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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2

132화 신입생들 (2)

132화 신입생들 (2)

“따라와.”

에스틸리아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어디를요?”

“치유실 찾아온 거 아니야? 아, 애정행각이 아직 끝나지 않은 거니? 진도는 어디까지 뺄 생각인데? 키스? 진한 애무? 아니면 끝까지?”

“그, 그런 거 아니에요!”

루나가 바락 소리치며 내 품에서 달아났다. 이어 끄히잉······! 신음하며 발목을 붙잡더니, 절뚝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몸을 일으켜 루나를 쫓았다.

등 뒤에서 에스틸리아 교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

“저는 오늘 여러분 앞에서 아르카넘 홀 마법학부의 수석 입학생으로 서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게 이러한 기회를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입학식이 거행됐다.

마법학부의 합격생 대표로 단상에 오른 아리엘이 수석 입학 소감을 말하고 있었다.

“밤하늘의 별빛이 마법처럼 느껴질 때마다 저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습니다. 그 꿈이 오늘, 아르카넘 홀에서의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리엘의 목소리가 잔잔히 강당을 울렸다.

그녀의 음성은 크지 않았지만 또렷했다. 아마도 이곳에 자리한 합격생들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집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빛내 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아르카넘 홀에서의 여정이 풍요롭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리엘이 말을 맺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남학생들은 연모의 시선으로, 여학생들은 선망의 눈으로, 교수들은 만족에 찬 얼굴로 단상에서 내려오는 아리엘을 바라봤다.

다음은 검술학부 수석 입학생인 세실의 차례였다.

“와······.”

“예쁘다······.”

세실이 단상으로 나아가자 강당은 탄성으로 가득 찼다. 나도 새삼 멍한 눈으로 세실을 봤다. 세실은 더 이상 가슴에 붕대를 두르지 않는다. 그리고 반바지를 입은 루나와 달리 치마를 입었다.

“힘내. 세실.”

내 옆에서 루나가 작게 속삭였다. 며칠 전의 일로 나와 루나는 조금 서먹한 사이가 되었다.

나는 조금 긴장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무언가를 말하는 상황은 세실에게는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세실은 루나에게 대신 발표해 주면 안 되느냐며 울먹이기도 했다.

“······세. 세실리아. 크라소타. 입니다.”

단상에 오른 세실이 불안한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마주 고개를 끄덕인 세실이 다시 입술을 열었다.

“가. 감사. 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세실이 새빨개진 얼굴로 단상을 내려왔다.

강당에 정적이 감돌았다.

세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나는 간략하게 소감을 말해도 된다고 했었다. 그런데 설마 저걸로 끝일 줄이야.

“저 수줍어하는 얼굴 봤어?”

“귀, 귀엽다······!”

“친해지고 싶어!”

“아아, 세실리아. 세실리아······!”

그런데 그 모습이 남학생들을 무척 설레게 만든 모양이다.

.

.

.

수업은 바로 시작됐다.

지금은 기초 마법 시간이었다.

“다시 소개합니다. 제 이름은 에스틸리아 벨라코트. 아르카넘 홀의 마법학부 교수이며, 주 속성은 화염(火焰)이지만 다른 속성 마법에도 능합니다.”

자랑 같은 자기소개를 마친 에스틸리아 교수가 교탁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후드가 달린 여러 장의 망토였다.

“원래는 교복과 함께 나눠줬어야 했는데 학교 측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오랜 전통대로 1학년은 노란색 망토를 착용합니다. 2학년은 녹색, 3학년은 푸른색, 4학년은 붉은색 망토를 착용하니, 앞으로는 망토의 색으로 재학생의 학년을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아리엘과 카인을 시작으로, 학생들이 망토를 몸에 둘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짤막한 망토였다. 루나에게 무척 잘 어울릴 것 같은.

망토를 두르며 생각했다. 아리엘과 가까워지겠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지만, 나는 마법학부에 들어온 것을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 나는 마법보다는 검에 소질이 있으니까. 무엇보다 루나와 세실이 곁에 없어 허전했다.

하지만 금세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르카넘 홀은 마법학부와 검술학부로 나뉘어 있지만 공통 수업이 많다. 역사와 각종 교양, 그리고 전략과 전술에 관련된 수업 등이 그랬다.

“저, 저기, 아리엘라.”

아까부터 한 여학생이 아리엘에게 말을 붙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내 눈에 비친 아리엘은 조금 귀찮아하는 듯했으나, 별달리 내색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 여학생의 얼굴을 기억했다. 입학시험에서 꽤 높은 점수를 획득했었지. 이름이 ‘미아’였던가.

***

봄기운이 완연한 들판은 생기와 활력으로 가득했다. 따사로운 햇살이 잔디 위로 황금빛 물결을 그렸다. 화려한 색상의 야생화들이 살랑살랑 몸을 흔들었고, 그 사이로 향긋한 꽃향기가 퍼져 나갔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 무용수처럼 허공 위를 나풀거리며, 이따금 학생들의 얼굴에 닿았다. 이곳에서는 검술학부 1학년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아니,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웃기지 마 샬리! 너는 지금 여기 있어야 할 입장이 아니라고! 욕심도 적당히 부려야지!”

“입냄새 나니 이쪽 보고 말하지 말랬지. 자크.”

“냄새는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야! 너 말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들판 위에 신입생들을 앉혀 놓은 채, 저 멀리에서 큰 소리로 다투는 이들은 검술학부 교수인 ‘샤를로트 브누아’와 ‘자크 듀발’이었다.

샤를로트는 인상을 구기며 자크를 노려봤다. 사실 그녀는 억지를 부리는 중이었다. 이자크 펠리온 교장의 지시로 샤를로트는 올해 3학년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번 신입생의 지도는 자크에게 맡겨졌으니까.

그러나 샤를로트는 자신이 신입생의 지도를 맡겠다고 우겼다. 그 모습에 교장은 난색을 표했지만 샤를로트는 바락바락 소리치며 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결국 두 손을 든 교장은 자크 교수와 상의해 결정하라고 했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후······. 알겠다. 샬리.”

깊은 한숨을 내쉰 자크의 입에서 절충안이 나왔다.

“실습 시간에만 반을 나누도록 하지. 원하는 학생을 너와 내가 교대로 한 명씩 선택해 각자의 반을 만드는 거야. 대신 나부터 시작한다. 이것만은 절대로 양보 못 해.”

“좋아.”

샤를로트는 속으로 웃었다.

그녀는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저 덩치만 큰 고집쟁이 녀석은 결국에는 내 말을 따르게 되어 있으니까. 게다가 녀석이 가장 먼저 선택할 학생이 누구인지도 뻔했다.

“세실리아 크라소타를 선택한다.”

“루나 크라소타.”

샤를로트에게 먼저 선택권이 주어졌어도 그녀는 루나 크라소타를 택했을 것이다. 그렇게 두 교수는 가장 원하는 학생을 한 명씩 손에 넣었다.

자크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샤를로트는 그의 생각을 짐작했다.

‘데르맛 오셀롯과 앙투안 브르타뉴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군.’

입학 순위로만 따지자면 데르맛 오셀롯이다. 녀석은 루나 크라소타를 제치고 검술학부에 2등으로 합격했으니까. 물론 그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데르맛은 수험생 중에서 유일하게 오러를 발현해 강화된 전투 골렘과 싸웠다.

강화된 골렘과 싸우면 추가점이 주어진다. 정해진 규칙은 아니다. 하지만 난도가 높아진 시험을 치르는 학생에게 더욱 높은 점수가 부여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울러 그것이야말로 루나 크라소타가 3등으로 밀려난 이유였다. 오러를 발현하지 않고 검술학부 시험을 치르는 학생은 80점을 넘기기 어렵다. 즉, 80점 이상의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오러 발현이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러의 발현 없이 89점을 획득한 세실리아 크라소타는 압도적인 괴물이었다.

“앙투안 브르타뉴를 선택한다.”

“데르맛 오셀롯.”

샤를로트는 이번 선택도 마음에 들었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데르맛을 가르치는 편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았으니까.

녀석이 강화된 전투 골렘을 상대하며 지었던 얼빠진 표정을 떠올릴 때마다 샤를로트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

루나는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는 샤를로트 교수의 지시로, 홀로 모래벌판을 달리고 있었다.

“왜 나만 이런 걸 하고 있어야 하는 거야.”

다른 신입생들은 제대로 수업받고 있다. 샤를로트 교수가 담당한 학생들은 물론이고, 자크 교수의 담당 학생 역시도.

안 그래도 루나는 세실과 반이 갈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만 이렇게 모래벌판을 달리고 있다니.

“세실은 열심히 훈련하는데······.”

루나는 저 멀리서 세실이 자크 교수와 대련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연이어 들려오는 환호성 때문에 자꾸 눈이 갔다. 어서 빨리 세실을 따라잡아야 하는데, 이러다가는 점점 더 세실과 실력 차가 벌어질 것 같다.

“이잇······. 더는 못 참아!”

루나는 달리는 것을 멈췄다.

그러고는 학생들에게 검술 시범을 보이는 샤를로트 교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샤를로트 교수님!”

빽 소리쳤지만 샤를로트 교수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시범에 열중했다.

“샤를로트 브누아 교수님!”

다시 한번 외쳤다.

그제야 샤를로트 교수가 루나를 돌아봤다.

“10분간 휴식한다.”

그렇게 말한 샤를로트 교수가 루나의 덜미를 번쩍 들어 올렸다.

놀란 루나가 발버둥 쳤다.

“아악! 이, 이거 놔요 교수님! 창피하다고요!”

잠시 후, 루나는 원래의 모래벌판에 내려져 있었다.

루나는 바락바락 대들었다.

“저한테 무슨 악감정이라도 있으세요? 왜 저만 이런 걸 하고 있어야 하냐고요! 저도 똑같은 신입생이고,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어요! 이건 직권남용이라고요!”

“루나 크라소타.”

이름이 불리자 루나는 입을 다물었다.

샤를로트 교수의 목소리에서 범접하기 어려운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세실리아 크라소타에 비해 형편없이 약하다는 것, 스스로도 알고 있겠지?”

샤를로트 교수가 루나의 아픈 곳을 찔렀다.

세실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루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으니 더욱 분했다.

루나는 주먹을 움켜쥐며 이를 악물었다. 세실은 사랑스러운 친구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루나는 세실을 이기고 싶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지금의 너를 만든 검술 스승은 분명 타고난 체격 조건을 가진 자였겠지.”

그 말이 루나의 관심을 끌었다.

지금까지 루나에게 검술을 가르친 이는 쿠훌린과 벨락과 라이칸. 모두 건장한 체격을 지닌 인물들이었으니까.

“세실리아 크라소타를 이길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

루나의 눈이 커졌다.

“저, 정말요?”

“물론. 단, 세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그게 뭔데요?”

“첫째, 나의 지시를 무조건 따를 것. 둘째, 나의 지시에 토 달지 말 것. 마지막 셋째.”

샤를로트 교수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나의 지시를 무조건 따르고, 토 달지 말 것.”

루나는 샤를로트 교수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다.

샤를로트 교수는 루나와 엇비슷할 정도로 체구가 작았다.

“별것도 아니네요. 좋아요. 규칙을 따르겠어요. 대신.”

루나의 입가가 씩 올라갔다.

“약속은 꼭 지키셔야 해요.”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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