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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4

134화 성배기사 안토크(1)

-키이에에에에에엑!

-막아라…!

달의 파편을 앞에 두고 격렬한 전투가 이어졌다.

말에서 하마해 철벽의 방진을 세운 기사들 뒤로 자유민 궁기병들이 활을 쏘아대고, 거대한 괴물거미와 늑대들이 사납게 달려든다.

“우어어어어어어…!”

데몬트롤이 격렬한 포효를 터뜨리며 제 몸통만 한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었다. 방진의 기사가 방패를 번쩍 들었으나 트롤의 기세가 워낙 사납다.

“와라, 이 못생긴 짐승아…!”

왕국기사는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며 사나운 목소리를 흘렸다. 트롤도 제 몸통보다 작은 기사를 날려버릴 기세로 달려들던 그때──

“우어어어어어──???

퍽! 하고 지나가는 무언가. 순간, 트롤의 머리가 터진 풍선처럼 사라졌다. 찢어진 목덜미에는 고열로 인해 타들어 간 고기냄새가 그득하다.

-적 위험개체 순시 저격 중. 열두 번째 타겟 조정.

야크트 스피너. 초전자가속을 하는 레일건 탄자를 쏘아대는 철혈의 전쟁기계는 이 전장 전체를 조율하는 중심이다.

“잘 하셨어요, 야피 경. 잔챙이는 제가 맡지요.”

야피가 적군의 아픈 지점을 찌르는 저격수라면 베아트리체는 최후방의 포격수다.

대마도 <멸리사안(滅理死眼)>

그녀의 특기인 대마법 클래스의 마도가 연속하여 발동한다. 마술사 여왕의 마술은 500 대 수만이라는 절망적인 숫적 차이를 뒤집는 절대화력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키에에에에에에에??”

-철푸덕!

방진을 향해 돌진하던 괴물거미가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죽은 것인가 찔러보면 혈관이 맥동하는 것이 살아는 있었다.

-키, 키이이이──

초대형 거미의 표정을 알 길은 없으나 그것이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명확하다. 그 원흉은 전장에 퍼진 보라빛 안개.

꿈과 죽음의 신관장 베아트리체가 전장 전체에 퍼부은 연무는 악마들을 끝없는 악몽의 구렁텅이로 끌고 간다.

-왜 죽음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음?

야피는 베아트리체가 저 연무를 죽음의 안개로 바꿀 수 있음을 알았다. 이왕 하려면 악몽이 아니라 죽음이 더 나을 터인데.

“때론 죽은 아군보다 ‘미쳐버린 아군’이 더 뼈아플 때가 있죠.”

-끼룩?

베아트리체의 손가락이 허공을 튕겼다. 딱! 하고 맑은 소리가 퍼져간다. 동시에, 꿈에 빠졌던 악마들이 깨어났다.

-키이이…!

-키야아아아악!

꿈에서 깨어난 악마들의 용태가 기이했다. 그들은 아직도 꿈에 빠진 것처럼 침을 질질 흘리더니 눈앞의 모든 것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키이엑?!

악마들 사이사이에서 내분이 벌어진다. 베아트리체의 악몽에 빠져들었던 악마들이 가장 가까운 동료 악마들을 덮친 것이다.

“반쯤 깨어있는 상태로 유지했지요. 놈들은 꿈속에서 죽지 않기 위해 악몽 속 괴물들을 죽이려 들고 있답니다.”

그리고 그 악몽의 괴물은 옆에 있는 동료들이다, 라는 것이다.

베아트리체가 불특정 다수를 악몽에 빠뜨리고 전장에 혼란을 가중시킨다면, 환몽에 저항할 수 있는 고위 악마들은 야크트 스피너가 홀리 그레네이드 레일건으로 저격한다.

과연, 성배기사라 할 수 있는 전장 지배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다 됐네!”

안토크와 신관들이 세 시간에 달하는 추출작업을 끝내기까지.

“서둘러 출발하세! 놈들도 곧 눈치챌 것이야!”

안토크의 지시에 별동대를 향한 나팔을 불자 기수들의 행동은 재빨랐다.

“후방의 말에 탑승해라! 신속히 이곳을 빠져나간다!”

자유민 기수들이 재빨리 제 말을 타고 마지막까지 방진을 유지하던 기사들이 성법을 흩뿌리곤 제 말을 찾아갔다.

전장의 혼란 속에서 말을 찾지 못하는 기수는 없었다. 라이온하트의 현명한 군마들은 전우의 휘파람 소리를 구분하며 재빠르게 달려온 것이다.

후퇴를 알리는 나팔소리가 있고서 채 삼십 초도 되지 않아 퇴각준비를 마친 별동대.

“전속력으로 빠져나간다!!”

안토크와 야피 그리고 베아트리체가 선두로 달려나갔다. 이를 따르는 별동대의 기마들.

-추격 저지. 고화력 일시 집중.

야피의 등딱지 단거리 미사일 사일로가 열리며 콰콰콰쾅! 하고 공중으로 날아들었다.

야피가 직접 수제작을 하며 축복을 내린 로켓들은 허공을 빙글빙글 돌더니 정확히 악마들을 향해 떨어져 연쇄폭발을 일으킨다.

대마도 <번광천벌(燔光天罰)>

-콰르릉! 콰콰아앙!

거기에 베아트리체의 고화력 천둥까지 쏟아지자 정신을 못 차리는 악마들.

“달려라!”

자욱한 먼지와 자연재해 속에서 별동대가 주파한다. 그들의 군마는 현대지구의 자동차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속력을 냈다.

“곧 쫓아오겠지만,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진 못하겠군.”

“서두르지요. 놈들도 바보는 아니니 곧 따라올──”

───────

그것은 예고 없이 하늘에서 찾아왔다. 습격 전에 그 존재를 눈치챈 건 상시 레이더를 돌리는 야크트 스피너와 뛰어난 직감을 가진 기사들 정도.

“”지옥불 앞에 녹아내려라.””

일제히 쏟아지는 화염구들. 녹색으로 물든 그 지옥불들은 순식간에 별동대를 향해 떨어졌다.

“……!”

베아트리체의 손이 하늘을 향해 뻗는다. 떨어져 내리는 다섯 개의 지옥화염들에 맞서 대마도가 펼쳐졌다.

<최강 원소 무효화(SUPER ELEMENTAL CANCEL)>

그녀의 마력이 지옥마력에 개입한다. 세계 최강의 마술사 여왕은 순식간에 대악마들이 펼친 마법 절반을 무위로 되돌렸다.

그리고 그걸 다시 말하면.

절반은 별동대를 향해 떨어졌다는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별동대의 사방을 후드렸다.

폭발의 굉음 속 먼지가 걷히며 새까만 시체들이 즐비하다.

“크으… 야피 경. 피해보고를…!”

-성법 전개가 늦은 기사 팔십팔기 즉사. 자유민 경기병 궤멸. 부상자 수 확인불가. 적 대악마 개체 다섯 기. 데이터베이스 검색.

야피는 그들을 안다. 머나먼 과거, 극도로 발전된 야크트 스피너의 세계를 침공했던, 그리고 그 어떤 악마들보다도 크나큰 피해를 입혔던 무질서한 탐구의 제안자들.

지혜의 보옥이라 불리는 질병 덩어리를 온 세계에 퍼뜨린 사악한 지식귀들.

짐승의 머리와, 새의 날개,

-지혜와 탐구의 대악마. 캐스터 오브 프라즈나.

지혜를 영창하는 자들. 지혜의 악마 중에서도 최고위의 대악마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그들을 내려다봤고, 곧 끔찍한 괴성을 질렀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것은 살아있는 것들을 파멸로 이끄는 마(魔)의 음성이다.

성배기사가 그 존재만으로 생명체들을 가호하듯 대악마의 음성은 그것만으로 인간을 미치게 한다.

“크, 크아아아악…!”

“귀, 귀가…!”

왕국기사들조차도 대악마 다섯 기가 쏟아내는 마성을 견뎌내지 못했다. 성배기사가 무려 셋임에도 그들의 가호보다 대악마들의 저주가 더 강력했다.

[하찮은 미물들아.]

[필멸의 신분으로 불멸에 맞서느냐.]

[어리석은 것들. 너희의 우매함이 너희를 파멸로 인도할 것임을 어찌 모르는가.]

캐스터 오브 프라즈나들이 강림하듯 지상으로 내려온다. 이에 야피가 응사하고 베아트리체가 마술을 퍼부었다.

허나, 그들은 지혜의 악마 최고위의 대악마들이다.

야피의 응사를 막아내고, 안토크의 투창을 공간에 묶으며 베아트리체의 마술을 무위로 돌린다.

거기에는 세 마리의 캐스터 오브 프라즈나들로 충분했다. 나머지 둘이 별동대들을 향해 저주의 마성을 흘렸고, 고통에 귀를 막는 왕국기사들을 휩쓸었다.

“크윽…! 달려라!”

“정신들 차려라! 말의 귀를 막고 달려야 한다! ‘철의 의지’가 너희들과 함께한다!!”

안토크의 우렁찬 목소리에는 성력마저 담겨 있었다. 그는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 않는 불굴의 축복을 내렸고, 기사들은 그 명령에 답했다.

“말들을 우선해라!”

“참아라, 전우여! 함께 빠져나가야 한다!”

기사들은 말들의 고막을 귀마개로 가리기도 하고, 정 안 되면 고막을 두드려 이명으로 마성을 덮었다.

말들은 고통과 패닉 속에서 익숙한 기사들의 손길을 받고 점차 정신을 차려간다.

“가자!”

질주가 재개되었다. 대악마의 마성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와 무한한 신뢰가 그들을 움직였다.

하지만 대악마들의 추격은 계속된다.

“위를 조심하게!”

“크아아악! 아리아나시여!!”

왕국기사들이 캐스터 오브 프라즈나들의 날카로운 발톱에 붙잡히며 공중으로 날아들었다.

곧 하늘에서 떨어지는 기사들. 아무런 방비 없이 맨몸으로 떨어진 기사들이 지상에 그대로 처박힌다.

“야피 경!”

-공중제압 개시.

막강한 원거리 화력을 가진 베아트리체와 야크트 스피너가 응사한다. 하지만 다섯 대악마들은 그 오랜 지혜만큼이나 자기보신에 철저했다.

[성가시군.]

[저 계집, 실로 마법의 깊이가 깊구나.]

[허나, 대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두 사람 덕에 방어에도 신경을 써야 했지만, 대악마들은 마법과 동시에 날개의 기동력으로 수직하강하며 별동대를 급습했다.

“견뎌라! 연합군에만 도착하면 지원이 올 것이──”

파앙, 하고 그것은 혼탁한 전장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울렸다.

베아트리체의 방어마법이 분명히 존재했음에도, 야피의 모든 연산이 주변을 명명백백히 탐지하고 있었음에도.

성배기사의 예리한 감각으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대장장이의 신이 축복한 별철의 육체로도 막아내지 못한.

[너희들은. 도망치지 못한다.]

캐스터 오브 프라즈나들의 등 뒤로, 태양을 등진 악마는 가장 성가신 강철의 성배기사를 꿰뚫는다.

“야피 경!”

등딱지를 관통당한 야피가 무너져 내린다. 이 자리의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신의 금속조차 악마의 마법을 막아내지 못했다.

-데이터─베이스. 파멸개체 확인──

야피의 카메라 아이들이 집중된다. 극도로 발전된 과학기술들을 우습다는 듯이 파훼하고 세상을 파멸로 인도한 최악의 악마 군주.

-지혜와 탐구의 악마군주──

카라카엘.

세계의 종말이다.

* * * *

박살난 야크트 스피너의 동체. 베아트리체는 아연실색했다.

야피의 저 동체는 통짜 별철로 구성된 고강도 육체다. 모의전에서 저 육체를 파괴하는 데는 자신조차 애를 먹었는데…….

‘강하기 이전에 마법사로서의 격이 다르다.’

마술사 여왕이었던 자신이 마법의 전조조차 느끼지 못했다. 야크트 스피너를 꿰뚫을 만한 대마법을 숨 쉬듯 쏘아낸 것이다.

“군주…….”

틀림없다. 저 뱀머리의 악마야말로 악마들의 군주, 모든 악의 정점이라는 악마 중의 악마.

-키에에에에에!

별동대가 발이 멈춘 사이 사방에서 몰려드는 악마들. 군주의 등장과 함께 더욱 보충된 건지 그 숫자는 배로 늘어나 있다.

“아아…….”

“끝인가…….”

대악마의 출현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기사들이 절망적인 악의 창궐에 검을 떨어뜨렸다.

대악마의 마성. 악마군주의 끝없는 악성.

필멸의 신분으로는 맞설 수 없는 아득히 깊은 악의.

끝이다. 병사와 기사들뿐 아니라 베아트리체마저 그리 생각했다.

“야피 경… 살아계시나요?”

-끼룩…….

부서진 동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야피. 그 본체는 천만다행으로 마법의 직격타를 받지 않았다.

“제가 알기로 경의 세계는… 지혜와 탐구의 악마들이 침공한 것으로 아는데요. 이 상황… 도주에 성공할 얼마나 된다고 보죠?”

-제로. 여왕의 도약마술을 사용해도, 한 명도 도망칠 수 없음.

“하하…….”

베아트리체는 이 기계가 확률론에 얼마나 엄격한지 안다.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연산력은 현대 지구문명조차 압도한다는 것도.

그런 강철의 기계가 만에 하나라도 승리의 가능성이 없다 단정 지었다. 그 결론은 결코 과장이 아니리라.

“흠, 도주할 가능성조차 제로라는 건가.”

안토크가 앞으로 나섰다. 그가 물었다.

“베아트리체 양. 그 도약 마술이란 게 무엇이지?”

“게이트 마술을 응용한… 으음, 정확히는 공간을 열어 만신전으로 도약하는 거랍니다. 하지만 지금은 쓸 수 없어요.”

“어째서지?”

베아트리체는 처음 이 게이트에 진입했을 때, 무언가에 의해 게이트가 강제로 닫혔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게이트를 닫은 건 저 악마군주의 광오한 마법이라는 걸 알았고.

즉, 지혜의 군주가 존재하는 한 공간도약은 불가하다.

“그렇군. 다시 말해. 저 빌어먹을 놈만 없으면 된다는 것 아닌가?”

-???

“???”

그 무슨 망발인가? 야피는 자신조차 승리의 연산을 포기한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서는 유기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안토크는 망치를 들었다. 그가 무구를 연마할 때 사용하는 짧은 손망치다.

안토크가 망치를 번쩍 든다. 모든 기사와 자유민 병사들이 이를 응시한다.

“자랑스러운 나의 형제자매들이여! 지금껏 오랜 시간, 신들과 왕국에 대한 봉사에 감사한다!”

안토크는 자신을 바라보는 왕국의 백성들을 보았다. 또한 그들이 한 맹세를 깨우쳤다.

“그대들은 목숨 바쳐 왕국을 수호하리라 맹세했을 것이다! 오늘! 지금 이 순간! 그 맹세를 지켜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죽어라.

단지 그뿐인 명령.

그 불합리한 명령을 앞에 두고──

“”명 받잡겠습니다!!””

불합리한 선택을 한다.

“틀어막아라!”

“안토크 경만큼은 돌려보내야 한다!”

가장 불합리하며,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불가함. 유기체. 저들 모두를 버림패로 던져도 성공확률은 0%.

“그럴지도. 자넨 똑똑하니까 틀린 말은 안 하겠지.”

그 순간, 그의 육신에서 넘치는 성력이 퍼부어졌다.

“허나, 세상엔 확률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법이야.”

순간, 갑자기.

안토크의 의식은 세상과 격리된다.

[그만두어라, 나의 대장장이야. 네 삶을 이곳에서 버릴 셈이냐.]

그와 언제나 함께해주었던 신성의 목소리. 가장 낮은 곳에서 함께해주며 세상에 철을 선물한 신성은 제 기사를 만류했다.

“누가 왔더라도 그리했을 겁니다.”

허나, 신조차 이 우직한 기사의 결심을 만류할 순 없었다.

신들이 인간들을 사랑하는 이유. 라이온하트를 수호하는 이유.

신념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존재들. 그 생명의 불꽃이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나 철과 대장장이의 성배기사 안토크! 광산의 수호자이자 왕국의 으뜸가는 대장장이!”

미래를 지향하던 망치가 멈춘다.

이제 그것은 오로지 현재에만 존재한다.

더이상 대장장이에게 미래는 없다. 그렇다 해도.

“지금 이곳에 철의 맹세를.”

망치질이 지향하는 것은 눈부신 미래이다.

────■■■■■■■■■■■■■■

변화는 극적이었다.

악마들의 악의로 가득 찬 황야는 순식간에 신성한 성지가 되어 강철의 대지로 변모한.

존재만으로 풍경을 고쳐 쓰며, 세상의 삿된 악의를 비난하듯이 그의 움직임 모두가 검은 얼룩을 지우려 뻗어 나간다.

[……설마.]

그 거대한 신성의 의지 앞에 악마군주조차 신음을 흘렸다.

끓어오르는 강철의 신성.

신을 받아들인 인간은 결코 인간이 닿을 수 없는 무한에 이른다.

신성강림 《철의 대장장이》

전신에서 빛을 뿜어내는 존재가 창공을 올려다봤다.

“먼저 떨어져라.”

다음 순간, 악마군주와 대악마들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Chapter 134

Chapter 134

134화 성배기사 안토크(1)

-키이에에에에에엑!

-막아라…!

달의 파편을 앞에 두고 격렬한 전투가 이어졌다.

말에서 하마해 철벽의 방진을 세운 기사들 뒤로 자유민 궁기병들이 활을 쏘아대고, 거대한 괴물거미와 늑대들이 사납게 달려든다.

"우어어어어어어…!"

데몬트롤이 격렬한 포효를 터뜨리며 제 몸통만 한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었다. 방진의 기사가 방패를 번쩍 들었으나 트롤의 기세가 워낙 사납다.

"와라, 이 못생긴 짐승아…!"

왕국기사는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며 사나운 목소리를 흘렸다. 트롤도 제 몸통보다 작은 기사를 날려버릴 기세로 달려들던 그때──

"우어어어어어──???

퍽! 하고 지나가는 무언가. 순간, 트롤의 머리가 터진 풍선처럼 사라졌다. 찢어진 목덜미에는 고열로 인해 타들어 간 고기냄새가 그득하다.

-적 위험개체 순시 저격 중. 열두 번째 타겟 조정.

야크트 스피너. 초전자가속을 하는 레일건 탄자를 쏘아대는 철혈의 전쟁기계는 이 전장 전체를 조율하는 중심이다.

"잘 하셨어요, 야피 경. 잔챙이는 제가 맡지요."

야피가 적군의 아픈 지점을 찌르는 저격수라면 베아트리체는 최후방의 포격수다.

대마도 <멸리사안(滅理死眼)>

그녀의 특기인 대마법 클래스의 마도가 연속하여 발동한다. 마술사 여왕의 마술은 500 대 수만이라는 절망적인 숫적 차이를 뒤집는 절대화력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키에에에에에에에??"

-철푸덕!

방진을 향해 돌진하던 괴물거미가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죽은 것인가 찔러보면 혈관이 맥동하는 것이 살아는 있었다.

-키, 키이이이──

초대형 거미의 표정을 알 길은 없으나 그것이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명확하다. 그 원흉은 전장에 퍼진 보라빛 안개.

꿈과 죽음의 신관장 베아트리체가 전장 전체에 퍼부은 연무는 악마들을 끝없는 악몽의 구렁텅이로 끌고 간다.

-왜 죽음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음?

야피는 베아트리체가 저 연무를 죽음의 안개로 바꿀 수 있음을 알았다. 이왕 하려면 악몽이 아니라 죽음이 더 나을 터인데.

"때론 죽은 아군보다 '미쳐버린 아군'이 더 뼈아플 때가 있죠."

-끼룩?

베아트리체의 손가락이 허공을 튕겼다. 딱! 하고 맑은 소리가 퍼져간다. 동시에, 꿈에 빠졌던 악마들이 깨어났다.

-키이이…!

-키야아아아악!

꿈에서 깨어난 악마들의 용태가 기이했다. 그들은 아직도 꿈에 빠진 것처럼 침을 질질 흘리더니 눈앞의 모든 것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키이엑?!

악마들 사이사이에서 내분이 벌어진다. 베아트리체의 악몽에 빠져들었던 악마들이 가장 가까운 동료 악마들을 덮친 것이다.

"반쯤 깨어있는 상태로 유지했지요. 놈들은 꿈속에서 죽지 않기 위해 악몽 속 괴물들을 죽이려 들고 있답니다."

그리고 그 악몽의 괴물은 옆에 있는 동료들이다, 라는 것이다.

베아트리체가 불특정 다수를 악몽에 빠뜨리고 전장에 혼란을 가중시킨다면, 환몽에 저항할 수 있는 고위 악마들은 야크트 스피너가 홀리 그레네이드 레일건으로 저격한다.

과연, 성배기사라 할 수 있는 전장 지배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다 됐네!"

안토크와 신관들이 세 시간에 달하는 추출작업을 끝내기까지.

"서둘러 출발하세! 놈들도 곧 눈치챌 것이야!"

안토크의 지시에 별동대를 향한 나팔을 불자 기수들의 행동은 재빨랐다.

"후방의 말에 탑승해라! 신속히 이곳을 빠져나간다!"

자유민 기수들이 재빨리 제 말을 타고 마지막까지 방진을 유지하던 기사들이 성법을 흩뿌리곤 제 말을 찾아갔다.

전장의 혼란 속에서 말을 찾지 못하는 기수는 없었다. 라이온하트의 현명한 군마들은 전우의 휘파람 소리를 구분하며 재빠르게 달려온 것이다.

후퇴를 알리는 나팔소리가 있고서 채 삼십 초도 되지 않아 퇴각준비를 마친 별동대.

"전속력으로 빠져나간다!!"

안토크와 야피 그리고 베아트리체가 선두로 달려나갔다. 이를 따르는 별동대의 기마들.

-추격 저지. 고화력 일시 집중.

야피의 등딱지 단거리 미사일 사일로가 열리며 콰콰콰쾅! 하고 공중으로 날아들었다.

야피가 직접 수제작을 하며 축복을 내린 로켓들은 허공을 빙글빙글 돌더니 정확히 악마들을 향해 떨어져 연쇄폭발을 일으킨다.

대마도 <번광천벌(燔光天罰)>

-콰르릉! 콰콰아앙!

거기에 베아트리체의 고화력 천둥까지 쏟아지자 정신을 못 차리는 악마들.

"달려라!"

자욱한 먼지와 자연재해 속에서 별동대가 주파한다. 그들의 군마는 현대지구의 자동차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속력을 냈다.

"곧 쫓아오겠지만,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진 못하겠군."

"서두르지요. 놈들도 바보는 아니니 곧 따라올──"

───────

그것은 예고 없이 하늘에서 찾아왔다. 습격 전에 그 존재를 눈치챈 건 상시 레이더를 돌리는 야크트 스피너와 뛰어난 직감을 가진 기사들 정도.

""지옥불 앞에 녹아내려라.""

일제히 쏟아지는 화염구들. 녹색으로 물든 그 지옥불들은 순식간에 별동대를 향해 떨어졌다.

"……!"

베아트리체의 손이 하늘을 향해 뻗는다. 떨어져 내리는 다섯 개의 지옥화염들에 맞서 대마도가 펼쳐졌다.

<최강 원소 무효화(SUPER ELEMENTAL CANCEL)>

그녀의 마력이 지옥마력에 개입한다. 세계 최강의 마술사 여왕은 순식간에 대악마들이 펼친 마법 절반을 무위로 되돌렸다.

그리고 그걸 다시 말하면.

절반은 별동대를 향해 떨어졌다는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별동대의 사방을 후드렸다.

폭발의 굉음 속 먼지가 걷히며 새까만 시체들이 즐비하다.

"크으… 야피 경. 피해보고를…!"

-성법 전개가 늦은 기사 팔십팔기 즉사. 자유민 경기병 궤멸. 부상자 수 확인불가. 적 대악마 개체 다섯 기. 데이터베이스 검색.

야피는 그들을 안다. 머나먼 과거, 극도로 발전된 야크트 스피너의 세계를 침공했던, 그리고 그 어떤 악마들보다도 크나큰 피해를 입혔던 무질서한 탐구의 제안자들.

지혜의 보옥이라 불리는 질병 덩어리를 온 세계에 퍼뜨린 사악한 지식귀들.

짐승의 머리와, 새의 날개,

-지혜와 탐구의 대악마. 캐스터 오브 프라즈나.

지혜를 영창하는 자들. 지혜의 악마 중에서도 최고위의 대악마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그들을 내려다봤고, 곧 끔찍한 괴성을 질렀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것은 살아있는 것들을 파멸로 이끄는 마(魔)의 음성이다.

성배기사가 그 존재만으로 생명체들을 가호하듯 대악마의 음성은 그것만으로 인간을 미치게 한다.

"크, 크아아아악…!"

"귀, 귀가…!"

왕국기사들조차도 대악마 다섯 기가 쏟아내는 마성을 견뎌내지 못했다. 성배기사가 무려 셋임에도 그들의 가호보다 대악마들의 저주가 더 강력했다.

[하찮은 미물들아.]

[필멸의 신분으로 불멸에 맞서느냐.]

[어리석은 것들. 너희의 우매함이 너희를 파멸로 인도할 것임을 어찌 모르는가.]

캐스터 오브 프라즈나들이 강림하듯 지상으로 내려온다. 이에 야피가 응사하고 베아트리체가 마술을 퍼부었다.

허나, 그들은 지혜의 악마 최고위의 대악마들이다.

야피의 응사를 막아내고, 안토크의 투창을 공간에 묶으며 베아트리체의 마술을 무위로 돌린다.

거기에는 세 마리의 캐스터 오브 프라즈나들로 충분했다. 나머지 둘이 별동대들을 향해 저주의 마성을 흘렸고, 고통에 귀를 막는 왕국기사들을 휩쓸었다.

"크윽…! 달려라!"

"정신들 차려라! 말의 귀를 막고 달려야 한다! '철의 의지'가 너희들과 함께한다!!"

안토크의 우렁찬 목소리에는 성력마저 담겨 있었다. 그는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 않는 불굴의 축복을 내렸고, 기사들은 그 명령에 답했다.

"말들을 우선해라!"

"참아라, 전우여! 함께 빠져나가야 한다!"

기사들은 말들의 고막을 귀마개로 가리기도 하고, 정 안 되면 고막을 두드려 이명으로 마성을 덮었다.

말들은 고통과 패닉 속에서 익숙한 기사들의 손길을 받고 점차 정신을 차려간다.

"가자!"

질주가 재개되었다. 대악마의 마성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와 무한한 신뢰가 그들을 움직였다.

하지만 대악마들의 추격은 계속된다.

"위를 조심하게!"

"크아아악! 아리아나시여!!"

왕국기사들이 캐스터 오브 프라즈나들의 날카로운 발톱에 붙잡히며 공중으로 날아들었다.

곧 하늘에서 떨어지는 기사들. 아무런 방비 없이 맨몸으로 떨어진 기사들이 지상에 그대로 처박힌다.

"야피 경!"

-공중제압 개시.

막강한 원거리 화력을 가진 베아트리체와 야크트 스피너가 응사한다. 하지만 다섯 대악마들은 그 오랜 지혜만큼이나 자기보신에 철저했다.

[성가시군.]

[저 계집, 실로 마법의 깊이가 깊구나.]

[허나, 대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두 사람 덕에 방어에도 신경을 써야 했지만, 대악마들은 마법과 동시에 날개의 기동력으로 수직하강하며 별동대를 급습했다.

"견뎌라! 연합군에만 도착하면 지원이 올 것이──"

파앙, 하고 그것은 혼탁한 전장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울렸다.

베아트리체의 방어마법이 분명히 존재했음에도, 야피의 모든 연산이 주변을 명명백백히 탐지하고 있었음에도.

성배기사의 예리한 감각으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대장장이의 신이 축복한 별철의 육체로도 막아내지 못한.

[너희들은. 도망치지 못한다.]

캐스터 오브 프라즈나들의 등 뒤로, 태양을 등진 악마는 가장 성가신 강철의 성배기사를 꿰뚫는다.

"야피 경!"

등딱지를 관통당한 야피가 무너져 내린다. 이 자리의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신의 금속조차 악마의 마법을 막아내지 못했다.

-데이터─베이스. 파멸개체 확인──

야피의 카메라 아이들이 집중된다. 극도로 발전된 과학기술들을 우습다는 듯이 파훼하고 세상을 파멸로 인도한 최악의 악마 군주.

-지혜와 탐구의 악마군주──

카라카엘.

세계의 종말이다.

* * * *

박살난 야크트 스피너의 동체. 베아트리체는 아연실색했다.

야피의 저 동체는 통짜 별철로 구성된 고강도 육체다. 모의전에서 저 육체를 파괴하는 데는 자신조차 애를 먹었는데…….

'강하기 이전에 마법사로서의 격이 다르다.'

마술사 여왕이었던 자신이 마법의 전조조차 느끼지 못했다. 야크트 스피너를 꿰뚫을 만한 대마법을 숨 쉬듯 쏘아낸 것이다.

"군주……."

틀림없다. 저 뱀머리의 악마야말로 악마들의 군주, 모든 악의 정점이라는 악마 중의 악마.

-키에에에에에!

별동대가 발이 멈춘 사이 사방에서 몰려드는 악마들. 군주의 등장과 함께 더욱 보충된 건지 그 숫자는 배로 늘어나 있다.

"아아……."

"끝인가……."

대악마의 출현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기사들이 절망적인 악의 창궐에 검을 떨어뜨렸다.

대악마의 마성. 악마군주의 끝없는 악성.

필멸의 신분으로는 맞설 수 없는 아득히 깊은 악의.

끝이다. 병사와 기사들뿐 아니라 베아트리체마저 그리 생각했다.

"야피 경… 살아계시나요?"

-끼룩…….

부서진 동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야피. 그 본체는 천만다행으로 마법의 직격타를 받지 않았다.

"제가 알기로 경의 세계는… 지혜와 탐구의 악마들이 침공한 것으로 아는데요. 이 상황… 도주에 성공할 얼마나 된다고 보죠?"

-제로. 여왕의 도약마술을 사용해도, 한 명도 도망칠 수 없음.

"하하……."

베아트리체는 이 기계가 확률론에 얼마나 엄격한지 안다.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연산력은 현대 지구문명조차 압도한다는 것도.

그런 강철의 기계가 만에 하나라도 승리의 가능성이 없다 단정 지었다. 그 결론은 결코 과장이 아니리라.

"흠, 도주할 가능성조차 제로라는 건가."

안토크가 앞으로 나섰다. 그가 물었다.

"베아트리체 양. 그 도약 마술이란 게 무엇이지?"

"게이트 마술을 응용한… 으음, 정확히는 공간을 열어 만신전으로 도약하는 거랍니다. 하지만 지금은 쓸 수 없어요."

"어째서지?"

베아트리체는 처음 이 게이트에 진입했을 때, 무언가에 의해 게이트가 강제로 닫혔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게이트를 닫은 건 저 악마군주의 광오한 마법이라는 걸 알았고.

즉, 지혜의 군주가 존재하는 한 공간도약은 불가하다.

"그렇군. 다시 말해. 저 빌어먹을 놈만 없으면 된다는 것 아닌가?"

-???

"???"

그 무슨 망발인가? 야피는 자신조차 승리의 연산을 포기한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서는 유기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안토크는 망치를 들었다. 그가 무구를 연마할 때 사용하는 짧은 손망치다.

안토크가 망치를 번쩍 든다. 모든 기사와 자유민 병사들이 이를 응시한다.

"자랑스러운 나의 형제자매들이여! 지금껏 오랜 시간, 신들과 왕국에 대한 봉사에 감사한다!"

안토크는 자신을 바라보는 왕국의 백성들을 보았다. 또한 그들이 한 맹세를 깨우쳤다.

"그대들은 목숨 바쳐 왕국을 수호하리라 맹세했을 것이다! 오늘! 지금 이 순간! 그 맹세를 지켜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죽어라.

단지 그뿐인 명령.

그 불합리한 명령을 앞에 두고──

""명 받잡겠습니다!!""

불합리한 선택을 한다.

"틀어막아라!"

"안토크 경만큼은 돌려보내야 한다!"

가장 불합리하며,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불가함. 유기체. 저들 모두를 버림패로 던져도 성공확률은 0%.

"그럴지도. 자넨 똑똑하니까 틀린 말은 안 하겠지."

그 순간, 그의 육신에서 넘치는 성력이 퍼부어졌다.

"허나, 세상엔 확률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법이야."

순간, 갑자기.

안토크의 의식은 세상과 격리된다.

[그만두어라, 나의 대장장이야. 네 삶을 이곳에서 버릴 셈이냐.]

그와 언제나 함께해주었던 신성의 목소리. 가장 낮은 곳에서 함께해주며 세상에 철을 선물한 신성은 제 기사를 만류했다.

"누가 왔더라도 그리했을 겁니다."

허나, 신조차 이 우직한 기사의 결심을 만류할 순 없었다.

신들이 인간들을 사랑하는 이유. 라이온하트를 수호하는 이유.

신념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존재들. 그 생명의 불꽃이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나 철과 대장장이의 성배기사 안토크! 광산의 수호자이자 왕국의 으뜸가는 대장장이!"

미래를 지향하던 망치가 멈춘다.

이제 그것은 오로지 현재에만 존재한다.

더이상 대장장이에게 미래는 없다. 그렇다 해도.

"지금 이곳에 철의 맹세를."

망치질이 지향하는 것은 눈부신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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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극적이었다.

악마들의 악의로 가득 찬 황야는 순식간에 신성한 성지가 되어 강철의 대지로 변모한.

존재만으로 풍경을 고쳐 쓰며, 세상의 삿된 악의를 비난하듯이 그의 움직임 모두가 검은 얼룩을 지우려 뻗어 나간다.

[……설마.]

그 거대한 신성의 의지 앞에 악마군주조차 신음을 흘렸다.

끓어오르는 강철의 신성.

신을 받아들인 인간은 결코 인간이 닿을 수 없는 무한에 이른다.

신성강림 《철의 대장장이》

전신에서 빛을 뿜어내는 존재가 창공을 올려다봤다.

"먼저 떨어져라."

다음 순간, 악마군주와 대악마들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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