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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8

128화 입학시험 (3)

128화 입학시험 (3)

사실 나는 거의 포기 상태였다. 앞선 수험생들의 시험 결과를 보며 확신했다. 나의 능력으로는 ‘속성의 십격’ 시험을 통과할 수 없다.

그렇다고 ‘파괴의 일격’ 시험에서 가능성이 엿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나의 실력을 안다. 내 능력보다 강한 마법을 발현한 수험생들이 파괴의 일격 시험에서 50점을 넘기지 못했다. 즉, 나는 두 종목 모두 50점을 넘길 수 없다.

물론 혼돈을 발현하면 낙제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내게는 아리아나스에서 흡수한 강력한 공격기가 있다. ‘염화(炎火)의 혼돈’이라 이름 붙인 그 힘으로 나는 사하룬 사막의 샌드웜을 불태웠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혼돈을 발현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다.

‘동기화 스킬.’

그러나 그 방법도 여의찮아 보였다. 동기화는 결코 만능 스킬이 아니다. 내가 지닌 마력으로는 이곳의 누구와 동기화하더라도 열화 버전으로 카피될 것이다. 그래서 필요했다. 마법의 격 자체가 높아서, 몇 단계 열화되더라도 상당한 파괴력을 유지할 수 있는 마법이.

그리고 나는 찾았다.

[불꽃의 티아라(Lv.3)를 카피합니다.]

[대상과의 능력 차이로 인해, 열화 버전으로 카피됩니다.]

.

.

.

[불꽃의 티아라(Lv.1)를 카피합니다.]

아리엘에게서.

***

아리엘은 흥미로운 눈으로 경기장을 바라봤다.

이유는 하나, 경기장에 올라선 수험생이 카인과 같은 성씨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동생일까? 별로 닮지는 않았는데.’

아니, 언뜻언뜻 드러나는 눈빛이 닮았다.

늑대처럼 사나운.

‘반가워 아리엘.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

카인을 떠올리자 다시 가슴이 뛰었다. 살짝 숨이 차는 기분이다.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감정이었다.

카인은 마법 실력도 뛰어났다. 그는 속성의 십격 시험에서 아리엘과 같은 70점으로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다. 물론 파괴의 일격 시험을 포기하는 바람에 최종 점수에서는 2위로 밀려났지만.

아리엘은 그 부분에서 더욱 카인에게 흥미를 느꼈다. 궁금했다. 그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해 파괴의 일격 시험을 치렀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왜 그는 굳이 그 시험을 포기했을까.

‘알고 싶어.’

카인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는 지금까지 알던 남자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 같았다. 아주 잠시 스쳤을 뿐이지만 아리엘은 분명하게 그것을 느꼈다.

그때, 경기장 쪽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주문이 그녀를 생각에서 끌어냈다.

“태고의 불꽃이여. 나의 손끝에서 피어올라 하늘을 찌를 듯한 힘으로······.”

아리엘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래서 상대의 입술을 읽으며, 다시 귀를 기울였다.

“······불꽃의 티아라여. 나의 의지를 따라.”

아리엘의 동공이 커다래졌다.

표적을 향해 뻗은 데미안 시니야카의 손 위로 익숙한 붉은 기운이 서렸다.

“적을 불태워라.”

그가 발현한 태고의 불꽃이 표적을 삼켰다.

***

오필리아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게 무슨······!”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불꽃의 티아라를 발현할 수 있는 수험생이 아리엘 외에 또 있었다고?

“······데미안 시니야카에 대해서도 조사해 보겠습니다.”

물론 아리엘이 발현한 것만큼의 위력은 없다. 저 정도라면 기껏해야 60점에 근접한 수준이겠지.

그러나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저 아이가 ‘고위 마법’을 발현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게다가 불꽃의 티아라는 강한 파괴력을 지닌 만큼, 고위 마법 중에서도 난도가 높은 축에 속한다.

‘누구에게 배운 거지?’

오필리아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보았다. 불꽃의 티아라를 저 아이에게 가르칠 만한 고위 마법사. 떠오르는 이는 몇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배웠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오필리아의 귀에 전해졌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제국 밖의 아이?’

***

[59점]

내가 획득한 점수는 59점이었다.

생각보다 높은 점수다. 마음속으로 50점만 넘겨주기를 간절히 기도했었으니까.

이 점수라면 무조건 합격이다.

“우와아아아!”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저, 저거 아리엘라 플랑브아즈가 발현했던 마법 아니야?”

관객석에서 우렁찬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슬쩍 아리엘을 돌아봤다. 예상대로 아리엘은 두 눈을 부릅뜨며 나를 보고 있었다.

좋아. 이것으로 나는 마법학부 합격보다 더 좋은 결과를 손에 넣었다.

‘아리엘의 관심.’

카인에게만 쏠려 있던 그녀의 관심이 내게로 나뉘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저 강력하기만 한 마법을 선보인 것이 아니다. 내가 발현한 것은 다름 아닌 ‘고위 마법’이다.

나는 아리엘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

아리엘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 정도면 됐다. 아마도 아리엘은 아르카넘 홀에 자신보다 강한 마법사는 없으리라 생각했겠지.

물론 카인의 마법을 보고 놀라기는 했을 거다.

하지만 결코 내가 준 충격만큼은 아니다.

“데미안 시니야카. 죄종 점수 59점.”

이런 상황에서도 에스틸리아 교수의 목소리는 무심했다. 조금 놀란 시늉이라도 해주면 안 되나.

그러나 심사위원석을 확인한 나는 속으로 만족의 웃음을 머금었다. 이자크 펠리온 교장을 포함한 모든 교수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

.

.

마법학부 시험이 끝났다.

나는 9위라는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1위는 역시 아리엘이었고, 카인도 2위 자리를 지켰다.

“와, 음식이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봐! 그치 세실!”

우리는 ‘에테리아 다이너(Etheria Diner)’라는 이름의 식당에 와 있었다.

“너무 많이는 먹지 마 세실. 우리는 곧 검술학부 시험을 치러야 하잖아.”

“으. 응.”

루나가 마치 언니라도 되는 듯 세실을 챙겼다. 하지만 말과 달리 루나는 제 접시에 많은 음식을 담고 있었다.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할 것이다. 루나는 음식을 좋아하는 것에 비해 먹는 양이 적으니까.

우리를 흘끗흘끗 쳐다보는 눈이 많았다. 처음에는 카인과 나 때문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대부분 루나와 세실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시커먼 남자 녀석들.

“아, 배불러서 더는 못 먹겠어. 끄히잉······, 아깝다.”

예상대로 루나는 가져온 음식의 반의반도 먹지 못했다. 살짝 볼록해진 배가 귀엽다.

“데. 데미안. 합격 축하해.”

아까부터 세실은 내게 적극적으로 말을 붙이고 있었다. 무슨 심리인 걸까. 은월섬에서는 은근히 나를 피해 다니더니.

“데미안. 너 그러면 검술학부 시험은 안 치를 거니?”

루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도 한번 치러 보지. 둘 다 합격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잖아. 어느 학부를 선택할지 행복한 고민도 할 수 있고.”

“나는 이미 마법학부로 결정했어.”

“왜? 조금 이상해. 너는 원래 검을 썼잖니.”

대답할 말을 고민하던 나는 그냥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어차피 아무도 믿지 않을 테니까.

“아리엘라 플랑브아즈에게 관심이 있어서.”

쨍그랑, 접시 위로 포크가 떨어졌다.

세실이 당황한 얼굴로 다시 포크를 쥐었다.

“와······ 데미안. 역시 엘리샤의 말이 맞았어. 남자아이는 다 늑대라고. 예쁜 여자만 좋아한다고.”

“난 이제 남자아이 아니야. 성년식 지났잖아. 그리고 남자가 아름다운 여자에게 관심을 갖는 건 생물학적인 본능이야. 식욕이나 수면욕처럼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세실도 예뻐.”

예상치 못한 루나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루나가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좋아. 그럼 성인 남자로서 너의 그 생물학적 본능이라는 것에 입각해 말해 봐.”

“뭘.”

“세실이 예뻐? 아리엘라가 예뻐? 아니면 내가 예뻐?”

아니, 은근슬쩍 너는 왜 끼워 넣는데.

“얼른 말해 봐 데미안. 아니지. 카인, 너부터 대답해 봐. 누가 제일 예뻐?”

“디네베.”

“아, 아니! 내가 말한 셋 중에서 말이야!”

카인은 제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식사에 집중했다. 그러나 나는 카인의 마음을 안다. 루나야. 너야, 너.

하지만 루나가 카인의 속마음을 알 리 없었고, 그래서 그 불똥은 내게로 튀었다.

“이잇······! 데미안 너는! 빨리 대답해! 본능의 데미안! 생물학적 데미안!”

나는 루나와 세실 중 누구의 이름을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실제로도 나는 둘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는 날도 많았다.

그래서 더욱 루나의 질문에 답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카인처럼 디네베의 이름을 댔다가는 루나에게 흠씬 얻어맞겠지.

그렇다면 여기서는 아예 틀린 대답을 던진 뒤, 적당히 무마한다.

“아리엘라.”

“아······!”

자그만 감탄사는 루나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었다.

세실도 아니다.

나는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나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손끝으로 입술을 가린 아리엘이 동그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

.

.

망했다.

아리엘라라고 답한 뒤에 장난이었다고 둘러대며 회피하려 했는데, 설마 아리엘이 바로 옆에 있었을 줄이야.

우리는 경기장으로 돌아왔다. 루나는 심통 난 표정으로 관객석에 앉아 있었다. 사실 루나는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저러는 것은 잠시고,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웃는 얼굴로 돌아올 테니까.

나는 세실이 신경 쓰였다. 그런데 세실의 표정을 읽기 어려웠다. 화가 난 것 같기도, 실망한 것 같기도, 혹은 자책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세실은 또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이번에는 조금 오래 갈지도 모르겠네. 데미안.”

카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내게 속삭였다.

약아빠진 놈. 네가 디네베 카드를 꺼내 회피하는 바람에 일이 커진 거라고. 아, 리아논이라고 답할 걸 그랬나.

“검술학부 시험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에스틸리아 교수가 진행을 맡은 모양이다.

“검술학부의 입학시험은 수험생의 전투 능력과 전략적 사고를 평가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마법으로 강화된 전투 골렘과 일대일 대결을 펼쳐야 합니다.”

그녀의 말대로 경기장 중앙에는 대략 3미터 높이의 나무 골렘이 서 있었다.

“제한 시간은 3분. 그러나 수험생이 항복하거나, 수험생과 골렘 중 한쪽이 전투 불능 상태에 이르렀다고 판단되면 시험은 종료됩니다. 오러 발현은 자유지만 권장하지는 않습니다.”

오러 발현을 권장하지 않는 이유가 흥미로웠다.

수험생이 오러를 발현하면 골렘은 그 이상으로 강화된다고 한다.

“사용할 무기는 이쪽에서 고르면 됩니다. 다양한 무기가 준비되어 있으니 여러분의 무기술에 맞는 것을 선택하길 바랍니다. 대결이 끝나면 열 명의 심사위원이 1점에서 최대 10점의 점수를 부여하며, 합산 최고점은 100점입니다. 마법학부 시험과 마찬가지로 50점 미만을 획득한 수험생은 입학 정원과 관계없이 탈락 처리됩니다. 그럼, 지혜롭고 용기 있게 대처하시길.”

설명을 마친 에스틸리아 교수가 어느 수험생의 이름을 불렀다.

그렇게 검술학부 입학시험이 시작됐다.

“와, 저 골렘 좀 봐! 엄청나게 커! 정말 신기하지 않니?”

루나가 나와 세실과 카인의 얼굴을 번갈아 돌아보며 말했다.

벌써 화가 풀렸구나.

“빨리 내 차례가 왔으면 좋겠다. 얼른 싸워보고 싶어!”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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