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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3

132. 소꿉친구 – 진짜

구멍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대단한 분량의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 소꿉친구 엔딩 : 타락의 끝 ]

– (중략) …바르바토스에게 삼켜져 아신이 되었다. 그 직후, 레아는 성녀 메리엘과 이틀간 사투를 벌였고, 끝내 사망했다. –

– 데모스 마을에서 태어난 레브는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를 일찍 잃었지만, 훌륭한 사냥꾼인 아버지와 함께… (중략) …사도가 된 레브는 바르바토스에 의해 정신이 삼켜져 갔다. 그는 네비스의 모든 인간과 아버지를 죽인 뒤, 레아를 데리러 제롬 신성왕국으로 향했다. 수도교회에서 바르바토스가 레아에게 넘어가자 제정신을 되찾았으나, 저주를 받아 가시나무가 된 레브는 메리엘 성녀에 의해 불살라졌다. –

[ 약혼관계 시나리오 엔딩이 변경되었습니다. ]

[ 레나 아이나르 ]

[ 최종직업 : 아이나르 부족의 대전사, 준기사 ]

[ 결혼 상대 : 레오와 약혼 ]

[ 레오 덱스터 ]

[ 최종직업 : 준기사 ]

[ 결혼 상대 : 레나와 약혼 ]

[ 약혼관게 엔딩 : 몰살 ]

+ 에이브릴 성에서 태어난 레나 아이나르는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아이나르 부족의 대전사인 아버지와… (중략) …과 함께 ‘설각사록’이라는 마수를 잡는데 성공한 레나는 대전사가 되었다. 이후, 레오의 뜻에 따라 제롬 신성왕국으로 수행을 떠났다. 비도리닌 성에서 머무르며 브라이언 경에게 검술을 배우던 그녀는 베르게르 아가타 남작의 권유로 악신을 잡기 위한 토벌대에 합류했으나, 아나톨레아 평원에서 레브의 손에 살해당했다. +

+ 수도 바르나울에서 태어난 레오 덱스터는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으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다. 아스틴 왕국 제1 기사단의 기사였던 아버지와 함께… (중략) …평원에서 레브의 손에 살해당했다. +

[ 거지남매 시나리오 엔딩이 변경되었습니다. ]

[ 레나 드 예리엘 ]

[ 최종직업 : 구두공 ]

[ 결혼 상대 : 산티안 라우노 ]

[ 레오 드 예리엘 ]

[ 최종직업 : 무직 ]

[ 결혼 상대 : 미혼 ]

[ 거지남매 엔딩 : 반란 실패 ]

+ 루티나 왕성에서 태어난 레나는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레오와 넓은 들판에 숨겨졌고 눈을 떴을 때 들판은 온통 시체로 가득했다. 이후 레나는 레오를 따라… (중략) …레나는 레오의 권유로 카시아와 함께 콘라드 왕국을 향했다. 노야르 항구에서 그녀는 자신이 공주임을 알게 되었으나, 루티나에 도착해 반란을 준비하는 오빠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반란은 실패했다. 에릭 왕자를 잡기 위해 떠났던 레오 드 예리엘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레나는 그녀를 호위하던 기사, 제니아 재커리의 도움을 받아 벨리타 왕국으로 달아났다. 오르빌로 되돌아온 레나는 카시아를 찾아갔다. 제니아의 만류로 오빠의 복수를 포기한 레나 드 예리엘은 카시아와 함께 신발을 만들며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그러던 중, 산티안 라우노의 고백을 받아 결혼해 두 명의 아들을 낳았다. +

+ 루티나 왕성에서 태어난 레오는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레나와 넓은 들판에 숨겨졌고… (중략) …노야르 항구에서 바르트 경을 만난 레오 드 예리엘은 다섯 기사를 이끌고 콘라드 왕국의 수도, 루티나로 가 반란을 준비했다. 그런데 제2, 제3 기사단이 악신의 사도를 토벌하고자 베르크 추기경의 지휘하에 파병되고, 에릭 드 예리엘 왕자가 즉위식을 서두르자, 다급해진 레오는 간신히 끌어모은 제1 기사단의 기사들만으로 루티나 왕성 비밀통로를 통해 즉위식장을 습격했다. 잠시나마 왕성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에릭 왕자는 달아나버렸다. 왕실과 계약한 마법사, ‘리스타드 제건 도로프’가 불러모은 귀족의 기사들과 루티나 수비병들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분투하던 레오는 전투 중에 날아온 눈먼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

사진 세 개가 떠올랐다.

첫 번째 사진. 가시나무로 뒤덮여 하얗게 불타오르는 수도교회를 배경으로 레나, 아니, 레아가 반라의 차림으로 성녀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눈동자조차 사라진, 빨갛게 물든 눈을 험하게 치켜뜬 레아. 그녀의 벌거벗은 몸에는 붉은 나팔 문양이 빽빽이 새겨져 있었고, 또, 하얗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두 번째는 가시나무 숲에 버려진 레나 아이나르의 사진이었다. 심장이 꿰뚫려 죽은 그녀의 얼굴은 가시에 마구 찔리고 할퀴어져 엉망이었고, 사진 위쪽 구석에는 레오 덱스터가 쓰러져 있었다.

마지막은 동생, 레나 드 예리엘의 사진이었다.

원형의 나무 스툴(stool)에 걸터앉은 그녀는 다양한 종류의 가죽들을 탁자에 늘어놓고 무엇을 ‘갑피’로 쓸지 고민하고 있었다.

배경이 되는 곳은 작은 공방.

레나가 신발을 만드는 작업실로 보였는데, 조금 나이가 든 레나의 뒤에서 그녀의 두 아들이 투닥투닥 장난을 치고 있었다.

갈색의 곱슬머리를 가진 해맑은 어린아이들. 둘 다 레나에게서 물려받았는지 선명한 황금빛 눈동자가 똘똘하게 반짝였다.

그리고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살짝 열린 창밖으로 복잡하게 얽힌 저택들이 보였다.

세 개의 사진과 장문의 텍스트들이 서서히 위로 사라져갔다. 늘 그랬듯이 곧 다음 시나리오를 알리는 메시지가 떠오를 것이었는데…

민서는 아무런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가 무참히 살해한 민간인들의 애걸과 복걸, 필사적인 고함과 고통스러운 단말마만이 울려 퍼졌다.

눈, 코, 입,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제 손주만은 살려달라며 애원하던 노인이 죽은 손녀를 끌어안고 울었다. 독기에 찬 얼굴로 저주를 쏟아붓다가 “시끄럽다.” 면박을 받고 목이 날아갔다.

작은 상점에 틀어박혀 덜덜 떨던 어린 두 자매가 서로의 피를 닦아주며 울상을 지었다.

“아, 아저씨. 사, 살려주세요.” ─ 라고 말하길래 너그럽게 돌아섰다. 어차피 출혈은 멈추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상관이 없었다.

매혹에서 풀려난 하리에 가이단이 피칠갑한 채 저택으로 돌아온 그를 향해 따졌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죠? 그리고 당신이 팔라스를 죽였죠? 대답해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돌아와 혼란스러웠기에, 그는 가타부타 말없이 그녀의 가슴에 구멍을 뚫어주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민서의 정신이 조각조각 떨어졌다.

죄악감과 공포에 질려 백치처럼 머릿속이 탈색되었다. 이것들은 안락한 삶을 살던 현대인이 견딜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텍스트들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민서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엔딩 크레딧은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만약 민서의 정신이 온전했더라면 눈치챘겠지만, 다음 시나리오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는 상당히 늦게 나타났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 잠시간의 시간을 거친 뒤에야 느지막하게 떠올랐고, 넋이 나간 민서를 다음 시나리오로 밀어 넣었다.

[ 레나 키우기를 클리어하지 못하셨습니다. ]

[ 레오 당신은 바르바토스의 사도로서 성실히 일했습니다. 그 업적으로 {바르바토스의 팔찌}를 드립니다. ]

[ 다시 시작됩니다. ]

폭설이 몰아치는 산맥의 영상이 펼쳐졌다. 영상의 시점은 회색 암석이 삐죽빼죽 드러난 산을 넘어, 두터운 에이브릴 성벽도 넘어서더니 작은 도심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내 도착한 레나 아이나르와 레오 덱스터네 집. 그 뒤편의 공터에서 검을 휘두르던 레나가 홱 고개를 돌렸다.

“레오! 내 말 듣고 있어?”

– 땡그랑

“뭐, 뭐야? 왜 이래?”

레오 덱스터가 검을 떨궜다. 그는 성큼성큼 레나에게 접근하더니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 업적 : ‘14’번째 레오 – 플레이어가 레오에게 동화되는 속도가 미약하게 빨라집니다. ]

[ 14/22 ]

[ 진명을 알지 못합니다. ]

레오의 돌발행동에 레나는 얼굴이 화악 붉어져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그런데 바짝 붙은 고개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얼굴을 떼어보니 레오가 울고 있었다.

“레오? 왜 울어?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

레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끌어안은 손을 놓아주지는 않아서, 레나는 이걸 나도 같이 안아줘야 하는 건지, 놓으라고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당혹스러워하며 발로 땅을 슬금슬금 긁었고, 레오 덱스터는 마음속으로 거듭 사과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그가 한 짓은 아니었으나, 지난 시나리오에서 그녀와 파혼하겠다며 한 짓거리는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죄스러운 것이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레나를 미안함으로 감싸 안고 한참을 흐느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레나가 큼큼- 놓아달라며 몸을 비틀었다.

다소 마음이 가라앉은 레오는 군말 없이 그녀를 놓아주었고, 레나는 조금 민망하게 헛기침하더니 그를 집 뒤편에 놓인 의자로 이끌었다.

“야. 너 무슨 일 있었구나? 얘기해 봐. 내가 다 들어줄게. 뭐 마실 것 좀 가져올까?”

“…응.”

레오가 자리에 앉아 기다리길 잠시, 레나가 물통을 들고 돌아왔다.

물통에는 따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오드르’ 차가 가득 들어 있었다. 딱 이맘때쯤, 레나네 어머니가 왕창 담근 것이었는데, 당연하게도 기억은 나지 않는다.

“자, 말해봐.”

레나가 자리에 턱 걸터앉았다. 차를 쪼르륵, 따라주고선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게, 딴에는 상담을 해주려는 것 같았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레오는 잠시 고심하다 입을 열었다.

“사실 어젯밤에 정말 안 좋은 꿈을 꾸었어……”

그런데 막상 할 이야기가 없어서 그는 말끝을 흐렸다.

봄이 오면 전쟁이 터지는데, 한번은 너 혼자 전쟁터에 나가서 죽었고, 다음 한번은 같이 참전했다가 너는 팔이 잘리고, 나는 엄지손가락을 잃어서 돌아왔고, 또 한번은 우리 둘 다 소드마스터한테 죽었다는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너랑 파혼하려 했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레오가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자 그의 말이 끝난 줄 알고 레나가 끼어들었다.

“그랬구나. 으음… 아! 나, 나도 그런 적 있어. 그러니까, 그게… 으으음…”

한데 그녀는 답변이 궁색한지 더듬거리다 쭐레쭐레 딴청을 피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레오는 심각한 와중에도 피식 웃어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얘가 뭐, 그럼 그렇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레나는 악몽 따위는 꿔본 적도 없을 터였다. 자겠다고 마음먹으면 베개에 머리를 대는 즉시 잠들어버리고, 다소 단순한 그녀는 악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적어도 여태까지의 ‘경험’상 레나는 항상 꿀잠을 자고 개운하게 일어났다.

“크흠. 꾸, 꿈이면 뭐 걱정할 것도 없네. 뭘 그런 걸로 울고 그래. 난 또 무슨 큰일이 난 줄 알고… 어? 잠깐, 그게 뭐야?”

머쓱해져서 눈을 이리저리 돌리던 레나가 (상담사 역할은 포기했는지) 뭔가를 손가락질하며 질문했다.

순간 내 귀속 아이템(검)을 두고 묻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레나는 내 손목에 걸린 팔찌를 가리켰다.

그런데 이건 나도 모르는… 아니, 이제는 아는 물건이었다.

‘시나리오 보상으로 들어온 아이템인가 보군.’

가죽으로 만들어진 소박한 팔찌다.

이 팔찌에는 검붉은 구슬 세 개가 달려 있었다. 팔찌를 인식하는 순간 그 용도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으로 보아, 지난 소꿉친구 시나리오 보상임이 틀림없었다.

물론, 관심은 없다.

레나가 불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로 상담 따위는 잊어버렸나 보다.

“야! 너 이거 어제 상단주 아저씨한테 산 거 맞지? 치사하게 혼자 사다니! 못됐어!”

“상단주?”

“그래! 우씨. 돈 없다더니… 그런데 내 껀 없어?”

“…미안해. 어제 돈이 좀 부족해서 내 것만 샀네. 이따가 같이 갈래? 하나 사줄게.”

레오는 기어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장 오늘 아침의 기억도 없다.

그런데, 상단주라니? 그의 기억이 맞다면 지금까지의 회차 중, 이곳 에이브릴 성에 상단이 온 적은 없었을 것이다.

이건 틀릴 리가 없는 기억이었는데, 왜냐하면 시나리오 시작 시 “레오! 내 말 듣고 있어?”라는 레나의 질문에 잘 답변하거든 그녀는 재잘재잘 떠들면서 “상인은 언제쯤 올까? 사고 싶은 게 있는데.”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변한 게 있는 모양이다.

허나 레오는 이것에도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늘 가보면 알게 될 일인 데다가…

“정말? 흐음~ 꿍쳐둔 돈이 있었나 보네. 헤헤, 오늘 싹 털어줘야겠다. 각오해!”

레나는 싱글벙글 웃었다. “지금 가자! 옷 갈아입고 올 테니까 너도 준비해!”라고 외치곤 자기네 집으로 들어갔다.

레오는 잠시 그대로 앉아있었다. 비로소 혼자가 된 그는 어느새 식어버린 오드르 차를 훌쩍, 들이켰다. 레나가 사라지자마자 끓어오르는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남의 인생을 아주 뭣같이도 휘두르는군.”

그는 민서가 아니었다.

민서가 충격에 휩싸여 넋을 잃어버리니, 동기화될 것도 없이 본래의 성격이 모조리 튀어나왔다.

레나 아이나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기애가 넘치며, ‘난 이곳 에이브릴 성에서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 작심하는 그는…

‘진짜 레오’였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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