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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0

129화.

로스트 판타지M 출시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경영진과의 불화로 개발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고, OTK컴퍼니가 개발비 투자를 결정하자 이치카와 시게루는 개발진들을 데리고 리닉스펜타곤을 퇴사했다.

그러고는 투자받은 10억 엔으로 OTK게임즈를 차린 다음 독자적으로 로스트 판타지M 개발에 나섰다. 그는 로스트 판타지 시리즈의 개발자이자 과거 펜타곤의 대표였기에 제작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개발비 4억 엔이 추가로 들어갔고, 직접 퍼블리싱에 나서며 또 비용이 추가되었다.

총 투자금액은 180억 원.

투자결정을 하자고 주장한 건 오택규.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치카와 시게루가 직접 제작하는 로스트 판타지 시리즈는 반드시 출시되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택규는 성공을 자신했다.

“내가 웬만한 게임들은 다 해봤는데, 이건 그 이상이야.”

“니가 로스트 판타지를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고?”

“아니야. 내가 베타서비스 때 해봤는데, 완전 대박이야.”

상엽 선배가 말했다.

“인터넷 반응은 별로인 것 같은데.”

“신경 쓸 것 없어요. 뜰 게임은 뜨게 되어 있어요.”

워낙 역사가 싶은 시리즈인 만큼 골수팬들이 많긴 하지만, 마니아층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힘들다. 콘솔게임 유저들이 얼마나 모바일로 이동할 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성공해봐야 돈이 얼마나 되겠어? 개발비라도 건지면 다행이겠다.”

“진짜 대박이라니까.”

난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잘 되면 좋은 거지. 취미생활에 쓴 돈이니 아까워하지 말자.”

택규는 항의하듯 말했다.

“니가 게임에 대해 뭘 알아?”

* * *

택규가 투자를 하며 내건 조건은 딱 하나였다.

바로 한일 동시출시였다. 그 외에 대해서는 조금도 터치하지 않았다.

로스트 판타지 시리즈가 콘솔이나 PC가 아닌 모바일게임으로 출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터넷에는 부정적 의견이 훨씬 많았다.

-단물 다 빠진 게임을 누구 하냐?

-캐주얼 게임도 아니고, MMORPG를 모바일로 만든다는 것부터 에러임.

-출시가 너무 늦었음. 작년에 출시했다면 몰라도 최근에는 대작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서.

-시스템 보니까 다른 게임과 별로 다를 것도 없던데.

-까놓고 말해 시게루 옹도 한 물 갔지.

-이거 망하면 은퇴각 세우실 듯.

한국이야 그렇다 치고, 일본 게이머들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OTK컴퍼니는 이름 때문에 한때 일본계 기업으로 오해받았다. 일본인들은 세계 금융시장에서 엄청난 성과를 올린 기업이 일본계라는 것에 환호했다.

그런데 나중에 CEO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종의 배신감 같은 걸 느낀 모양이다.

-OTK게임즈의 모기업인 OTK컴퍼니는 브렉시트 때 일본 외환시장을 공격해 큰 피해를 끼친 장본인입니다.

-한국인이 투자한 게임 따위 할까 보냐?

-쫄딱 망해서 일본시장에서 철수해라.

-조센징은 열도에서 나가라!

-꺼져라, 매국기업!

반면 로스트 판타지 팬들은 긍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이치카와 시게루는 언론 인터뷰에서 OTK컴퍼니의 투자는 이익이 목적이 아니라 순수한 팬심 때문이고, 덕분에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고 즐겁게 개발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투자가 아니라 오타쿠질이었어?

-성공한 오타쿠의 표본!

-역시 오타쿠컴퍼니.

-OTK컴퍼니가 아니었으면, 로스트 판타지M은 나오지도 못했겠네.

-나도 돈만 많으면, 보고 싶은 애니 제작지원해주고 싶다.

?이치카와 시게루는 성공을 자신했다.

“로스트 판타지M은 이제까지 로스트 판타지 시리즈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게임입니다. 과거 로스트 판타지를 했던 사람은 추억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새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기대와 우려 속에 정식 출시일이 다가왔다.

각 앱스토어를 통해 출시되고,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이 그러하듯 인앱결제 시스템을 택했다. 게임 자체는 무료지만, 게임 안에서 아이템 등을 유료로 구매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결과는?

[로스트 판타지M 한일 양국 동시 출시]

[일본 첫날 이용자수 580만 명, 매출 30억 엔!]

[한국 첫날 다운로드 250만 건. 매출 120억 원!]

[로스트 판타지M 접속 폭주!]

[모바일게임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

?출시되자마자, 동시 접속자수가 10만 명 넘게 몰리며 서버가 마비되었다. 긴급점검에 들어가 오전 무렵 간신히 복구에 성공했지만, 이후로도 접속자와 대기자가 계속 몰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흥행에 우리는 당황했다.

이건 대박이라는 단어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였다. 이미 모바일게임 전통의 강자 ‘엠페러 오브 월드’를 제치고 양국 앱스토어 1위로 올라섰다.

대체 얼마를 벌어들인 거야?

첫날 매출만으로도 개발비를 회수하게 생겼다.

이 상황을 유일하게 예측한 택규는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 내가 뭐라고 했어?”

“…….”

그냥 버리는 셈 치고 투자했는데, 이런 초대박이 터질 줄이야!

게임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성공시키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한 번 성공하면 꾸준히 수익을 벌어다 준다.

이 정도 대박은 정말 몇 년에 한 번 터질까 말까다. 지금쯤 리닉스펜타곤은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겠지.

“이 정도로 성공할 줄 알았어?”

내 물음에 택규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시게루 옹이잖아. 폼은 일시적이어도 클래스는 영원한 법이지.”

“…….”

이 녀석은 운이 좋은 거야, 감이 좋은 거야?

* * *

로스트 판타지M이 대박을 치자, 다른 개발사들도 부랴부랴 비슷한 형태의 모바일게임 제작에 나섰다.

언론에서는 결제유도와 사행성 컨텐츠가 지나치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벌써 수천만 원을 결제했다는 인증글들이 여기저기서 올라왔다.

로스트 판타지 시리즈는 한국, 미국, 유럽, 동남아 등에서 흥행했다. 현재의 상황으로 봤을 때 다른 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대박은 예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OTK게임즈의 지분 100퍼센트는 OTK컴퍼니가 보유하고 있고, 이중 12퍼센트를 경영진들 몫의 스톡옵션으로 배분했다.

게임이 망했다면, 옵션을 행사하지 않았겠지만 대박이 터지자 얘기가 달라졌다. 당연히 이치카와 시게루를 비롯한 개발진들은 스톡옵션을 전부 행사해 지분 12퍼센트를 챙겼다.

내친 김에 이치카와 시게루는 로스트 판타지 온라인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개발비는 현재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충당할 수 있기에 말릴 이유가 없었다.

로스트 판타지가 흥행열기를 이어가는 가운데, 난 김호민 교수가 쓴 논문을 찾아보았다. 이제까지 발표한 논문은 공동저술을 포함해 약 100여 편.

그중 가장 최근에 외국 학술지에 기재된 논문을 출력해서 읽었다. 아직 번역본이 나오지 않은 관계로 영어였다.

양극을 구성하는 알리미늄 기판에…… 양극활물질이……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으로 구성…… NCM계 배터리…….

“이게 대체 뭔 소리야?”

숫자와 기호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데다가 모르는 단어가 수십 개다. 그리고 분명 아는 단어의 나열인데도 뭔 얘기인지 알 수가 없다.

이과 안 가기를 잘했구나.

난 포기하고 의자에 등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노벨화학상이라…….”

한국의 IT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뿐, 이제까지 과학분야 수상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한국이 그만큼 기초과학을 등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일본, 영국 등의 선진국들은 기초과학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 역시 투자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정부고 기업이고 할 것 없이 1, 2년 안에 그럴듯한 성과물이 나오기를 바란다.

상황이 이러니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질리 없다.

“대체 어떤 배터리를 개발한 거지?”

예지에서 본 대로라면 김호민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로 과학분야 노벨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보가 제한적이라 언제 노벨상을 타게 될지 알 수가 없다. 빠르면 내년일 수도 있고, 어쩌면 몇 십 년 뒤일 수도 있겠지.

어쨌거나 그가 차세대 배터리에 대한 키를 쥐고 있는 만큼, 본인을 직접 만나볼 필요가 있다.

난 혹시 직원들 중 김호민 교수를 아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직원 중 한국대 화학과 출신이 있었다.

이름은 박광현. 대학 졸업 후 CFO 과정을 수료했고, 펀드회사에 다니다가 우리 회사로 이직했다.

난 그를 CEO실로 호출했다.

잠시 후, 30대 중반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통통한 체격에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박광현입니다.”

무슨 일로 부른 건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한국대 화학과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맞습니다.”

나보다 한참 선배인 셈이다.

난 바로 본론을 꺼냈다.

“혹시 김호민 교수님에 대해 아시나요?”

“김호민이면…… 아! 그 교수님이요?”

“기억나세요?”

“물론입니다.”

“어떤 분인가요?”

“보통 한 학기에 한 과목만 강의하시고, 주로 연구실에 계십니다. 좀 괴짜 같긴 하지만, 좋은 분이십니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구요.”

한국대는 캠퍼스 안에 각종 연구시설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직접 지원하기도 하고, 대기업이나 재단에서 연구비를 지원받기도 한다.

“다른 특이사항은 없나요?”

“음…….”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뭔가를 떠올렸다.

“아! 경영학과 학과장님과 꽤 친할 겁니다.”

“그래요?”

우리 학과장님과 친한 사이였어? 이러면 얘기가 좀 편해진다.

박광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분이 차세대 배터리 개발로 노벨상을 받을 예정이기 때문이지.

……라고 말할 수는 없기에 난 적당히 둘러댔다.

“이번에 우리 회사가 서성SB와 함께 배터리에 투자하고 있잖아요. 김호민 교수님이 그쪽 분야 권위자라고 해서 뭐 좀 여쭤보려구요.”

“아, 그렇군요.”

얘기가 끝나고 나자 그는 인사를 하고 나갔다.

난 바로 학과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교수님. 제자 강진후입니다.”

* * *

난 차를 몰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 가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작년에 1학기 끝마친 이후로는 처음인가? 그 후에 진짜 별 일이 다 있었지.

학교에 도착한 나는 주차를 하고 학과장실로 이동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김명준 교수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겨주었다.

“이게 누구야? OTK컴퍼니 강진후 대표님 아니야?”

“오랜만입니다, 교수님. 잘 지내셨어요?”

“그럼. 일단 앉아.”

자리에 앉자 김명준 교수님은 날 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잘도 숨겼네.”

난 멋쩍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브렉시트 때 외환시장을 털어먹은 투자자가 내 제자였을 줄이야. 기자회견 했을 때 학교 전체가 뒤집어진 거 알아?”

“얘기 들었어요.”

유리에게 전해 들었다.

“복학은 생각 없어?”

“지금은 일이 좀 바빠서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보려구요.”

김명준 교수님은 엄살 부리듯 말했다.

“대기업 경영하는 CEO에게 가르칠 게 있을지나 모르겠다.”

“아직 배울 게 많아요. 일은 주변사람들이 다 하는데요.”

“사람 잘 쓰는 게 경영의 기본이야. 배운 대로 잘하고 있네.”

“전부 교수님 덕분입니다.”

난 슬슬 얘기를 꺼냈다.

“그보다 부탁드린 건 어떻게 되었나요?”

김명준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해 놨으니, 연구실로 찾아가면 돼.”

“감사합니다.”

“아! 가기 전에 사인 하나 해놓고 가. 사우스웰 사인과 나란히 벽에 걸어놓고 자랑하게.”

“…….”

* * *

이공계 건물들은 캠퍼스 제일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난 자연과학대 건물 옆에 있는 연구소로 들어갔다. 다른 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출입증이 있어야만 한다.

난 데스크에 있는 직원에게 말했다.

“김호민 교수님과 약속이 되어있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강진후라고 합니다.”

직원은 놀란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방문자용 출입증을 건네주었다.

“7층 705호로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705호의 문을 두드렸다. 아무 반응이 없고, 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실례합니다.”

난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개인서재 같은 모습이었다. 내부는 책들로 가득 차 있고, 한쪽에는 커다란 칠판이 걸려있다.

칠판에는 빼곡하게 숫자와 기호가 적혀있었다. 한 번에 쓴 게 아니라, 생각날 때마다 쓴 건지 기울기와 글씨 크기가 제각각이라 마치 낙서처럼 보였다.

그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내용인지 알겠어?”

고개를 돌려 보니, 안경을 쓴 40대 초반의 남자가 서있었다.

“김호민 교수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다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머리, 김칫국물이 묻어있는 가운, 그리고 청색 크록스까지.

미래 노벨화학상 수상자는 교수라기보다는 백수 같은 모습이었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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