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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0

130화 구두

130화 구두

샤를로트는 제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두 눈을 깜빡이며 다시 봐도, 여전히 전투 골렘은 팔다리를 잃은 채 경기장에 널브러져 있었다.

관객석의 함성은 끊일 줄을 몰랐다. 건물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샬리! 너 때문에 못 봤잖아!”

이 미친놈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었다.

샤를로트는 전투 골렘을 뚫어질 듯이 노려봤다.

마치 버터를 잘라낸 것처럼 말끔한 단면.

‘부순 것이 아니야.’

베었다.

더욱 믿기지 않았다.

전투 골렘의 몸에는 강력한 보호 마법이 깃들어 있다. 서투른 공격으로는 결코 저런 단면을 만들 수 없다. 입학시험에 앞서 전투 골렘의 상태를 확인한 이가 바로 그녀, 샤를로트다.

샤를로트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전투 불능이 된 골렘을 지나, 세실리아 크라소타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흠칫 놀랐다.

‘무슨 눈이······!’

희미하게 떨리던 샤를로트의 입술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녀는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갑자기 왜 웃고 난리야! 샬리!”

자크의 외침을 무시하며 샤를로트는 계속 웃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쟤도 내가 가르칠 거야.”

***

세실이 검을 내려놓고 단검을 손에 들었을 때 나는 놀랐다.

단검을 선택한 것도 의외였지만, 그보다 더욱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다. 세실은 검을 내려놓기 전에 관객석의 어느 한 곳을 돌아봤다. 그때의 세실은 살수의 눈을 뜨고 있었고, 나는 바로 알았다. 세실이 노려보는 대상이 아리엘이라는 것을.

시험이 시작되자마자 세실은 제 실력을 드러냈다. 물론 영력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력의 발현 없이도 세실이 보인 능력은 나의 상상을 초월했고, 그 결과가 저것이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골렘은 팔다리를 잃고 전투 불능이 됐다.

“우와아아아!”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뭐긴! 골렘이 전투 불능이 됐잖아!”

“부, 불량품 골렘인가?”

관객석은 난리가 났다.

루나의 무용(武勇)도 대단했지만, 세실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였다. 왜 저렇게까지 한 거지?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세실이라기에는 믿기지 않는 행동이었다.

설마 아리엘을 경계하는 건가.

“대, 대단해······.”

루나의 눈이 흔들렸다.

지금, 루나는 자신과 세실의 격차를 인지했을 것이다. 세실은 그동안 단독 훈련을 했기에 우리 중 세실의 실력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나는 통찰 스킬로 확인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행위가 마치 세실의 알몸을 엿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단해······. 세실은 정말로······.”

나도 놀랐지만 루나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겠지. 루나에게 세실은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지만, 한편으로는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게 하는 상대다. 그동안 루나는 세실을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일대일 대결에서도, 팀 대결에서도.

에스틸리아 교수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울렸다.

“세실리아 크라소타. 격투 점수 89점. 현재까지 최고점입니다.”

의외였다.

저런 엄청난 무력을 보였는데 89점이라니.

100점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우와아아!”

“89점이라니!”

“대단하다! 세실리아 크라소타!”

“수석 확정이군!”

나의 의문과 달리 관객석의 수험생들은 89점이 상당한 고득점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뭐, 높은 점수이기는 하지만.

관객의 환호가 부담스러운 듯, 세실이 빨개진 얼굴로 계단을 올라왔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죄지은 강아지처럼 고개를 숙였다.

“대단해! 정말 대단했어 세실!”

루나가 세실의 얼굴에 제 볼을 문질렀다. 한쪽 뺨이 눌린 세실의 입술이 병아리 부리처럼 뾰족해졌다.

‘으. 응.’ 대답하며 세실은 내 눈치를 봤다. 잠시 후, 루나의 품에서 해방된 세실이 작게 말했다.

“미. 미안해. 데미안.”

“뭐가?”

“다. 단검. 써서.”

세실은 진심으로 잘못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세실은 아르카넘 홀에서 단검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었다.

하지만 괜찮을 것이다. 제국은 넓고, 수많은 인종이 섞여 사는 나라다. 그렇다면 단검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전사도 많겠지.

“신경 쓰지 마. 이미 지난 일인걸. 그건 그렇고 정말 대단했어 세실.”

나는 습관적으로 세실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흠칫 놀라 손을 떼려 했다.

그런 나의 손을 세실이 붙잡았다.

고개 든 세실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더. 해줘.”

***

“뭐야. 왜 저렇게 수군대며 쳐다보는 거야?”

가늘고 섬세한 은빛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은빛이 아닌 연회색이다.

루나는 은월섬을 떠나기 전, 엘리샤의 마법으로 눈썹과 머리색을 바꿨으니까.

‘시, 싫어요! 왜 머리색을 바꿔야 하는데요!’

루나는 기겁하며 도망 다녔다. 하지만 머리색을 바꾸지 않으면 입학원서를 주지 않겠다는 말에 울상이 되어 붙잡혔다. 루나는 엘리샤에게 애걸했다. 제발 아주 조금만 색을 바꿔 달라고. 엘리샤처럼 이상한 머리색이 되면 콱 바다에 뛰어들어 죽어버리겠다고.

엘리샤는 그게 무슨 막말이냐며, 이 연갈색 머리카락을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좋아하는지 알기나 하느냐며 어이없어했다. 그러면서 루나의 머리카락도 자신과 똑같은 색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아악! 악! 안 돼요! 제발요!’

그러나 말과 달리 엘리샤는 루나의 머리색을 굳이 바꾸지 않고, 광채만을 억누르는 방식의 염색을 해주었다.

그렇게 루나의 찬란했던 은빛 머리카락은 연한 회색으로 바뀌었다.

“뭐야. 조금 기분 나빠지려고 해.”

루나가 입술을 비죽 내밀며 투덜댔다.

우리는 아르카넘 홀의 교정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는 사람마다 이쪽을 쳐다보며 속닥거렸던 것이다.

“루나가. 예뻐서.”

세실의 말에 루나는 반색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세실. 네가 아까 너무 멋진 모습을 보여서 그럴걸?”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입학시험을 통과했다. 그래서 우리를 포함한 합격생들은 ‘오라토리움 아스트라(Oratorium Astra)’라는 이름의 강당으로 이동 중이었다.

아르카넘 홀의 교정은 작은 숲속 같았다.

그 숲길을 세실은 어린아이처럼 사뿐사뿐 걸었다. 기분이 좋아 보인다.

“교정. 예뻐.”

“그치? 세실. 앗! 이제는 세실리아라고 불러야 하는구나. 세실리아 크라소타. 헤헤.”

루나와 세실이 사용하는 ‘크라소타’라는 성씨는 시니야카와 마찬가지로 제피르나 엘프의 언어에서 가져왔다.

사실 나는 너무 눈에 띄는 성씨라며 반대했었다. 하지만 루나가 억지를 부렸다. 자신과 세실은 ‘크라소타’가 가장 잘 어울리는 성씨이며, 그게 아니면 그냥 아르테미스를 사용하겠다고 우겼다. 게다가 눈에 띄는 성씨라면 시니야카도 만만치 않다고 반격했다.

루나가 고집을 부린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그대들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말이다. 크라소타스베타는 세상의 아름다움, 오슬레피텔나야 크라소타는 눈부신 아름다움이라는 의미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지.’

자신과 세실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것.

‘세실. 우리에게 정말 딱 맞는 성씨인 것 같지 않니? 뭐야 데미안. 왜 그런 눈으로 봐? 혹시 내 말이 틀렸다는 거니?’

루나의 사나운 눈초리를 이길 수 없었던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루나가 헤헤 웃으며 ‘역시 데미안은 보는 눈이 있다’고 칭찬했다. 음. 칭찬 맞나?

세실은 ‘세실리아’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여자인 것도 드러내기로 했다. 사실 세실리아가 본명이니 가명이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지만.

세실의 본래 모습을 드러내는 편이 도리어 암영의 눈을 피하기 쉬울 것이다. 암영의 살수들은 세실의 본명과 진짜 성별을 모르니까.

‘네몬 블레오파드가 암영의 수장이 되었다고 하더구나.’

언젠가 쿠훌린이 나와 세실을 따로 불러 전한 말이었다. 놀란 세실은 일루산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고, 쿠훌린은 일루산, 크쉬, 미스트의 행방을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쿠훌린의 말이 사실이라면 더는 일루산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그동안 일루산은 암영의 수장으로서 표면적으로는 세실의 수배령을 내렸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세실이 잡히지 않도록 도왔을 것이다.

“블레이드 앤 아르카넘 홀의 합격생 여러분. 환영합니다.”

우리는 강당에 도착했다.

강당은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풍겼으며, 이자크 펠리온 교장의 축하 인사로 활기를 더했다.

“여러분의 합격은 단순한 성취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가진 잠재력과 노력의 증거이며,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약속입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블레이드 앤 아르카넘 홀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더욱 발전시키며 각자의 목표를 향한 여정을 시작할 것입니다.”

합격생들 사이에서 희망과 긴장이 뒤섞인 기운이 느껴졌다.

교장에 이어 에스틸리아 교수가 단상에 올랐다.

“합격을 축하합니다.”

짧게 인삿말한 에스틸리아 교수가 눈짓하자, 단상 위로 교직원들이 올라왔다.

“블레이드 앤 아르카넘 홀에서 생활하려면 교칙을 지켜야 합니다. 그중 하나가 적절한 복장입니다. 호명된 학생은 단상으로 올라오시길.”

가장 먼저 호명된 이는 아리엘이었다.

단상에 선 아리엘을 흘끗 훑어본 에스틸리아 교수가 옆의 교직원에서 속삭였고, 그러자 교직원이 아리엘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여러분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교복입니다. 이 시간부로 교복을 착용하지 않으면 학교생활을 할 수 없으니, 참고하시길.”

아리엘은 교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단상 왼쪽으로 사라졌다. 여기서 바로 갈아입는 건가?

“카인 시니야카.”

다음 차례가 카인인 것을 보니 고득점순으로 호명되는 듯하다.

사실 마법학부와 검술학부를 통틀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이는 세실이다. 그런데도 아리엘을 먼저 호명했다는 것은 마법학부의 위상이 검술학부보다 높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거겠지.

“데미안 시니야카.”

예상대로 나는 아홉 번째로 호명됐다.

내가 단상에 오를 무렵, 교복으로 갈아입은 아리엘과 카인이 단상 좌우에서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합격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도 조금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카인은 깔끔한 긴 바지를, 아리엘은 무릎이 드러나는 치마를 입었다. 루비색 넥타이와 흰 셔츠, 그 위로 걸친 재킷에는 고급스러운 금색 자수가 장식돼 있었다. 재킷의 왼쪽 가슴에 아르카넘 홀을 상징하는 교표(校標)가 정교하게 수 놓인 것이 보였다. 제국의 위엄과 귀족적인 분위기를 드러내는 화려한 복장이었다.

우리 세 사람은 단상 위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아주 잠시 시간이 멈춘 듯했고,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나와 카인을 보던 아리엘의 입술이 엷은 웃음을 머금었다. 순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매혹적인 미소였다.

“데미안 시니야카.”

에스틸리아 교수가 재차 나를 불렀고, 교직원이 내 손에 교복을 쥐여 주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구두는요?”

“구두는 교복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개성을 드러내고 싶다면 구두를 잘 활용하시길.”

그래서 아리엘이 여전히 하이힐을 신고 있는 거구나.

“합격 축하해. 카인.”

아리엘의 속삭임이 등 뒤를 울렸다.

카인도 아리엘에게 마법학부 수석 입학을 축하한다고 답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는데, 정말 예쁜 구두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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