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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4

134화 신입생들 (4)

134화 신입생들 (4)

세실은 놀란 눈으로 데미안과 아리엘라를 바라봤다. 아리엘라는 당황한 얼굴로 데미안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사과하는 것처럼, 혹은 간청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세, 세실······! 잠깐만······!”

세실은 급히 루나의 손을 잡고 가까운 나무 뒤로 달려가 숨었다. 하지만 주변을 지나가는 이들의 소란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다. 세실은 집중하여 그들의 입술을 읽으려 애썼다.

그때, 데미안이 아리엘라를 향해 웃었다. 아리엘라도 웃었다. 그녀는 긴 속눈썹을 살며시 깜빡이며, 여자가 봐도 반할 것 같은 매혹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실의 눈동자가 점점 커다래졌다. 눈앞의 공간에는 마치 데미안과 아리엘라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그 친밀하고 아늑한 공간 속에서 아리엘라의 시선과 관심은 오직 데미안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다.

‘미, 미안해요. 데미안.’

아리엘이 이렇게 빠르게 사과할 줄은 몰랐다. 플랑브아즈 가문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이 주효했던 모양이다. 아리엘은 평소 귀족의 권위에 기대어 행동하지만, 권위에 굴종하는 이를 경멸하는 모순된 면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아리엘이 내게 사과할 이유는 없었다. 도리어 사과해야 하는 쪽은 나다. 나는 아리엘의 매력에 정신을 빼앗겨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또 함부로 애칭을 불렀으니까.

이 세계에서 상대의 동의 없이 애칭을 부르는 것은 매우 무례한 행동이다. 게다가 아리엘은 플랑브아즈 공작 가문의 영애. 이곳이 아르카넘 홀이 아니었으면 나는 아주 큰 위기를 마주했겠지.

‘저도 모르게 저택에 있었을 때처럼 행동했어요. 아무리 당신이 제게 실례를 범했다 해도 이곳은 아르카넘 홀인데. 정말 미안해요, 데미안.’

아리엘은 자신이 사과하는 것이 ‘아르카넘 홀’이라는 특별한 장소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사과할 것은 하고, 그러면서 나의 실수를 지적한다. 합리적이다.

그래서 나도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조금 놀란 점은 아리엘이 카인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는 거다.

‘카인에게도 그렇게 전해둘게. 아리엘라는 아리엘이라고 불리는 걸 싫어한다고. 감히 소리 듣고 싶지 않다면 절대로 아리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내가 카인에게 고자질하는 것일 텐데.

자존심일까.

내가 카인에게 말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왔니? 데미안.”

루나의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뭘 그렇게 멍하니 서 있니? 꼭 예쁜 아가씨를 보고 넋이라도 나간 사람처럼.”

루나가 비죽 아랫입술을 내밀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옆에는 세실이 서 있다. 아리엘은 먼저 건물로 들어갔다.

설마 봤나?

“응 맞아. 예쁜 아가씨를 봐서 넋이 나갔어.”

“뭐라곳?”

루나의 눈이 사나워졌다.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루나와 세실리아가 여기 있잖아. 두 명의 예쁜 아가씨.”

“······!”

“······!”

대충 둘러댔는데, 의외로 먹혔다?

“마,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기는! 역시 바람둥이가 맞았어! 혀를 뽑아야 돼!”

어서 와서 나를 구해라. 카인.

***

“첫날부터 수업 땡땡이쳐도 되는 거야? 게다가 허가받지 않은 외출이라니.”

“나를 부른 건 당신일 텐데요.”

카인은 수풀 사이로 나타난 엘리샤를 보며 말했다.

엘리샤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어쩔 수 없었어. 여기는 제국이잖아. 루카스 의장이 준 신분증도 완벽하지는 않다고. 공연히 잡혔다가는 사지가 뜯겨 죽고 말걸?”

“제국에서 머무를 방법은 찾은 건가요?”

“응. 당장은 아니지만 곧 해결될 것 같아.”

“쿠훌린의 반응은 어떻죠?”

“의외로 아주 좋아하던데? 루나에게 날파리들이 꼬이지 않게 잘 감시하라며 뇌물까지 줬어.”

“뇌물?”

“쨔쟌.”

엘리샤가 손에서 화려한 금색 용병패를 꺼냈다.

무늬가 낯선 것을 보니 제국에서 통용되는 물건인 듯했다.

“이건 보통 금패가 아니야. 너는 모르겠지만 이 금패 덕에 족제비인지 조조아킴인지 하는 녀석은 죽다가 살아난 적도 있어. 앗! 그렇다고 빼앗아 가면 안 돼! 지금도 밤마다 누가 습격할까 봐 바들바들 떨면서 지내고 있다고!”

카인은 후우, 한숨을 내뱉었다.

능력은 뛰어나지만 정말 시끄러운 여자다.

“아무튼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예요. 엘리샤.”

카인은 모르가나의 돌을 꺼내 보였다.

이 물건 덕분에 그는 엘리샤가 보내는 신호를 감지할 수 있다.

“······아, 알고 있어. 그러니까 제발 그 돌 좀 꺼내지 마. 진짜 무서워. 숨 막힌다고.”

카인은 피식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데미안은 마법학부에 합격했어요.”

“오, 진짜? 그 실력으로 어떻게 합격했지?”

“데미안에게는 재능이 있어요. 당신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을 뿐이지.”

“아하하하! 뭐, 금마고자 수준은 아니었지. 그런데 대체 무슨 수로 합격했대? 설마 소서러의 능력을 발현한 것은 아닐 테고.”

카인은 입학시험일을 떠올렸다.

데미안은 아리엘라 플랑브아즈가 발현한 것과 같은 ‘고위 마법’을 선보이며 마법학부에 합격했다. 그날부터 카인의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이 있었다. 아니, 실은 훨씬 전부터.

데미안이 그런 놀라운 모습을 보이는 일은 이전부터 있었다.

데미안을 처음 만났던 날, 그는 ‘하센베르크 격투술’을 사용했다.

‘그 격투술. 누구에게 배웠지?’

‘이름은 몰라. 내 눈에는 그냥 평범한 용병처럼 보였어. 다만······.’

‘다만?’

‘그 용병은 북쪽에서 왔다고 했어.’

이후 함께 페르디나의 용병으로 활동하며 데미안은 ‘비검’을 발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카인은 하센베르크 기사단의 생존자가 데미안에게 기술을 전수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계속되었다.

미스트를 다시 만난 날, 데미안은 아르테미스의 블러디드인 ‘은월검’을 발현했다.

‘어땠어요. 쿠.’

‘아주 잘했다. 데미안.’

은월섬에 도착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데미안은 입단시험에서 ‘은월무’를 발현했다. 그리고 며칠 전 아르카넘 홀에서는 ‘고위 마법’을 선보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데미안은 고위 마법을 발현할 수 없다. 카인은 데미안의 마법 실력을 안다. 더욱이 은월검은 오러. 당시의 데미안은 절대로 구현할 수 없는 힘이었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설은 둘이다.

하나는 데미안이 그 모든 능력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것.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카인은 두 번째 가설에 무게를 두었다.

‘데미안은 상대의 능력을 복제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의문이 설명된다.

***

“이런 걸 앞으로 4년 동안 먹어야 한다는 말이지······.”

아리엘은 포크를 내려놓았다.

아르카넘 홀에 온 지도 며칠이 흘렀건만 음식이 영 적응되지 않았다.

“아리엘. 입에 맞지 않는 거야?”

“넌 이런 게 목으로 잘 넘어가? 앙투안.”

아리엘이 짜증을 부리자, 맞은편의 앙투안도 포크를 내려놓았다.

“미안해 앙투안. 조금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아리엘은 카인이 공통 수업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 의아했다.

설마 데미안이 이야기한 것일까.

아니, 그렇다 해도 수업에 빠질 이유는 아닐 텐데.

“검술학부 수업은 어때? 반이 나뉘었다고 들었어.”

“자크 교수의 반으로 배정됐어. 세실리아 크라소타와 함께.”

세실리아 크라소타.

그 이름을 듣자 아리엘은 다시 기분이 언짢아졌다.

입학시험장에서 그 여자는 적대적인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봤었다.

“앙투안. 세실리아 크라소타를 이길 수 있겠어?”

앙투안의 어깨가 멈칫했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곧 이길 수 있을 거야.”

“정말로?”

“그렇게 할 거야.”

“그래. 그래야 나의 기사가 될 수 있다는 거, 알고 있지?”

앙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엘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나가서 바람이라도 쐴까?”

앙투안은 아리엘이 남긴 음식을 자신의 접시에 옮겨 담고 그릇들을 챙겼다.

아리엘은 마치 일상적인 일처럼 먼저 식당 문을 향해 걸었다.

“아리엘?”

“아. 카인.”

아리엘의 얼굴이 밝아졌다.

식당으로 들어서는 카인의 곁에는 데미안과 루나, 그리고 세실리아 크라소타가 있었다.

“카인. 제국의 역사 수업은······.”

“책을 가지러 기숙사에 들어갔다가 깜빡 잠이 들었어.”

카인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식사하러 온 거야?”

“아······. 나는.”

아리엘은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라 주저했다.

그녀의 눈에 그릇을 반납한 앙투안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데미안이 말을 건넸다.

“혼자라서 곤란한 거야? 우리와 같이 먹을래?”

순간 세실리아 크라소타의 눈에서 살기가 뻗쳤지만 아리엘은 무시했다.

“응. 데미안.”

아리엘은 기분이 좋아졌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데미안이 카인에게 말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그런 치졸한 짓을 벌일 사내로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아.’

문득 아리엘은 자신이 데미안에게 존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루나에게도.

‘······어쩌지?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고.’

아리엘은 데미안에게 살짝 속삭였다.

“이제 아리엘이라고 불러도 돼.”

그때, 아리엘과 앙투안의 눈이 마주쳤다. 아리엘은 앙투안을 향해 두 볼을 부풀리며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앙투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식당을 떠났다. 마부와 달리 눈치가 빠른 앙투안.

“아리엘.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야 카인.”

아리엘은 당황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카인이 낮게 웃으며 앞장서 음식을 담기 시작했다.

‘······이걸 또 먹어야 한다니.’

아리엘은 고민 끝에 작은 오렌지 하나를 접시에 올렸다.

카인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거 하나만 먹는 거야?”

“아, 아니야. 더 먹을 거야.”

아리엘은 애써 웃으며 접시에 음식을 추가했다.

“아르카넘 홀의 음식은 정말 맛있는 것 같아.”

“응, 카인. 나도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해.”

아리엘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카인의 옆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의 루나가 말을 걸어왔다.

“나도 아리엘이라고 불러도 돼? 실은 네가 데미안에게 속삭이는 걸 들었거든. 헤헤.”

“응. 괜찮아.”

루나는 괜찮다.

하지만 세실리아 크라소타는 절대로 안 돼!

다행히도 세실리아는 아리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리엘은 접시를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이걸 어떻게 다 먹지?’

아리엘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루나가 아리엘! 아리엘! 하며 계속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루나는 자꾸 세실리아까지 끌어들이려 했다.

그 곤란한 상황을 데미안이 막아줬다. 게다가 그는 아주 눈치가 좋았다. 아리엘이 아닌, 세실리아가 곤란해하는 것 같다고 루나에게 말해준 것이다.

이후 카인이 대화에 참여했고, 아리엘은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대화가 즐거워지자 음식도 남김없이 먹었다. 처음으로 빈 접시도 치워 보았다.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오늘따라 아르카넘 홀의 음식도 먹을만하다고, 접시를 치우는 일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며 아리엘은 행복하게 웃었다.

그날 밤, 아리엘은 심한 배앓이 끝에 치유실로 옮겨졌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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