셨지만 하지 말라고도 하지 않으셨으니까요. 이건 우리가 선택할 일이겠지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손히 읍하며 성녀의 방을 빠져나온 미하에르 추기경은 무서운 속도로 출정시킬 기사단을 꾸렸다.

신탁이 없었고, 다른 추기경들의 반대가 있어서 절반만 보내기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그의 고집으로 야만인들을 상대해본 경험이 있는 사제들이 일부 포함됐다.

‘큰일이 아니어야 할 텐데…’

미하에르 추기경이 한숨을 쉬었다.

주신은 너그럽지 않았다. ‘고대 신학사’에 박식한 미하에르는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순리대로.

일견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하여 길을 깔아두신 것 같지만, 결과론적인 이야기였고, 그 과정은 당대의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대학살이라던지…

역사에는 단 몇 줄로 짤막하게 기록되었을 뿐이지만, 당사자들에겐 크나큰 비극이었으리라.

그래도 십자교회의 상징을 번쩍이며 출정하는 백오십 명의 성전사들을 보며 미하에르 추기경은 마음을 놓았다.

악신의 사도.

역사에 기록된 사도들이 대단하지 않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힘을 불리는 과정이 극도로 느렸을뿐더러 수천 명을 살해해 제물로 삼고도 고작 이백 명의 성전사와 사제들, 기사들의 합공을 당해내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오리아스(Oriax)라는 악신을 섬겼던 사도에 대한 기록이 최악이자 대표적인 사례였다.

역사보다는 신화의 영역에 더 가까운 토들러 아키우넨과 아즈라 성인이 처치한 아신들을 제외하면 가장 강력했다는 것이 그 정도였으니, 지금 십자교회를 떠나는 전력(戰力)이면 설령 가이단 후작이 사도일지라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출정식은 간소하게 끝이 났다.

미하에르 추기경은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가 오른 왕국의 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사이먼 백작가’ 방면으로 순례를 다녀오려던 계획도 미루고…

마차에서 읽으려고 빌렸던 책은 도서관에 반납되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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