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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8

128화 라이온하트(1)

찬란한 왕국의 보고.

수천 년 왕국의 역사가 담겨있는 그곳에 뱀머리를 한 교활한 괴물이 서적들을 살피고 있다.

신들의 가르침과 그를 따르는 기사들의 이야기.

모든 세상의 부의 개념을 끌어모은 듯한 악마들에게도 흥미로운… 아니, 끊임없이 지혜를 탐구하는 악마들이기에 더욱 흥미로운 역사서들이다.

한때는 찬란한 신들의 영광을 떨쳤던 왕국의 왕성도 악의 손아귀에 떨어졌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필멸의 신분으로 법칙을 개변하는 자들.

성배기사.

오랜 과거부터 그들을 조사하고 탐구하려는 움직임은 있어 왔다.

다만 악마들의 힘으로도 그 개념의 힘을 다루는 괴물기사들은 사로잡아놓고도 통제하기 어려웠을 뿐.

백여년 전쯤 사로잡은 대지의 성배기사는 아직까지도 타락시키지 못했고, 최근에는 강욕의 빙하대공이 불꽃의 성배기사와 동귀어진했다.

수천 년을 살아온 악마들조차도 이 기사들과 같은 존재들을 본 바가 없다.

‘생명체’ 즉 필멸자라는 점에서 보면 그들이야말로 전 차원 정점의 생물이겠지.

그중에서도 으뜸은 당대의 사자심왕이다.

24년 전, 제국의 대붕괴를 기점으로 침공의 선봉대를 맡았던 혼돈의 군주를 살해한 남자.

놈이 혼돈의 군주를 쓰러뜨리면서 세계의 종말이 족히 30년은 후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제 제자 놈도 놈의 손에 사지가 뜯겨나갔다지.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

놈들의 왕성은 악의 손아귀에 떨어졌고, 감내할 수 없는 절대악의 군세 앞에 낙엽처럼 휩싸일 것이다.

뱀머리의 악마는 그 마지막 날이 올 때까지 이 세계의 지식을 최대한 많이 확보할 생각이다.

──────

그때였다. 세계에 진동하는 공간의 울림. 너무나 미세하여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그것을 예지의 끝에 도달한 이 악마만은 알아차렸다.

“우리 말고도 게이트를 다루는 자가 있었나.”

뱀머리의 사이한 손가락이 허공을 가리켰다. 사악의 손가락이 세계에 파동을 일으키며 공간에 동조한다.

동조 그리고 간섭.

다음 순간, 공간의 한계를 넘어 사악한 마력이 차원의 틈새에 간섭했다.

* * * *

“으음…….”

하리는 게이트 입장시 특유의 빛의 번짐을 느끼며 눈꺼풀을 뻐끔거렸다.

“여긴?”

그간 수많은 게이트를 공략한 하리였지만, 눈앞의 게이트는 그동안의 게이트와 달랐다.

황폐하다.

대지는 메말랐고, 공기는 텁텁하며, 하늘은 달빛도 비치지 않는 것처럼 검게 물들었다. 그래… 마치 악마대공령처럼.

“페하, 이곳은 대체?”

고개를 돌린 하리는 야피와 베아트리체를 발견했다. 수호와 재혁 소연도 있다. 함께 입장한 이들은 모두 눈에 들어왔다.

레온만 제외하고.

“……큰일이군요.”

베아트리체조차 지금의 상황에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성배기사 제레아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처음 게이트를 열어 도착좌표를 새겨야 한다는 걸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베아트리체는 게이트를 충분히 파악했고, 입장한 모든 이들을 한 좌표로 특정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

“폐하께서는… 입장하지 못하신 모양이군요.”

“어, 어째서 폐하만 입장하지 못하신 거죠?”

“저도 모르겠답니다. 일단 게이트를 나가서 재확인해보도록 하죠.”

베아트리체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사상 최초의 무색 게이트. 어떤 위협이 있을지 모른다.

이변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이상, 전략적 후퇴는 현명한 방법이다.

“그럼 다시 게이트로 입장──”

그때였다. 그녀들이 타고 온 게이트가 갑자기 요동치더니 찌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러나세요!!”

베아트리체의 다급한 음성에 게이트로부터 멀어지는 일행들. 다음 순간, 게이트가 있던 공간이 찌그러지며 삼켜진다.

게이트가 소실되려는 것이다. 베아트리체가 긴급히 마력을 쏟아부었지만, 소실을 고작 3초 늦추는 것에 불과했다.

“커흑…!”

“여왕님!”

게이트를 소멸시키려는 압도적인 마력과 부딪힌 끝에 역류하는 마력. 베아트리체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움켜쥐며 피를 토했다.

“괜찮으세요?!”

다급히 뛰어오려는 하리를 멈춰 세우는 베아트리체. 그녀는 낭패감이 짙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 정도의 마력이라니…….”

마치 전속력으로 돌진해오는 덤프트럭에 부딪힌 것 같다. 자연지기의 모든 마력을 순환해 자신의 것으로 삼는 베아트리체조차도 이 끝없는 근원의 마력 앞에서는 잠시도 버티지 못했다.

마력을 다룬다, 가 아닌 마력 그 자체인 것 같은 괴물. 이 세계에 그만한 마법사가 있었단 말인가.

“하리 양… 퀘스트를 확인하세요.”

“아, 옛… 옛!”

다급히 메시지 창을 확인하는 하리. 그녀의 금빛 눈동자에 푸른 창이 비친다.

[퀘■트 : ■후의 ■전■■ ■■하■.]

“어, 어어?”

시스템 메시지가 일그러져 읽을 수가 없었다. 마치 누군가의 개입을 받은 것처럼.

“대체 이게 무슨…….”

베아트리체는 텁텁한 공기를 삼키며 답답한 가슴을 억눌렀다. 무언가 이상하다.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정찰개시.

야피는 끌고 온 간이위성을 펼쳤다. 몇 번의 실험기동 끝에 게이트용 위성은 완성에 가까워졌다.

일단 우주로 띄우기만 하면 얼마든지 게이트 속 세계를 낱낱이 살필 수 있으리라.

이온 추진체를 통해 빠르게 우주 상공으로 비행하는 위성 발사체. 순식간에 성층권에 도달한 위성이 작은 불빛으로 반짝이던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

“어어?!”

하늘에 강렬한 빛을 남기며 비행하는 푸른 에너지. 그것은 마치 화살처럼 창공을 주파하더니 우주궤도에 접어든 위성을 격추시켰다.

-포격지점 특정. 이곳으로부터 140km 지점. 위력정찰을 시행하겠음.

야피는 위성의 격추와 동시에 정찰드론을 전개했다. 순식간에 하늘을 수놓는 드론들이 금방 적성존재를 포착한다.

-적성존재 포착. 비행개체 다수 존재. 조속한 후퇴를 요구함.

“쿨럭…! 아무래도… 영 좋지 못한 곳에 떨어진 모양이군요.”

베아트리체는 피를 삼키면서 말 고삐를 당겼다.

다그닥다그닥 평원을 달리는 일행들. 야피도 거대한 동체의 강철다리로 선두를 주파하며 안전한 장소를 찾는다.

“여왕님! 후방에 비행개체가 접근하고 있슴다!”

재혁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 말대로 시뻘건 하늘을 비행하는 일련의 무리들이 있다.

-까악! 까악!

까마귀의 머리와 시커먼 날개. 상반신과 하반신은 인간이라기보단 괴물의 그것이다.

-대응사격. 화력 한정사용.

야피의 기관포가 허공을 향해 겨눠진다. 다음 순간, 투다다다다! 불벼락이 쏟아졌다.

-까악!

-캬아아악!

엄폐물 없는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까마귀 인간들. 하지만 쫓아오는 건 그들뿐만이 아니다.

-추가 적성인자 접근 중.

“저, 저게 뭐야!”

-캬아아아악!

거대한 거미 같은 괴물들이 달린다. 그 크기가 전차보다 거대한 것들이 족히 오십 마리였다.

“울티마시여…….”

재혁은 창을 번쩍 들어 자신의 기도를 하늘에 바쳤다. 그러자 구름이 요동치더니 한 줄기 섬광을 지상에 내리친다.

-콰아아앙!

내리치는 벼락이 거미 괴물들의 한가운데를 관통한다. 재혁이 내리친 울티마의 권능은 확실히 어지간한 대형 몬스터도 일격에 절명시킬 정도로 강력하다. 하지만…….

“뭐, 뭐야? 고작 한 마리?”

직격당한 거미를 제외하고 남은 거미들이 맹렬히 이들을 쫓아온다. 성법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천둥의 성법에도 고작 저 정도 피해라니?

적어도 네다섯 정도는 날릴 수 있을 줄 알았던 재혁이 당황하며 다시 천둥을 부르려던 그때였다.

-주력 레일건 발사.

쾅! 하고 레일을 타고 초전자가속을 하는 레일건. 야피가 쏘아낸 레일건 탄자는 괴물거미의 정면에서부터 쭉 일곱 마리를 관통했다.

-끼에에에에에에에!!

거대한 괴물거미들이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며 쫓아온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분간이 되질 않는지라 하리는 조명탄 대신 불꽃의 성력을 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

멀리서도 보일 만큼 강렬한 불꽃은 마치 불꽃축제의 그것 같다.

그리고 세상이 밝아지며 드러나는 끔찍한 실체들.

“아, 아아….”

“뭐, 뭐…!”

새까만 것들이 몰려온다. 세상을 잠식하는 것처럼 더러운 시커먼 것들이.

“뭐, 뭐 이리 많아?!”

공중에서, 지상에서, 마치 해일처럼 쏟아지는 괴물들. 야피가 최적의 루트를 계산해보아도 활로를 찾을 수가 없다.

-적 군체 다수 접근 중. 추정 약 5,354.

야피가 모든 무장을 전개했다. 레일건과 체인건, 성력을 품은 강철 와이어를 늘어뜨린다.

곧 다가올 적의 군세를 맞이하기 위해 모두가 임전태세에 접어들었을 때, 그들이 어둠을 가르고 나타났다.

-꽈앙!

저 멀리서 들린 소리였다.

어둠 속에서 다닥다닥 벌레 기어오듯이 갉아먹는 소리를 내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경쾌하고 호쾌한… 거기에 파괴적이기까지한 굉음.

-쏟아져라, 천둥왕관의 분노여.

신벌 <분노의 폭우>

하늘이 요동치며 마치 비처럼 쏟아지는 천둥벼락.

지상을 덮을 것처럼 난무하는 벼락이 지상의 검은 얼룩들을 씻어내렸다.

초력의 기사는 하늘의 분노를 지상에 쏟아내면서도 한 무리의 기사를 이끌고 괴물의 한가운데를 돌파한다.

“중앙을 돌파하라!”

“”존명!!””

고작 200기에 불과한 기마의 무리였다. 쐐기 형태로 괴물거미들의 군집을 향해 정면돌진하는 것은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자살돌격에 가깝다.

-끼에에에에엑!!

두 초월자의 급습에 당황한 것도 잠시, 수백 마리의 괴물거미들이 겁도 없이 달려오는 빛을 삼키려 공간을 어둠으로 메운다.

질량만 계산해도 족히 수백 배. 하지만 격돌의 순간──

군단성법 <쐐기돌격>

꽈앙!

괴물들이 하늘을 날았다.

있을 수 없는 충격량에 압도적 질량을 가지고서도 튕겨 나간다.

쐐기형태의 돌격진형은 마치 눈앞에 모든 것을 꿰뚫을 기세로 순식간에 괴물의 해일을 관통했다.

-키이이이……

-키야아아악!

기사단의 압도적인 전투력 앞에 신중해지는 거미괴물들. 그들이 멈칫거리는 사이 기사들이 코앞까지 당도했다.

“강력한 성력의 기운을 느껴 찾아왔건만, 처음 보는 얼굴들이로군.”

황금빛의 갑옷을 입은 남자가 그들 앞에 섰다.

“나는 하늘과 천둥의 신성 울티마의 성배기사 길링엄 울란이라고 한다. 그대들은….”

그는 야피와 반쯤 빈사상태인 베아트리체를 둘러보더니 기수를 돌렸다.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도록 하지. 곧 벼락이 끊길 것이야.”

“아, 네!”

-끼룩! 전략적 후퇴.

뚫고 지나온 길은 어느새 괴물거미들이 메웠으나 천둥의 성배기사에게는 별다른 장해도 되지 않았다.

울란의 폭풍 같은 벼락이 몰아치고, 야피의 와이어가 괴물거미들을 절단냈다. 그들은 끝내 괴물거미들을 돌파할 수 있었다.

* * * *

성배기사 길링엄은 안전을 확보하고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성력을 목격하여 일단 구했으나 대체 그대들의 정체는 무엇이오? 특히…….”

길링엄의 시선이 야피를 향했다. 팔족다각전차의 동체는 기사들로 하여금 괴물 중 하나가 아닐까 의심의 시선마저 보내게 했다.

아니, 오히려 괴물로 여기는 것이 당연함에도 기사들은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지 않다.

“철과 대장장이의 기사여. 그대에게서 광산 수호자 안토크 경에 비견할 만한 성력이 느껴지는군.”

-끼룩!

“안토크 경은 멀쩡할 텐데…….”

“저희는 왕국 변경에서 찾아온 이들이랍니다.”

입을 연 것은 베아트리체였다.

“레이디, 몸은 괜찮으신가?”

“걱정해주신 덕분에요. 그보다… 왕국의 상황은 어떻죠?”

베아트리체는 주변에 ‘악마거미’들이 가득했던 것. 그리고 성배기사를 칭하는 자가 나타난 것으로 대강의 추측을 해내었다.

이곳이 라이온하트 왕국이며 악마들이 침공한 상황이란 것을.

“왕국이 걱정되어 달려오긴 했지만, 악마들 탓에 늦어지고 말았답니다. 길링엄 경께서 전황을 말해주시겠어요?”

“흠… 내 배려가 없었군. 란돌체 평야의 전투에서 불카누스 경과 강욕의 대공이 사라진 이후로 왕국은 파죽지세로 놈들에게 밀리고 있소.”

베아트리체는 길링엄에게서 손쉽게 이곳의 상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강력한 성력이 느껴지는 데다가 라이온하트 기사의 상징인 별철무구들로 무장한 덕에 의심을 받지 않은 덕이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이곳은 악마들의 침공이 진행되고 있는 레온의 세계다.

제국은 이미 멸망했고, 왕국 또한 심장부인 왕도가 점령당했다.

사자심왕이 제국의 잔존병과 엘프, 트리맨, 드워프 등의 이종족들을 모두 끌어모아 연합전선을 펼쳤다는 것.

왕국 각지로 성배기사들의 기사단이 파견되어 생존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것까지.

“여왕니… 베아트리체 님…….”

하리가 베아트리체의 호칭을 바꿔가며 걱정스레 물었다.

“예, 아무래도 저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이군요.”

틀림없다. 이 게이트, 레온이 악마들과 최후의 결전을 치렀다는 대전투를 앞에 두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생각한 것 이상으로 광대한 게이트의 범위에 놀라면서도 일행들은 길링엄이 안내하고자 한 장소에 도착했다.

“와아…….”

그것을 보고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강을 낀 비옥한 평야. 그곳에 거대한 군영… 아니, 하나의 도시가 있었다.

한쪽에는 황금빛 밀밭이 자라나고, 거대한 나무인간이 자재를 옮기며, 망루 위에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감시하는 뾰족귀들이 있다.

끝없이 펼쳐진 수많은 병사와 기사들. 군영을 가득 채운 그들은 감히 상상도 못해봤던 규모다.

“세상에…….”

“저, 저 사람들이 다 기사?”

하리와 일행들은 라이온하트의 기사들이 어떤 존재인지 안다.

당장 자신들만 해도 어지간한 최상위권 헌터를 능가하는 수준이었으니까.

라이온하트는 그 병사들마저 범상치 않은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 도시의 중심에는 끝없이 높은 제단이 존재한다. 마치 피라미드처럼 우뚝 선 거대한 신전.

길링엄이 말했다.

“인류 최후의 성지. 만신전에 합류한 것을 환영하네.”

왕도와 더불어 라이온하트 왕국의 최중요 시설.

신들이 자리한 곳.

저곳에 사자심왕이 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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