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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9

129화 입학시험 (4)

129화 입학시험 (4)

‘아리엘라 플랑브아즈에게 관심이 있어서.’

세실의 머릿속에 데미안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세실은 아리엘라를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다. 루나 말고 저렇게 예쁜 아이가 또 있었다니. 물론 디네베와 님피엘도 루나 못지않게 예뻤지만, 그래도 세실은 루나를 가장 매력적으로 느꼈다. 그런데 그 생각을 뒤흔든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데미안과 같은 눈부신 금발.

보석처럼 영롱한 에메랄드빛 눈동자.

아리엘라에게서는 루나와는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루나가 오후의 햇살처럼 따스한 기운을 낸다면 아리엘라는 절벽 위의 꽃처럼 고고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

그런 아리엘라에게 관심이 있다고 한다. 데미안은.

‘아르카넘 홀에 입학할 때까지는 데미안과 단둘이 대화하는 상황을 피하는 편이 좋겠어.’

그날, 세실의 방을 찾은 카인이 한 말이었다.

이유를 물었지만 카인은 무서운 표정으로 세실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의 말에 강제성은 없었다. 그러나 세실에게 와닿는 카인의 목소리는 늘 명령과도 같았다.

세실은 괴로웠다. 그날 이후 데미안은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했으니까. 단독 훈련을 하러 가는 세실을 붙잡기도 했고, 깊은 밤중에 방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세실. 잠깐만. 할 이야기가 있어.’

데미안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카인의 맹수 같은 눈동자가 떠올랐다. 데미안을 밀어낸 세실은 주저앉아 울었다. 조금만 견디면 돼. 아르카넘 홀에 입학하고 나면, 이전처럼 데미안과 대화할 수 있어.

그리고 마침내 데미안이 마법학부 시험을 통과했다. 물론 입학 수속까지 마친 것은 아니지만.

세실은 카인의 눈치를 보며 데미안에게 말을 걸었다.

‘데. 데미안. 합격 축하해.’

그런데 데미안의 반응이 평소와 달랐다. 의외라는 듯 세실을 돌아보며 ‘응.’ 하고 짧게 답했다. 몇 번 더 말을 걸어 보았지만 데미안은 이전처럼 다정한 얼굴로 세실을 바라봐주지 않았다.

세실은 초조해졌다. 억지로 불안감을 털어내며 생각했다. 오랜만에 데미안에게 말을 걸어서 그런 거야. 나는 그동안 도망치기만 했어. 그러다가 갑자기 내가 이러니까 데미안은 당황한 거야. 내가 노력하면 돼. 그러면 데미안은 나를 보며 웃어줄 거야.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리엘라 플랑브아즈에게 관심이 있어서.’

세실은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루나의 질문에 다시금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세실이 예뻐? 아리엘라가 예뻐? 아니면 내가 예뻐?’

세실은 터질 것 같은 심장의 고동을 느끼며 데미안의 대답을 기다렸다.

데미안은 누구를 선택할까. 나였으면 좋겠어. 아니······, 그럴 리 없지. 그렇다면 적어도 루나를.

‘아리엘라.’

그러나 데미안은 아리엘라를 택했다. 그러고는 마치 아리엘라가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녀를 돌아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 어딘가에서 얽혔다. 세실은 그들의 눈에서 서로를 향한 호감을 느꼈다. 사실 데미안은 뒷모습이었기에 확신할 수 없었으나, 우아한 손동작으로 입술을 가린 아리엘라의 눈빛은 데미안을 향한 호감과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세실. 응원해 줘.”

부드러운 살갗의 감촉이 세실을 상념에서 끌어냈다.

루나가 세실의 얼굴에 제 볼을 문지르고 있었다. 데미안과 카인이 루나를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1등하고 올게. 헤헤헤.”

루나의 시험이 시작됐다.

***

“올해는 어째 영 별로네.”

아르카넘 홀, 아니 블레이드 앤 아르카넘 홀의 검술학부 교수 ‘샤를로트 브누아’는 투덜대듯 중얼거렸다.

심사위원석에 자리한 그녀는 전투 골렘과 싸우는 수험생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폈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된 녀석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마법학부에는 상당한 인재들이 들어왔는데 왜 검술학부에는 저런 어중이떠중이만······!’

마법학부 교수들의 오만한 얼굴을 떠올린 샤를로트는 치를 떨었다. 분명 입학시험이 끝나면 보란 듯이 검술학부 교수들에게 비웃음을 흘리겠지.

샤를로트는 블레이드 앤 아르카넘 홀을 ‘아르카넘 홀’이라 줄여 부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공연히 옆자리의 사내에게 화풀이했다.

“어이. 뭐라고 말 좀 해보라고, 자크.”

“음? 샬리. 너 혼잣말 한 거 아니었어?”

“빌어먹을. ‘샬리’라고 부르지 말랬지. 이 덩치만 커다란 멍청이가.”

“하하하.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아직 절반의 수험생도 시험을 치르지 않았······ 오! 이번에는 아주 예쁜 아이로군!”

샤를로트도 경기장으로 내려오는 수험생을 보고 있었다. ‘루나 크라소타’라고 했던가. 자크의 말대로 예쁜 아이다. 합격한다면 마법학부의 아리엘라 플랑브아즈와 함께 많은 남학생을 울리겠지.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작아 보였다. 꾸준히 단련한 몸 같기는 하지만 체구가 너무 작다. 저래서는 제대로 힘을 끌어낼 수 없지. 뭐, 눈빛만은 제법이군.

“전투 골렘전. 시작합니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신호했다.

루나 크라소타가 검을 들고 자세를 취했다.

“호오. 빈틈없는 자세인걸?”

샤를로트는 자크의 말에 동의했다.

검을 쥔 모양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생각보다 잘 훈련받은 것 같다.

부웅.

전투 골렘이 오른팔을 내리쳤다. 나비처럼 뛰어올라 공격을 회피한 루나 크라소타가 검을 휘둘렀고, 파앙! 이제껏 들린 적 없는 강렬한 소음과 함께 골렘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이어 전투 골렘의 팔을 박차며 바닥으로 내려선 루나 크라소타가 반 바퀴 몸을 회전시키며 골렘의 다리를 베었다. 그 충격으로 골렘이 벌러덩 뒤로 넘어갔다.

“우와아아아!”

관객석에서 함성이 일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동안 여러 수험생이 시험을 치렀지만 골렘을 넘어뜨린 것은 루나 크라소타가 처음이었다.

“치잇······.”

그러나 루나 크라소타의 얼굴에는 불만의 기색이 완연했다. 전투 골렘의 몸이 멀쩡하기 때문이겠지. 당연한 일이다. 저 골렘에는 마법이 깃들어 있고, 따라서 오러를 발현하지 않은 물리 공격으로는 쉬이 파괴할 수 없다.

샤를로트의 입술이 처음으로 미소를 그렸다.

“어이 자크. 쟤는 내가 가르칠 거야.”

“뭐? 누구 맘대로 네가 가르친다는 거야! 쟤는 나도 점찍어 두었······!”

당황한 자크의 목소리는 관객의 함성에 묻혔다. 루나 크라소타가 재차 전투 골렘을 쓰러뜨린 것이다.

샤를로트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 광경을 봤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 게다가 작은 체구가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한 타격력.’

샤를로트는 루나 크라소타의 하반신을 유심히 살폈다.

‘부족한 근력을 디딤발로부터 끌어오는 거로군. 강하게 바닥을 내디디며 회전을 실어 공격하고 있어. 하지만 저런 공격 방식은.’

루나 크라소타의 검격이 더욱 빨라졌다. 몸놀림도 빨라졌다.

그녀는 전투 골렘의 공격을 모조리 회피하고 방어하며 날카로운 반격을 펼치고 있었다.

“대, 대단해!”

“저렇게 강하고 아름다울 수가······!”

“루나 크라소타라고 했었지?”

“골렘을 박살 내버려! 루나 크라소타!”

관객석에서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이미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더욱 열성적이었다. 그들은 루나 크라소타를 보며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듯했다.

루나 크라소타는 전투 골렘의 몸에 눈에 띄는 상처를 남겼다. 한쪽 팔이 절단되고, 얼굴 절반이 날아갔으며, 옆구리에도 깊은 검흔을 새겼다. 그러나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골렘은 수험생에게 승리를 안겨줄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니까.

게다가 루나 크라소타의 움직임은 시험이 시작되고 2분이 지난 시점부터 둔해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샤를로트는 아니었다. 루나 크라소타는 무리한 공격을 반복하다가 발목을 다쳤다.

“제한 시간 종료.”

에스틸리아 교수의 목소리와 함께 전투 골렘이 움직임을 멈췄다. 루나 크라소타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검을 갈무리했다. 그러나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는 여전히 투지로 가득했다. 샤를로트는 그 눈빛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녀와 자크를 포함한 열 명의 심사위원이 팻말을 들었다.

“루나 크라소타. 격투 점수 76점. 현재까지 최고점입니다.”

관객석에서 우레같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루나 크라소타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환히 웃으며 에스틸리아 교수와 심사위원들에게 허리를 숙였다. 관객석을 향해서도 꾸벅 인사한 그녀는 무기를 반납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샤를로트는 그 모습을 눈여겨봤다. 발목에 상당한 통증이 있을 텐데 내색하지 않는다. 강인한 정신력을 지녔다는 의미다. 아마 추가 시간이 주어진다면 고민하지도 않고 골렘과 2차전을 벌이겠지.

샤를로트는 웃었다.

점점 더 저 아이가 마음에 든다.

“샬리. 네가 그렇게 요염하게 웃으니 문득 옛날 생각이······.”

“닥쳐. 자크.”

자크가 무안한 얼굴로 뒤통수를 긁었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다음 수험생을 호명했다.

“세실리아 크라소타.”

‘크라소타’라는 이름이 샤를로트의 관심을 끌었다. 루나 크라소타와 자매인가?

관객들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수험생을 바라봤다. 경기장으로 내려온 세실리아 크라소타가 검을 쥐었다. 이어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관객석 어딘가를 돌아보더니, 검을 내려놓고 단검 두 자루를 양손에 쥐었다.

“호오. 단검이라.”

자크는 저 수험생이 단검을 선택한 것에 흥미를 느낀 듯했다. 하지만 샤를로트는 다른 것에 관심이 일었다.

‘왜 저렇게 화가 났을까?’

샤를로트는 재미있다는 눈으로 세실리아 크라소타를 바라봤다. 저 아이는 지금 무척 화가 나 있다. 이유가 뭘까. 루나 크라소타가 높은 점수를 획득해서? 아니면 그 반대인가?

“저 아이도 예쁘군.”

자크의 중얼거림이 샤를로트의 심기를 긁었다.

“어이. 아까부터 딸자식 같은 아이들에게 무슨 흑심을 드러내는 거냐.”

“아직 그 정도 나이 차는 아니거든! 게다가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그렇게······!”

“빌어먹을 입냄새 나니 이쪽 보고 말하지 마.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루나 크라소타는 내가 가르칠 거니까 그리 알아.”

“허! 네가 뭔데 마음대로 결정이야!”

“뇌까지 근육으로 꽉 차서 못 알아듣는 건가? 훌륭한 학생을 훌륭한 교수가 맡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거야.”

“뭐라고? 그럼 나는 훌륭하지 않다는 거야!”

발끈한 자크가 덥석 샤를로트의 멱살을 쥐었다. 샤를로트도 코웃음을 흘리며 자크의 멱살을 마주 쥐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짐승처럼 으르렁대며 서로를 노려봤다. ‘전투 골렘전. 시작합니다.’ 하는 에스틸리아 교수의 목소리가 샤를로트의 귓가를 스쳤다.

“자크. 이거 당장 놓지 않으면.”

그때,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샤를로트의 말을 잘랐다. 샤를로트는 심사위원석의 모든 교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을 봤다. 귀를 울리는 함성은 쉬이 그치지 않았다. 점점 더 커다래졌다.

샤를로트는 기이한 기분을 느끼며 경기장을 돌아봤다. 그리고 경악했다.

‘뭐, 뭐야······!’

양손에 단검을 쥐고 선 세실리아 크라소타.

그 아래로 사지가 절단된 전투 골렘이 널브러져 있었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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