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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

12. 소꿉친구 – 네비스

새로 계약한 상단이 출발했다.

수도 네비스에 접근할수록 자잘한 마을들과 도시가 많아져서 상단은 여러 번 마차를 쉬었다.

주머니에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다. 레나와 레오는 며칠씩 쉴 때마다 느긋하게 관광을 했고, 레오는 레나에게 은근히 술을 권했다.

데모스 마을은 술에 대해서는 다소 엄격해서 성년이 아니면 술을 주지 않았다. 청년들이 몰래 술을 구해서 먹고는 했지만 걸리면 크게 혼이 났다.

그래서 성실한 레나는 여태껏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레오는 작정하고 맥주를 통으로 사서 숙소로 가져왔다.

그가 술통을 내려놓고 주섬주섬 술잔을 꺼내 들자, 레나는 기대하며 입술을 핥으면서도 불안한 듯 눈을 내리깔았다.

“우리 이거 마셔도 되는 거야? 혼날 텐데…”

“누구한테?”

“비나르 님이라던가…”

비나르는 십자교회에서 모시는 다섯 신 중 하나로, 악행을 계도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레오는 스스로 악마를 자처하며 유혹했다.

“사제님도 제사 올릴 때 술을 드시잖아.”

“그건 그렇지.”

“예행연습하는 셈 치고 마셔봐. 뭐 어때, 너도 언젠가는 사제가 될 텐데. 게다가 우리도 몇 달 뒤면 성년이잖아. 비나르 님께서도 이 정도는 이해해주실걸.”

레나는 솔깃해져서 그가 내민 술잔을 받아 만지작거렸다.

술이라는 게 뭔지 오랫동안 궁금하긴 했다. 마을 어른들은 이걸 마시면 기분이 좋은지 웃음이 많아졌다.

그녀는 못 이기는 척 술잔을 들었다.

“…그럴까?”

“그럼 그럼. 조금만 마셔봐. 어른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니까.”

친한 친구와 마시는 첫 술자리는 각별한 것이었다.

레오는 흐릿한 추억을 되새기며 레나의 잔을 채워줬다. 별 볼 것도 없는 마을에 이틀이나 있으려니 무료한 것도 한몫했다.

레나는 조심조심 술잔을 기울여 입에 대었다.

“음! 맛이 신기하네.”

마음에 든 모양인지 무방비하게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그녀를 보면서 레오는 속으로 낄낄 웃었다.

계획대로다.

“그런데 레오~ 이거 먹으니까 조금 어지러워.”

“그 맛에 먹는 거라던데?”

그는 능청을 떨면서 같이 맥주를 홀짝였다. 레나가 마시는 것도 살살 조절해줬다.

예상대로 레나는 살짝 취하면서 말이 많아졌다.

의심받지 않고 옛날이야기를 물어보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다.

레오는 무작정 과거를 지목했다.

“레나. 그때 있잖아, 재작년 여름. 기억나?”

“아! 그거어~ 기억나지이이~ 그때 네가~”

“맞아 맞아. 그랬었지!”

술에 취한 레나는 옛날에 있던 추억들을 쏟아냈다. 레오는 모르지만, 그녀가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던 과거사가 비산했다.

두 사람이 억지로 코코렌을 잡아 왔다가 마을 어른들에게 혼쭐이 났던 일, 계곡물에 빠진 레나를 레오가 구해준 일, 교회에서 공부하는 레나 곁에 심심하게 붙어있다가 종을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마을의 형들이 불이 난 줄 알고 달려왔던 일…

레오는 이상하게도 그녀와의 추억을 들으며 묘한 충만감을 느꼈다.

하나씩 알아 갈수록 진짜 레오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레오가 아니다.’

이 전제는 항상 그에게 괴로움을 줬다.

그냥 ‘여기는 게임이고 나는 레오다!’라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할는지 모르겠지만, 이 전제를 버려선 안 됐다.

이건 시나리오가 시작되고 레오의 정신에 동화될수록 좋아지는 레나를 위한 최소한의 벽이었다.

동화되지 않더라도 좋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더 필요한 것이었다. 누군가의 진심을 담은 호의에 직면한다는 건 이런 느낌이었다.

그 답례로 작은 벽을 세워 주는 수밖에 없다.

나는 레오가 아니니까.

레나가 몸을 앞으로 기울여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그녀의 작은 혀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너어는 말이햐. 자꾸 나안테! 나한테 그렇게 잘해주면! 응?! 어뜨하려는 거야? 응?!”

레오가 취기를 다스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레나의 말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주사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었는지, 레나는 거의 고함을 질렀다.

“내가 사제! 아니지 사제님! 되구나면 응! 어뜨케하려고 그해? 응?! 난 해줄 게 엎는데!”

“축복이라도 내려주면 되지 뭘.”

“축보옥? 축보오옥? 레오! 기다려우봐. 내가 사제가 되구나믄 꼭 내가 그걸 아주그냥~”

재미있지만 이제 슬슬 재워야겠다. 여기서 더 먹여봐야 좋은 꼴을 못 본다.

레오는 레나를 들어 침대에 던져넣었다.

레나는 덮인 이불한테 비키라며 바동바동 씨름을 하다가 꼴까닥 잠이 들었다.

다음날, 역시 그녀는 자기가 한 말을 기억하지 못했다.

언제고 술주정의 위험성을 가르쳐주긴 해야겠어서 다시 술잔을 기울일 날을 기다렸지만, 그런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상단이 네비스에 도착했다.

* * *

상단주는 레나와 레오를 이끌고 숙소를 찾았다.

한참 두리번거리던 그가 드디어 발을 멈췄다.

“여길세. 오랜만이라 길을 헛갈릴 뻔했네.”

그가 안내한 곳은 네비스 외곽에 위치한 작은 숙소였다. 겉보기에는 깔끔했고 밖에 화분도 몇 개 놓여있었다.

네비스에 도착하자 상단주는 자기가 아는 싸고 좋은 숙소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그는 친구가 운영하는 곳을 영업하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라며 멋쩍게 웃었다.

네비스에 초행인 우리에겐 나쁠 것이 없었다. 경험 많은 상단주가 훨씬 잘 알고 있을 테니, 그의 호의를 기꺼이 받았다.

상단주가 숙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건물 크기에 비해 제법 넓은 로비가 보였다.

카운터에는 근사한 콧수염을 기른 주인장이 앉아있었다.

“오랜만일세! 친구.”

“여어! 정말 오랜만에 왔군. 도통 오질 않아서 까먹을 뻔했어.”

두 사람은 친근하게 인사를 나눴다.

레나와 레오도 상단주를 따라 인사를 하고 트윈 방이 있느냐고 물었다. 주인장은 아쉬운 어조로 손님들보다는 친구를 더 신경 쓰듯 말했다.

“여기 두 분 들어갈 방이야 당연히 있지만, 자네 상단 사람들까지 들어올 방은 없는걸. 보기보다 지금 손님이 많아서 말이야.”

숙소 로비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예약 손님이 많거나 숙박한 사람들이 다들 나가고 없는 모양이었다.

대낮이니 그럴 만도 했다.

상단주는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아쉽구만. 그럼 이 친구들 방이라도 주겠나? 동행한 친구들인데 내 얼굴 봐서라도 좀 싸게 해주게.”

주인장은 그건 곤란하다며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파하하 웃으며 승낙했다.

“오래 묵을 생각인가?”

“지금 가격대로만 주신다면 정말 오래 묵을 것 같기도 해요. 일단 하루만 숙박해봐도 될까요? 일거리를 찾아야 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알겠네. 장기 손님 받으려면 좋은 방을 보여줘야겠구만. 따라오게. 아, 자네는 잠깐 기다려. 저번에 주려고 했던 게 있는데 깜박 잊었어.”

주인장이 2층에 있는 방을 보여줬다.

역시 수도는 숙소도 달랐다.

깨끗한 침대의 매트는 척 보기에도 푹신해 보였고, 구석에는 깔끔한 서랍장과 장롱이 놓여있었다.

창가에는 탁자도 하나 있었는데, 작은 화분에 놓인 꽃은 말라 죽어 있었지만 방에 운치를 더했다.

레나는 방이 마음에 들었는지 뒤에서 레오를 콕콕 찔렀다. 레오도 거절할 생각이 없어서 돈을 즉시 꺼냈다. 상단주 덕분인지 가격도 쌌다.

아직 레나가 어디서 일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여기에 오랫동안 머물러야 할 공산이 컸다. 이렇게 좋은 방이라면 우리로서는 대환영이다.

돈을 받은 주인장은 열쇠를 넘겨주고 내려갔다.

레나는 감격한 듯 방을 빙글 둘러보며 말했다.

“레오! 여기 진짜 좋다. 가격도 싼 거지?”

“응. 외곽에 있는 곳이라 저렴한가 봐. 그런데 시설도 정말 좋은데?”

“앞으로 여기서 묵을 거야?”

“네가 일할 곳이 너무 멀지만 않으면 여기서 지내자.”

레나가 신이 나서 창문을 열자, 아래로 상단주가 숙소를 막 나서는 게 보였다.

레나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팔을 크게 휘저었다.

“아저씨! 고마워요!”

상단주는 위를 올려다보더니 손을 한번 가볍게 흔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점잖음을 잃지 않았다.

“진짜 좋은 분이다.”

“맞아. 다른 상단주 아저씨는 농담이 너무 심했어.”

처음 만났던 상단주는 입이 걸었다. 은근한 섹드립이 끊이지 않던 사람이라 레나가 난처해했었다.

반면에 저 상단주는 예의가 발랐다. 처음 만났을 때도 우리의 사정을 딱하게 생각했는지 가격을 깎아줬었다.

인정이 많은 사람이다.

레나와 레오는 잠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창문을 닫았다.

“또 만날 날이 올까?”

“인연이 있으면 언젠가 또 뵙겠지.”

두 사람은 짐을 풀고 밖으로 나가며 주인장에게 중심가에 다녀오겠다고 알렸다. 그는 좋을 대로 하라는 듯 콧수염을 만지며 빙긋 웃었다.

숙소를 떠나 대로에 나오자 네비스의 전경이 펼쳐졌다.

“레오! 저기 성 좀 봐! 엄청 크다!”

레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 멀리에 높이가 팔 미터는 됨직한 성벽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성을 향해 다가갈수록 성벽은 계속 커졌다.

성문 근처는 시장통이었다.

잡다한 곡물과 채소, 피혁과 가축, 밀가루와 소금 등등을 파는 상인들이 각자 좌판을 깔고 우글거렸다.

잡상인들은 외성 출입구에서 장사하고, 2차 가공을 해서 판매하는 것들은 안에서 취급하는 것 같았다.

레나는 수도의 번화함에 놀라 어쩔 줄 모르고 발을 동동 굴렀다.

큰 마을(토리토) 장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고, 지금껏 지나온 도시들과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레오도 성 밖은 처음이라 신기하게 둘러봤다.

약혼관계 시나리오의 배경이었던 에이브릴 성은 군사적인 목적이 강한 성이어서 이런 번화함이 없었다.

거지남매 시나리오의 배경인 수도 오르빌에서는 성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아마 비슷한 분위기가 아닐까?

한참 두리번거리는데 사람들이 우글우글 몰린 곳이 보였다.

“으… 저게 노예를 파는 거야?”

작은 무대 위로 헐벗고 깡마른 노예들이 차례차례 올라왔다.

모두 험한 매질을 당했는지 흉터투성이였고, 의욕도 없는 듯 얼굴에는 체념이 가득했다.

몰려든 사람 대부분은 그냥 구경꾼으로 보였다.

가장 앞줄에 앉은 사람들이 진짜 고객인 듯 심각한 표정으로 노예들의 상태를 품평하고 있었다.

곧 판매자가 무대에 올라서서 뭐라 뭐라 설명했다. 요약하면 남쪽 늪지에 사는 야만인 부족을 잡아 온 거란다.

‘인간의 시대’가 열렸지만, 이 대륙에는 아직도 개척되지 않은 땅이 많았다.

먼 옛날, 아카이아 제국은 신의 이름으로 거대한 군단들을 동원해 온 대륙을 헤집었다.

그 과정에서 모든 이종족들이 섬멸됐지만, 야만인들은 살아남았다. 인간을 위하는 십자교회가 그들을 치는 걸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개척되지 않은 땅에는 야만인 부족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약혼관계 시나리오에서 나왔던 아이나르 부족도 중부와 남부 왕국들의 기준에서는 야만인이었다.

단지 북부의 왕국이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야만인 부족들을 국민으로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중부와 남부 왕국들은 아스틴 & 아스터 왕국을 야만인의 땅이라며 경멸했고, 오직 십자교회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신성 왕국만 두 왕국과 교류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약혼관계 시나리오의 레나 아이나르가 만날 수 있는 왕자가 몇 없다는 뜻이었다.

아스틴 & 아스터 왕국의 왕자 또는 신성 왕국의 왕자만 어떻게 시도해봄 직했다.

신분을 숨기면 어떤 왕자에게건 접근할 수 있겠지만, 자존심이 센 레나 아이나르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레나가 레오를 툭툭 두들겼다.

“레오, 무슨 생각하는데 그러고 있어? 가자. 나 저거 보기 괴로워…”

“아! 미안해. 빨리 가자.”

잠깐 다른 시나리오를 궁리하다 눈앞의 레나를 잊었다. 그녀는 울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신학을 공부하는, 선량한 레나에겐 보기 괴로운 광경일 거다. 신학에서는 언제나 인간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말하니까.

하지만 현실은 많이 달랐다.

둘은 시장을 벗어나 성문으로 다가갔다. 그때,

“이봐. 거기 너. 이리 와봐.”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이 레오를 불러세웠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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