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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3

133화 별철 수송임무

“별동대를 투입한다.”

시급하게 결정된 일이었다.

악마의 개입으로 달의 파편이 엉뚱한 곳으로 떨어진 현재, 레온은 파편을 회수할 별동대 투입을 천명했다.

대성녀 아냑이 의견을 제시했다.

“위험할 거예요. 악마들이 알고 벌인 일은 아니겠지만, 무언가 있다는 건 알아챘겠지요.”

“알고 있다. 허나, 그 별철은 이사벨 신관장이 목숨을 걸어 만들어낸 기회일세. 반드시 확보해야 해.”

그래, 포기할 수 없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레온은 이를 포기한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 없다.

“다행이라면 별철은 순수한 성력의 덩어리나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어지간한 악마들은 닿는 것만으로 소멸하겠죠.”

선한 이들에게는 어떠한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오직 악한 자들만을 타격하는 별의 소환.

그것은 대기권을 통과하며 이십만이 넘는 악마들을 소멸시켰다. 신성의 힘으로 일으킬 수 있는 가장 거대한 폭력인 것이다.

“짐이 직접 나설 수는 없겠지.”

“당연하신 말씀을…! 폐하, 본작에게 맡겨주십시오! 제가 파편을 회수하고 오겠습니다!”

록슬리는 레온이 직접 나설 가능성을 떠올리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나섰다.

말이야 연합군이지 이 군대는 레온이 없으면 돌아가질 않는다.

고작 20만이 채 되지 않는 군세임에도 천만 악마들이 일시에 들이닥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배기사들이라는 초력의 강자들이 있다지만, 그런 그들 위에 성배 수호자 사자심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레온이 전사한다면 연합군은 일시에 무너질 것이다. 이것은 우울한 예측이나 가정이 아니라 명확한 진실이었다.

“안토크 경.”

“말씀하십시오, 폐하.”

“이사벨 신관장이 쏘아 맞힌 달의 파편은 철과 대장장이의 신관들이 아니면 분해할 수 없겠지. 그대가 책임지고 별동대를 이끌어 파편을 확보하게.”

“폐하, 별동대를 구성하는 데 있어 재량권은 어디까지 허락되옵니까?”

“성자급으로 두 명. 소수정예인 만큼 최정예를 차출하게.”

그 말에 안토크는 조금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도 별동대의 안위를 중시하는 레온의 의중을 알았다. 하지만 성배기사급으로 두 명이나 빠진다면 이곳의 방비는 어찌한단 말인가?

안 그래도 수십 배나 차이나는 숫자를 어찌어찌 대칭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건 성배기사들의 존재 때문이다.

최근에 최강의 성배기사 불카누스 경도 실종된 와중에 어찌──

“폐하, 드라고니아 대공에게 회군명령을 내리실 순 없으십니까?”

“불가하다. 대공과 북부군은 선택을 내렸네. 짐은 그것을 강제할 수 없다.”

이 연합군의 구성원들은 명목상 대등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대등한 관계라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망국의 생존자들을 끌어모으고 실질적인 최대전력인 라이온하트야말로 이 연합군의 절대적인 상징.

하지만 드라고니아 북부군은 달랐다.

먼 옛날, 초대 사자심왕과 함께 라이온하트를 건국한 드라고니아 대공은 당대 왕국 최대의 적이었던 드래곤들을 연달아 시해한 드래곤 슬레이어.

그렇기에 초대 사자심왕은 드라고니아를 대공국으로 반쯤 독립시켜 영원한 우군으로 삼았다.

그들은 북부의 대변자이자 야만인들을 막아서는 장벽. 사자심왕들은 결코 드라고니아 대공을 아랫것처럼 대할 수 없다.

“카리나 대공은 회군하지 않을 걸세.”

“그렇다면 폐하.”

안토크가 이전의 주제를 이어 말했다.

“이번에 연합에 합류한 이들 중 그 둘을 포함하게 해주십시오.”

“……길링엄 경이 데려온 이들 말인가?”

“예, 듣자 하니 다들 범상치 않은 실력을 지녔다더군요. 특히 베아트리체라는 여인과 야크트 스피너라는 이종족. 그들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레온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들이 미래의 자신이 서임한 성자와 성녀라는 건 자신만이 아는 사실이다.

결국 과거를 재현했을 뿐인 자신들과 다르게 그들은 진짜 목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가능한 위험 없이 온전하게 이곳을 탈출시키고 싶었으나…….

‘성배기사급의 강자를 둘이나 낭비하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군.’

한하리와 천소연도 단장급의 강자지만, 아무래도 성배기사와 비견할 정도는 아니다.

그 둘이라면 어지간한 위협은 자력으로 구제할 수 있겠지.

“지금부터 속도전이다. 서둘러 달의 파편을 확보하고 귀환하게.”

* * * *

기사 오백 여명의 2개 기사단과 자유민 경기병 일개 중대는 그야말로 초고속으로 달의 파편을 향해 내달렸다.

라이온하트의 군마는 사흘을 내리달려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가졌다. 그런 군마들을 나라의 자랑으로 여기는 기병들조차도 선두를 달리는 괴형체를 보며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경. 저거, 정말로 생물이 맞습니까?”

한 기사의 의문은 지당했다. 안토크도 마찬가지였다.

-다각다각!

지상을 주파하는 여덟 개의 강철다리. 라이온하트의 군마보다 십수 배는 거대한 강철의 거미는 시속 80km의 속도로 내달리고 있다.

이마저도 겨우 뒤따라오는 군마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제한 것이다.

어떤 대륙, 왕국에서도 볼 수 없었던 괴이한 강철의 생명체.

저런 것을 믿을 수 있는가.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헤토 신께서 선택하신 기사일세. 아리아나께서 성배기사로 서임하셨고.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

유독 꽉 막히고 융통성이 없는 라이온하트의 기사들이지만, 그런 그들이 무한한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사자심왕의 명령과 만신전의 선택이었다.

폐하께서 명하셨는데 항명이라도 할 셈인가?

신들께서 선택하셨는데, 한낱 미물이 어찌 그 심해처럼 깊은 뜻을 알겠는가?

악마를 개종한다거나 오크를 기사로 서임하는 괴상망측한 일만 아니라면 기사들은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아무래도 별동대 중에서도 이질적인 야피의 곁에는 그의 능력에 심취한 안토크 경이나 원래 일행이었던 베아트리체뿐이다.

-끼룩!

야피는 배터리가 소진된 드론들을 동체에 수납하고 2차 드론 정찰대를 날리며 주변 정보를 통합, 맵핑한 홀로그램 맵을 띄웠다.

“오오… 대체 무슨 요술인가?”

지형과 숲의 조망까지 세세하게 구분한 3D 맵에 감탄하며 다가오는 안토크 경. 야피가 자신만만함의 끼룩 소리를 내었다.

-야만적인 유기물들의 기술레벨로는 실현 불가능한 통합 정찰시스템의 편린. 본기의 우수성은 만신전 제일.

“하하, 과연과연. 만능이라는 거군. 역시 내 제자일세.”

안토크의 발언에 짐짓 불만스러워 보이는 야피.

-명칭의 정정을 권고함. 귀하는 어디까지나 기술 제공자일 뿐. 본기에게 사제관계를 강요할 지적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음.

“으하하하하핫!”

제 키보다 두 배는 큰 야피의 기계다리를 호탕하게 웃으며 두드리는 안토크였다.

“친해지신 모양이군요?”

“그래 보이오?”

“야피 경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실 수 있는 분은 저희 쪽에서도 많지 않거든요.”

야피는 대부분의 상대를 기계적으로 대하는 편이다. 그나마 하리 정도면 친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걸 친하다고 해야 할지, 일방적으로 농락한다고 해야 할지.

그런 면에서 야피가 안토크에게 꼼짝도 못 하는 모습은 베아트리체에게도 신선했다.

‘합리의 화신인 야피 경이니 어지간히도 안토크 경이 가진 기술이 탐나는 모양이네요.’

철과 대장장이의 성배기사끼리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베아트리체는 일전에 게이트를 처음 열었을 때, 제레아 경과 한 번쯤 만나봤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레이디, 대강 눈치는 채셨겠소만.”

“네, 이상할 정도로 얌전하군요.”

야피의 수색뿐 아니라 경기병들을 통해 정찰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달의 파편이 떨어진 곳으로 향하기까지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놈들이 이 기회를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네.”

“아마 파편 채굴을 시작할 때부터 습격해오겠죠.”

문제는 얼마나 되는 악마가, 어느 정도급의 악마가 오냐는 것이다. 하지만 놈들도 이 별동대에 성배기사급이 세 명이나 있으리라곤 예상 못 하겠지.

어젯밤부터 하루를 내리달린 보람이 있는지 달의 파편이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저것이로군.”

떨어진 달의 파편은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었으나 조금도 상하지 않은 채 형형한 빛을 내고 있었다.

달의 여신이 자신의 신성을 깎아내면서까지 허락한 파편이다. 그녀의 신관장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가면서까지 쏘아 떨어뜨린 것이었고.

“추출을 시작하지.”

안토크는 곧장 거대한 달의 파편에 다가가 그것을 망치와 정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스피너 경. 와서 돕게.”

-끼룩!

안토크와 스피너. 거기에 십수 명의 대장장이 신관들까지.

그들이 합세하여 달의 파편에서 별철을 분해하는 동안 베아트리체는 대규모의 방위결계를 조작하고 진지를 구축했다.

‘내가 놈들이라면, 이 타이밍에 습격하겠죠.’

놈들은 달의 파편에서 별철을 추출하는 무방비한 상황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별철 수송의 성공여부는 놈들의 공격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아내느냐에 달렸다.

“진지를 구축하고 전투를 준비하세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취약한 타이밍입니다.”

다행이라면 정보전에서는 이쪽이 압도적 우위라는 것이다.

100여명의 자유민 경기병들이 수시로 주변을 탐방하고 있었고, 야피가 띄운 드론들이 장거리 경계임무 중이다.

놈들이 아무리 은밀하게 달려와도 이쪽에서는 반드시 포착할 수 있다.

문제는 상대의 규모. 악마들의 숫자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지금도 데몬 게이트를 통해 무한히 증식되는 악종들의 파도 앞에서 신들의 왕국조차 무력했다.

하지만 이 압도적 불리 속에서 그들이 여전히 버틸 수 있는 이유.

‘성배기사만 셋. 어중간한 숫자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대처할 수 있어요. 난점은 얼마나 많은 고위 악마들이 몰려오느냐.’

악마들의 군세는 썩어 넘칠 정도로 많다. 그렇다는 건 사교도들이나 악마 추종자들, 하급 악마들을 지휘할 고위 악마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끼룩! 적 움직임 포착. 홀로그램 맵 띄우겠음.

한창 달의 파편을 채굴하던 야피가 동시에 운용 중이던 드론으로 적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홀로그램에는 진지를 구축한 별동대의 측면을 노리는 검은 얼룩들이 보인다.

베아트리체가 능숙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확대하자 일전에도 보았던 괴물거미들과 기이할 정도로 거대한 어금니를 가진 늑대마물들이 확인됐다.

“적들도 기동병력을 꾸려 최대한 빠르게 온 것 같네요.”

괴물거미와 늑대마물 위에는 어딘가 익숙한 고블린과 소형 악마들이 탑승해 있다. 그들의 전투력을 둘째 쳐도 군마의 서너 배는 되는 마물들은 그 덩치만으로 위협적이다.

“놈들이 접근합니다! 약 삼만!”

많다. 이쪽은 소규모로 최정예 기병만 보냈는데, 악마 쪽은 압도적인 숫자를 자랑하듯 기동병력만으로 저 정도다.

“사수 준비! 쏴라!”

자유민 경기병들이 화살을 들었다. 그들의 시위에서 화살이 뻗어 나가며 족히 500m를 넘는 거리에 있는 거미들을 쏘아 맞힌다.

“굉장하군요. 마궁(魔弓) 같은 건가요?”

베아트리체가 감탄하며 묻자 옆 자리의 한 기사가 호쾌하게 대답했다.

“헤토의 신관들께서 축성하고 제작한 장궁들입니다. 오크 놈들의 질긴 피부도 관통할 수 있지요.”

“원거리 무기를 싫어하는 것으로 아는데, 의외로 군대를 운용할 땐 잘만 쓰시는군요.”

그 말에 멋쩍은 듯 뺨을 긁적거리는 기사들. 하지만 그들도 할 말은 있었다.

“투창 들어!”

기사들은 저마다 말 옆에 장비된 창들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돌격용 마창과 달리 투척에 용이하게 깎은 투창이다.

“쏴라!!”

기사들이 창에 성력을 응집해 그것을 괴물거미들의 무리에 쏘았다. 그러자 끔찍한 파공성을 일으키며 쇄도하는 투창.

-끼이에에에에에!!

그 범상치 않은 기운을 읽은 건지, 아니면 자신의 최후를 감지한 건지 비명 같은 괴성을 내지르는 괴물거미. 다음 순간──

-퍽! 퍼퍼퍼퍼퍼퍽!!

기사들이 내던진 창들은 괴물 거미들을 아예 관통해버렸다.

“활보다 공격력이 약한 자는 기사가 되지 못합니다. 이것이 원거리 무기가 열등한 이유지요.”

“그거. 폐하를 통해 아주 잘 아는 사실이랍니다.”

싱긋 웃는 베아트리체. 그녀와 채굴을 작업을 진행하던 야피도 공세에 가담했다.

-드론 화력전개. 성탄(聖彈) 소사 개시.

야크트 스피너는 만신전에서 무구만 만든 게 아니다.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도구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야피는 자신이 사용할 홀리 그레네이트 탄환들을 잔뜩 만들었다.

-투다다다다다다!!

끔찍한 굉음을 쏟아내며 퍼부어지는 성탄들. 살아있는 성자의 육체에서 비롯된 탄환들은 모두 성력이 깃들어 악마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

백여기의 자유민 기사들이 쏘아대는 화살들보다 야피의 초고속기관포가 이뤄내는 성과가 더 대단할 정도.

안토크는 어디서 이런 괴물딱지가 왔는가 감탄했지만, 아직 진짜 ‘대화력’은 시전도 되지 않았다.

<주문강화>, <이중발동>, <위계상승>, <삼중최강화>──

“이것은?!”

익숙한 마법식. 하지만 그 시전자는 이계의 마술사 여왕이었다.

──원리해석. 리메이크 매직

“라만타의 벼락… 이었던가요?”

-콰쾅!!

마법진을 중심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벼락. 그것이 괴물거미들의 한복판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다. 이뿐만이 아니다.

──원리해석. <효과범위 확대화>, <효과범위 확산화>

마치 오케스트라 앞의 지휘자처럼 미려한 손가락이 춤추듯 뻗는다.

말 위에서도 그녀의 우아함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고, 떨어졌던 벼락은 마치 그녀의 의지를 대변하듯 사방으로 비산한다.

-콰! 콰쾅! 콰콰쾅! 콰아아앙!!

떨어진 자리에서 폭발적으로 범위를 넓혀가는 벼락. 그것은 마치 괴물거미들의 다리처럼 타고 연결하여 온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푸직!

-콰직!

그리고 벼락이 통과한 괴물거미들은 내부의 살덩이들이 순간적인 가열을 버티지 못하고 폭탄처럼 터져나갔다.

“대단하군… 제국 선제후조차 이런 거대마법은 불가할 걸세.”

“이 세계의 마법사들 수준은 결코 나쁘지 않답니다. 성법에 대항하기 위해 파괴적인 방향으로 진화했거든요.”

그래, 분명 선제후들을 비롯해 마법사들의 마법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선제후들의 마법을 한 번 본 것만으로 원리를 해석해 응용하는 이 마술사 여왕은 무엇이란 말인가?

안토크는 알 길이 없지만, 그녀가 제국 선제후의 피를 잇는 대마법사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했다.

-끼이이이…….

-키에에에엑!

만 단위의 괴물거미들 끔찍한 적의 화력에 주춤거린다. 접근도 하기 전에 벌서 천 단위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공포를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적의 예봉은 꺾었으니… 좀 더 망설여줬으면 하는군요.”

베아트리체는 조금이라도 많은 시간을 벌기를 바랐다. 하지만 놈들은 접근을 시도할 것이고 백병전은 필수불가결이겠지.

‘저게 적의 전부라면 막을 수 있겠지만… 당연히 전부가 아니겠지.’

베아트리체의 예상대로 야피의 탐지범위를 벗어난 먼 하늘. 그곳에서 달의 파편을 채굴하는 별동대를 지켜보는 눈동자들이 움직였다.

[병력을 축차투입해라. 놈들이 파편의 추출을 끝내기를 기다릴 것이다.]

창공의 구름 속에서 악마들이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Chapter 133

Chapter 133

133화 별철 수송임무

"별동대를 투입한다."

시급하게 결정된 일이었다.

악마의 개입으로 달의 파편이 엉뚱한 곳으로 떨어진 현재, 레온은 파편을 회수할 별동대 투입을 천명했다.

대성녀 아냑이 의견을 제시했다.

"위험할 거예요. 악마들이 알고 벌인 일은 아니겠지만, 무언가 있다는 건 알아챘겠지요."

"알고 있다. 허나, 그 별철은 이사벨 신관장이 목숨을 걸어 만들어낸 기회일세. 반드시 확보해야 해."

그래, 포기할 수 없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레온은 이를 포기한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 없다.

"다행이라면 별철은 순수한 성력의 덩어리나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어지간한 악마들은 닿는 것만으로 소멸하겠죠."

선한 이들에게는 어떠한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오직 악한 자들만을 타격하는 별의 소환.

그것은 대기권을 통과하며 이십만이 넘는 악마들을 소멸시켰다. 신성의 힘으로 일으킬 수 있는 가장 거대한 폭력인 것이다.

"짐이 직접 나설 수는 없겠지."

"당연하신 말씀을…! 폐하, 본작에게 맡겨주십시오! 제가 파편을 회수하고 오겠습니다!"

록슬리는 레온이 직접 나설 가능성을 떠올리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나섰다.

말이야 연합군이지 이 군대는 레온이 없으면 돌아가질 않는다.

고작 20만이 채 되지 않는 군세임에도 천만 악마들이 일시에 들이닥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배기사들이라는 초력의 강자들이 있다지만, 그런 그들 위에 성배 수호자 사자심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레온이 전사한다면 연합군은 일시에 무너질 것이다. 이것은 우울한 예측이나 가정이 아니라 명확한 진실이었다.

"안토크 경."

"말씀하십시오, 폐하."

"이사벨 신관장이 쏘아 맞힌 달의 파편은 철과 대장장이의 신관들이 아니면 분해할 수 없겠지. 그대가 책임지고 별동대를 이끌어 파편을 확보하게."

"폐하, 별동대를 구성하는 데 있어 재량권은 어디까지 허락되옵니까?"

"성자급으로 두 명. 소수정예인 만큼 최정예를 차출하게."

그 말에 안토크는 조금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도 별동대의 안위를 중시하는 레온의 의중을 알았다. 하지만 성배기사급으로 두 명이나 빠진다면 이곳의 방비는 어찌한단 말인가?

안 그래도 수십 배나 차이나는 숫자를 어찌어찌 대칭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건 성배기사들의 존재 때문이다.

최근에 최강의 성배기사 불카누스 경도 실종된 와중에 어찌──

"폐하, 드라고니아 대공에게 회군명령을 내리실 순 없으십니까?"

"불가하다. 대공과 북부군은 선택을 내렸네. 짐은 그것을 강제할 수 없다."

이 연합군의 구성원들은 명목상 대등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대등한 관계라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망국의 생존자들을 끌어모으고 실질적인 최대전력인 라이온하트야말로 이 연합군의 절대적인 상징.

하지만 드라고니아 북부군은 달랐다.

먼 옛날, 초대 사자심왕과 함께 라이온하트를 건국한 드라고니아 대공은 당대 왕국 최대의 적이었던 드래곤들을 연달아 시해한 드래곤 슬레이어.

그렇기에 초대 사자심왕은 드라고니아를 대공국으로 반쯤 독립시켜 영원한 우군으로 삼았다.

그들은 북부의 대변자이자 야만인들을 막아서는 장벽. 사자심왕들은 결코 드라고니아 대공을 아랫것처럼 대할 수 없다.

"카리나 대공은 회군하지 않을 걸세."

"그렇다면 폐하."

안토크가 이전의 주제를 이어 말했다.

"이번에 연합에 합류한 이들 중 그 둘을 포함하게 해주십시오."

"……길링엄 경이 데려온 이들 말인가?"

"예, 듣자 하니 다들 범상치 않은 실력을 지녔다더군요. 특히 베아트리체라는 여인과 야크트 스피너라는 이종족. 그들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레온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들이 미래의 자신이 서임한 성자와 성녀라는 건 자신만이 아는 사실이다.

결국 과거를 재현했을 뿐인 자신들과 다르게 그들은 진짜 목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가능한 위험 없이 온전하게 이곳을 탈출시키고 싶었으나…….

'성배기사급의 강자를 둘이나 낭비하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군.'

한하리와 천소연도 단장급의 강자지만, 아무래도 성배기사와 비견할 정도는 아니다.

그 둘이라면 어지간한 위협은 자력으로 구제할 수 있겠지.

"지금부터 속도전이다. 서둘러 달의 파편을 확보하고 귀환하게."

* * * *

기사 오백 여명의 2개 기사단과 자유민 경기병 일개 중대는 그야말로 초고속으로 달의 파편을 향해 내달렸다.

라이온하트의 군마는 사흘을 내리달려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가졌다. 그런 군마들을 나라의 자랑으로 여기는 기병들조차도 선두를 달리는 괴형체를 보며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경. 저거, 정말로 생물이 맞습니까?"

한 기사의 의문은 지당했다. 안토크도 마찬가지였다.

-다각다각!

지상을 주파하는 여덟 개의 강철다리. 라이온하트의 군마보다 십수 배는 거대한 강철의 거미는 시속 80km의 속도로 내달리고 있다.

이마저도 겨우 뒤따라오는 군마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제한 것이다.

어떤 대륙, 왕국에서도 볼 수 없었던 괴이한 강철의 생명체.

저런 것을 믿을 수 있는가.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헤토 신께서 선택하신 기사일세. 아리아나께서 성배기사로 서임하셨고.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

유독 꽉 막히고 융통성이 없는 라이온하트의 기사들이지만, 그런 그들이 무한한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사자심왕의 명령과 만신전의 선택이었다.

폐하께서 명하셨는데 항명이라도 할 셈인가?

신들께서 선택하셨는데, 한낱 미물이 어찌 그 심해처럼 깊은 뜻을 알겠는가?

악마를 개종한다거나 오크를 기사로 서임하는 괴상망측한 일만 아니라면 기사들은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아무래도 별동대 중에서도 이질적인 야피의 곁에는 그의 능력에 심취한 안토크 경이나 원래 일행이었던 베아트리체뿐이다.

-끼룩!

야피는 배터리가 소진된 드론들을 동체에 수납하고 2차 드론 정찰대를 날리며 주변 정보를 통합, 맵핑한 홀로그램 맵을 띄웠다.

"오오… 대체 무슨 요술인가?"

지형과 숲의 조망까지 세세하게 구분한 3D 맵에 감탄하며 다가오는 안토크 경. 야피가 자신만만함의 끼룩 소리를 내었다.

-야만적인 유기물들의 기술레벨로는 실현 불가능한 통합 정찰시스템의 편린. 본기의 우수성은 만신전 제일.

"하하, 과연과연. 만능이라는 거군. 역시 내 제자일세."

안토크의 발언에 짐짓 불만스러워 보이는 야피.

-명칭의 정정을 권고함. 귀하는 어디까지나 기술 제공자일 뿐. 본기에게 사제관계를 강요할 지적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음.

"으하하하하핫!"

제 키보다 두 배는 큰 야피의 기계다리를 호탕하게 웃으며 두드리는 안토크였다.

"친해지신 모양이군요?"

"그래 보이오?"

"야피 경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실 수 있는 분은 저희 쪽에서도 많지 않거든요."

야피는 대부분의 상대를 기계적으로 대하는 편이다. 그나마 하리 정도면 친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걸 친하다고 해야 할지, 일방적으로 농락한다고 해야 할지.

그런 면에서 야피가 안토크에게 꼼짝도 못 하는 모습은 베아트리체에게도 신선했다.

'합리의 화신인 야피 경이니 어지간히도 안토크 경이 가진 기술이 탐나는 모양이네요.'

철과 대장장이의 성배기사끼리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베아트리체는 일전에 게이트를 처음 열었을 때, 제레아 경과 한 번쯤 만나봤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레이디, 대강 눈치는 채셨겠소만."

"네, 이상할 정도로 얌전하군요."

야피의 수색뿐 아니라 경기병들을 통해 정찰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달의 파편이 떨어진 곳으로 향하기까지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놈들이 이 기회를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네."

"아마 파편 채굴을 시작할 때부터 습격해오겠죠."

문제는 얼마나 되는 악마가, 어느 정도급의 악마가 오냐는 것이다. 하지만 놈들도 이 별동대에 성배기사급이 세 명이나 있으리라곤 예상 못 하겠지.

어젯밤부터 하루를 내리달린 보람이 있는지 달의 파편이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저것이로군."

떨어진 달의 파편은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었으나 조금도 상하지 않은 채 형형한 빛을 내고 있었다.

달의 여신이 자신의 신성을 깎아내면서까지 허락한 파편이다. 그녀의 신관장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가면서까지 쏘아 떨어뜨린 것이었고.

"추출을 시작하지."

안토크는 곧장 거대한 달의 파편에 다가가 그것을 망치와 정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스피너 경. 와서 돕게."

-끼룩!

안토크와 스피너. 거기에 십수 명의 대장장이 신관들까지.

그들이 합세하여 달의 파편에서 별철을 분해하는 동안 베아트리체는 대규모의 방위결계를 조작하고 진지를 구축했다.

'내가 놈들이라면, 이 타이밍에 습격하겠죠.'

놈들은 달의 파편에서 별철을 추출하는 무방비한 상황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별철 수송의 성공여부는 놈들의 공격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아내느냐에 달렸다.

"진지를 구축하고 전투를 준비하세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취약한 타이밍입니다."

다행이라면 정보전에서는 이쪽이 압도적 우위라는 것이다.

100여명의 자유민 경기병들이 수시로 주변을 탐방하고 있었고, 야피가 띄운 드론들이 장거리 경계임무 중이다.

놈들이 아무리 은밀하게 달려와도 이쪽에서는 반드시 포착할 수 있다.

문제는 상대의 규모. 악마들의 숫자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지금도 데몬 게이트를 통해 무한히 증식되는 악종들의 파도 앞에서 신들의 왕국조차 무력했다.

하지만 이 압도적 불리 속에서 그들이 여전히 버틸 수 있는 이유.

'성배기사만 셋. 어중간한 숫자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대처할 수 있어요. 난점은 얼마나 많은 고위 악마들이 몰려오느냐.'

악마들의 군세는 썩어 넘칠 정도로 많다. 그렇다는 건 사교도들이나 악마 추종자들, 하급 악마들을 지휘할 고위 악마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끼룩! 적 움직임 포착. 홀로그램 맵 띄우겠음.

한창 달의 파편을 채굴하던 야피가 동시에 운용 중이던 드론으로 적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홀로그램에는 진지를 구축한 별동대의 측면을 노리는 검은 얼룩들이 보인다.

베아트리체가 능숙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확대하자 일전에도 보았던 괴물거미들과 기이할 정도로 거대한 어금니를 가진 늑대마물들이 확인됐다.

"적들도 기동병력을 꾸려 최대한 빠르게 온 것 같네요."

괴물거미와 늑대마물 위에는 어딘가 익숙한 고블린과 소형 악마들이 탑승해 있다. 그들의 전투력을 둘째 쳐도 군마의 서너 배는 되는 마물들은 그 덩치만으로 위협적이다.

"놈들이 접근합니다! 약 삼만!"

많다. 이쪽은 소규모로 최정예 기병만 보냈는데, 악마 쪽은 압도적인 숫자를 자랑하듯 기동병력만으로 저 정도다.

"사수 준비! 쏴라!"

자유민 경기병들이 화살을 들었다. 그들의 시위에서 화살이 뻗어 나가며 족히 500m를 넘는 거리에 있는 거미들을 쏘아 맞힌다.

"굉장하군요. 마궁(魔弓) 같은 건가요?"

베아트리체가 감탄하며 묻자 옆 자리의 한 기사가 호쾌하게 대답했다.

"헤토의 신관들께서 축성하고 제작한 장궁들입니다. 오크 놈들의 질긴 피부도 관통할 수 있지요."

"원거리 무기를 싫어하는 것으로 아는데, 의외로 군대를 운용할 땐 잘만 쓰시는군요."

그 말에 멋쩍은 듯 뺨을 긁적거리는 기사들. 하지만 그들도 할 말은 있었다.

"투창 들어!"

기사들은 저마다 말 옆에 장비된 창들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돌격용 마창과 달리 투척에 용이하게 깎은 투창이다.

"쏴라!!"

기사들이 창에 성력을 응집해 그것을 괴물거미들의 무리에 쏘았다. 그러자 끔찍한 파공성을 일으키며 쇄도하는 투창.

-끼이에에에에에!!

그 범상치 않은 기운을 읽은 건지, 아니면 자신의 최후를 감지한 건지 비명 같은 괴성을 내지르는 괴물거미. 다음 순간──

-퍽! 퍼퍼퍼퍼퍼퍽!!

기사들이 내던진 창들은 괴물 거미들을 아예 관통해버렸다.

"활보다 공격력이 약한 자는 기사가 되지 못합니다. 이것이 원거리 무기가 열등한 이유지요."

"그거. 폐하를 통해 아주 잘 아는 사실이랍니다."

싱긋 웃는 베아트리체. 그녀와 채굴을 작업을 진행하던 야피도 공세에 가담했다.

-드론 화력전개. 성탄(聖彈) 소사 개시.

야크트 스피너는 만신전에서 무구만 만든 게 아니다.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도구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야피는 자신이 사용할 홀리 그레네이트 탄환들을 잔뜩 만들었다.

-투다다다다다다!!

끔찍한 굉음을 쏟아내며 퍼부어지는 성탄들. 살아있는 성자의 육체에서 비롯된 탄환들은 모두 성력이 깃들어 악마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

백여기의 자유민 기사들이 쏘아대는 화살들보다 야피의 초고속기관포가 이뤄내는 성과가 더 대단할 정도.

안토크는 어디서 이런 괴물딱지가 왔는가 감탄했지만, 아직 진짜 '대화력'은 시전도 되지 않았다.

<주문강화>, <이중발동>, <위계상승>, <삼중최강화>──

"이것은?!"

익숙한 마법식. 하지만 그 시전자는 이계의 마술사 여왕이었다.

──원리해석. 리메이크 매직

"라만타의 벼락… 이었던가요?"

-콰쾅!!

마법진을 중심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벼락. 그것이 괴물거미들의 한복판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다. 이뿐만이 아니다.

──원리해석. <효과범위 확대화>, <효과범위 확산화>

마치 오케스트라 앞의 지휘자처럼 미려한 손가락이 춤추듯 뻗는다.

말 위에서도 그녀의 우아함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고, 떨어졌던 벼락은 마치 그녀의 의지를 대변하듯 사방으로 비산한다.

-콰! 콰쾅! 콰콰쾅! 콰아아앙!!

떨어진 자리에서 폭발적으로 범위를 넓혀가는 벼락. 그것은 마치 괴물거미들의 다리처럼 타고 연결하여 온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푸직!

-콰직!

그리고 벼락이 통과한 괴물거미들은 내부의 살덩이들이 순간적인 가열을 버티지 못하고 폭탄처럼 터져나갔다.

"대단하군… 제국 선제후조차 이런 거대마법은 불가할 걸세."

"이 세계의 마법사들 수준은 결코 나쁘지 않답니다. 성법에 대항하기 위해 파괴적인 방향으로 진화했거든요."

그래, 분명 선제후들을 비롯해 마법사들의 마법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선제후들의 마법을 한 번 본 것만으로 원리를 해석해 응용하는 이 마술사 여왕은 무엇이란 말인가?

안토크는 알 길이 없지만, 그녀가 제국 선제후의 피를 잇는 대마법사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했다.

-끼이이이…….

-키에에에엑!

만 단위의 괴물거미들 끔찍한 적의 화력에 주춤거린다. 접근도 하기 전에 벌서 천 단위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공포를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적의 예봉은 꺾었으니… 좀 더 망설여줬으면 하는군요."

베아트리체는 조금이라도 많은 시간을 벌기를 바랐다. 하지만 놈들은 접근을 시도할 것이고 백병전은 필수불가결이겠지.

'저게 적의 전부라면 막을 수 있겠지만… 당연히 전부가 아니겠지.'

베아트리체의 예상대로 야피의 탐지범위를 벗어난 먼 하늘. 그곳에서 달의 파편을 채굴하는 별동대를 지켜보는 눈동자들이 움직였다.

[병력을 축차투입해라. 놈들이 파편의 추출을 끝내기를 기다릴 것이다.]

창공의 구름 속에서 악마들이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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