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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1

괴군의 손길 (2)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우선, 괴군은 며칠 후 비승한다.’

그렇다는 말은.

며칠만 그의 손길에서 벗어나면, 살 수 있다는 뜻이었다.

부우우웅!

콰아아앙!

등에 벌 날개가 달린 괴뢰가 입을 벌리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사막에 버섯구름이 일어났다.

‘며칠 동안이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오히려, 괴군의 괴뢰 같은 경우, 무형검으로 회로를 베어 버리면 사실 급격히 무력화가 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섣불리 그런 짓을 하다 오히려 괴군이 더 흥미를 가져 버리는 것을 경계했다.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고 해도, 자기 작품을 망가뜨렸다며 눈이 뒤집혀서 직접 쫓아오기 시작하면….’

그것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부웅, 부웅, 부웅!

나는 괴뢰들의 공격을 피하며, 사흘 밤낮을 답천사막 위를 날았다.

괴뢰라는 것은, 확실히 성가셨다.

놈들은 지치지 않았다.

나 역시 체력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환골탈태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단련할 시간도 없었고, 축기기에 도달해 내구도가 튼튼한 것도 아니야.’

나는 이를 악물었다.

‘최대한 빨리 괴군이 떨어졌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칠 주야가 지났다.

부우우우웅!

나를 따라오는 괴군의 괴뢰들은, 그 숫자가 두 배로 늘어나 있었다.

나는 이를 으스러져라 악물었다.

괴군이, 본래 가야 할 시간보다도 늦게까지 머물며 나를 추격하고 있었다.

‘젠장,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뭔가 그를 완전히 따돌릴 방법이 필요했다.

파아아앗!

나는 어느덧, 답천사막에서 벗어나, 사막 아래쪽의 작은 부족들을 지나쳐, 마침내 흑풍해에 다시 도착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바닷속에서 물고기 형태로 나를 쫓아오는 괴뢰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송진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흑풍해의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섭명함을 잠시 빌려야겠어.’

아마, 괴군이라면 송진도 이해해 주지 않을까…?

나는 섭명함이 봉인된 해역을 향해 날아갔다.

그렇게 또다시, 사흘이 지났다.

* * *

콰아아앙!

뒤쪽에서 날아온, 괴뢰 떼들의 폭격에, 나는 몸을 비틀어 피하고, 무형검으로 광선들을 쳐 내며 섭명함이 봉인된 곳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며칠 동안 묵묵히 나를 추격하기만 했던 괴뢰들의 입에서, 괴군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음, 안타깝지만. 이제 스무 날 뒤면 승천문이 완전히 닫힌다. 이제 슬슬 다른 놈들을 쫓아가야 할 시간이기에, 나는 이만 가 보려 한다.]

‘드디어…!’

드디어, 괴군이 나를 포기하고 비승을 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어진 괴군의 말은 상상초월이었다.

[하지만 역시, 그녀가 말하기를, 네 이야기는 너무 감동적이기에 꼭 함께하고 싶다 하더군. 그러므로….]

긱, 기기긱, 기기기긱!

갑작스레, 저 멀리.

허공이, 열리고 있었다.

[그녀와 내가, 합심하여 너를 열심히 잡기로 결정했다. 반드시, 반드시 너를 잡아갈 것이다!]

까딱!

그리고, 균열 너머로 드러난 것은.

마치 진짜 사람의 손 같은, 새하얀 손가락 하나였다.

손가락!

꾸웅!

그리고, 손가락이 까딱거리자, 전방의 바다가 갈라지며, 지축이 뒤집혔다.

“…!”

하늘의 구름이 모조리 쪼개지며, 바람이 불던 해역의 바람이 모조리 잦아들었다.

‘이게 도대체….’

[그녀가 너를 원하고 있다. 어서 이리 오려무나.]

나는, 저 손가락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괴군의 [그녀]!

찌릿, 찌릿….

‘섭명함의 동력 기관을, 한 기의 괴뢰 안쪽에 박아 넣었다는, 괴군의 최대 작품…!’

그리고.

기이이잉!

[그녀]의 손가락부터 시작해서, 새하얀 섬섬옥수가, 점차 균열 너머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오싹, 오싹!

‘미쳤군, 이건 안 된다.’

저 손 하나에서.

고작해야 손바닥 하나에서, 송진에게서 느꼈던 것과 같은 위압감이 느껴진단 말인가?

나는 알 수 있었다.

괴군의 [그녀]는, 절대로 천인기 급 괴뢰 따위가 아니다.

비록 안목이 낮은 결단경 애송이의 생각일 뿐이었으나.

안목이 낮을지언정, 900년의 세월을 살아오며 생긴 직감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아마도….

‘사축기 급 괴뢰!’

괴군의 저력에, 전신에 오한이 돌 정도였다.

손바닥 하나에서 송진과 같은 기세가 느껴지는 저 괴물이, 사축기가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나는 결심했다.

‘저 미치광이 천재에게서, 최대 20일을 도망쳐야 한다고?’

불가능하다.

부우우우웅!

공간 균열을 통해, [그녀]의 섬섬옥수뿐이 아닌, 수많은 괴뢰 떼들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어느덧, 해역의 하늘이 괴군의 괴뢰로 가득 차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공간 균열은 괴뢰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실수했다.

저 미치광이에게 동정을 사겠답시고 나와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줘서는 안 됐다.

어찌해야 하는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 눈을 떴다.

‘이번 생은, 가장 짧은 생이 되겠어.’

나는 저 미치광이에게 잡혀, 몇천 년을 썩지도 죽지도 못한 채.

생체괴뢰가 되어 죽지도 살지도 못한 몸으로 갇혀 지내는 걸 상상했다.

아무리 이미 내 정신이 비범한 경지에 도달했다고 해도, 그런 미친 짓은 견딜 수 없었다.

‘자살하자.’

이 소중한 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미치도록 안타까웠으나.

원립과의 대화로 내 삶에 대한 정체성을 조금 더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삶은 그 자체로 축복이 아니라, 삶에서 주고받는 마음이 있기에 비로소 축복.

그렇다면, 아직 인연을 쌓지 않고, 마음을 주고받은 빈도가 거의 없는 지금이라면.

이 삶은, 포기할 수 있다.

나는 각오를 굳혔다.

‘죽는다.’

사는 것을 궁리하는 것보다, 죽는 것은 간단했다.

당장 죽을 방법이 몇 개씩이나 넘쳐난다.

내가, 내 머리를 폭발시켜 죽으려 했을 때였다.

‘…잠깐.’

나는 문득 내 내단 속에 잠들어 있는 무색유리검을 떠올렸다.

‘지금 죽으면, 이 무색유리검은 어찌 되는 거지?’

한 번 주인으로 인식됐으니, 다시 한번 죽어도 회귀를 따라오는가?

아니면, 한 번 따라왔더라도 백홍주로 연결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죽으면 그냥 이 시간대에 남겨져 사라지는가?

움찔!

나는 몸을 흠칫 떨었다.

최악의 가정이 떠올랐다.

‘그건, 안 될 일이지.’

자살은 쉽다.

하지만, 지금 당장 자살은 안 된다.

‘백홍주를, 구해 마셔야 해!’

그래, 최소한 백홍주를 마시고 죽어야 한다!

나는 미친 듯이 괴뢰들의 공격을 피하며, 원래 계획했던 대로 섭명함을 향해 미친 듯이 날아갔다.

쿠구구구구구!

손밖에 안 나타난 [그녀]의 섬섬옥수는, 내게 간혹 어마어마한 범위의 공격을 날렸으나.

손에는 눈이 달리지 않은 탓인지, 정확도가 굉장히 낮았다.

물론, 그 여파만으로도 나는 죽을 지경이었지만.

‘빌어먹을.’

나는 이를 악물고 송진이 봉인된 해역으로 들어갔다.

섭명함의 결계가 보인다.

푸확!

나는 전신에 두른 무형검을 통해, 그대로 결계를 뚫어 버리고 섭명함을 향해 쇄도하였다.

그리고.

콰아앙!

나는 마침내 섭명함의 갑판 위에 내려앉아, 빠르게 조종실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잡아 보는 섭명함의 조타륜이었다.

하지만, 똑똑히 기억난다.

[섭명함, 시동!]

쿠구구구구!

내 의지에 따라, 섭명함이 시동되며 점차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봉명성, 봉명성으로 가야 해!’

내가 이를 악물고 있을 때였다.

[이…놈…!]

쿠구구구구!

섭명함의 하층에서부터,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송진이었다.

[이 도적놈이, 감히 섭명함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하려 하느냐…?]

나는 우선 가타부타할 것 없이, 섭명함을 허공간으로 전송시키며 말했다.

“괴군이 쫓아오고 있습니다, 선배님. 그를 피해 도망치느라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뭐…?]

괴군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송진의 귀화가 미친 듯이 타올랐다.

그리고.

콰아앙!

기어코, 괴군의 괴뢰들이 섭명함의 봉인지에 있는 결계들을 뚫고 이곳까지 도달했다.

콰과광!

무수한 괴군의 괴뢰 떼들이 몰려온다.

그리고, 그것을 본 송진의 눈두덩이에서 푸른 귀화가 타올랐다.

[이… 괴군…! 이놈…! 네가 감히 어디라고 이곳을 또 오느냐! 아직도 섭명함에서 뜯어 갈 게 남았느냐!?]

원념이 줄기줄기 섞인 그의 목소리.

송진은 당장이라도 괴군을 씹어먹을 듯 섭명함의 갑판으로 내려가 괴뢰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수많은 괴뢰 떼들이 섭명함에 올라타려는 순간.

쉬이이이―

시커먼 귀무가 섭명함을 둘러쌌고, 섭명함은 어느새 다시 허공간에 진입하였다.

“후우….”

나는 한숨을 돌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말씀드렸다시피….”

[됐다! 괴군에게 쫓기는 게 아니냐!]

“예, 예.”

그가 두 눈에서 푸른 귀화를 폭발시키며 씹어뱉듯이 외쳤다.

[저 미치광이가 아무리 그래도 비승을 포기하면서까지 네놈을 쫓지는 않을 테니… 승천문이 열릴 지금 시기에, 조금만 더 견디면 될 거다.]

“그럼….”

그때였다.

기이이잉!

허공간의 한쪽.

그곳에, 현계와 이어진 공간 균열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으로 익숙한 섬섬옥수가 진입하였다.

그리고, 섬섬옥수를 본 송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망할 놈! 왜 [그녀]까지 너를 쫓는다는 말을 안 한 거냐!?]

“예…?”

[제길, 다 끝났군. 괴군이 널 잡겠답시고 저 인형까지 꺼냈다면, 넌 이제 끝이다. 난 더 못 도와준다.]

송진도 그런 말을 할 정도다.

‘역시….’

나는 송진을 보며 말했다.

“선배님, 역시… 자살이 옳겠지요?”

[오, 신박한 방법이군. 네가 죽으면 네 혼은 섭명함에 봉인시켜 함부로 섭명함을 이동시킨 값은 받아 낼 테니, 똑똑히 알아라.]

나는 송진이 으르렁거리거나 말거나, 섭명함의 조타륜을 잡았다.

이 시기의 봉명성의 좌표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럼 이왕 자살할 것, 조금 더 섭명함을 쓰고 자살하겠습니다.”

[뭣…!?]

파아아앗!

나는, 저 멀리서 눈부신 빛을 내뿜으며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섬섬옥수를 흘긋 보고는, 조타륜을 잡고 섭명함을 이동시켰다.

파아앗….

섭명함은 다시 현계의 어느 공간으로 진입했고, 나는 현계의 공간에서 다시 봉명성의 좌표를 향해 섭명함을 진입시켰다.

‘짧은 시간 동안, 파랑만장하게도 보내는군.’

나는 눈앞에 떠오른, 허공간에서 부유하는 봉명성을 보며 혀를 찼다.

우웅!

나는 정순지력을 엮어 금제 파훼 족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금제 파훼 족자를 전부 만들었을 때였다.

기이이잉!

다시금, 괴군의 [그녀]가 우리를 찾았는지 현계에서 공간 균열을 열고 섬섬옥수를 뻗는다.

콰앙!

나는 금제를 파훼한 후, 바로 봉명성의 내부로 진입했다.

‘백홍주가 있는 층이…!’

나는 미친 듯이 봉명성의 상층으로 올라가며, 백홍주를 찾았다.

‘찾았다…!’

콰앙, 콰아앙!

나는 무형검으로 금제 내부의 주요 회로들을 전부 잘라 내며, 미친 듯이 금제를 두들겼다.

그리고.

쩌저저저적!

봉명성의 한쪽 면이, 그대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싹, 오싹!

봉명성의 벽이 무너지자 보인 것은, 어느새 팔목까지 나온 [그녀]의 섬섬옥수!

나는, [그녀]의 섬섬옥수에서 뿜어지는 폭발적인 힘에, 오한이 돋는 것을 느꼈다.

‘빨리, 빨리!’

쩌억!

[그녀]가 손을 펼쳤다.

그리고.

콰앙!

내 무형검이, 마침내 금제를 깨부쉈다.

백홍주가 있는 단지는 어떤 것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벌컥!

나는 황급히 백홍주의 뚜껑을 열고, 단지째로 들어 백홍주를 마구 들이켰다.

우우웅!

다시금 내 체내에 넣어 놓은 법보들이 윙윙거리며 나와 깊숙한 연계가 되는 것이 느껴졌다.

‘확실히….’

내 영혼과 법보가 연결이 된 것이, 정확하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우우우웅!

[그녀]의 손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인력이 느껴졌다.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

‘크윽…!’

아니, 실제로 내 몸은 [그녀]의 손아귀를 향해 빨려가고 있었다.

저항이 불가능하다!

‘제길, 안돼!’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쿠구구구!

저 멀리서, 섭명함의 조타륜을 잡고, 현계로 넘어가는 송진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기수식을 잡았다.

지지난 삶에서 김영훈의 발자취를 좇아, 월도답천을 발견하고.

지난 삶에서 비로소 원립을 죽이며 월도답천에 완전히 이르렀다.

분명, 나는 김영훈과 다른 길을 걸어온 것이 맞았다.

그랬기에 공간을 넘는 그의 능광도가 아닌, 베고자 하는 것만을 베는 무형검으로 무형검이 진화한 것일 터.

하지만….

‘분명, 내 무형검은 그때 공간을 벴다.’

일순간 김영훈의 능광도가 되어서!

그 말은 즉.

어쩌면….

‘월도답천에 이른 자는, 다른 이의 월도답천을, 흉내 낼 수도 있다는 게 아닌가?’

짜내라…!

머릿속에서 방법을 짜내…!

화르르륵!

나는 상단전을 강기로 불태우며 각성시켰다.

백회에서 시작된 흐름이, 미간으로 향하며 상단전이 강기에 타올랐다.

“으오오오오오!”

그때의 그 감각을, 떠올린다.

무형검은 단악검법에서, 능광도는 단맥도법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두 무공의 뿌리는 사실 하나였다.

그렇다면, 무형검에서 거슬러 올라가, 공간을 베는 능광도에, 잠시나마 도달하는 것이 정녕 불가능한가?

완전히 능광도를 얻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잠시만 그의 것을 흉내 내는 정도라면….

파아아앗!

필사의 집중과 함께, 어느덧 [그녀]의 손아귀가 눈 앞에 다가왔고.

나는 허공간에서 있는 힘을 다해 손에 쥔 것을 내리 베었다.

피이이잇!

무형검이, 찰나간 황금빛으로 화한다.

동시에.

번쩍!

나는, 허공간에서 벗어나 현계에 도달해 있었다.

촤아아악!

저 멀리, 나와 같이 허공간에서 막 빠져나온 송진이, 섭명함의 조타륜을 잡는 것이 보였다.

타앗!

나는 섭명함에 날아가, 숨을 골랐다.

[뭐냐, 자살한다 하지 않았더냐? 자살할 거면 섭명함에서 내려서 자살해라…!]

다시금 [그녀]가 쫓아오는 게 두려운 듯, 송진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문득 한 가지 궁금한 것이 떠올랐다.

“…혹, 선배님께선 망령을 영혼 깊숙한 곳에 이어붙이는 법술 같은 걸 아십니까?”

[음? 알고 있기야 하지.]

“제게, 그걸 걸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내가 왜 그런 걸 해 줘야 하느냐?]

‘이런 젠장….’

지금의 송진은 나와 일면식도 없이, 나한테 잠시 섭명함을 강탈당했을 뿐인 이라는 것을 잊었다.

그때였다.

우우우웅!

공간 균열이 갈라지며, 다시금 [그녀]의 섬섬옥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팔목을 넘어, 팔꿈치까지 나오고 있었다.

[이런 젠장! 당장 섭명함에서 내려라! 썩! 그래, 됐다. 그런 법술쯤이야 얼마든지 펼쳐 주마!]

우우웅!

송진은 섭명함의 망령 한 마리를 꺼내, 내 상단전에 그대로 불어넣었다.

―끼야아아아!

불쾌한 이물감과 함께, 망령의 혼이, 송진의 귀력에 의해 나와 들러붙는 것이 느껴졌다.

망령이, 잠시간 나와 이어진다.

[썩 내려라!]

그리고, 망령은 송진의 명을 듣는 모양인지, 내 영혼과 이어지자 내 몸을 멋대로 조종하여 강제로 섭명함에서 뛰어내리게 만들었다.

쿠구구구구!

[그녀]의 손아귀가 나를 향해 뻗쳐 왔고, 나는 마지막 순간, 그대로 머리를 향해 무형검의 기운을 몰아넣었다.

그리고.

퍼버벙!

그것이, 나의 열두 번째 회귀(回歸)였다.

12회차의 첫날

찌이잉!

나는 약간의 두통이 생기는 머리를 잡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머리를 폭발시켜 죽은 게 조금 충격이 컸던 것 같았다.

‘그것도 그렇고….’

생각해 보니, 내 손으로 직접 자살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죽느니만 못한 꼴을 당할 바에야 죽음을 택한 거긴 하다만….’

아무래도 한 번의 삶을 그대로 날려 버린 것에 대한 슬픔, 분노, 그리고 아쉬움과 충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또한.

‘괴군에게 어설프게 접근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았고….’

소름이 돋는다.

도대체 그 노괴는….

나는 머리를 흔들며 잡념들을 잠재웠다.

사실 그런 것보다는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그리고.

찌릿!

역시나, 배 부근에서 찢어질 듯한 통증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칼로 배를 후비는 것 같은 고통!

하지만, 나는 싱긋 웃었다.

‘다시 한번….’

전승되었다.

백홍주가,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내 영혼과 연결된 것이, 그대로 전승된다면…!

내가 의식을 집중할 때였다.

찌이이잉!

두통이, 아까부터 느껴진 두통이, 의식을 집중하자 더욱 거세게 느껴졌다.

‘뭐지, 이건?’

아프다!

혼백을 칼로 쑤시는 듯이 아팠다!

‘단순히 무형검으로 머리를 터트린 고통의 잔향이 아니었던 건가?’

아까부터 느껴졌던 두통은, 계속해서 이어지며 내 머리를 후벼팠다.

거기에 의식을 집중하면 더더욱 찌릿거리는 것이, 뭔가 이상했다.

‘의식의 크기는 문제가 안 된다.’

오행혈주번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의식을 봉해 주고 있었다.

예전의, 머리가 폭발하기 전의 그 두통이 아니었다.

이 통증은, 마치….

‘살이 도려내졌을 때와 유사한 기분… 그래.’

나는 마침내 문제가 뭔지를 알 수 있었다.

‘내 혼백(魂魄)이, 뜯겨 나가 있어!’

많이 뜯겨 나가지는 않았다.

신체로 치면, 살갗이 약간 벗겨진 느낌.

하지만 분명히 ‘뜯어진’ 듯한 느낌이었고, 혼백이 뜯겨 나간 부위는 분명.

‘망령과, 내 영혼이 연결되었던 바로 그 부위다!’

그랬다.

망령은 내 혼백과 연결된 부위째로 뜯겨,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말인즉.

‘법보는 같이 회귀할 순 있지만… 지성을 가진 게 나와 함께 시간을 넘어오려 하면, 뜯겨 나간다는 건가?’

혼백에 난 상처를 관조해 볼 때, 누군가가 일부러 잡아 뜯거나 베어 냈다기보단, 뭔가 거친 것에 걸려서, 그것을 억지로 지나가려다가 뜯겨 나간 모양새였다.

‘나와 연결된 물건까지는 어느 정도 허용이 됐지만, 지성체부터는 문제가 된다는 거군.’

나는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망령이 함께 회귀했다는 것이 밝혀졌다면, 앞으로 동료들의 영혼도, 향화의 영혼도 어쩌면….

‘아니, 됐다.’

나는 잡생각을 지웠다.

‘어차피 하나하나의 삶은 유일하니, 오히려 더더욱 소중히 여기면 될 뿐.’

그래, 그러면 될 뿐이다.

내가 생각을 막 정리했을 때였다.

화아아악!

“흠!”

나는 고개를 살짝 젖혀, 내 뺨을 노리는 손길을 피해 냈다.

“피, 피해?”

생각해 보니, 원래 수면술로 바로 재워 버린다는 것을 법보의 전승과 망령의 전승을 바로 확인하느라 까먹었었다.

“이 새끼가! 지금 네가 뭘 했는지 자각이 있는 거야!”

“아하….”

어째, 굉장히 반가운 음성이었다.

이 말도 사실, 못 들어 본 지 굉장히 오래되지 않았는가?

녀석은 까칠하게 방방 뛰며 내게 뭐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너무 화내고 살면, 정신 건강에 안 좋습니다. 진정하시지요.”

“뭐, 뭐?”

900살 이상 먹은 원립 같은 마두나, 1600살 이상 먹은 괴군 같은 미치광이들과 쫓고 쫓기다 고작해야 30대 초인 이 녀석이 욕하는 걸 듣고 있자니 왠지….

‘굉장히 귀엽군.’

세 살 먹은 아가가 눈앞에서 아장거리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방금 뺨을 맞았어도 그리 기분은 안 나빴을 것 같았다.

이 녀석이 뺨을 때리고 귀엽게 욕을 하는 것 외에 뭘 할 줄 아는가?

나를 잡아서 개조할 것도 아니고, 갑자기 주변인들을 학살해서 갈아먹을 것도 아니다.

“서은현 이 ^%$&$%$^….”

“그래그래, 알았으니 심호흡이나 해라.”

나는 나를 두들겨 패려, 마구 주먹질을 하다 나를 한 대도 못 맞히고 결국 지쳐 쓰러진 녀석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김영훈이나 오 차장, 강민희 대리, 오혜서 대리, 김연 주임은 이쪽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난 숨을 헐떡이는 전명훈을 뒤로하고, 오랜만에 동료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들 어째,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군.’

나는 그들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그들은 여전히, 이 세계가 다른 세계인 것도 모르고 SUV를 찾자느니,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느니 하며 두런거리고 있었다.

나는 문득 그런 그들을 보자니, 굉장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그들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한번, 제가 저 나무 위로 올라가 근처에 도로나 저희 차가 있나 확인하죠.”

“으음? 서 대리. 올라갈 수 있겠는가?”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타닷!

나는 뒷짐을 지고서, 체내의 기(氣)와 근육의 움직임을 극한으로 세밀하게 조작하여 내공 없이 두 다리만으로 나무를 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빠르게 나무의 끝자락에 올라가 등선향의 정경을 본 후, 그들에게 내려왔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니, 그보다 방금 어떻게 한 건가?”

오 차장이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말 그대로 뒷짐을 지고서 날듯이 몇 미터 길이의 나무를 올라갔다가 내려왔으니.

말도 안 될만한 신기일 것도 같았다.

나는 그냥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냥… 여기서 눈을 뜬 후부터 왠지 몸이 가벼운 느낌이군요.”

“…허어….”

이번에도 동료들은 다시 두 무리로 나뉘어졌다.

오혜서 대리와 김연 주임이 나와 함께 동굴로 향했고,

강민희 대리와 전명훈 과장, 김영훈과 오현석 차장은 SUV를 찾는답시고 주변을 나섰다.

“어, 동굴이에요.”

“그렇군요.”

그들은 동굴을 보며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그들과 함께 주변의 나뭇가지를 모아, 바람막이와 모닥불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딱히 김영훈의 라이터가 필요 없다.

부웅!

치이이익!

적당한 나뭇가지를 잡고 그대로 조금 마른 나무의 표면에 대고 스치자, 바로 나무의 표면에 불이 붙었다.

순간적으로 근육을 조여 극한으로 가속하는 무공 수법이었다.

나는 검불들에 그 불을 실어다가 붙였고, 그런 다음 나뭇가지를 다시 휘둘러 나무 표면에 생긴 불을 꺼 버렸다.

“…어, 어떻게 하시는 거에요?”

오혜서 대리가 큰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역시나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그냥, 되더군요.”

이후, 나는 근처에서 나무 열매들을 가져와 그들과 구워 먹으며, 다른 동료들을 기다렸다.

저녁이 되자 동료들이 왔고, 나는 그들에게도 나무 열매들을 나누어 주었다.

전명훈은 내가 준 건 안 먹으려 했지만, 나는 끈질기게 녀석에게도 나무 열매를 권했다.

결국 녀석은 화를 내면서도 내가 권한 열매를 먹었다.

우리는 밤 늦게까지 잡담을 했다.

‘굉장히… 오랜만이군.’

이들과 이런 마음 편한 대화를 나눈 것도 거의, 400년 만이다.

지난 삶과, 지지난 삶, 그리고 지지지난 삶에서는 시작부터 여우 사냥이니, 괴군과의 독대니 하는 일들에 휘말려 제대로 이들과 대화를 나누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그 이전의 삶들은 거의 4, 500년 전의 일들이었기에, 나는 굉장히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서 대리님, 스마트폰 아직도 신호가 안 잡히나요? 데이터도 안 되고 진짜… 여기 어디지?”

“….”

‘데이터가… 뭐였더라.’

스마트폰은 대략 생각이 났다. 전음부 비슷한 물건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데이터니 뭐니 하는 세세한 것들은 조금 기억이 희미했다.

900년 전에나 사용했던 물건이고, 근 몇백 년 동안 들어 본 적조차 없던 물건인지라 조금 헷갈린다.

‘으음… 나중에 한번 김영훈과 현대 문물들이나, 회사에서 있었던 기억들에 대해서 조금 물어봐야겠어.’

의식이 거대해질수록 기억력이 올라갔지만, 그래도 900년이다.

거기에 현대 동료들 역시 안 만난 지도 오래되어 이제는 희미한 것도 있었다.

“서 대리님? GPS도 먹통이고 참, 공기도 수상할 정도로 맑은데. 여기 한국은 맞긴 할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나는 그들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어 대화에 끼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굉장히 오랜만에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 * *

휘이이이―

모든 동료들이 잠들었다.

나는 바깥으로 나와, 황주삼이 있는 곳으로 갔다.

동료들을 바로 재우지 못한 덕에 오랜만에 즐거운 대화를 나눴지만, 삼을 먹으러 갈 시간을 놓쳤다.

우적, 우적….

나는 삼을 먹고 환골탈태를 했다.

의식 영역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며, 오행혈주번으로 봉인하지 않아도 의식이 완전히 주변을 메웠다.

결단기의 의식 영역.

그 여우 녀석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의식의 크기였다.

“후우….”

나는 단전에 흐르는 내력을 느껴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이 내단까지는 만들지 않았다.

내단이야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우우우웅!

나는 허공으로 강환을 띄웠다.

허공에서 강환이 쪼개지기 시작했다.

‘내단이 있으면, 강환을 만들어 내는 난이도가 굉장히 하강하기에 그동안 내단도 굳이 만들었던 거였다만….’

이미 500년 이상 강환을 사용하며 숙련된 몸이었다.

이제는 굳이 내단이 없어도, 강환을 만들고 쪼개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우우웅!

허공에 아홉 개의 강환이 도열했다.

스르륵!

아홉 개의 강환이 녹아내리며, 의식 영역과 합쳐져 무형검을 만들었다.

나는 무형검을 바르쥔 후, 그대로 정신을 집중했다.

‘내단을 만든 후, 내단을 통해 바로 무형검과 하나 되지는 않았지만….’

월도답천의 진가는, 월도입천의 ‘진짜 힘’을 전부 끌어내는 것.

한 마디로, 이전에 다뤄 보았다면….

우우우웅!

‘지금도 다루는 게 가능하단 말이지.’

피이이잇!

무형검이 변화했다.

더욱더 투명하고, 허허로워진 기색.

겉모습에는 차이가 없었지만.

슈웅!

내가 무형검을 휘두르자, 옆에 있던 나무의 겉은 멀쩡하고 속만 잘려 나갔다.

‘역시, 월도답천의 경지를 어느 정도 재현 가능하군.’

물론 내단 없이 무형검으로만 월도답천을 구현하는 것은, 훨씬 정신력의 소모가 많고 귀찮았다.

하지만 어쨌든 그럭저럭 구현은 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월도답천의 경지를 관조할 때였다.

쿠웅!

익숙한 녀석이 다시 나타났다.

여우였다.

[감히 숲의 주인이 멀쩡히 있는데….]

결단기에 달했던 내 의식 영역을 감지하고 잠자다 일어나서 온 모양.

나는 녀석이 말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무형검을 휘둘렀다.

슈욱!

[…!]

내 무형검은 여우의 거죽을 그대로 투과하여, 여우의 요단이 있는 곳에 닿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사방팔방으로 뻗쳐 여우의 주요 장기가 있는 곳에 닿았다.

이대로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여우의 거죽은 남겨 둔 채 장기와 요단만 전부 회쳐 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조용히 요단을 적출해 버리면, 괴군도 알아채진 못하겠지.’

여우의 눈이, 의식이 공포로 물들었다.

달, 달달달달….

나는 잠시 덤덤하게 놈이 떠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슈르르륵….

나는 무형검을 녀석의 몸에서 다시 회수했다.

[….]

여우는 나와 녀석의 사이에 압도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인지.

그대로 입을 닫고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살려 주마.”

[가, 감사합….]

“요단을 내놓거라.”

[…!]

나는, 이 녀석을 조금 도와주기로 마음 먹었다.

[그, 그게….]

“조각 난 채로 요단을 바칠 게냐, 멀쩡한 상태로 요단을 바칠 게냐.”

[으으….]

내가 무형검을 들며 압박하자, 여우는 끙끙거리더니, 결국 다시 입에서 새하얀 구슬을 토해냈다.

우우웅!

내가 새하얀 구슬을 잡자, 여우의 거체가 점차 작아졌다.

그리고, 녀석은 결국 꼬리가 세 개 달렸을 뿐인 일반 여우로 돌아갔다.

“킹, 키잉….”

여우는 지성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잠시 멍한 눈을 보다, 내 손에 들린 자신의 요단을 보자, 탐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그러다가, 그걸 들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며 도망치려 하였다.

우우웅!

그리고 나는 무형검으로 여우의 뒷덜미를 잡아 내 앞으로 끌고 왔고, 여우는 캥캥거리며 공포에 질려 울부짖었다.

“시끄럽다. 며칠간 내 옆에 있어라.”

나는 여우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은 후.

그대로 녀석을 동굴로 데려왔다.

다음 날.

회사 동료들, 그 중에서도 여직원들은 어느새 동굴 안에 들어온 꼬리가 세 개인 여우를 보며 대경하였다.

“이, 이게 뭐야?”

“돌연변이?”

“그것보다… 귀엽네요?”

김영훈과 오현석 차장 역시 꼬리 세 개의 여우를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고, 전명훈조차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이게 뭐야! 괴물이잖아!”

그들은 두런두런 모여서 여우를 두고 얘기를 나눴다.

그 때.

스르르르….

머리가 두 개인 붉은 뱀이, 다시 나왔다.

‘이 녀석도 뭔가 오랜만인데.’

[인, 간, 들….]

“으, 으아…!”

[특이한, 냄새가… 나는군….]

슈르륵, 슈륵….

[너희의 피를….]

그리고, 뭐라고 말을 하던 뱀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싸아아아―

내가 의식 영역을 드러내며 살기를 쏘자, 뱀은 입을 닫았다.

[…그, 음. 저 쪽으로 가면 맛있는 열매가 달린 나무가 있습니다. 좋은 등선향 구경 되시지요.]

뱀은 내 눈치를 보며 바로 다시 등을 돌려 달아나 버렸고, 말하는 머리가 두 개 달린 뱀을 본 회사원들은 경악을 했다.

그들은 공포에 질려 이 곳이 정상적인 세계가 아니라는 얘기를 나눴다.

나는 잠시 그들을 보며, 며칠 후 도착할 천인들을 기다렸다.

* * *

며칠 후.

쿠구구구구!

익숙한 얼굴들이 날아왔다.

흑색귀골곡 원로원주 백골귀마 허곽.

금신천뢰문 태상 장문인 금벽호.

창천개벽문 개파사조 창호자 청문선우.

세 천인들이 허공에서 내려오며, 제자를 선별하였다.

이번에 나는 내단을 형성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결단기 급의 의식 영역 역시 오행혈주번과 은식술로 꾹 억눌러서 연기기 급의 의식을 유지하는 중이었기에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금벽호가 대강 자질 검사를 한 후, 오영근이라는 말에 모두가 관심을 껐다.

‘아마 조금 자세하게 검사를 했으면 오행혈주번이 들켰겠지만….’

그들은 오영근인 것을 확인한 후에는 아예 관심을 꺼 버린 듯했다.

그나마 관심을 가진 것이, 창호자였는데….

[결단경 요수의 내단을 가지고 있구나.]

“그렇습니다.”

[흠, 혹시….]

창호자는 나를 보며 말했다.

[그 내단을 벽라국에 있는 청문세가에 전달해 줄 수 있느냐? 내 후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군.]

“….”

우웅!

창호자는 내 손등에 청문세가의 추천권을 찍어 주었다.

[만약 전해 준다면 그 추천권을 사용해서 청문세가의 외부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해 주마. 어떠냐?]

[쯧, 뭘 그리 설득하고 있나? 연기기도 못된 놈 같은데. 나 같으면 그냥 뺏어 버렸을 거다.]

금벽호는 그런 창호자를 보며, 전명훈을 자기 저물대에 집어넣고는 말했다.

창호자는 혀를 차며 말했다.

[어린 후학의 것을 뺏어서 뭘 하나? 그리고 어차피 우리야 이 내단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마는 정도인데.]

[흥. 우린 먼저 간다.]

흑색귀골곡과 금신천뢰문은 창호자보다 먼저 출발했고, 창호자는 내 어깨를 툭툭 쳐 주며 말했다.

[우리 뒤로, 다른 천인기 놈들도 올 테니, 등선향에서 나가고 싶으면 그 녀석들에게 부탁하거라. 나는 지금 청천갑(靑天鉀)의 힘을 끌어올리고 있는지라 함부로 공간을 만질 수 없다.

그래도 지금은 비승을 앞둔 상서로운 시기이니, 다른 천인기 놈들도 네가 부탁한다면 하나같이 들어줄 게다.]

그는 그렇게 말해 준 후, 하늘을 날아서 금벽호와 백골귀마를 따라 날아갔다.

“….”

나는 날아가는 창호자를 바라보았다.

다음 날.

쿠릉, 쿠르릉….

서휼이 나타났다.

녀석은 또다시 뭐라 뭐라 중얼거리며 오 대리를 안고 날아갔다.

나는 이번에는 딱히 녀석에게 말을 걸지 않고,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미안합니다, 오혜서 대리.’

이미, 정해져 있다.

운명에는 인력이 있고, 몇 번이나 거스르려 했지만, 그저 결과를 앞당기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이번 생에는 동료들을 더 좋은 천인기에게 넘기려 굳이 노력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어차피, 지금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괜히 움직였다가는, 오히려 더욱더 혼란스러운 결과를 내면서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수 있다.

‘미안합니다, 여러분.’

나는 오혜서 대리마저 사라지자 괴로워하는 김연 주임과 김영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녁.

김연 주임이 의식을 각성하고, 괴군이 날아왔다.

꿈틀.

나는 괴군의 익숙한 면상을 보자 순간 전신에 오한이 들었지만,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의념과 심상까지 들키지 않도록 잘 다스렸다.

괴군은 김연 주임을 제자로 받아 놓겠다 하고는, 나와 김영훈을 들어, 공간 균열을 열고 그대로 던져 넣었다.

나는 어검술의 힘으로, 캥캥거리는 여우 역시 끌어와 뒷목을 잡았고, 그대로 공간 균열 안쪽에서 허공간으로 떨어졌다.

공간 균열 너머로, 나와 김영훈마저 눈앞에서 잃게 되자 다급히 우리에게 손을 뻗는 그녀가 보인다.

‘아….’

나는, 김 주임의 의념의 색을 보며.

그제야 천색성에서 김영훈이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 * *

“…!”

읍, 읍!

나는 허공간을 넘어 눈을 떴고, 갑작스레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이곳은, 이곳은…!

무형검!

부웅!

콰아아앙!

“커허헉!”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괴군, 이 미치광이가…!’

나는 내가 나온 곳을 보며 숨을 골랐다.

내가 나온 곳은, ‘땅 속’이었다.

‘무작위로 전송시킨다는 게, ‘땅 속’도 포함이었던 건가…!?’

그나마 무형검을 얻은 상황에서 이렇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잠깐.’

나는 황급히 의식 영역을 풀어, 김영훈을 찾았다.

김영훈과, 그리고 내가 데리고 온 여우도 땅 속에 갇혀 있었다.

나는 무형검으로 땅을 파헤쳐서 둘을 파낸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

익숙한 문자와 언어들.

이곳은….

“따, 땅 밑에서 사람이 튀어나왔어….”

“뭐지?”

“이상한 옷이야….”

연국의 번화가였다.

나는 나를 둘러싼 사람들 중 한 명에게 다가가 물었다.

“여기가 연국의… 아, 아니오.”

나는 기억력을 되살려 이곳이 어디인지를 떠올렸다.

연국 연산성.

내가 최초의 삶에서 떨어졌던 성이었다.

“이곳도 오랜만이군.”

나는 기절한 김영훈과 여우를 들쳐업고, 빠르게 보법을 펼쳐 사람들의 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나는 빠르게 인근 사파 무리와 산적들을 소탕하고, 돈을 끌어모은 후.

번개같이 김영훈의 신분 패와, 그가 살 장원을 마련했다.

나는 김영훈을 재워 놓은 상태에서, 빠르게 일을 진행했다.

장원을 관리할 시비와, 김영훈에게 언어와 문자, 문화를 추가로 가르칠 학사를 고용했다.

그리고, 김영훈의 뇌리에 모든 무공 요결들.

그리고 오기조원, 등봉조극, 월도입천, 월도답천에 도달하는 요결을 남겨 준 후.

나는 여우에게 지금껏 보관해 왔던 요단을 던져 주었다.

케켕!

여우는 요단을 받아 삼키더니, 다시금 장원 안쪽에서 거대한 거체를 드러냈다.

녀석은 나를 쳐다보며,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승천문이 열릴 기간이라, 등선향에 계속 있었으면 네 요단이나 뽑혔을 거다.”

[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부탁이나 하나 하지.”

[예, 하명하십시오….]

“살려 주는 대신, 저 인간을 보호해 다오.”

나는 김영훈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우는 바로 납죽 엎드리며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였다.

[예, 예….]

“언젠가 내가 돌아올 터이니, 함부로 식인을 하지 말아야 할 거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되었다.”

나는 잠시 김영훈을 바라본 후.

우선은 이번 생에 남아 있는 할 일들을 하러 출발했다.

확인할 것을 확인했고.

이제 원영기에 비견되는 월도답천에도 도달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할 일들을 다 끝내 놓고, 다시 등선향으로 돌아간다.’

무공을 익히고, 수도자를 꿈꿨던 날부터.

아주 먼 옛날부터 세웠던 목표.

‘최소한의 무력을 갖췄으니, 이제….’

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승천문을, 조사하러 간다.’

언젠가 한 번은 해야 했을 일.

공간 폭풍에 휘말려,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아주 먼 옛적부터 계획해 온 목표였다.

이제 한 번은 조사하러 갈 때가 되었다.

‘미안합니다, 여러분.’

동료들은 아무도 지키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 생은 이 목숨을 바쳐,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단초를 알아볼 것이다.

나는 빠르게 허공을 날았다.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回歸修仙傳, 회귀수선전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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