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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7

127화 입학시험 (2)

127화 입학시험 (2)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저 붉은색 하이힐은 아리엘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다. 하이힐의 매력 때문에 아리엘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많았다. 그들 중 일부는 아리엘을 아리엘라가 아닌, ‘하이힐라’라고 부르기도 했다.

“저분이 아리엘라 플랑브아즈······.”

“소문 이상이로군.”

“눈부셔······.”

관객석이 술렁거렸다. 수험생들은 아리엘의 미모에 넋을 잃었다.

과연, 하이힐을 신고 걷는 아리엘의 자태는 주위의 모든 이를 홀릴 만큼 요염했다. 그것은 아리엘의 타고난 천성이었다.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그녀는 자신이 어느 때에 가장 아름답고, 기품이 넘치는지 알고 있었다.

“와······.”

루나마저 멍한 얼굴로 아리엘을 바라봤다.

루나가 아이 같은 외모 안에 성숙한 마음을 지녔다면, 아리엘은 성숙한 외모 안에 아이 같은 마음을 지닌 인물이다. 그래서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은 소설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기도, 경멸하기도 했다.

경기장에 올라선 아리엘이 문득 관객석을 돌아봤다.

“아, 아리엘라 플랑브아즈가 나를 쳐다봤어!”

“무슨! 나랑 눈이 마주쳤거든?”

“아니야! 나야! 나라고!”

수험생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하긴, 제국의 귀족 중에서 아리엘을 모르는 이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또래의 남자 귀족이라면 더욱.

나는 아리엘을 보며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소설 속의 묘사 그대로야.’

살짝 들어 올린 턱.

나른한 듯 농염하게 내려다보는 시선.

희미하게 말아 올린 입술.

우아미(優雅美)와 퇴폐미(頹廢美) 사이 그 어딘가.

그때, 아리엘의 입술 끝이 미소를 그렸다.

그녀의 시선은 우리가 있는 곳, 그중에서도 카인을 향해 있었다.

“속성의 십격. 시작합니다.”

에스틸리아 교수의 음성과 함께, 아리엘의 시험이 시작됐다.

.

.

.

나는 아리엘의 움직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리엘은 각 표적에 따라 다양한 속성 마법을 발현했다. 불, 물, 바람, 냉기 등 자연의 여러 요소가 그녀의 손끝에서 춤을 추었다. 그녀의 입술은 시를 읊는 듯했고, 동작은 품위 있고 고고했으며, 마법은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웠다.

“대단해! 저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마법을 발현할 수 있다니······!”

“······역시 격이 달라.”

“제국 최고의 재능 중 하나라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군.”

아리엘이 마법을 시전하는 모습은 시험이 아니라 공연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마지막 표적에 이르렀을 때, 아리엘은 한껏 마력을 집중시켜 빛나는 마법을 발현했다. 그 빛이 시험장을 환하게 밝혔고, 그녀는 70점을 획득했다.

“최고점이야!”

“저 나이에 벌써 7가지 속성 마법을 발현할 수 있다니.”

“말도 안 돼······!”

“역시 플랑브아즈 가문의 후계자로군.”

수험생들이 저렇게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열 개의 표적이 지닌 색은 다음과 같았다.

붉은색(불).

푸른색(물).

하늘색(빙결).

녹색(바람).

갈색(땅).

노란색(번개).

흰색(에테르).

보라색(영혼).

연보라색(환상).

진홍색(피).

이 중에서 아리엘은 영혼, 환상, 피 속성을 제외한 나머지 속성 마법을 구현했다. 이 정도면 사실상 모든 속성 마법을 구현했다고 보아도 무방한 수준이다.

영혼 속성과 환상 속성, 그리고 피 속성은 그저 노력한다고 발현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니까. 블러디드로 분류되는 은월 속성이나 그림자 속성처럼.

그러나 주위의 환호와 달리 아리엘은 만족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파괴의 일격. 시작합니다.”

아리엘이 저 멀리 거대한 표적을 바라봤다.

아마도 아리엘은 이번 종목에서 속성의 십격으로 획득한 70점보다 고득점을 노리겠지.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수험생들을 봤을 때, 파괴의 일격 시험에서 70점을 넘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67점이 최고점이었지.’

그 수험생의 마법은 정말로 대단했다.

아리엘도 쉬이 이길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태고의 불꽃이여. 나의 손끝에서 피어올라 하늘을 찌를 듯한 힘으로, 단 한 점의 목표를 삼키······.”

아리엘이 속삭이듯 주문을 읊었다.

귀로 전해질 만큼 큰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입술의 움직임을 읽었고, 그녀가 발현하려는 마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의 티아라여, 나의 의지를 따라 적을 불태워라.”

설마 저 마법이 이 시점에 등장할 줄이야.

저것은 평범한 마법이 아니다.

훗날 아리엘의 주력 중 하나로 자리 잡는 고위 화속성 마법.

불꽃의 티아라(Tiara of Flames)!

퍼어어엉!

그녀의 손끝에서 발현된 태고의 불꽃이 표적을 강타했다.

***

이 세계의 마법은 크게 네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가장 널리 알려진 ‘표준 마법’이다. 엘리샤가 사용하는.

두 번째는 ‘정령 마법’으로, 야니카가 발현하는 자연의 화살이나 폭풍의 비를 예로 들 수 있다.

세 번째는 소서러의 마법, 다시 말해 ‘혼돈’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고위 마법.’

고위 마법은 소서러의 힘을 탐구하던 마법사들이 표준 마법을 개량해 만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소서러의 무영창 마법을 따라잡고 싶어 했던 그들이 도리어 표준 마법보다도 긴 주문을 읊어야 하는 고위 마법을 탄생시켰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긴 시전 시간이 필요한 만큼 고위 마법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리고 훗날, 고위 마법의 극한에 다다른 이들은 그 단점마저 극복하기에 이른다.

미래의 아리엘처럼.

퍼어어엉!

불꽃에 삼켜진 표적이 비명을 질렀다.

아리엘의 고위 마법도 대단했지만, 그 힘을 버티는 표적도 놀라웠다. 표적이 박살 날 것처럼 몸을 떨었다. 그러나 결국 견뎌냈다.

마법 전광판 위로 점수가 떠올랐다.

[77점]

경기장이 조용해졌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수험생들은 아리엘의 마법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아리엘라 플랑브아즈. 최종 점수 77점. 현재까지 최고점입니다.”

에스틸리아 교수의 목소리가 적막을 깨뜨렸다.

그녀에게 예를 표한 아리엘이 경기장을 벗어났다.

관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와······.”

루나가 다시금 멍한 얼굴로 아리엘을 봤다.

희미하게 남아있던 질투의 감정은 완전히 사라진 모습이었다.

“쟤 정말 대단하다. 그치? 세실.”

놀란 건 세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도 아리엘이 벌써 고위 마법을 발현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으니까.

그리고.

“카인 시니야카.”

카인의 차례가 찾아왔다.

***

‘······카인 시니야카?’

경기장의 은밀한 장소에서 입학시험을 관전하던 오필리아 플랑브아즈 공작은 고개를 갸웃했다.

카인.

드문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저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은.

‘아니. 그럴 리 없어. 그 아이는 죽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오필리아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아리엘라 아가씨의 실력이 더욱 좋아졌군요. 공작.”

옆에 선 사내의 말에 그녀는 살짝 웃었다.

“걸음걸이는 조금 더 가꾸어야겠지만 말이죠.”

“카인 시니야카에 대해서는 조사해 보겠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는 오랜 친구를 돌아보며 오필리아가 미소 지었다.

“고마워. 바스.”

***

카인의 ‘시니야카’라는 성씨는 바람숲의 엘프들이 부르던 시니야스트레라는 이름에서 따왔다.

참고로 입학 원서에 적힌 내 이름은 ‘데미안 시니야카’다. 나도 야니카와 님피엘에게 시니야오코네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다.

물론 그 이유 때문에 성씨를 바꾼 것은 아니다. 나는 제국에 무한회귀 세계관의 흑막이 있을 거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 라플라스라는 이름을 흑기사와 연관 지을 수도 있다.

[70점]

카인은 속성의 십격 시험에서 아리엘과 같은 70점을 획득했다. 영혼, 환상, 피 속성을 제외한 점도 같았다.

내 눈에는 당연한 결과였지만 아리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점수에, 심지어 적중시킨 속성마저 같으니 더더욱 운명의 상대처럼 느낄 테지.

설마 카인 녀석이 계산한 일일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자꾸 무언가가 마음에 걸린다.

“파괴의 일격 시험은 포기하겠습니다.”

카인의 발언에 관객석이 떠들썩해졌다.

나도 놀랐다.

“뭐? 포기한다고?”

“어떤 마법을 선보일지 기대하고 있었는데!”

“하긴, 포기해도 합격은 확정이지. 현재 단독 2등이니까.”

에스틸리아 교수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이어, 수험표를 나눠주었을 때처럼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카인 시니야카. 최종 점수 70점.”

카인이 경기장을 벗어나자 관객석에서 아쉬워하는 한숨이 흘렀다.

대부분이 여자 수험생들이었다.

“카인. 두 번째 시험은 왜 포기한 거니?”

자리로 돌아온 카인에게 루나가 동그랗게 눈을 뜨며 물었다.

카인이 싱긋 웃었다.

“어차피 70점을 못 넘길 것 같아서.”

“그래도 도전해 보지. 은근히 네가 1등 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단 말이······ 아앗! 앗! 데미안, 너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괜찮아. 루나.”

루나가 재차 사과했지만 나는 웃어넘겼다. 기분 나쁠 일도 아니다. 다만 카인이 파괴의 일격 시험을 포기해서 아쉬웠다. 녀석이 몇 점이나 받을지 궁금했으니까.

“어때 데미안. 합격할 수 있을 것 같니?”

루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너도 열심히 훈련했잖아. 카인 말로는 네 마법 재능이 엄청 뛰어나다던데.”

“저 녀석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뻔하지. 나를 칭찬한 만큼 자신의 재능이 더욱 돋보이게 될 테니까.”

내 말에 카인이 펄쩍 뛰었다. 자신은 절대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며, 데미안의 재능은 정말로 뛰어나다고 했다.

그래 뭐, 일반인 중에서는 그렇겠지.

“데미안은 마법학부에 떨어지면 우리와 함께 검술학부에 다니면 되잖아. 그치? 너도 그게 좋지? 세실.”

“으. 응.”

긍정하는 세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정말로 그런 걸까.

그렇다면 왜 은월섬에서 나와의 대화를 피해 왔던 거지.

“데미안 시니야카.”

마침내 에스틸리아 교수의 입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데미안. 너에게는 정말로 재능이 있어.”

“잘하고 와! 데미안!”

“······데. 데미안. 힘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곳곳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시니야카라고?”

“카인 시니야카와 성이 같은데?”

“설마 둘이 형제인가?”

카인의 유명세 탓에 괜스레 나까지 주목받고 있었다.

경기장에서 마주한 에스틸리아 교수는 정말 체구가 작았다. 루나보다도. 그리고 여전히 어려 보였다. 대체 몇 살인 거지? 이 사람은.

“속성의 십격 시험은 포기하겠습니다.”

내 말에 에스틸리아 교수의 눈동자에 흥미가 깃들었다.

다시 한번 관객석이 술렁였다.

“역시 둘이 형제인가 봐.”

“그러게.”

“형제가 사이좋게 한 종목씩 포기하네.”

형제 아니라고 소리 지르고 싶다.

“파괴의 일격. 시작합니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말했고, 나는 물끄러미 표적을 바라봤다.

루나의 외침이 들렸다.

“포기하면 안 돼! 데미안!”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시험을 포기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험생의 대부분은 파괴의 일격 종목이 아닌 속성의 십격 종목에서 더 높은 점수를 획득했으니까.

나는 웃었다.

나는 시험을 포기하지 않았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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