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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6

126화 농노로 거인을 잡는 법

“뭘… 잡으라고요?”

“거인을 잡으라 했다.”

“”?????””

의문으로 도배되는 일동. 농노들도 자기들이 무슨 소릴 들었는지 의아해하는 눈치다.

“저… 그러니까… 이곳의 필드보스인 저 거인들을… 잡으라고요?”

협회가 보유하고 있는 주황색 게이트다.

강력하지만, 고가치의 드랍 아이템인 거인의 피부나 손톱 등이 나오기에 레이드 보스 공략 훈련 겸 해서 유지 중인 게이트.

다만 거인이 워낙 강력한 개체이기에 협회에서노 최소 B급과 A급으로만 구성된 정예 공략대 정도가 훈련 삼아 찾아올 수 있는 곳.

하리도 신참 시절에 와본 적이 있기에 저 거인들이 얼마나 강력한지 안다.

신장이 기본 8m에 이르고, 들고 있는 무장은 방망이에 불과하지만 그 사이즈가 백 년 묵은 고목 수준이다.

몽둥이질 한 방이면 농노병들은 열댓 명씩 죽어나갈 것이다.

최소 A급의 필드보스. 본래라면 다수의 공략대가 레이드를 해야 하는 대상. S급 헌터 정도가 아니면 단독 공략이 불가능한 레벨이다.

“아, 설마 그건가요? 농노분들로 주의를 끈 다음에 저희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시려고요?”

“농노병들로만 잡아야 한다.”

“……단검밖에 없는데요?”

“문헌에는 단검으로만 잡았다고 하지.”

어떻게?

의문 가득한 네 명의 기사들에게 레온은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한 가죽책을 넘겼다.

“성배기사 그라타스 경의 ‘농노로 거인을 잡는 법’이라는 성서에 이르면 거인을 잡는데는 단검으로 무장한 오백 마리의 농노로 충분하다 하였다.”

”안 충분한데요?!”

하리와 기사들은 레온의 태연자약한 태도를 보고 이해하고 말았다.

‘폐하께선…! 농노들이 다 죽든 상관없으신 거야!’

농노들의 전투력은 높게 잡아줘도 D급 헌터였다. D급 헌터가 아무리 모인들 최소 A급 필드보스인 거인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앞서 판단하지 마라. 짐은 농노들을 전부 죽일 작정으로 이러는 것이 아니다. 그라타스 경은 실제로 농노 오백으로 거인을 잡아냈음이야.”

“며, 몇 명이 죽었는데요?”

“삼백 쯤 죽었다지.”

“거, 거 봐요! 완전 대학살극이네!”

오백 중 삼백이 죽었다. 절반 이상이 죽었단 소리다. 듣던 농노들의 안색이 파리해졌지만 레온은 신경 쓰지 않았다.

“농노 버러지들 목숨을 누가 신경 쓴다고.”

“저, 저는 신경 쓰는데요? 너희들도 그렇지?”

“어, 하리 선배님 저는 음…….”

왜 저희들까지 끼우시나요, 하고 말하고 싶은 재혁이었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도 오백 중 삼백을 희생해야 하는 자살특공은 영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저는 신경 안 써요.”

“천소연?!”

모두가 경악하는 시선으로 고개를 돌린다. 천소연은 뭘 쳐다보느냐는 듯 시니컬한 표정이다.

“폐하께서 뜻하신 바가 있겠지. 애초에 악마 추종자들이잖아. 몇 명 좀 죽으면 어때.”

“아니이이…! 그래도오……!”

하리는 냉혹하기 짝이 없는 후배의 발언에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폐하께선… 뭔가 깊은 뜻이 있으신 거죠?”

보다 못한 수호의 질문. 수호는 이 야만적이고 차별적으로 보이는 계급주의자가 항상 깊은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이번에도 무언가 자신들이 모르는 게 있지 않을까?

“아니, 짐은 전설로 남은 그라타스 경의 농노 챌린지를 재현하고 싶은 것이다.”

“”…….””

사심 MAX. 딱히 농노들을 살려서 강병으로 키우거나 유용하게 사용하는데 관심 없다.

오우, 농노로 거인을 잡았다고요? 좀 치시는군요? 저도 한 번 도전해봐야겠습니다.

이 정도의 감정. 흑인 노예들로 주먹다짐을 시킨 백인 농장주들도 이것보단 나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 농장주들은 죽으라고 괴물한테 먹이로 던져주지는 않았을 테니까.

“폐하…….”

레온의 단호한 태도에 하리는 슬픈 얼굴을 했다.

그가 악마를 증오하는 건 안다. 하지만 이다지도 잔혹하게 구는 것은 레온을 섬기는 입장에서도 감내하기 힘든 일이었다.

“농노분들에게… 기회를 주셨잖아요. 50년 동안 죄를 씻으라고…….”

“그랬지.”

“그럼 적어도… 이런 개죽음으로 내몰면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리의 의견은 지극히 정당하다. 21세기의 법치주의의 온정 속에서 범죄자들에게도 최소한의 인권이 존재함을 믿고 있었다.

범죄자는 무조건 가혹하게 대한다면 그들의 갱생이 불가한 건 물론이고 사회가 무너지고 만다. 법은 공평하고 공정하되 정의로워야 한다.

레온은 하리의 걱정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 인간성이 어떻게 발휘되었는지를 안다.

그런 순수하고 착한 아이이기에 신들은 저 아이를 총애하는 것이다.

그러나.

“농노는 사람이 아니다.”

“으읏…!”

납득 못 하는 하리. 레온은 손짓으로 한 농노를 지목했다.

“거기 너. 돼지. 가까이 오라.”

“예, 예에…!”

레온에게 호명된 탓에 벌벌 떨면서 다가오는 이는 악마대공령의 한 촌락에서 촌장이었던 베론이었다.

레온과 같은 세계 출신이자 제국군의 병사장이었던 자. 레온이 그에게 물었다.

“네놈은 인간일적 어떤 죄를 지었느냐.”

“예? 그, 그것이…….”

베론은 대답을 망설였다. 하지만 그가 대답하기 싫다고 해서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이이익!

“크아아악! 대, 대답하겠습니다! 대답하겠습니다!”

심판의 신성 타타르의 목줄이 베론의 목을 태우자 그는 명령을 이행할 수밖에 없었다.

“사, 살인!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더 소상히 말하라.”

“나, 남편을 죽이고 아내와 딸을 범했습니다! 시체는 포를 떠서 먹기도 했고, 인신공양을 했습니다요!”

“…….”

베론은 슬쩍 하리의 눈치를 보았다. 방금 전까지 농노들을 불쌍히 여기던 하리에게서 차가운 경멸의 시선이 느껴졌다.

“가장 즐거웠던 죄는 무엇이냐. 어떤 기분이었더냐.”

“그, 그것이… 끄아아아아아악! 사, 살육의 악마들께! 바칠 어린 것들을 선별해… 구덩이에 던져놓고 서로 죽이게 했습니다! 서로 살겠다고 죽이는 꼴이 참 보기 즐거웠습니──”

“이런 개만도 못한 새끼!”

듣다못한 재혁이 베론을 뻥 발로 찼다. 쓰러진 그를 향해 가차 없는 구타가 연신 내리친다.

“…….”

그 모습을 보면서 하리는 슬픈 눈을 했지만, 거기에 동정은 없었다.

“짐은 농노들을 경멸한다. 기회만 있다면 악마 추종자들이 고통 속에 죽기를 원하노라. 어떤 면에선 악마보다도 더 증오하지. 왜인지 아느냐?”

“어째… 서요?”

“악하게 태어나 악행을 저지르는 족속들과 선할 수 있음에도 악행을 저지르는 것. 무엇이 더 사악하느냐.”

레온의 말에 하리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레온이 다그쳤던 베론의 변명들도 떠올렸다.

선할 수 있었음에도 악의 길을 택한 자들. 동정의 여지가 없는 자들.

“보아라. 저들이야말로 절대 악이다. 살 가치가 없는 족속들이야. 저들이 농노로서 기회라도 가지는 것은 오직 하나!”

저들이 악마는 아니기 때문이다.

악마적인 죄악을 저질렀더라도, 순수 악이 아니기에. 그 영혼만큼은 거두어 정화의 기회라도 주는 것.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자비를 베푼 것이다.

“너희들의 시험에 앞서 짐이 먼저 시범을 보이겠다.”

레온은 딱 오백 명의 농노들을 데리고 거인 중 한 명을 향했다.

* * * *

저 앞의 거인은 신장이 9m에 이르렀고 들고 있는 곤봉은 사람 여럿을 붙여놓은 것처럼 거대하다.

크다는 건 그 자체로 물리적인 폭력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농노병들은 거인을 어떻게 쓰러뜨려야 할지 막막했다.

그중에서도 제법 용감한 자인 베알은 막막한 심정을 내뱉고야 말았다.

“폐, 폐하… 어, 어떻게 거인을 잡으라는 건지.”

감히 농노 따위가 사자심왕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만으로 때려죽일 대죄였으나 레온은 그라타스가 남겨준 성서 ‘농노로 거인을 잡는 법’의 페이지를 넘기느라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흠… 보자보자. 그라타스 경의 이론에 따르면…….”

「농노로 거인을 잡는 법」

거인의 체력을 3천이라고 했을 때, 단검을 쥔 농노의 공격력은 1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천 번의 공격을 성공시키면 무시할 수 없는 출혈을 일으킬 것이고,

2천 번의 공격을 성공시키면 과다출혈로 죽을 것이다.

삼천 번이라면 확실하게 죽일 수 있지 않겠는가.

“흠, 실로 직관적이고 논리적인 주장이다.”

하여 나 그라타스는 농노들에게 두 당 최소 여섯 번씩 찌르면 거인을 잡을 수 있다 밝혔다.

하하, 오백 명이서 3천 번을 못 찌를까. 못 찌르면 죽어야지.

“암. 그렇고 말고.”

“”…………….””

거인을 잡는 법을 설명하자 농노들은 모두 새하얗게 질렸다.

이 미친 작자가 우리를 기어코 죽이려고 드는구나!

베알은 이것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악마대공령에서 천 명이 넘게 죽었음에도 ‘마릿수’에도 포함하지 않았던 악랄한 작자들이다.

50년은 버틸 수 있을까? 결코 아니겠지. 베알은 순간 뇌리를 스친 천재적인 발상을 떠올렸다.

‘그래! 그냥 지금 뒈져버리자! 일찍 죽는 게 편한 거야!’

50년 동안 악랄한 괴롭힘 끝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을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지 않겠는가!

“우오오오오오오오!!”

베알은 돌발적으로 거인을 향해 돌격했다. 그때, 재혁이 시스템 메시지를 목격했다.

[‘농노로 거인을 잡는 법’이 농노병들에게 버프를 부여합니다.]

-거인 상대로 공격력이 20% 상승합니다.

“오오… 농노 전체의 대미지 상승!”

하지만 고작 1의 공격력에서 20%가 상승해봤자 1.2로 올라갔을 뿐이다. 물론 그 공격이 성공한다는 것이 전제였고.

-뿌직!

있는 힘껏 고함을 지르면 달려가던 베알은 거인이 내리친 곤봉에 걸레짝이 되어 즉사했다. 거인의 곤봉에 베알이었던 것의 조각들이 덕지덕지 붙었다.

“흠.”

레온은 베알의 노림수를 알고 성배로 그 영혼을 흡수하려 들었다. 하지만 그때──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베알에게서 흘러나온 영혼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어딘가로 빠르게 흡수됐다.

[‘농노로 거인을 잡는 법’이 농노병들에게 버프를 부여합니다.]

-거인 상대로 공격력이 20.0001% 상승합니다.

-성공시 영구히 버프가 적용됩니다.

베알의 영혼을 흡수한 성서. 이전과는 달라진 버프를 눈치챈 재혁이 소리쳤다.

“폐, 폐하! 20% 공격력 버프에서 20.0001%로 상승했습니다!”

“호오?”

“”……………!!!!””

방금 그 말이 무슨 뜻인가? 농노들의 생존본능이 두뇌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농노 한 명이 죽더니 영혼이 흡수되어 버프량이 0.0001% 상승했다? 그럼 기존의 20%는 대체 어디서? 설마…….

”20만 명의 피를 잡아먹고 버프를 20% 부여했단 말 아닌가!!”

“과연, 신비한 힘을 가진 성서로구나. 그라타스 경이 대단한 보물을 남겼어!”

성서가 아니라 마공서겠지! 사람을 잡아먹는 악마의 책!!

“자, 이제 알겠지. 가서 죽어라.”

“…….”

“…….”

말실수일까? 아니, 말실수가 아닌 거 같은데? 기분 탓일 것이다.

모두가 공포스러운 진퇴양난 속… 누군가가 외쳤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 죽더라도 저 마공서에 영혼을 사로잡힌다!

그럼 죽여서 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선두로 달리는 농노병을 따라 사백구십팔 명의 농노병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 광기의 돌격현장에서 하리는 생각했다.

“자업자득… 응, 자업자득…….”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 같았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 * * *

거인을 잡았다.

생각보다 피해는 적었다. 백사십삼 명이 거인의 곤봉질에 죽어나갔지만, 농노를 집어먹던 거인이 순간 목이 막혔던 덕이다.

농노 세 마리를 단숨에 삼켰다가 기도가 막힌 거인은 휘청거리더니 이내 뒤로 자빠졌고, 농노병들은 비교적 적은 피해로 거인을 잡을 수 있었다.

가히 기적적인 일이었다.

[‘농노로 거인을 잡는 법’이 농노병들에게 버프를 부여합니다.]

-거인 상대로 공격력이 20.0144% 상승합니다.

-버프가 영구히 적용됩니다.

-꺼어어어억!

순간 성서가 트림을 한 것처럼 들렸지만, 농노들과 기사들은 애써 그것을 무시했다.

“호오~ 영구적인 버프인가. 과연, 이 성서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라타스 경이 얼마나 수고를 했을지… 참으로 대단하군.”

농노 20만 명의 피로 만들어진 마공서를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레온. 그가 이제 기사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자, 이제 모범을 보였으니 너희들이 해보아라. 가장 많은 피해로 거인을 잡은… 아니, 적은 피해로 잡은 이에게 기사단장의 자리를 내릴 것이야.”

“폐하, 본심이 흘러나왔어요. 왕창 흘러나왔어요…….”

바로 그때였다. ‘농노로 거인을 잡는 법’이 갑자기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어어? 시스템 창이 새로운 메시지가 왔어요!”

[성배기사 그라타스의 ‘농노로 거인을 잡는 법’이 진정한 힘을 개화합니다.]

[성배기사 그라타스의 ‘농노 챌린지’가 새로운 목차를 생성합니다.]

1. 농노로 거인 사냥 : 공격력 20.0144% 상승(영구)

2. 농노로 트롤 사냥 : 공격력 43.5668% 상승(일시적). 성공시 다음 단계를 진행합니다.

“………….”

“………….”

이 끔찍한 현실에서 눈 돌리고 싶은 모든 자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 레온이 경망스러울 정도로 손바닥을 부딪쳤다.

“이럴 수가! 이리도 훌륭한! 그라타스 경! 어찌 이리 대단한 성물을 남겼단 말인가! 지금 이 순간, 나는 경보다 더 존경스러운 이를 찾을 수가 없네!!”

레온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히죽거렸다.

기뻐보였다.

아주 많이.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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