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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4

133화.

설마 내가 정권과 끝까지 맞서겠다고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인지, 임진용 회장은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전에도 화해할 기회는 있었다.

기자회견 당시 민간인 사찰과 검찰의 불법수사를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다면, 지금처럼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지는 않았겠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자존심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다.

최악의 경우 K컴퍼니를 연결법인에서 독립법인으로 분할시키고, OTK컴퍼니는 한국에서 철수할 생각까지 하고 있다.

나와 택규는 미국으로 귀화하고.

물론 이런 상황까지 가는 건 피해야겠지만.

임진용 회장은 잔에 있는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이제 일 얘기를 해보죠.”

“예.”

“서성그룹은 그동안 여러 차례 실수를 했습니다. 그중 빠지지 않고 뽑히는 게 두 가지 있습니다.”

“뭔지 알 것 같네요. 하나는 안드로메다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마트폰 OS인 안드로메다를 만든 폴 케이트는 개발초기 서성전자를 찾아가 인수를 해줄 것을 제안했지만, 서성전자는 거절했다.

그 시점에서 이미 자체 OS를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모두가 알다시피 안드로메다는 구블에 인수되었고, 엔플의 NOS와 함께 스마트폰 OS 시장을 양분했다.

구블의 인수가는 6천만 달러로 알려졌는데, 현재까지 안드로메다로 벌어들인 돈만 3백억 달러가 넘는다.

서성전자가 인수했어도 그렇게 됐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좋은 기회를 날려먹은 건 사실이다.

“다른 한 가지는 니콜라입니다. 창업자인 알렌 에버하트는 초창기에 서성SB를 찾아와 18650 배터리의 대량공급을 요청했었지요.”

18650은 직경 18밀리에 높이 6.5센티라는 뜻으로 핸드폰과 노트북 등에 범용적으로 쓰이는 배터리다.

대량생산을 하고 있는 만큼 가격이 싸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전기차가 비싼 것은 배터리 가격 때문이다. 알렌은 자동차용 대형전지가 아닌 범용 소형전지인 18650배터리 수천 개를 병렬 연결해 전기차 가격을 낮추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가 대단한 천재인 것은 맞지만, 이 정도 아이디어는 누구나 쉽게 생각해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배터리는 연결만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성능을 균일하게 제어하고 발열을 관리해야 한다.

다들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지만, 알렌은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있었다.

“서성SB는 그 요청을 거절했잖아요.”

“당시만 해도 니콜라는 차 한 대 만들지 못한 회사였습니다. 알렌은 만들기만 하면 얼마든지 구매하겠다고 자신했지만,신생 스타트업을 위해 리스크를 감당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결국 알렌은 일본의 테크닉스를 찾아가 독점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니콜라가 출시한 전기차는 혁명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덕분에 망하기 직전 상태였던 테크닉스는 기사회생했다.

현재는 역으로 서성SB가 니콜라에게 구애하는 중이지만, 니콜라는 오로지 테크닉스에서만 독점공급 받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서성SB 입장에서는 배터리시장의 지배자로 올라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

그때 잘 됐다면, 나랑 손잡을 일도 없지 않았을까?

임진용 회장은 술병을 기울여 다시 잔을 채웠다.

“서성그룹은 정부의 지원 덕분에 성장했습니다.”

“모든 대기업들이 마찬가지였죠.”

개발도상국이 국가주도의 경제발전을 할 때는 자원이 한정된 만큼 될 만한 기업을 집중적으로 밀어준다.

현재 재벌그룹들은 국민들 세금으로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리로 자금을 지원해주고, 내수시장을 보호해주고,위기가 생기면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살려주었다.

“한국시장은 좁습니다. 내수시장에 의존해서는 도태될 뿐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항상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국가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만큼 외화를 벌어오는 게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셨으니까요.”

“맞는 말이네요. 그런 게 진짜 애국이죠.”

서성그룹은 한해에 수백억 달러를 외국에서 벌어들이고, 이는 한국경제를 떠받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서성전자가 없었다면, 그 자리를 다른 기업이 차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총 300조짜리 기업이 사라진다고 해서 시총 30조짜리 기업 10개가 생겨나는 건 아니다.

이건 일본 전자기업들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소니와 도시바 등의 시총이 감소하는 동안 새로운 기업이 생겨나기는커녕 오히려 서성전자와 엔플 같은 외국기업들에게 시장을 빼앗겼다.

“서성전자는 반도체와 스마트폰 덕분에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향후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지 못한다면 언제든 뒤쳐지게 될 겁니다.”

“그 성장동력이 자동차산업인가요?”

임진용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소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선배님 생각은요?”

“우리 쪽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립니다. 전기차 시대가 몇 년 못 가고 수소차로 넘어가게 될 거라는 의견도 있고, 전기차와 수소차가 공존하게 될 거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수소차가 한 부분을 차지할 거라는 얘기네요.”

“전기차에 비해 여러 강점이 있으니까요. 기술개발과 대량생산으로 가격을 떨어트리기만 하면, 전기차를 밀어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반대로 전기차가 2차전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수소차를 관속으로 밀어 넣고 뚜껑에 못질할 수 있겠죠.”

내 말에 임진용 회장은 눈을 빛냈다.

“가능할까요?”

난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분명 그렇게 될 겁니다.”

* * *

사흘 후.

김호민 교수가 OTK컴퍼니로 직접 찾아왔다. 안내데스크의 연락을 받은 나는 재빨리 로비로 내려갔다.

“말씀하셨으면, 제가 찾아갔을 텐데요.”

“괜찮아. 어차피 오늘은 강의도 없는 날이라서.”

난 그를 CEO실로 모셨다. 김호민 교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며칠 동안 생각을 좀 해봤어. 김명준 교수님과도 얘기를 나눴고.”

“뭐라고 하시던가요?”

“좋은 기회라고 강력추천하시던데.”

역시 우리 학과장님 밖에 없구나. 나중에 감사의 인사라도 드려야겠다.

“전에 말한 약속을 다 지켜줄 수 있어? 개발방향에 대해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다는 것과 연구원들을 잘 대우해주겠다는 것.”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거의 결심한 모양이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연구원이라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야. 일은 많지만 월급은 적고, 나중에 잘된다는 보장도 별로 없으니까.”

“교수님께도 연구원들에게도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

김호민 교수는 나를 보며 물었다.

“정말로 날 부자로 만들어줄 수 있어? 돈도 돈이지만, 우리 쪽 애들한테 연구개발만 열심히 해도 기업가나 투자자 이상으로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예. 교수님께서 롤 모델이 되실 겁니다.”

김호민 교수는 손을 내밀었다.

“좋아. 그럼 잘 부탁해, 대표님.”

난 그 손을 붙잡았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연구소장님.”

* * *

난 오랜만에 현주 누나와 단 둘이 만났다.

“커피 사왔어요.”

“고마워.”

누나는 여전히 피곤해 하는 모습이었다.

“목걸이랑 귀걸이 잘 어울리네요.”

내 말에 현주 누나는 피식 웃었다.

“선물 고마워. 나도 뭔가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전 돈이 많으니, 마음만 받을게요.”

현주 누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난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일은 좀 어때요?”

“늘 바쁘지.”

“요즘 골든게이트 엄청 잘나가던데.”

한국시장에서 들어온 골든게이트는 본격적으로 영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주식은 물론 채권, 펀드, 선물옵션, 자산운용,기업대출, PF 등으로 손을 뻗쳤다.

이중 국내 증권사와 가장 차별화되는 건 해외펀드다.

작년부터 아세안시장에 투자하는 여러 펀드를 내놓았는데, 글로벌 시장에서 쌓은 운용능력이 빛을 발하며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 물론 세계경기 회복과 맞물린 덕분이기도 하고.

수익률이 알려지자 펀드에 자금이 밀려들었다.

땅 집고 헤엄치는 식으로 영업하던 국내 증권사들은 일제히 앓는 소리를 냈다. 그래도 몇몇 증권사들은 영업망을 확대하고 새로운 상품을 내놓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외국계IB가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골든게이트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건 지사장인 현주 누나의 공이 크다.

“너희 쪽은 어때?”

난 진행 상황을 말해주었다.

“연구소장 영입했고, 계획대로 연구소 설립 중이에요. 돈은 다음 분기에 들어오는 OTK게임즈 배당금으로 해결될 것 같아요.”

현주 누나는 안경을 올려 쓰며 물었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이렇게 서둘러 진행하는 이유가 있어?”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는 법이다.

먼저 자동차회사를 인수하고, 판매량에 따라 공장을 증설하고, 그 다음 새로운 연구개발에 투자해도 된다.

하지만 나는 인수, 기술개발, 공장건설, 배터리 합작회사, 배터리 연구소 설립 등을 동시에 진행하는 중이다.

“일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다행이지만, 잘못될 경우 줄줄이 무너지게 될 텐데.”

“위험을 모르는 건 아니에요.”

만약 예지가 없었다면, 나도 이런 식으로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미래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현재 산업은 모든 면에서 급속도로 변하는 중이다.

공유경제, 빅데이터, 인공지능, 간편결제 등등.

중국에서는 카드나 현금 대신 길거리 노점상에서도 지니페이로 결제한다. 지니페이 없이는 상거래가 불가능할 정도라서 중국관광객이 많은 명동이나 면세점 등에서도 결제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개념조차 없던 블록체인 기술이 급부상했고, 반트코인을 포함한 각종 암호화폐의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폭등했다.

미국에서는 택시를 잡는 대신 아이버를 부르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되었고, 중국 역시 알리지니와 위첸트가 손잡고 설립한 다다추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갈라파고스나 다름없다. 온갖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과 전기차는 세상을 바꾸게 될 거예요. 그 시기는 얼마 남지 않았어요.”

현주 누나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서 껐다.

“넌 대체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 거야?”

난 웃음을 지었다.

“사실 저도 잘 몰라요.”

내가 아는 정보들은 단편적이고 제한적이다. 마치 하나의 점과도 같다. 하지만 그 점들을 하나로 연결하면 선이 되고, 선을 연결하면 면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떤 그림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무슨 일로 오라고 한 거예요?”

현주 누나는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커피를 마셨다.

“금감원에서 골든게이트와 OTK컴퍼니의 거래에 대해 조사 나올 거라는 얘기가 있어.”

“금감원이요?”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들의 저승사자라면,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들의 저승사자다.

“뭐 때문에요?”

“거래과정에서 특혜를 준 건 없는지, 불법행위는 없었는지 살펴보겠다는 거지. 그러다가 문제점이 발견되면 제제할 테고.”

“국정원, 검찰, 국세청 다음에는 금감원인가요?”

“다음에는 또 뭐가 들어올지 모르지. 또다시 세무조사를 벌일 수도 있고.”

로날드가 있는 이상 저번처럼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조사하겠다고 나오면 막을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전에 임진용 회장을 만났는데…….”

난 그와 나눴던 얘기를 전해주었고, 현주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적어도 박시형은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리 유능해보였으니까. 다들 경제를 발전시키고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주기만 한다면 개인적 허물쯤이야 눈감아줄 수 있다는 생각이었지.”

박시형은 기업이 잘살아야 국민이 잘산다는 신념 아래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쳤다. 실제로 각종 특혜 덕분에 대기업들은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그 밑에 있는 중소기업들 사정은 더욱 힘들어졌고, 임금인상률이 낮아지며 실질소득은 뒷걸음질 쳤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제조업 고용 대부분을 중소기업이 담당하는데, 중소기업이 힘든 상황에서 서민경제가 나아질리 있나.

그럼에도 국민들은 여전히 박시형을 지지했다.

“이제까지 터진 사건들이 한둘이 아닌데도 말이지. 다른 대통령이었다면, 진작 탄핵되고도 남았을 걸.”

“이래서 사람은 평소 이미지가 중요한 법이죠.”

청렴결백한 이미지의 정치인이라면 작은 비리에도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박시형의 경우는 정반대다. 허물은 있지만 일을 잘한다는 이미지라서 웬만한 비리가 터져도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과연 증거를 찾아서 PAS와의 관계를 폭로한다고 해도 치명타를 줄 수 있을까?

다른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 순간, 눈앞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호성저축은행 파산>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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