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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1

131화 신입생들 (1)

131화 신입생들 (1)

아리엘을 보자마자 마부가 훌쩍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아리엘라 아가씨. 교복이 무척 잘 어울리시는군요!”

“인사치레는 됐어요. 기숙사가 정해졌으니 짐이나 옮겨줘요.”

“물론 그래야지요! 그런데 아리엘라 아가씨. 혹시 입학성적을 여쭈어도······.”

“수석이에요.”

마부는 그럴 줄 알았다며 아리엘을 추켜세웠다.

아리엘은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속마음은 어서 빨리 기숙사에 짐을 푼 뒤 쉬고 싶었다. 하루 종일 하이힐을 신고 있었더니 발이 너무 아팠다.

“이곳이 앞으로 아리엘라 아가씨가 생활하실 세레니움 아르테로군요!”

‘세레니움 아르테(Serenium Arte)’는 여학생 기숙사의 이름이다.

그 옆에 자리한 남학생 기숙사는 ‘아우레움 카우스(Aureum Caus)’.

“편한 신발을 좀 내어줘요.”

웬만하면 기숙사에 도착할 때까지 품위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아리엘은 더는 발의 통증을 견딜 수 없었다.

마부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부드러운 양털 신발을 아리엘의 발 앞에 내려놓았다. 아리엘이 평소 가장 좋아하던 신발. 아리엘은 저 신발에 ‘양양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아······!’

양양이의 보드라운 털이 두 발을 감싼 순간, 아리엘은 입 밖으로 탄성을 지를 뻔했다. 발아래로 천국의 들판이 놓인 듯했다. 천사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아, 하이힐이 아닌 신발이 이렇게나 편안했구나.

“카인! 이쪽이야 이쪽!”

돌연, 지척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아리엘은 토끼처럼 깡충 뛰어올랐다. 그렇게 양양이의 품에서 벗어난 아리엘의 발이 하이힐 속으로 빨려들어갔고, 그녀는 긴 금발을 그림처럼 흔들며 뒤를 돌아봤다.

크헉! 마부가 신음했다. 몸을 돌리며 걷어찬 양양이가 마부의 눈두덩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아리엘라 플랑브아즈?”

아리엘을 보며 동글게 눈을 뜬 이는 루나 크라소타였다. 조금 전 큰 소리로 카인의 이름을 부른 사람이기도 했다.

아리엘은 조금 경계하는 눈으로 루나 크라소타를 마주 봤다. 아리엘이 판단했을 때, 루나 크라소타는 신입생 중에서 가장 교복이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게다가 동화 속에 나올 것처럼 예쁜 얼굴. 카인과는 무슨 사이일까. 이 여자는 데미안 시니야카와도 가까워 보였다.

“와아, 눈앞에서 보니까 더 예쁘다. 너.”

루나 크라소타가 덥석 아리엘의 손을 잡았다.

“내 이름은 루나야. 그리고 얘는 세실리아. 우리는 자매처럼 가까운 친구야!”

아리엘은 당황했다. 그녀에게 지금 같은 경험은 처음이었다.

“네 입학시험은 잘 봤어. 너 정말 대단한 마법사더라. 굉장했어!”

평소의 아리엘이었다면 기분이 나빠졌을 것이다. 그녀는 귀족이었고, 또 어머니인 플랑브아즈 공작으로부터 적절한 후계자 교육을 받았기에 선의로 위장된 인간의 가면을 제법 잘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루나 크라소타에게서는 그 어떤 부정적인 기운도 감지되지 않았다. 아리엘은 이런 사람을 처음 보았다.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리엘의 눈에 비친 그녀는 겉과 속이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아······. 고마워.”

그래서 아리엘은 저도 모르게 이렇게 답했다. 마부가 펄쩍 뛰며 루나에게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아리엘은 손짓 한 번으로 그것을 막았다.

아리엘은 세실리아 크라소타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 여자는 분명한 경계 대상이다. 시험장에서의 범상치 않은 눈빛과, 거기에 더해 루나 못지않은 미모······ 아니, 대체 저 몸매는 뭐지?

그때, 카인과 데미안 시니야카가 나타났다. 무슨 내기라도 했던 것일까. 두 사람은 각각 2인분의 짐가방을 들고 있었다.

“또 만나네? 아리엘.”

아리엘은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카인을 돌아봤다.

누군가는 꾸며낸 웃음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달랐다. 아리엘이 드러내는 거의 모든 표정과 손짓, 몸짓 하나하나는 무의식중에 발현되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아리엘라 아가씨. 어서 신발부터 갈아신······.”

아리엘은 마부의 말을 자르며 정색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네?”

“어이가 없군요. 붉은 하이힐은 플랑브아즈 가문의 상징이며, 저는 장차 플랑브아즈 가문의 가주가 될 적법한 후계자예요. 그런 저에게, 지금 그런 어린아이나 신을 법한 신발을 권하는 건가요?”

양양이를 두 손에 든 마부가 쩌억 입을 벌렸다.

아리엘은 답답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이 마부는 눈치가 부족했다. 옆에서 루나가 ‘와! 엄청 귀여운 신발이야!’ 하며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리엘은 하이힐의 굽으로 마부의 발등을 살짝 밟았다. 이 정도면 눈치를 챌 법도 한데, 마부는 되려 악! 소리를 내며 제 발등을 붙잡았다. 아리엘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는데, 정말 예쁜 구두네?’

강당에서 카인이 그렇게 말했을 때, 아리엘은 자신의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원래 아리엘은 학교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즉 어머니의 눈을 피해 있는 동안만이라도 하이힐의 답답함에서 벗어나 편한 신발을 신으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아리엘은 당분간 잠잘 때도 하이힐을 신어, 되도록 빨리 그것에 익숙해질 각오까지 했다.

“정말 당황스럽네요. 대체 어디서 그런 천박한 신발을 가져오신 거죠?”

“하녀들의 말로는 아리엘라 아가씨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신발이라고······. 양양이라는 이름까지 지으······.”

“어, 엉터리 소문이라도 들으신 모양이군요! 저는 저택에서 그런 신발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 도로 가져가세요. 아니, 하이힐을 제외한 신발은 모두 가져가도록 하세요. 어차피 제가 신을 일은 없을 테니까요.”

.

.

.

한 켤레는 남겨둘걸.

아리엘은 후회했다.

마부는 양양이와 양양이의 수많은 친구들과 함께 돌아갔다. 기숙사 방으로 짐을 옮긴 그녀는 맨발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아야······.”

고운 미간이 찌푸려졌다.

발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아리엘은 몸을 일으켜 방문으로 다가갔다.

발을 주무르고 싶은데, 그 품위 없는 모습을 누군가 보게 할 수는 없기에 걸쇠를 걸어야 했다.

똑똑.

문손잡이를 쥐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리엘은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며 하이힐을 신었다.

“누구세요?”

“아······. 나, 나는 여, 옆방으로 들어온 마법학부 신입생인데 이, 인사를 나누고 싶어서······.”

자신감 없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리엘은 인상을 구겼다. 학교에 다니면 저런 유형의 인간과도 상종해야 하는 걸까.

그러나 마음속 생각과 달리 아리엘은 엷은 미소를 머금으며 방문을 열었다.

“아, 안녕. 나는 미아라고 해. 너, 너는 아리엘라 플랑브아즈지? 마, 만나서 반가워.”

귀족인가?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은 분명 귀족인데, 하는 행동은 영 딴판인 여자였다.

“반가워요. 미아.”

“아. 나, 나도 반가······.”

“정리할 것이 남아서. 이만.”

아리엘은 방문을 닫고 걸쇠를 걸었다.

보고 싶어 양양아.

***

“어떻게 알았니?”

루나가 내게 물었다.

“뭘.”

“나 발목 다친 거 말이야. 티 안 내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나는 루나에게 기숙사에 짐만 올려놓은 뒤 혼자 내려오라고 했다. 루나는 의문스러워하면서도 내 말을 따랐고, 우리는 지금 ‘큐라토리아 마지카(Curatoria Magica)’라는 이름의 치유실을 향하고 있다.

“나는 다 알아.”

거짓말이다. 나도 몰랐다.

그런데 조금 전 강당에서 교복을 받던 중, 에스틸리아 교수가 내게 속삭였다. 루나 크라소타가 발목을 다쳤으니 치유실로 데려가라고.

“와. 또 저 자신감. 확신.”

어이없다는 듯 말하면서도 루나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루나는 치마 대신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짧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여학생의 교복은 활동성을 고려해 치마와 바지를 모두 제공한다고 한다.

“그래서 내 짐도 들어준 거구나? 이상한 내기까지 벌여 일부러 져 주면서.”

“그러니까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 괜히 걱정 끼치지 말고.”

루나는 아파도 참는 성격이다.

주위 사람에게 밝고 건강한 모습만을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자존심 때문이기도 할 테고.

“나를 걱정했니?”

“당연한 소리를.”

“헤헤. 그렇구나. 데미안은 늘 나를 그렇게 유심히 바라보는구나. 걱정도 하고.”

“늘 그런 건 아니거든.”

발목의 통증 때문일까, 루나가 내 팔에 얼굴을 기댔다.

콧노래 소리가 들린다.

“부축해 줄까?”

“응.”

루나의 향기가 난다.

은월섬의 내음과 비슷한.

“데미안.”

“응?”

“너, 듬직해졌어.”

“나는 원래 듬직했어.”

“에이, 그건 아니지. 전에도 말했지만 처음 봤을 때는 꼭 남동생 같았다니까?”

“너만 그렇게 생각한 거야.”

“그런가? 헤헤. 뭐, 오늘은 그렇다고 쳐줄게.”

흥얼흥얼, 콧노래 소리가 조금 커졌다.

“데미안.”

“왜 또.”

“아까 했던 말 있잖아. 그거 진심이었니?”

“무슨 말.”

루나는 뜸을 들였다.

“······아까 내가 물어본 그거 있잖아. 세, 셋 중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아. 그거.

“······진심이었어?”

“아니.”

“정말?”

루나가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 눈동자가 너무 맑아서, 나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해야 했다.

“그럼 솔직히 대답해 봐. 얼른.”

“왜.”

“궁금하니까. 응? 나만 알고 있을게. 응?”

“싫어.”

“왜!”

마침 다행히도, 우리는 치유실로 보이는 건물에 도착했다.

“들어가자.”

“대답해! 얼른 대답하라고!”

루나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그것을 넘어, 대답하기 전에는 절대로 치유실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그래서 나는 그냥 루나를 공주님처럼 번쩍 안아 들었다.

“자, 가시죠. 루나프레나 공주님.”

농담 삼아 한 말이었고, 나는 당연히 루나가 빽빽 소리치며 바둥거릴 줄 알았다.

그런데 묘하게 조용하다.

나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시선을 내렸다.

두 눈을 커다랗게 뜬 루나가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작은 삼각형처럼 벌어진 입술은 아기 고양이를 연상케 했다. 그 모습에 나는 조금 멍해져서,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아, 안 돼 데미안.”

뭐가 안 된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루나를 내려다봤다. 아니, 시선을 떼지 못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했다.

“······바, 바람둥이.”

루나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이런 표정의 루나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눈을 뗄 수 없었다.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지, 진짜 안 되는데······. 안 되는데······.”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리던 루나가 두 팔을 들어 내 목을 감쌌다. 그러고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길고 촘촘한 속눈썹이 엷게 떨린다. 왜일까. 내 시선은 그 순간 루나의 입술을 바라봤다. 촉촉한 연분홍빛. 부드럽고 달콤할 것 같은.

“······흐응.”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까무러치게 놀랐다. 그래서 으악! 소리쳤다.

루나도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루나를 품에 안은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입학식도 하기 전부터 치유실 앞에서 애정행각이라. 첫인상과 달리 아주 대범한 녀석이었잖아? 데미안 시니야카.”

내 앞에 쪼그려 앉아, 커다란 안경 너머로 나를 응시하는 이는 에스틸리아 교수였다.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 나는 그녀일 거로 예상하지 못했다. 말투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전처럼 무심하고 딱딱한 어투가 아니다.

이제 보니 표정도 아이처럼 장난스럽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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