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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5

135화 성배기사 안토크(2)

황야의 토사가 강철의 초원으로 바뀌어 버린다.

지금까지 성배기사들의 광오한 폭력을 여럿 목격한 그들이었지만, 눈앞의 기적은 악마군주인 카라카엘조차 망연해할 정도였다.

세상을 고쳐 쓰는 기적. 단지 토사를 강철로 바꾼 것만이라면 조금 화려한 마술쇼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눈속임 같은 게 아니다.

[군주시여. 저것은──]

철의 맹세와 함께 바뀐 풍경. 그리고 어딘가 달라진 안토크.

무언가 자신의 육체에 강화를 걸었다. 마법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그리 해석될 것이다.

하지만 고작 그것만으로 자신에게 대적할 순 없다.

[설마 그것으로 끝은 아니겠지.]

카라카엘은 지상의 벌레처럼 작은 인간을 보았다. 그러나 악마군주인 자신조차 초조하게 만드는 존재감을 경계했다.

마술사 여왕조차 경악스럽게 하는 최고위 마법장벽을 겹겹이 두르고, 적의 행동에 대비한다. 그러나 카라카엘은 위화감을 느꼈다.

“먼저 떨어져라.”

[────!!]

다음 순간, 카라카엘과 캐스터 오브 프라즈나들은 무언가에 끌어 당겨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행성중력과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중압. 그것이 날개로 비행하던 대악마들을 추락시킨다.

-콰아아앙!

오만하게 하늘을 비행하던 악의의 존재들은 모두 지상에 추락했다.

중력의 반전? 인력의 발생?

아니, 그런 물리법칙 같은 게 아니다.

성배기사. 그들은 법칙의 개변자. 그들이 신앙하는 신성에 따라 세계의 법칙을 고쳐쓴다.

[철과 대장장이인가.]

이해했다. 카라카엘이 의지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연금 <형상변화>

자신의 온몸에 달려있던 ‘철’이 포함된 장신구들. 온갖 아티팩트들의 성질을 바꾼다.

방금 그것으로 하나하나가 차원의 보물인 아티팩트들이 쓸모없는 장신구로 전락했다.

[군주시여…!]

군주를 따라 자신들의 온몸에 달린 장신구들의 성질은 변화시키는 대악마들.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아티팩트들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성지의 모든 ‘철’은 저것의 지배를 받으니.

[과연, 판단은 빠르구나. 악종들아.]

목소리의 음색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외견 따위의 변화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 내용물조차 변모했다.

인간의 몸에 신을 담아 스스로 반신의 성질을 가지게 된 것이다.

성법──

대악마들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든다.

지금까지 성배기사들의 성력은 자신의 체내를 중심으로 발산됐다.

하지만 저 기사는 지금, 풍경 그 자체를 움직이며 무한할 정도의 성력을 발산하고 있다.

그야말로 기적. 온 세상의 성력을 끌어모은 것 같은 기적의 시작이다.

<헤토의 망치>

번쩍 든 망치가 휘둘러진다. 그에 맞춰 풍경에 새겨진 망치가 그대로 악마들을 향해 떨어진다.

대마법 <아만차의 방패>

다섯 대악마들이 전개한 방벽은 그야말로 견고한 장벽이다. 절대로 깨지지 않을 것 같은 무적의 대장벽. 그러나──

-꽝!

망치는 장벽째로 캐스터 오브 프라즈나들을 압살했다. 일격에 두 대악마가 끔찍한 모양새로 터져나갔다.

[무슨…!]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법의 종주인 지혜와 탐구의 악마. 그중에서도 정점의 마법력을 지닌 현자들이 수만 년의 연구 끝에 완성해낸 완벽한 계산식에 의한 절대방어.

그것을 한 장도 아니고 다섯 장 동시에 깨뜨렸다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끔찍한 공격력에 온몸이 떨린다. 두 번째에는 버티지 못한다. 무엇보다 방금 저 일격으로 살아남은 그들조차 내장이 흔들린 것 같다.

끔찍하리만치 강하다. 어찌 천 년도 살지 못하는 필멸자들이 저토록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놀랍군.]

그와중에도.

지혜의 군주는 건재하다.

[…….]

안토크는 직격으로 내리친 악마의 건재함에 혀를 찼다. 주변에 있던 대악마들은 그대로 압살이 되었는데, 정작 직격을 얻어맞은 저것은 상처 하나 없다.

철의 개념으로 휘두른 절대강도의 파괴력이 저것의 장벽과 부딪힌 순간 성질이 변모했다.

법칙의 개변에서 그저 강대할 뿐인 일격으로.

[시작하자. 아직 시작되지 않은 금세기 최악의 결전을 앞에 둔 전초전이다.]

카라카엘의 손짓과 함께 창공에 새겨진 마법진이 발동했다.

* * * *

-키이에에에에엑!

-전진하라!

악의 군세가 외친다. 전진.

-맞서라!

-마술이 완성되기까지 버티는 거다!

정의의 군세가 외친다. 방어.

-콰카카카카카카칵!!

쏟아지는 마력의 칼날이 지상을 덮친다.

악마군주와 대악마들이 쏟아내는 마력행사의 농밀함 안에 생명체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성법 <강철화>

성법 <불꽃의 가호>

그러나 마력만큼이나 충만한 것이 이 땅의 성력이다.

[박살내라!!]

철과 대장장이의 신 헤토를 받아들인 성배기사는 선두에서 적을 부순다. 악마군주에게 휘두른 망치질의 여파만으로 그들에겐 충분히 재앙이다.

“…….”

베아트리체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술진을 구축했다.

악마군주와 신성의 대결.

그 여파만으로도 휩쓸려 죽어 나가는 악마들과 자유인들의 처절한 격전.

강인공지능이 승률제로라 단언한 격전 속에서 그들은 기적이라는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설령 그 꽃이 만개하지 못할지라도.

확률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것처럼.

‘확실히 편해졌어.’

베아트리체의 마술진은 지금도 공간을 도약하기 위한 간이 게이트를 구축하고 있었다.

본래라면 카라카엘의 개입으로 성립조차 못 할 마술. 하지만 지혜의 군주는 철과 대장장이의 신성과 격전을 벌이느라 이쪽에 신경을 못 쓰고 있다.

“야피 경. 작업 진행상황은요?”

-86%까지 진행.

베아트리체는 본래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자신의 손으로 이룰 마술진을 야피에게 맡길 정도로 서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뿐인 기회를 위해 신중함을 저버리진 않는다. 단지 마술진을 그리는 것뿐이라면 데이터 하에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야피를 믿을 뿐.

“마술진을 전개하는 순간, 놈도 그것을 눈치챌 거예요. 안토크 경이 귀환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단이 필요해요.”

-제안.

야피는 베아트리체에게 계획을 설명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확률은?”

“2.714%.”

“전보단 훨씬 낫군요.”

절망스러울 정도로 낮은 확률. 하지만 기사들은 0%의 절벽을 향해 기꺼이 몸을 던지고 있다. 그렇다면──

“냉철해야 할 마술사로서 해선 안 되는 말이지만…… 기적을 기도해보죠.”

그녀 또한 기적의 존재. 신을 섬기는 성녀였으니까.

* * * *

카라카엘의 마법이 쏟아진다.

그것은 하나하나가 재앙이었다.

대지가 붕괴하고, 하늘이 갈라지는, 그야말로 세상의 종말을 보는 것 같은 대마법의 향현.

인간이 견뎌낼 수 없는 끔찍한 재해가 그의 손짓만으로 그려진다.

[강하구나.]

그러나 이에 맞서는 성배기사. 아니, 신성 그 자체인 대장장이의 망치질이 악마군주의 마법들을 분쇄한다.

내리치는 벼락은 망치로 흡수하여 내던지고, 땅에서 솟구치는 화염은 철의 대지로 틀어막는다.

순간순간이 기적인 전투를 연속해서 일으키는 성자가 제 앞에 있다.

과연, 차원 최강종. 악마들조차 두려워하는 지상 최강의 생명체.

란돌체 평야에서 빙하대공이 도주를 선택할만하다.

말석의 성배기사조차 이 정도라면 그 정점인 성배 수호자는 대체 어떤 괴물인가.

[네놈들의 정점은, 군주를 쓰러뜨릴 힘이 있겠구나.]

인정한다. 이들의 강함을. 하지만 그렇기에 이 침공은 올바른 것이었다.

이런 괴물들이 숫자를 늘려 결국 차원 전체에 신성을 퍼뜨린다면 악마들은 견디지 못하고 패퇴했을 것이다.

이토록 신들이 사랑하는 인간들이 존재하는 차원이란.

사랑할 만했고, 강할 만했다. 허나──

[모자르다. 너로는 내게 닿지 못한다.]

결국은 인간. 신성의 강대한 힘 전체를 담기에는 그릇이 너무나 작다.

[슬슬 분석도 끝났다. 죽어라.]

카라카엘이 필살의 마법을 쏘려던 그때였다.

-다각다각!

전장의 혼란을 틈타 접근한 기계동체. 그것은 카라카엘이 꿰뚫었을 터인 야크트 스피너의 별철동체였다.

-자폭 시퀀스 개시. 노심 강제폭주.

그 순간, 야피의 동체는 자신의 동력로를 강제폭주시켰다. 지구인류의 기술력을 아득히 넘어서는 핵분열 반응.

-쿠와아아아아아아아!!

막대한 열과 폭발이 카라카엘을 덮친다. 순간, 폭발로 인한 빛이 세상을 덮치고 시야를 가렸다.

[핵폭발이라니… 이런 원시적인 장난질로!]

카라카엘은 오른손으로 마법을 전개하면서도 왼손가락으로 새로운 마법을 펼쳤다.

광대한 폭발이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 압축되고 가둬진다.

단순한 열폭발 따위를 압축하는 건 그에게 숨 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 그에게 타격을 입히려면 적어도 신성의 불꽃 정도는 되어야 한다.

저열한 핵분열 따위 손가락 하나의 마법으로도 충분하다.

──────!!

[흐음?]

그때였다. 공간이 일그러지는 균열을 포착한 것은.

[군주시여! 놈들이 게이트를 열었습니다!]

과연, 그런 것이었나. 카라카엘은 게이트를 연 은빛의 계집을 응시했다.

인간 주제에 잘도 게이트의 원리를 파악했나.

[놈과 도주할 생각이로군.]

단거리 도약 게이트 따위로 이동할 수 있는 건 극소수일 텐데.

카라카엘은 알아챘다.

저자들은 여기 있는 병사와 기사들을 모두 버릴 생각이라고.

[시건방지구나. 내게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여겼느냐.]

게이트에 개입한다. 기껏 베아트리체가 연 단거리 도약 게이트라도 카라카엘의 마법이라면 그 즉시 닫을 수 있다. 하지만──

“악종들을 멸해라!!”

“목숨 바쳐 지켜라!!”

불꽃의 성법이 카라카엘을 향해 휘둘러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땅의 충만한 성력에 힘입어 강화된 성법으로 카라카엘을 향해 성력을 두른 창을 일제히 던지는 기사들.

[버려진 것들이 잘도…!]

카라카엘은 그들의 투창을 막아내면서 왼손에 압축되어있던 열에너지를 터뜨렸다. 마력까지 더해져 마나핵폭발이라 할 수 있는 끔찍한 폭발력이 그들을 덮친다.

[늦었군. 허나──]

덕분에 게이트를 닫지 못했다. 카라카엘은 조금 전까지 마법을 구축하고 있던 오른손을 뻗는다.

파앙! 하고.

죽음의 광선이 게이트를 향해 몸을 던지는 이들을 향해 쇄도했다.

* * * *

도시의 한가운데에 균열이 생기며 문이 열린다.

“후우…!”

-끼룩!

그 안에서 쏟아진 것은 세 명의 사람들과 말이었다.

“성공… 했군요!”

베아트리체는 방금 전까지 있었던 사지에서 겨우 살아났음을 안도했다.

야피도 이 기적적인 성과에 데이터베이스를 갱신했고.

“흠…….”

-끼룩?

고성능의 사운드 시스템이 포착한 신음소리. 방금 전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의 맥동이 약해졌다.

“안토크 경?”

베아트리체도 이상을 눈치채고 그를 응시한다.

철과 대장장이의 성배기사는 굳건하게 서 있었다.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완벽하진 못했군.”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를 앞에 두고도 안토크는 머리를 긁적였다.

“안토크 경! 서둘러 치료를…!”

베아트리체가 그를 부축하려 했으나 안토크는 손짓으로 그것을 막았다.

“대장간으로 가지.”

“예?”

-끼룩?

두 사람이 의아해하는 와중에도 안토크는 저벅저벅 대장간을 향해 걸었다. 별동대의 목숨을 바쳐 회수한 달의 파편들을 들고.

도착한 그는, 대장장이 신관들의 기함 소리에도 신경 쓰지 않고 대장간에서 망치를 들었다.

“지금부터. 별철을 제련한다.”

-불가함. 귀하의 생명활동은 곧 정지함.

“필멸의 신분으로 신성을 강림시킨 순간부터 정해진 일이었네.”

그것은 사자심장을 가진 살아있는 반신이 아니라면 엄두도 내선 안 될 기적이었다. 살아있는 성자이기에 그 잠깐의 기적을 유지할 수 있었을 뿐.

다르게 말하자면, 이 찰나의 순간. 안토크는 ‘죽어갈 반신’이다.

“강철로 이루어진 철의 기사여. 이 스승에게 허락된 시간이 부족해, 제자를 가르칠 기회가 한 번뿐이로구나.”

-…….

“한 번 보여주겠다. 이것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가르침이다.”

안토크는 망치를 들었다.

-까앙!

“퀘스트를 받기 위해 수행의 길을 떠났다.

없어진 심장이 산소를 만들어내지 못해도.

-까앙!

“그 과정에서 미래의 사자심왕을 만났고, 명예로운 여정을 함께했다.”

떨리는 팔이 망치에 힘을 주지 못해도.

-까앙!

“나는 가장 위대한 대장장이께 가르침을 받고, 그분께 도전했다.”

핏기가 가신 눈동자가 코앞조차 보지 못해도.

-까앙!

“끝내 그분을 넘어서지 못했으나, 나의 검을 든 기사들이 왕국의 적을 베었고, 나의 창을 든 기사들이 왕국을 수호했다.”

멈추지 않는다. 동작 하나하나를 새기라는 듯 천천히, 그러나 강렬하게.

-까앙!

신성의 의지를 담아 철을 제련한다.

그의 모든 행위에, 역사가 담긴다.

“나는 가장 위대한 사자심왕과 영광을 함께했고, 신의 사랑을 받아 분에 넘치는 명예를 누볐다.”

망치질이 계속된다.

그의 흐릿한 시야는 이제 다음의 대장장이를 향한다.

“철에 신념을 담아라. 망치질로 자아낼 미래를 상상해라. 네가 만든 검이 왕국의 적을 베어 가르고, 네가 만든 갑옷이 전우들을 지킬 것이다.”

망치를 던진다. 아주 오래되어 낡고 새카매진 망치는 한 대장장이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무기는 살생을 위한 도구이되, 그것이 올바른 자에게 쥐어졌을 때, 세상을 지키는 방패가 되리니.”

그대가 만들 검과 방패가 세상을 지키길 기원하겠네.

그의 몸에 넘치던 성력이 흩어진다. 억지로 유지하던 생명력이 사라지고 머리카락은 하얗게 타오르듯 색을 바랐다.

허물어지는 그의 육신은 누군가의 몸에 기대어 쓰러지지 않았다.

“…….”

고동이 느껴진다.

체온이 느껴진다.

안토크는 이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았다.

“레온 경인가…….”

“그렇다. 안토크 경.”

“사내의 품에 안기다니… 길두스가 보았다면 질색했겠어.”

“자식도 있는 이를 누가 의심하겠는가.”

“그것도 그렇군.”

“자네 아들… 아렌느에게 남길 말은 없는가?”

“…….”

그 말에 안토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위대한 아버지였고, 자상한 가장이었으며, 뛰어난 스승이었다.

그는 아들에게 사랑과, 존중과, 가르침을 주었으니 더 남길 말이 있다면──

“마지막까지. 왕국을, 왕을 수호하라!”

오롯이 그의 평생에 걸친 삶의 태도뿐.

“…….”

레온은 제 품에서 꺼져간 친우의 불꽃을 앞에 두고 탄식을 흘렸다.

“마지막 말만큼은 좀 편하게 하게들.”

레온왕 85년.

철과 대장장이의 성배기사 안토크 경.

승천.


           


Chapter 135

Chapter 135

135화 성배기사 안토크(2)

황야의 토사가 강철의 초원으로 바뀌어 버린다.

지금까지 성배기사들의 광오한 폭력을 여럿 목격한 그들이었지만, 눈앞의 기적은 악마군주인 카라카엘조차 망연해할 정도였다.

세상을 고쳐 쓰는 기적. 단지 토사를 강철로 바꾼 것만이라면 조금 화려한 마술쇼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눈속임 같은 게 아니다.

[군주시여. 저것은──]

철의 맹세와 함께 바뀐 풍경. 그리고 어딘가 달라진 안토크.

무언가 자신의 육체에 강화를 걸었다. 마법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그리 해석될 것이다.

하지만 고작 그것만으로 자신에게 대적할 순 없다.

[설마 그것으로 끝은 아니겠지.]

카라카엘은 지상의 벌레처럼 작은 인간을 보았다. 그러나 악마군주인 자신조차 초조하게 만드는 존재감을 경계했다.

마술사 여왕조차 경악스럽게 하는 최고위 마법장벽을 겹겹이 두르고, 적의 행동에 대비한다. 그러나 카라카엘은 위화감을 느꼈다.

"먼저 떨어져라."

[────!!]

다음 순간, 카라카엘과 캐스터 오브 프라즈나들은 무언가에 끌어 당겨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행성중력과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중압. 그것이 날개로 비행하던 대악마들을 추락시킨다.

-콰아아앙!

오만하게 하늘을 비행하던 악의의 존재들은 모두 지상에 추락했다.

중력의 반전? 인력의 발생?

아니, 그런 물리법칙 같은 게 아니다.

성배기사. 그들은 법칙의 개변자. 그들이 신앙하는 신성에 따라 세계의 법칙을 고쳐쓴다.

[철과 대장장이인가.]

이해했다. 카라카엘이 의지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연금 <형상변화>

자신의 온몸에 달려있던 '철'이 포함된 장신구들. 온갖 아티팩트들의 성질을 바꾼다.

방금 그것으로 하나하나가 차원의 보물인 아티팩트들이 쓸모없는 장신구로 전락했다.

[군주시여…!]

군주를 따라 자신들의 온몸에 달린 장신구들의 성질은 변화시키는 대악마들.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아티팩트들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성지의 모든 '철'은 저것의 지배를 받으니.

[과연, 판단은 빠르구나. 악종들아.]

목소리의 음색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외견 따위의 변화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 내용물조차 변모했다.

인간의 몸에 신을 담아 스스로 반신의 성질을 가지게 된 것이다.

성법──

대악마들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든다.

지금까지 성배기사들의 성력은 자신의 체내를 중심으로 발산됐다.

하지만 저 기사는 지금, 풍경 그 자체를 움직이며 무한할 정도의 성력을 발산하고 있다.

그야말로 기적. 온 세상의 성력을 끌어모은 것 같은 기적의 시작이다.

<헤토의 망치>

번쩍 든 망치가 휘둘러진다. 그에 맞춰 풍경에 새겨진 망치가 그대로 악마들을 향해 떨어진다.

대마법 <아만차의 방패>

다섯 대악마들이 전개한 방벽은 그야말로 견고한 장벽이다. 절대로 깨지지 않을 것 같은 무적의 대장벽. 그러나──

-꽝!

망치는 장벽째로 캐스터 오브 프라즈나들을 압살했다. 일격에 두 대악마가 끔찍한 모양새로 터져나갔다.

[무슨…!]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법의 종주인 지혜와 탐구의 악마. 그중에서도 정점의 마법력을 지닌 현자들이 수만 년의 연구 끝에 완성해낸 완벽한 계산식에 의한 절대방어.

그것을 한 장도 아니고 다섯 장 동시에 깨뜨렸다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끔찍한 공격력에 온몸이 떨린다. 두 번째에는 버티지 못한다. 무엇보다 방금 저 일격으로 살아남은 그들조차 내장이 흔들린 것 같다.

끔찍하리만치 강하다. 어찌 천 년도 살지 못하는 필멸자들이 저토록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놀랍군.]

그와중에도.

지혜의 군주는 건재하다.

[…….]

안토크는 직격으로 내리친 악마의 건재함에 혀를 찼다. 주변에 있던 대악마들은 그대로 압살이 되었는데, 정작 직격을 얻어맞은 저것은 상처 하나 없다.

철의 개념으로 휘두른 절대강도의 파괴력이 저것의 장벽과 부딪힌 순간 성질이 변모했다.

법칙의 개변에서 그저 강대할 뿐인 일격으로.

[시작하자. 아직 시작되지 않은 금세기 최악의 결전을 앞에 둔 전초전이다.]

카라카엘의 손짓과 함께 창공에 새겨진 마법진이 발동했다.

* * * *

-키이에에에에엑!

-전진하라!

악의 군세가 외친다. 전진.

-맞서라!

-마술이 완성되기까지 버티는 거다!

정의의 군세가 외친다. 방어.

-콰카카카카카카칵!!

쏟아지는 마력의 칼날이 지상을 덮친다.

악마군주와 대악마들이 쏟아내는 마력행사의 농밀함 안에 생명체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성법 <강철화>

성법 <불꽃의 가호>

그러나 마력만큼이나 충만한 것이 이 땅의 성력이다.

[박살내라!!]

철과 대장장이의 신 헤토를 받아들인 성배기사는 선두에서 적을 부순다. 악마군주에게 휘두른 망치질의 여파만으로 그들에겐 충분히 재앙이다.

"……."

베아트리체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술진을 구축했다.

악마군주와 신성의 대결.

그 여파만으로도 휩쓸려 죽어 나가는 악마들과 자유인들의 처절한 격전.

강인공지능이 승률제로라 단언한 격전 속에서 그들은 기적이라는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설령 그 꽃이 만개하지 못할지라도.

확률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것처럼.

'확실히 편해졌어.'

베아트리체의 마술진은 지금도 공간을 도약하기 위한 간이 게이트를 구축하고 있었다.

본래라면 카라카엘의 개입으로 성립조차 못 할 마술. 하지만 지혜의 군주는 철과 대장장이의 신성과 격전을 벌이느라 이쪽에 신경을 못 쓰고 있다.

"야피 경. 작업 진행상황은요?"

-86%까지 진행.

베아트리체는 본래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자신의 손으로 이룰 마술진을 야피에게 맡길 정도로 서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뿐인 기회를 위해 신중함을 저버리진 않는다. 단지 마술진을 그리는 것뿐이라면 데이터 하에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야피를 믿을 뿐.

"마술진을 전개하는 순간, 놈도 그것을 눈치챌 거예요. 안토크 경이 귀환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단이 필요해요."

-제안.

야피는 베아트리체에게 계획을 설명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확률은?"

"2.714%."

"전보단 훨씬 낫군요."

절망스러울 정도로 낮은 확률. 하지만 기사들은 0%의 절벽을 향해 기꺼이 몸을 던지고 있다. 그렇다면──

"냉철해야 할 마술사로서 해선 안 되는 말이지만…… 기적을 기도해보죠."

그녀 또한 기적의 존재. 신을 섬기는 성녀였으니까.

* * * *

카라카엘의 마법이 쏟아진다.

그것은 하나하나가 재앙이었다.

대지가 붕괴하고, 하늘이 갈라지는, 그야말로 세상의 종말을 보는 것 같은 대마법의 향현.

인간이 견뎌낼 수 없는 끔찍한 재해가 그의 손짓만으로 그려진다.

[강하구나.]

그러나 이에 맞서는 성배기사. 아니, 신성 그 자체인 대장장이의 망치질이 악마군주의 마법들을 분쇄한다.

내리치는 벼락은 망치로 흡수하여 내던지고, 땅에서 솟구치는 화염은 철의 대지로 틀어막는다.

순간순간이 기적인 전투를 연속해서 일으키는 성자가 제 앞에 있다.

과연, 차원 최강종. 악마들조차 두려워하는 지상 최강의 생명체.

란돌체 평야에서 빙하대공이 도주를 선택할만하다.

말석의 성배기사조차 이 정도라면 그 정점인 성배 수호자는 대체 어떤 괴물인가.

[네놈들의 정점은, 군주를 쓰러뜨릴 힘이 있겠구나.]

인정한다. 이들의 강함을. 하지만 그렇기에 이 침공은 올바른 것이었다.

이런 괴물들이 숫자를 늘려 결국 차원 전체에 신성을 퍼뜨린다면 악마들은 견디지 못하고 패퇴했을 것이다.

이토록 신들이 사랑하는 인간들이 존재하는 차원이란.

사랑할 만했고, 강할 만했다. 허나──

[모자르다. 너로는 내게 닿지 못한다.]

결국은 인간. 신성의 강대한 힘 전체를 담기에는 그릇이 너무나 작다.

[슬슬 분석도 끝났다. 죽어라.]

카라카엘이 필살의 마법을 쏘려던 그때였다.

-다각다각!

전장의 혼란을 틈타 접근한 기계동체. 그것은 카라카엘이 꿰뚫었을 터인 야크트 스피너의 별철동체였다.

-자폭 시퀀스 개시. 노심 강제폭주.

그 순간, 야피의 동체는 자신의 동력로를 강제폭주시켰다. 지구인류의 기술력을 아득히 넘어서는 핵분열 반응.

-쿠와아아아아아아아!!

막대한 열과 폭발이 카라카엘을 덮친다. 순간, 폭발로 인한 빛이 세상을 덮치고 시야를 가렸다.

[핵폭발이라니… 이런 원시적인 장난질로!]

카라카엘은 오른손으로 마법을 전개하면서도 왼손가락으로 새로운 마법을 펼쳤다.

광대한 폭발이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 압축되고 가둬진다.

단순한 열폭발 따위를 압축하는 건 그에게 숨 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 그에게 타격을 입히려면 적어도 신성의 불꽃 정도는 되어야 한다.

저열한 핵분열 따위 손가락 하나의 마법으로도 충분하다.

──────!!

[흐음?]

그때였다. 공간이 일그러지는 균열을 포착한 것은.

[군주시여! 놈들이 게이트를 열었습니다!]

과연, 그런 것이었나. 카라카엘은 게이트를 연 은빛의 계집을 응시했다.

인간 주제에 잘도 게이트의 원리를 파악했나.

[놈과 도주할 생각이로군.]

단거리 도약 게이트 따위로 이동할 수 있는 건 극소수일 텐데.

카라카엘은 알아챘다.

저자들은 여기 있는 병사와 기사들을 모두 버릴 생각이라고.

[시건방지구나. 내게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여겼느냐.]

게이트에 개입한다. 기껏 베아트리체가 연 단거리 도약 게이트라도 카라카엘의 마법이라면 그 즉시 닫을 수 있다. 하지만──

"악종들을 멸해라!!"

"목숨 바쳐 지켜라!!"

불꽃의 성법이 카라카엘을 향해 휘둘러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땅의 충만한 성력에 힘입어 강화된 성법으로 카라카엘을 향해 성력을 두른 창을 일제히 던지는 기사들.

[버려진 것들이 잘도…!]

카라카엘은 그들의 투창을 막아내면서 왼손에 압축되어있던 열에너지를 터뜨렸다. 마력까지 더해져 마나핵폭발이라 할 수 있는 끔찍한 폭발력이 그들을 덮친다.

[늦었군. 허나──]

덕분에 게이트를 닫지 못했다. 카라카엘은 조금 전까지 마법을 구축하고 있던 오른손을 뻗는다.

파앙! 하고.

죽음의 광선이 게이트를 향해 몸을 던지는 이들을 향해 쇄도했다.

* * * *

도시의 한가운데에 균열이 생기며 문이 열린다.

"후우…!"

-끼룩!

그 안에서 쏟아진 것은 세 명의 사람들과 말이었다.

"성공… 했군요!"

베아트리체는 방금 전까지 있었던 사지에서 겨우 살아났음을 안도했다.

야피도 이 기적적인 성과에 데이터베이스를 갱신했고.

"흠……."

-끼룩?

고성능의 사운드 시스템이 포착한 신음소리. 방금 전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의 맥동이 약해졌다.

"안토크 경?"

베아트리체도 이상을 눈치채고 그를 응시한다.

철과 대장장이의 성배기사는 굳건하게 서 있었다.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완벽하진 못했군."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를 앞에 두고도 안토크는 머리를 긁적였다.

"안토크 경! 서둘러 치료를…!"

베아트리체가 그를 부축하려 했으나 안토크는 손짓으로 그것을 막았다.

"대장간으로 가지."

"예?"

-끼룩?

두 사람이 의아해하는 와중에도 안토크는 저벅저벅 대장간을 향해 걸었다. 별동대의 목숨을 바쳐 회수한 달의 파편들을 들고.

도착한 그는, 대장장이 신관들의 기함 소리에도 신경 쓰지 않고 대장간에서 망치를 들었다.

"지금부터. 별철을 제련한다."

-불가함. 귀하의 생명활동은 곧 정지함.

"필멸의 신분으로 신성을 강림시킨 순간부터 정해진 일이었네."

그것은 사자심장을 가진 살아있는 반신이 아니라면 엄두도 내선 안 될 기적이었다. 살아있는 성자이기에 그 잠깐의 기적을 유지할 수 있었을 뿐.

다르게 말하자면, 이 찰나의 순간. 안토크는 '죽어갈 반신'이다.

"강철로 이루어진 철의 기사여. 이 스승에게 허락된 시간이 부족해, 제자를 가르칠 기회가 한 번뿐이로구나."

-…….

"한 번 보여주겠다. 이것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가르침이다."

안토크는 망치를 들었다.

-까앙!

"퀘스트를 받기 위해 수행의 길을 떠났다.

없어진 심장이 산소를 만들어내지 못해도.

-까앙!

"그 과정에서 미래의 사자심왕을 만났고, 명예로운 여정을 함께했다."

떨리는 팔이 망치에 힘을 주지 못해도.

-까앙!

"나는 가장 위대한 대장장이께 가르침을 받고, 그분께 도전했다."

핏기가 가신 눈동자가 코앞조차 보지 못해도.

-까앙!

"끝내 그분을 넘어서지 못했으나, 나의 검을 든 기사들이 왕국의 적을 베었고, 나의 창을 든 기사들이 왕국을 수호했다."

멈추지 않는다. 동작 하나하나를 새기라는 듯 천천히, 그러나 강렬하게.

-까앙!

신성의 의지를 담아 철을 제련한다.

그의 모든 행위에, 역사가 담긴다.

"나는 가장 위대한 사자심왕과 영광을 함께했고, 신의 사랑을 받아 분에 넘치는 명예를 누볐다."

망치질이 계속된다.

그의 흐릿한 시야는 이제 다음의 대장장이를 향한다.

"철에 신념을 담아라. 망치질로 자아낼 미래를 상상해라. 네가 만든 검이 왕국의 적을 베어 가르고, 네가 만든 갑옷이 전우들을 지킬 것이다."

망치를 던진다. 아주 오래되어 낡고 새카매진 망치는 한 대장장이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무기는 살생을 위한 도구이되, 그것이 올바른 자에게 쥐어졌을 때, 세상을 지키는 방패가 되리니."

그대가 만들 검과 방패가 세상을 지키길 기원하겠네.

그의 몸에 넘치던 성력이 흩어진다. 억지로 유지하던 생명력이 사라지고 머리카락은 하얗게 타오르듯 색을 바랐다.

허물어지는 그의 육신은 누군가의 몸에 기대어 쓰러지지 않았다.

"……."

고동이 느껴진다.

체온이 느껴진다.

안토크는 이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았다.

"레온 경인가……."

"그렇다. 안토크 경."

"사내의 품에 안기다니… 길두스가 보았다면 질색했겠어."

"자식도 있는 이를 누가 의심하겠는가."

"그것도 그렇군."

"자네 아들… 아렌느에게 남길 말은 없는가?"

"……."

그 말에 안토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위대한 아버지였고, 자상한 가장이었으며, 뛰어난 스승이었다.

그는 아들에게 사랑과, 존중과, 가르침을 주었으니 더 남길 말이 있다면──

"마지막까지. 왕국을, 왕을 수호하라!"

오롯이 그의 평생에 걸친 삶의 태도뿐.

"……."

레온은 제 품에서 꺼져간 친우의 불꽃을 앞에 두고 탄식을 흘렸다.

"마지막 말만큼은 좀 편하게 하게들."

레온왕 85년.

철과 대장장이의 성배기사 안토크 경.

승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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