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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6

126화 입학시험 (1)

126화 입학시험 (1)

빌어먹을.

카인 녀석이 선수를 쳤다.

왜 바로 건물로 들어가지 않고 서성이나 했는데, 설마 아리엘을 기다리고 있었다니.

아니다. 아리엘이 이 시간에 나타난다는 것을 카인이 알 리 없다. 녀석은 아리엘이 누구인지도 모를 것이다.

그렇다면 우연인가?

만약 우연이라면 너무 극적인 연출이잖아 작가 놈아.

‘아리엘······ 플랑브아즈.’

조금 전, 그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아리엘은 낯선 이에게 호락호락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인물이 아니다. 게다가 아리엘라가 아닌, ‘아리엘’이라고 했다.

아리엘은 아리엘라의 애칭이자, 그녀와 아주 가까운 이가 아니면 부르지 못하는 이름이다. 그런데 오늘 처음 만난, 심지어 변변한 대화도 나누지 않은 상대에게 애칭으로 자신을 소개하다니.

놀라운 점은 또 있다. 아리엘은 카인에게 존대하지 않았다. 아리엘은 자신이 마음을 연 대상이 아니면 나이와 상관없이 벽을 치듯 존댓말을 쓴다.

‘······아무래도 첫눈에 반해버린 것 같은데.’

역시 이제 막 성년이 된 나이에 카인을 만난 영향이 큰 듯하다. 아리엘은 어린 시절부터 동화 읽기를 즐겼고, 그 내용은 대부분 비슷했다. 뭐, 대충 백마 탄 왕자가 공주를 구하는 이야기.

그런데 카인은 바닥에 넘어지려는 아리엘의 팔과 어깨를 동화 속의 왕자처럼 멋지게 붙잡고, 무슨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그녀의 발에 하이힐을 신겨주기까지 했다. 그때 아리엘이 지었던 표정을 나는 기억한다. 사랑에 빠진 여자만이 보일 수 있는 눈이다.

순간 고양이처럼 나를 올려다보던 세실의 눈동자가 머리를 스쳤다.

“카인. 너 아주 입이 헤벌쭉하더라?”

카인의 행동에 불만을 느낀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나 보다.

***

카인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예쁜 귀족 아가씨를 보니 그렇게 좋니?”

카인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흥. 아주 손을 꼭 붙잡고 놓을 생각을 않던데. 막 구두도 신겨 주고. 흐응, 아주 왕자님 나셨어. 왜 그렇게 아르카넘 홀에 오고 싶어 했는지 이제야 알겠네.”

“루나. 그게 아니고.”

“됐어. 어차피 나는 너에게 이런 말 할 자격도 없잖니.”

루나는 휙, 고개를 돌리며 앞서 걸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나는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어린애처럼 투정 부린 자신에게 화가 났다.

.

.

.

루나는 아르카넘 홀에 입학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카인과 헤어질 날을 떠올릴 때마다 불안해졌다. 어쩌면 두 번 다시 카인을 볼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면 밤잠도 이루지 못했다.

카인이 강하게 말해주었으면 했다. 함께 가자고. 그러면 못 이긴 척 따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카인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카인에게 고백했다. 만약 카인이 마음을 받아준다면 설령 그가 반대하더라도 따라갈 생각이었다. 달빛나무 축제를 하루 앞둔, 그림처럼 단풍이 흩날리던 날이었다.

‘나, 네가 좋아.’

그러나 카인은 루나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루나는 아르카넘 홀에 대한 생각을 머리에서 지웠다.

아니, 지우려고 노력했다.

쿠훌린과 엘리샤가 입학 신청을 위해 대륙으로 떠나기 전날 밤, 루나는 쿠훌린의 방을 찾았다. 그러고는 엉엉 울며 말했다. 카인과 헤어지기 싫다고. 데미안과 세실과 헤어지기 싫다고.

그들을 따라가고 싶다고.

‘너는 이제 성인이야 큰 공주. 네가 갈 길은 스스로 선택하면 되는 거야.’

그날의 기억을 상기한 루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머릿속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아름답게 흩날리는 단풍.

그 사이로 보이던 카인의 굳은 얼굴.

‘미안해. 루나.’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물었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아름다운 귀족 영애에게 미소 짓는 카인을 보니 어제 일처럼 선명해졌다.

카인과 불편해지는 것은 원치 않았는데.

잘 견디고 있었는데.

“루나가. 더. 예뻐.”

돌연 세실이 루나에게 팔짱을 끼며 속삭였다.

“쟤는. 귀족. 루나는. 왕족.”

루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세실을 돌아봤다.

세실이 두 눈에 부릅 힘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말만 믿으라는 듯이.

“루나는. 공주.”

생각지 못한 세실의 격려에 루나는 그만 웃어버렸다.

***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것은 커다란 안경을 쓴 무심한 표정의 여자였다.

그녀는 동그란 테이블 너머 의자에 허리를 꼿꼿이 세운 자세로 앉아 있었는데, 우리를 보고는 귀찮다는 듯 손을 까딱였다.

“원서.”

목소리가 어려서 조금 놀랐다.

이제 보니 얼굴도 앳되다. 우리와 비슷한 나이인 것 같은데. 아니, 더 어릴지도.

원서를 건네받은 여자가 안경을 벗더니 우리 얼굴을 꼼꼼히 확인했다. 뭐야. 원서에 사진이 붙은 것도 아닌데.

“흐응······.”

묘한 신음을 흘리며 엷게 미소 지은 여자가 수험표를 나눠줬다.

안경을 벗으니 더 어려 보인다.

입학시험을 돕기 위해 나온 재학생인가?

“복도를 죽 걸어가면 후문이 보일 거야. 후문을 지나면 돔 경기장이 있어. 그곳으로 가면 돼.”

긴 복도를 걷는 동안 나는 화려한 실내에 조금 압도되었다.

벽에 걸린 고풍스러운 그림들과 정교한 조각상은 아르카넘 홀의 오랜 역사를 표현한 듯했다. 천장은 아치형으로 높게 솟아 있었고, 거대한 샹들리에가 황금빛을 발하며 공간을 밝혔다.

“엄청 예쁜 아이였어. 그치.”

루나가 세실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랬었나? 생각해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루나, 세실, 디네베를 매일 보다 보니 내 눈이 너무 높아졌나 보다.

“저기인가 봐!”

후문을 지나자마자 루나가 외쳤다.

그녀의 말대로 저 멀리 돔 경기장이 보였다.

“데미안. 두 학부 모두 합격하면 어디를 선택할 거니?”

루나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나는 마법학부와 검술학부를 동시 지원했다. 마법학부 지원이 실패로 끝날 경우에는 검술학부에 들어가야 하니까.

“글쎄. 내가 마법학부에 합격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었다.

아르카넘 홀의 수험생은 대부분 각 지역에서 천재 소리를 듣던 이들이다.

반면 나는 금마고자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재능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수준.

“걱정 마 데미안. 꼭 합격할 테니까.”

카인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 지었다.

은월섬에서 카인은 내게 많은 도움을 줬다. 녀석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마법학부에 지원할 생각조차 못 했을 거다.

뭐, 떨어지면 검술학부로 들어가면 된다.

.

.

.

마력이 담긴 웅혼한 목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저는 제국 최고의 명문 학교 ‘블레이드 앤 아르카넘 홀’의 교장, 이자크 펠리온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각자의 잠재력을 시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장차 학교의 미래를 밝힐 학생으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국에 대해서는 나도 자세히 아는 바가 없지만 저 이름은 알고 있다.

이자크 펠리온.

일명 ‘폭풍의 대마법사’ 이자크.

“또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은 황실 수호 마법사단 ‘센티널(Sentinel)’과 황실 근위 기사단 ‘아이기스(Aegis)’의 우선 지원권이 주어집니다.”

이곳을 찾은 수험생의 상당수는 ‘센티아이(센티널과 아이기스를 합쳐 부르는 말)’ 입단을 목표로 삼았을 것이다. 귀족이 아닌 수험생은 더더욱 그렇겠지. 센티아이에 입단하면 그 즉시 ‘남작’의 작위가 수여되고, 성과에 따라 계속 위를 바라볼 수 있으니까.

“곧 입학시험이 시작됩니다. 모두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입학시험은 학부와 상관없이 같은 경기장에서 치러진다. 수험생이 그리 많지 않아 가능한 일이겠지. 어중이떠중이는 감히 지원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니까.

교장이 경기장을 벗어나 뒤쪽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심사위원을 맡은 교수들이 기다란 테이블 너머에 앉아 있었고, 교장은 그중 비어있던 의자에 앉았다.

이어 자그만 체구의 여자가 경기장에 들어섰다. 얼굴이 낯익다 했더니, 원서를 확인하고 수험표를 나눠줬던 여자였다.

“입학시험의 진행을 맡은 마법학부 교수, 에스틸리아 벨라코트입니다.”

이럴 수가.

학생인 줄 알았는데 교수였어?

“말도 안 돼······!”

루나가 입을 쩍 벌리며 우리를 돌아봤다.

세실도 놀란 고양이처럼 눈을 크게 떴다.

“마법학부를 지원한 수험생들은 오늘 두 가지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첫 번째는 ‘속성의 십격’이라 불리는 종목으로, 여러분은 각기 다른 속성을 지닌 열 개의 표적을 빠르고 정확하게 적중시켜야 합니다. 각 표적은 특정 속성의 마법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붉은색 표적은 불 속성 마법을 사용해 타격해야 합니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경기장 측면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마치 연극 무대가 시작되듯 거대한 검은 커튼이 걷혔다. 커튼 너머에는 다채로운 색을 띤 열 개의 표적이 세워져 있었다.

“표적 하나를 타격할 때마다 10점을 얻습니다. 따라서 열 개의 표적 모두를 타격하는 것에 성공하면 100점을 획득합니다. 표적에 알맞은 속성으로 타격하지 않으면 점수는 부여되지 않습니다. 제한 시간은 1분. 마법의 위력보다는 시전 속도와 정확도에 집중하기를 권장합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고작 1분의 제한 시간 동안 마법을 열 차례나 발현해야 한다고? 그것도 여러 속성으로, 저 자그만 표적에 적중까지 시키면서?

물론 돌파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에스틸리아 교수의 말처럼 ‘속성의 십격’은 마법의 위력이 아닌 시전 속도와 정확도를 보는 시험이니까. 즉, 마법의 위력이 형편없더라도 적절한 속성으로 표적을 맞히기만 하면 된다는 거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게는 버거운 시험이다.

······50점도 못 받을 것 같은데.

“두 번째는 ‘파괴의 일격’ 시험입니다. 여기서는 하나의 표적을 강하게 단발 타격해야 합니다. 속성은 상관없습니다. 이 시험은 여러분이 지닌 마법의 파괴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입니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이번에는 반대쪽 측면을 가리켰고, 마찬가지로 검은 커튼이 걷혔다.

그곳에는 거의 벽처럼 보이는 커다란 표적이 세워져 있었다.

“마법의 파괴력에 따라 1점에서 최대 100점의 점수가 부여됩니다. 두 가지 시험이 치러지지만, 시험 성적에는 고득점의 종목만 반영됩니다. 예를 들어 속성의 십격으로 60점을 획득하고 파괴의 일격으로 70점을 획득한다면 최종 점수는 70점입니다. 동점자가 있으면 두 종목의 합산 점수로 순위를 가르며, 그래도 동점일 경우는 심사위원단의 회의를 거쳐 순위를 결정합니다. 아울러 두 종목 모두 50점 미만인 수험생은 입학 정원과 관계없이 탈락 처리됩니다. 그럼, 죽을힘을 다해 도전하시길.”

.

.

.

“아아······.”

안타까운 탄식이 경기장을 울렸다. 방금 시험을 치른 수험생이 낙제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각 지역에서 천재 소리를 듣던 이들에게도 아르카넘 홀의 입학시험은 난도가 높았다. 나는 나의 ‘속성의 십격’ 예상 점수를 전면 수정했다. 50점이 아니라 30점도 못 받을 것 같다.

그렇게 몇 명의 학생이 더 시험을 치렀고, 에스틸리아 교수의 입에서 낯익은 이름이 호명됐다.

“아리엘라 플랑브아즈.”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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