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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5

135화 신입생들 (5)

135화 신입생들 (5)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흐르는 실내, 아리엘은 서서히 눈을 떴다. 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왔고, 그녀는 잠시 어리둥절해했다. 이곳은 어디지?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창가에 놓인 화분, 조용히 움직이는 공기, 깨끗하고 정갈한 침대.

······그런데 쟤는 누구지?

아리엘이 누운 침대 한가운데 누군가 얼굴을 처박고 잠들어 있었다. 아리엘은 흠칫 놀라 상체를 일으켰다.

“깨어났니? 아리엘라 플랑브아즈.”

새하얀 가운을 걸친 여성이 흔들리는 커튼 너머에서 나타났다. 그녀를 보자마자 아리엘은 짐작했다.

이곳은 ‘큐라토리아 마지카’.

아르카넘 홀의 치유실이다.

“비비안 교수라고 부르렴. 그건 그렇고 옆의 친구에게 감사해야겠는걸? 한밤중에 너를 업고 여기까지 달려왔으니 말이야.”

아리엘은 기억을 더듬었다. 어젯밤 배가 아파서 잠에서 깨어났었다. 사실 그전부터 배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복통은 점점 심해졌고, 돌연 두려운 마음이 들어 방문을 열고 나가다가······ 그 뒤로 기억이 없다.

그런데 친구라고?

아리엘은 침대에 엎어진 낯선 정수리를 바라봤다. 아르카넘 홀에서 그녀가 친구라고 부를만한 이는 앙투안 외에는 없었다. 물론 카인, 데미안, 루나와 친해지기는 했지만 어릴 적부터 가까운 사이였던 앙투안만큼은 아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저 정수리는 앙투안의 것이 아니었다.

“이름이 ‘미아’라던데. 설마 모르는 사이니?”

미아?

‘아, 안녕. 나는 미아라고 해. 너, 너는 아리엘라 플랑브아즈지? 마, 만나서 반가워.’

아. 기숙사 옆방으로 들어온 여자.

자신감 없는 말투에, 교실에서도 자꾸 귀찮게 말을 걸어오던.

“아는 사이예요.”

“그렇지? 미아가 많이 걱정했단다. 밤새 너를 간호하다가 이제 막 잠들었어.”

아리엘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자신을 치유실로 옮겨준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왜지? 가까운 사이도 아니면서 굳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비비안 교수는 저 미아라는 여자가 자신을 등에 업고 달려왔다고 했다. 검술학부라면 모를까, 육체를 단련하지 않는 마법학부의 여학생으로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 빚을 지워둘 셈이구나.

‘흥. 보나 마나 플랑브아즈 가문의 그늘에 들어오고 싶은 거겠지.’

아리엘은 그런 이들을 많이 보았다.

아리엘이 아주 경멸하는 부류의 인간.

“아야······.”

배에서 통증을 느낀 아리엘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비비안 교수가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보기와 달리 식탐이 있는 모양이더구나. 설마 플랑브아즈 가문의 아가씨가 과식으로 치유실에 실려 올 줄이야.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단다.”

아리엘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배가 너무 아파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오전 수업이 시작되기 전, 앙투안이 치유실을 찾아왔다.

“괜찮은 거야? 아리엘.”

놀란 앙투안의 얼굴을 보며 아리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소식을 듣자마자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왔을 테지.

미아는 보이지 않았다.

아리엘은 앙투안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일으켰다.

“벌써 가려는 거니? 하루 정도는 푹 쉬는 게 나을 텐데.”

“······괜찮아요.”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아리엘은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비비안 교수가 아리엘을 식욕도 자제하지 못하는 돼지로 몰았기 때문이다. 나를 뭐로 보고 그런 무례한 말을!

“치유 마법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아리엘의 상태를 짐작한 앙투안이 비비안 교수에게 물었다.

비비안 교수가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치유 마법은 꼭 필요한 상황을 위해 아껴둬야 한단다. 종종 마법 훈련이나 대련으로 크게 다치는 학생이 있거든. 고작 과식으로 인한 복통에 마력을 소모하다가 그런 위급한 학생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니.”

아리엘은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비비안 교수의 말은 사실이고, 또 정론이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괜찮다고 했잖아. 앙투안.”

그래서 아리엘은 앙투안에게 짜증을 냈다.

앙투안은 비비안 교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뒤, 아리엘과 함께 치유실을 나섰다.

비비안 교수의 목소리가 등 뒤를 울렸다.

“아르카넘 홀의 식사가 아무리 훌륭해도 너무 많이 먹지는 말렴. 아리엘라.”

아리엘은 와락 인상을 구겼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치유실에 오지 않을 거야. 절대로!

“미아는 수업 준비 때문에 먼저 갔어. 네가 치유실에 있다고 내게 알린 것도 미아야.”

아리엘은 ‘미아’라고 친한 듯이 이름을 부르는 앙투안이 거슬렸다.

“걔는 조금 짜증 나. 물론 나를 업고 치유실로 와준 일에 대해서는 감사의 말을 전할 생각이지만, 기숙사 옆방이라는 이유로 자꾸 나한테 말 걸고 친한 척하는 짓은 그만뒀으면 좋겠어. 보나 마나 우리 가문에서 무언가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기대하며 접근하는 것 같은데. 알잖아 앙투안, 내가 그런 인간을 경멸하는 거. 분명 가세가 기울대로 기운 몰락 직전의 귀족 가문이 뻔뻔하게 빌붙으려는 수작일 거야. 그런 부류의 인간은 정말 진절머리······ 아······, 미안해 앙투안. 나는 너의 아버지가 그렇다는 뜻이 아니고······.”

“무슨 말인지 알아 아리엘. 네 뜻을 곡해하지도 않고.”

당황한 아리엘을 보며 앙투안이 씩 웃었다.

그제야 아리엘도 부드럽게 웃었다.

“응, 앙투안. 우리도 언젠가 그분들과 같은 관계가 될 거고.”

“그런데 아리엘. 미아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아닐 거야.”

“왜?”

“몰랐던 거야? 그녀는 ‘데본렉스 백작 가문’의 아가씨잖아. 제국령에서 상당히 유서 깊은 가문이야. 플랑브아즈 가문처럼 빼어난 마법사를 많이 배출하는 곳이기도 하고.”

아무리 아리엘이라 해도 제국의 모든 귀족 가문을 알지는 못한다. 제국은 아스트레아 대륙의 나머지 모든 왕국을 합친 것보다 거대하니까.

“게다가 우리는 어렸을 적에 미아를 만난 적이 있어. 사교 파티에서.”

“정말로?”

“응. 서로 인사도 나눈 사이인걸. 아마도 미아는 그때의 너를 기억하고 도운 것일 거야.”

아리엘의 얼굴이 붉어졌다.

상대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의심부터 한 자신이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아를 너무 밀어내지는 마. 데본렉스 가문의 아가씨와 친분을 쌓아두는 것은 플랑브아즈 가문에도 좋은 일이니까. 분명 공작께서도 기뻐하실걸?”

“······응.”

아리엘이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말했다.

“······미안해 앙투안.”

“뭐가?”

“맨날 너한테 짜증만 부리고. 잘 알아보지도 않고서.”

“신경 쓰지 마 아리엘. 나는 네가 하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으니까.”

아리엘은 앙투안을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응. 앙투안.”

***

에스틸리아 교수의 이론 수업은 훌륭했다.

엘리샤가 가르쳤던 것과 비슷한 내용이지만 더욱 깊이가 있었고, 이해하기도 쉬웠다.

물론 엘리샤는 속성으로 가르쳐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에스틸리아 교수가 엘리샤보다 뛰어난 마법사라는 것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언제까지 기초 이론 수업을 들어야 하는 거지?”

“데미안 시니야카 때문이잖아.”

“기만자.”

예상대로 나를 싫어하는 무리가 형성됐다. 그렇다고 대놓고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내가 카인과 아리엘과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겠지.

아리엘은 며칠 전 복통으로 고생했다고 들었다. 마시는 물이 바뀌어 적응기가 필요했다고 그녀는 말했지만, 나는 과식이 원인이라고 확신한다.

‘혼자라서 곤란한 거야? 우리와 같이 먹을래?’

그날, 나는 아리엘이 식사를 마친 상태였다는 것을 짐작했었다. 식기를 반납하는 앙투안을 보았기 때문이다. 앙투안 브르타뉴. 아리엘을 제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헌신적인 소드마스터. 소설 속의 루나에게 트리스탄이 있었다면, 아리엘에게는 앙투안이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아리엘에게 식사를 권한 이유는 그녀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였다. 나의 예상대로 아리엘은 카인과의 식사를 즐거워했다. 과식하는 바람에 치유실에 실려 가기는 했지만.

그럴 만도 한 것이, 아리엘은 루나보다도 소식하는 인물이다.

“아. 데미안.”

어찌 됐든 아리엘은 그 일로 나와 더욱 가까워졌다.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내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기초 마법 이론을 복습하며 몸 안의 마력이 더욱 안정적으로 변한 것 같아. 네 말이 맞았네. 고마워 데미안.”

정말인지 인사치레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녀의 목소리와 표정, 몸짓은 너무 위험했다.

아리엘은 루나와 세실 못지않은 미녀다. 거기에 더해 자신이 가장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방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한 마디로, 남자를 홀리는 능력에 있어서는 이 세계관의 압도적인 일인자라는 것.

***

들판 위로 햇살이 내려앉았다. 부드러운 봄바람이 나뭇잎과 들풀을 살랑이게 했다. 새소리와 벌레 소리는 자연의 교향곡처럼 들판을 가득 채웠고, 하늘은 맑고 투명했으며, 가끔 지나가는 구름 한 점은 평화로운 풍경에 여유를 더해주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들판은 역동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다.

“대, 대체 뭐야!”

“움직임이 보이지도 않아!”

자크 교수의 수업 시간.

세실리아 크라소타와 앙투안 브르타뉴가 대련 중이었다.

“저, 저런 녀석이 우리와 같은 1학년이라니.”

“괴물이야······.”

자크 교수의 반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존재는 단연 세실리아였다. 그녀의 상대인 앙투안 브르타뉴 역시 4위로 검술학부에 입학한 인재였지만 세실리아의 실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자크 교수는 씨익 입가를 올리며 두 사람의 대련을 지켜봤다. 세실리아는 그가 가르쳤던 그 어떤 신입생보다 훌륭했다. 단검을 주 무기로 사용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세실리아 크라소타는 진짜배기야. 이번 블레이드 듀얼의 우승자는 무조건 이 녀석이다!’

3년에 한 번씩, 아르카넘 홀에서는 전교생이 참여하는 큰 축제가 열렸다. ‘블레이드 앤 아르카넘 페스트(Blade & Arcanum Fest)’라는 이름의 이 축제는 사흘 동안 계속되었는데, 이맘때는 늘 눈이 내리기 때문에 ‘눈의 축제’라고도 불렸다.

모든 학생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이 축제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행사는 ‘아르카넘 듀얼(Arcanum Duel)’과 ‘블레이드 듀얼(Blade Duel)’, 즉 마법학부 토너먼트 시합과 검술학부 토너먼트 시합이었다. 또한 각 학부의 우승자에게는 특별한 혜택 세 가지가 주어졌다.

첫 번째는 학업 성적과 관계없이 유급되지 않는 혜택. 두 번째는 황실 수호 마법사단 센티널과 황실 근위 기사단 아이기스의 우선 지원권. 마지막 세 번째는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무도회인 ‘프로스트 갈라(Frost Gala)’에서 원하는 상대를 지명할 수 있는 특전이었다.

사실 지명은 상대가 원치 않으면 거절이 가능한 이름뿐인 특전이었다. 그러나 거절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는데, 이유는 지명받은 상대 역시 영광스러운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축제의 영웅인 각 학부의 우승자가 누구를 지명할 것인지는 혈기 왕성한 젊은 학생들에게 매우 큰 관심거리였다.

그리고 올해 겨울, 블레이드 앤 아르카넘 페스트가 열릴 것이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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