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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0

130화 라이온하트(3)

“저희 북부군은 현시점으로 연합을 탈퇴할 것을 선언합니다.

카리나 드라고니아 대공.

당대 사자심왕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의 적녀이자 그가 사자심왕으로 즉위한 뒤, 후계자의 탄생으로 내려놓은 대공위를 이어받은 자.

태어날 때부터 사자심왕이 겸임하고 있는 드라고니아 대공위를 이어받을 후계자로서 교육받았고, 성인식과 동시에 작위를 이어받아 40년간 대공령을 다스려왔다.

60세의 나이가 라이온하트에서 그리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젊은 것도 아니다.

시조가 뒤집어 쓴 용의 피 덕에 성배기사급으로 노회하지 않는 이 드라고니아 대공은 겉모습으로는 결코 판단할 수 없는 노련함과 경험이 함께한다.

그런 그녀가 인류 최후의 연합군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레온은 카리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성수의 증기가 피어오르는 희뿌연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불허한다. 북부군은 연합의 큰 축이다. 그대들이 빠지면 우리 군의 약세화는 피할 수 없다.”

“더해진다 하여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지요.”

“대공 각하…….”

대성녀 아냑이 슬픈 시선을 보냈지만, 카리나는 무뚝뚝한 감정으로 현실을 말할 뿐이다.

“폐하, 왕도는 함락됐고 대륙 전토는 이미 폐허가 되었습니다. 우리 군의 숫자는 채 이십만이 채 남지 않았고, 농노병들을 합한다 해도 삼십만도 되지 않지요. 반면 적의 군세는 어떻습니까?”

천만.

그것조차 보수적으로 잡은 숫자다.

전 세계에 열린 데몬 게이트에서 꾸역꾸역 쏟아지는 악마들은 그 숫자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수준.

“폐하, 만신전의 대리인이시자 모든 기사를 지휘하시는 워나이트시여. 정녕 이 전쟁에 승산이 있습니까?”

“…….”

레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무책임한 정신론을 논할 만큼 그의 자리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폐하께서는 승리하세요.’

그곳에 대고 하리는 말하고 싶었다. 눈앞의 이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라는 남자는 끝내, 홀로, 마지막까지 악마와 싸워 승리한다고.

그러나 그것이 모두가 죽고 난 후의 허망한 승리임을 알기에 하리는 그것을 언급할 수가 없었다.

“하여 어쩌잔 것이냐.”

“대공령은 제국 다음으로 불태워진 곳이지요. 북부군 3만의 장병들은 고향을 잃었고, 가족을 잃었습니다. 이제 우리 북부에게 남은 것은 오롯이 우리뿐이지요.”

카리나는, 드라고니아 대공은 말했다.

“그렇다면 악마 모두를 찢어 죽이지는 못할지라도, 우리 가족의 원수는 갚아야지요. 감히 대공령에 둥지를 틀고 죽은 자들을 모욕하는 악마들을 처단할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가 가진 원한이었다. 이 전쟁에서 가족을, 친지를 잃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나를 원망하느냐.”

그리고 레온은, 제 가족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였다.

“짐이 드라고니아 대공령보다, 악마의 주력군을 쳐부순 것을 우선한 것이, 잘못되었다 생각하느냐.”

일년의 시간을 벌기 위해 악마들의 주력을 섬멸할 것인가, 함락 직전인 대공령을 구원할 것인가.

레온은 왕국 전체를… 아니, 인류 전체를 위한 시간을 선택했다.

“아니요, 폐하. 폐하는 그리하셨어야 했습니다. 폐하께서 짊어지신 의무는 대공령보다 왕국 전체가 우선이었기에 마땅히 그리 선택했어야 했습니다.”

“허면 어찌…….”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복수입니다. 이것이 그 증표입니다.”

그때였다. 카리나가 제복의 어깨춤을 뜯어내더니 맨살을 드러냈다. 그 드러난 맨살에는 한없이 어두운 성력이 자리 잡고 있다.

“카리나…!”

레온이 벌떡 일어섰다. 그의 부릅뜬 눈이 제 딸을 노려본다. 그럼에도 대공은 아버지와 반목할 뿐이다.

“저와 북부군 전원 복수의 신과 계약을 마쳤습니다. 이 시간부로 저는 어둠과 복수의 벤타시스를 섬기는 성배기사이며 3만의 복수자들을 지휘하는 드라고니아 대공입니다.”

폐하, 저의 의무는 이제 생존이 아닙니다.

딸의 가혹한 선언에 레온은 주먹을 꽉 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네 뜻대로 하여라, 드라고니아 대공! 꼴도 보기 싫다! 짐의 눈앞에서 사라져라!”

“…….”

대공 카리나는 한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가벼운 묵례와 함께 자리를 나섰다.

* * * *

“괜찮겠어?”

이사벨이 물었다. 그녀는 제 조카와 매부가 걱정스러운 듯하다.

“이미 늦었다. 복수의 신과 계약했으니 그 아이의 운명은 이제 하나뿐이야.”

레온은 마른 세수를 하면서 자포자기한 심정을 토로했다.

“짐이 잘못된 선택을 내린 것인가.”

“글쎄. 폐하는 지금까지 잘못된 선택을 내린 적이 없어.”

“다른 이도 아닌 그대가 그리 말해주는 건가?”

“멀쩡한 순결의 신관이었던 내 동생을 납치해서 결혼한 건 뭐… 쌍방합의였으니 그렇다 치자고.”

이사벨은 레온의 어깨를 주무르며 키득거렸다. 무엄한 행위였지만, 왕의 처형은 이 정도는 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북부군의 이탈은 폐하의 공식적인 왕명인 것으로 포장하는 게 좋겠네. 무단이탈은 연합의 와해를 부를 테니까.”

“북부군은 짐승신의 사교도들과 대공령의 악마들을 토벌하는 것으로 공표하지. 안토크 경은 무얼 하고 있지?”

“폐하의 새 갑옷을 만들고 있다고 들었어. 혼돈의 군주와의 싸움에서 망가졌잖아.”

“북부군이 출정하기 전에 그 아이를 위해 검 한 자루를 벼려달라 전해주게. 짐의 갑옷은 나중에 만들어도 괜찮아.”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아냑은 말없이 레온의 몸을 씻기며 얼룩들을 정화해나갔다. 하리도 레온의 눈치를 보면서 불꽃의 권능을 피웠고.

레온의 몸에 진득하게 달라붙은 악마대공의 저주는 밤을 꼬박 새우고서야 끝이 났다.

* * * *

야피는 자신의 동체가 어딜 가도 눈에 뜬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재혁과 수호에게 배정된 천막에 동체를 내려놓고 작은 본체로 만신전을 돌아다녔다.

베아트리체가 주요 임무를 해내러 떠난 사이 야피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 시대 라이온하트의 주물 기술들이다.

-성물 제조기술 확보가 시급. 정찰모드 ON.

드론은 눈에 띄지만, 야피 자신의 미니멀 본체라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염탐을 할 수 있었다.

야피는 만신전 진입시 스캔한 정보를 바탕으로 도시 중심부에 있는 거대한 대장간 시설로 잠입했다.

-다각다각!

기계다리가 지붕을 타며 대장간의 천장으로 진입한다. 그곳에는 가벼운 차림의 대장장이들이 가득이었다.

“남은 별철이 얼마나 남았지?”

“재고가 부족합니다. 새로운 별을 소환해야…….”

“시기가 좋지 않아. 아냑 대성녀님께서는 별다른 말이 없으셨는가?”

라이온하트 왕국에서 대장간은 철과 대장장이의 시선을 믿는 신관들이 맡는다.

대장장이라는 직종 자체가 신관직을 겸임하다 보니 그들의 어투는 다른 대장장이들에 비해 정중하고 거칠지 않았다.

-끼룩.

게다가 시설도 중세 시기의 대장간이라기엔 매우 깔끔하고 체계적이다. 시설의 한켠에는 철을 분리하고 분해하는 분리대와 철에 축복을 내리는 신관들이 따로 있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대장장이가 작업하는 게 아니라 업무분담이 되어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기술과 지혜에서 오는 지식일 뿐. 진짜배기는 중심의 핵심 주조시설이다.

-영상기록. 동작분석 및 백업 다운로드 개시.

야피는 그중에서도 한 대장장이 신관을 보았다.

2m가 넘는 거구에 사람 몸통만 한 망치를 두드리는 사내. 그의 망치질은 기계인 야피가 보기에도 군더더기 없이 완벽하다.

유독 그의 작업대만이 주변에 사람이 없고 혼자인 것을 보아 이곳에서도 명장, 명공으로 분류되는 이가 아닐까?

“쥐새끼가 있군.”

그 말과 동시, 대장장이 신관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정확히 야피가 있는 곳을 향해.

-끼룩!?

순간 자신에게 발생한 인력에 천장이 뜯어질 정도로 꽉 잡았으나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야피.

철과 대장장이의 성배기사인 야피조차 항거할 수 없는 힘에 붙잡힌 야피는 눈앞의 중년 사내와 시선이 마주쳤다.

“누구냐, 넌?”

-끼룩!

야피는 사내의 솥뚜껑만 한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꿈쩍도 하지 못했다.

-놔라, 유기물…!

야피의 기계팔이 강철 와이어를 늘어뜨렸다. 순식간에 채찍이 되어 사내를 덮치는 와이어. 거기에 담긴 성력에 사내가 의아해한다.

“호오….”

하지만 그 순간, 위협을 위해 휘둘렀던 와이어들이 일제히 바닥에 깔린다. 마치 거대한 압력을 받은 것처럼.

-끼룩!

동체의 무게가 비정상적으로 가중되었다. 야피는 그것을 이겨내려 했지만, 현 사이즈로는 출력이 부족하다.

“쥐새끼인 줄 알았는데, 이거… 귀여운 신관님이셨군.”

사내는 야피에 대한 압력을 거두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천장으로 도주해 전투태세에 돌입하는 야피.

“그만두게. 같은 신성을 모시는 신관끼리 적대할 이유가 무엇인가.”

사내는 오히려 손사래를 치며 야피를 달랬다.

“본인은 철과 대장장이의 성배기사 안토크라고 하네.”

-끼룩?

야피는 그 이름을 들은 바가 있었다. 레온이 가끔 말하던 과거의 친우.

“광산 수호자 안토크, 라고 하면 아시겠는가?”

* * * *

천둥의 성배기사 길링엄의 안내로 천막을 배정받은 일행들은 늦은 밤이 돼서야 한자리에 모였다.

“야피 경이 안 보이는데?”

“여왕님도 안 돌아오셨어.”

재혁과 소연은 가장 먼저 도착해 숙소를 정리했다. 야피의 큼직한 동체가 천막 한가운데에 대기하고 있어 생각보다 비좁다.

“애들아, 우리 누나 못 봤어?”

수호가 이 자리에 없는 하리를 찾았을 때였다. 천막 입구가 펴지며 익숙한 댕기머리 소녀가 입장한다.

“미안, 내가 늦었지?”

“누나!”

하리는 식재료가 가득한 바구니를 가져왔다.

“신전에서 수고했다고 이것저것 주더라구.”

“신전에 다녀오셨슴까?

“응. 그곳에서 폐하도 만났어.”

“폐하를요?”

레온을 만났다는 말에 휘둥그레지는 시선들. 하리가 첨언했다.

“정확히는 이쪽 게이트의 폐하. 우리가 알던 폐하가 아니었어.”

“역시… 이 세계는 레온 폐하의 게이트였군요.”

네 사람은 각자가 수집한 정보들을 공유했다.

“왕도가 점령된 지 꽤 됐답니다. 왕국 대부분이 악마들에게 점령됐고 이곳이 거의 유일한 도시라고 함다.”

“벤타시스님에게 최후의 전투에 들어본 적이 있어. 그 전투가 이번 게이트의 메인 아닐까?”

“폐하가 이야기하던 부분을 어쩌다 듣게 됐는데, 북부군이 이곳을 떠날 거래.”

전체적인 주제는 전황에 관한 것이다.

레온의 세계를 침공했던 악마들의 군세와 인류 최후의 연합군을 구성한 라이온하트 왕국군.

항전하는 연합군과 점차 세력을 확장해가는 악마들까지.

“”…….””

그들은 이 싸움의 결말을 안다. 레온이 흑색 게이트의 생존자로 등장하고, 끝내 악마들 모두가 격멸되었으나 레온의 세계는 결국 멸망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이 게이트의 클로징 조건은 대체 무엇인가? 이 게이트의 퀘스트부터 알아내야 할 것까지 모두가 난해하기 그지없었다.

“저기…….”

그때, 수호가 손을 들었다.

“다들 만신전의 신님들과 연결된 사람들 있어? 성법은 사용할 수 있는데, 아리아나 님의 반응이 좀 약해. 노이즈가 낀 것처럼 잘 안 들린다고 할까?”

“아…….”

무심코 잊고 있던 사실. 성법이 자연스럽게 사용되어 생각 못했다.

“그러고 보니 아…! 아앗!”

하리는 레온의 축성의식 때, 자신에게 들렸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자신이 누구냐고 묻는 페토스의 음성. 신전을 빠져나오고선 들리지 않았기에 깜빡 잊었더랬다.

“그러네? 지금은 왜 연결이 안 되는──”

“잠깐만, 주변이 너무 조용하지 않아?”

천소연의 말에 다들 그 위화감을 감지했다. 넘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수천 개씩 세운 천막은 왁자지껄한 사람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렸었다.

그런데 지금, 하리 일행들이 있는 천막 바깥이 너무 고요하다. 마치──

-쿵!

그 순간, 천막이 통째로 뽑혔다. 천막을 뽑아낸 것은 거대한 트리맨이었다. 그리고 온 사방을 가득 채운 병사들이 하리 일행들을 주시한다.

“…….”

“…….”

당최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하리 일행들이 뻐끔뻐끔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가운데, 그들 앞에 날렵한 구릿빛 갑옷을 입은 한 기사가 앞장 섰다.

“본작은 라이온하트 왕국 무력판관이자 태양과 심판의 신성 타타르를 섬기는 성배기사 록슬리다! 죄인들은 얌전히 오라를 받으라!”

“옛?”

“죄, 죄인이요? 저희가 뭘 했다고──”

“닥쳐라, 죄인 놈들아! 본작은 너희들의 아가리가 열리는 걸 허하지 않았다!”

록슬리 경이 검을 뽑아 겨눴다. 그의 목소리가 온 사방에 쩌렁쩌렁 울린다.

“덮쳐라! 반항하면 팔다리 한 짝 정도는 끊어버려도 좋다!”

레온과 부대끼며 지낸 세월 그들이 공통적으로 습득한 지혜가 있다면, 이럴 땐 닥치고 항복부터 하라는 것이다.

“무, 무기 버렸어요!”

“항복! 항보오오옥!!”

왜냐면 반항하다 두개골이 으깨지거나, 팔다리가 날아간 악마와 오크들을 너무 많이 봤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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