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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6

135. 약혼관계 – 깃털

사냥을 다녀온 레오는 방에 틀어박혔다. 레나가 “오늘 대전사 아저씨들이랑 같이 술 마실 건데 같이 먹을래?”라고 물어보았으나 그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사양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마수, 노구화호가 사라졌다.

발자국이 보이질 않아서 레나를 아무렇게나 설득해 계곡을 내려가 보았다.

하지만 노구화호가 반드시, 반드시 있어야만 했을 계곡에는…

– 캥! 캥!

여우 가족이 있었다.

전보다 작아진 굴 앞에서 암수 한 쌍의 새하얀 여우가 으르릉, 이를 드러냈다.

굴 안에 있던 여우 새끼들이 꼬물꼬물, 철없이 고개를 내밀자 레나는 귀엽다며 짝짝 박수를 쳤다.

“와아- 귀엽다. 레오 저것 봐. 새끼들도 있어.”

레오는 숨이 막혀왔다.

여태껏 이랬던 적이 없었다.

매번 레나가 놈의 발자국을 발견했고, 사냥팀에 알려 사냥했었다. 그리고 지난번 회차에서는 덫의 힘을 빌려 레나와 함께 잡았었는데…

[ 업적 : 마수 사냥 – ‘2’, 몸에 미약하게 마나가 깃듭니다. ]

‘설마 지난번에 노구화호를 잡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하지만 왜? 여태껏 사람도 죽여봤지만, 사람들은 멀쩡히 있었는걸…’

레오 덱스터로서는 노구화호가 어째서 없어졌는지, 그 메커니즘을 알 길이 없었다.

그는 민서와 달리 ‘게임’이란 걸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곧 전쟁이 터진다. 사냥을 나온 레나는 전사가 되고, 부족의 관례에 따라 대전사의 딸인 그녀는 전쟁에 확정적으로 참전한다. 그러면…

헤르만 포르테 백작.

소드마스터를 만나게 된다. 민서는 그걸 {이벤트}라는,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로 확신했었다.

“저게 다 몇 마리야? 하나, 둘… 세 마리네. 아휴, 귀엽기도 하지.”

레나가 우쭈쭈 멀리서 손을 내밀었다. 그런다고 야생 여우가 다가와 핥을 일은 없었지만, 레나는 기쁘게 웃었다.

“그래도 완전히 헛소리는 아니었나 봐. 여우가 있긴 있네.”

“…”

레오가 멍하니 말을 잇지 못하자 레나가 이죽거렸다.

“바보야. 그러게 누가 치매 걸린 할아범 말을 믿으래? 쇠꼬챙이들은 다 어쩔 거야?”

“…”

“레오!”

“어어? 어. 왜?”

“어쩔 거냐고.”

“뭐, 뭘?”

“쇠꼬챙이들 말이야. 바리바리 싸와가지곤… 뭐? 마수? 보리스 할아버지 허풍이 대단한걸. 야. 괜히 내려왔잖아. 돌아가자. 아니지, 쟤네들이라도 잡아갈까?”

레나는 여우 가족을 손가락질했으나 농담이었는지 이내 두 사람은 내려왔던 골짜기를 다시 올랐다.

소박한 가정을 꾸린 여우 한 쌍은 경계 어린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다 새끼들과 함께 굴 안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로 어떻게 사냥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창백한 안색으로 방에 틀어박힌 레오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데호르만과 사냥을 다녀온 전사들은 이번 사냥도 수확이 좋았다며 기뻐했지만, 그런 건 레오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난데없는 상황이 발생한 적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때마다 민서는 그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든 이해하고 나름의 대책을 마련해냈었다.

하지만 지금 민서는 없다. 수십만의 인간을 끔찍하게 살해한 기억에 갇혀서 넋을 놓아버렸다.

막막하다.

심란하게 방을 서성이던 레오 덱스터, 그는 한참을 궁리하다가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마을 공터를 향해 뛰었다.

오늘은 장이 열리지 않았다. 공터에서는 아이나르 부족의 전사들이 어제 잡아 온 사냥감을 부지런히 도축하는 중이었다.

물론, 레나는 없었다.

사냥을 다녀온 사냥팀은 며칠 푹 쉬고, 다녀오지 않은 사냥팀이 도축을 전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상단은 공터 한쪽 구석에 있었다.

줄지어 세워진 일곱 대의 마차. 이곳에 온 지도 벌써 몇 주일이나 흘러 팔 물건은 다 팔았지만, 눈보라에 갇힌 상인들은 상행을 미루는 중이었다.

수소문할 것도 없이 레오는 {추적술}로 찾으려 했던 사람을 쉽게 찾아냈다. 텅텅 빈 마차에서 모포를 덮고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던 전사들을 불러내었다.

“같이 마수를 잡으러 가자고? 너는 전사야?”

제법 키가 큰 여전사가(그래봤자 레오보단 작다.) 그를 위아래로 살피며 말했다.

화려한 깃털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은 전사들이었다. 전에 장터에 들렸을 때, 이들이 대전사의 시련을 치르러 가자며 사람을 모으고 있던 걸 봤다.

갑자기 나타난 상단과 처음 보는 전사들, 많아진 사냥감…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레오는 어째서 이런 일들이 발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노구화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지난 회차에서 노구화호를 잡을 때, 녀석의 옆구리에 길게 찢어진 자상이 있는 걸 봤다.

아물어가던 그 상처는 아마도…

레오는 마차 한쪽에 전투 도끼(Battle Axe) 한 쌍이 나란히 기대어진 걸 눈여겨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게 중요해?”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왜? 아무리 봐도 넌 전사가 아닌데, 어째서 시련을 치르려 하지? 그보다도 실력은 돼?”

다른 여전사가 물었다.

똑같은 흑발에 윗입술이 두꺼운 그들은 누가 보더라도 자매였는데, 그 여자는 동생인지 키가 작았다.

키로 누가 연상이고 연하인지를 따지는 건 웃기지만(레오들의 경우만 해도 한 살 더 많은 왕자 레오가 가장 작았다), 느낌이란 게 있다.

“시련을 치르는 데 꼭 이유가 필요한가? 그리고 실력이라면 충분하고도 남지. 너희들보다도.”

레오가 도발했다. 전사들은 자신감 없는 사람을 낮잡아보는지라 겸손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실력이 뒷받침될 때의 얘기다.

하지만 그런 이유 외에도, 레오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하대하고 있었다.

“어쭈? 그럼 어디 실력 좀 볼까? 덩치는 제법인데, 영 샌님같이… 아니, 귀-‘족같이’ 생겨서 믿을 수가 없는걸.”

[ 퀘스트 : 귀족도살자 50/50 – {기품} 능력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

[ 퀘스트 : 반역자 10/10 – {왕의 피} 능력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

어쩐지 엉뚱한 곳에 강세가 붙었지만, 동생이 끼어들었다.

“언니, 테스트는 한꺼번에 하기로 했잖아. 이봐. ‘청련달’이 뜨는 날 점심에 와.”

“…그게 언젠지 난 모르는데.”

북부의 전사들은 달의 색깔로 날짜를 세는 경우가 많았다.

쉽게 말하자면 음력(陰曆)이다.

그런데 하나뿐인 달과 관련해 독특한 점을 꼽자면 매일 발하는 색이 달랐다.

모양이야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 삭과 같이 변하기는 매한가지였으나, 푸른색과 붉은색을 주기적으로 넘나들었다.

먼 옛날, 아카이아 왕국 초창기에 태양력(太陽曆)이 정립된 이후로 소위 문명인이라 자부하는 이들은 더는 달의 모양과 색깔로 날짜를 세지 않았다.

하지만 야만인들, 특히 북부의 전사들은 달의 색깔에 저들의 미신을 투영했다. 푸른색 보름달을 ‘청련달’이라 따로 지칭하며 날짜를 세는 기준으로 삼았다.

“역시 넌 전사가 아니군. 내일모레야. 다른 전사들도 모이기로 했으니까, 그때 실력을 보자구. 만약 눈에 차는 사람이 없으면 그냥 없던 일로 할 거야. 모인 사람들끼리 가든지 말든지…”

동감이다. 나도 너희들의 실력이 보잘것없으면 곤란하다. 레오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물었다.

“그 전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너희는 마수가 어디 있는지 알아?”

“그럼. 아니까 사람을 모으는 것 아니겠어? 당연한 걸 묻고 그래.”

언니라는 사람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디에 있지? 너무 멀리 있으면 곤란해.”

“별로 안 멀어. 오는 길에 본 거니까. 사흘 거리에 있는데, ‘설각사록’이란 놈이야. 아주 근사하게 생겼지. 아 참, 미리 말해두는 건데, 뿔은 우리가 가질 거야. 발견한 공로는 쳐줘야지.”

“좋아. 내일모레 다시 오지. 한 사람 더 데려와도 괜찮겠어?”

“얼마든지. 그런데 대전사의 시련은 다섯 사람까지밖에 참가하지 못해. 세 명밖에 못 데려간다는 얘기야.”

레오는 답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일단 마수는 찾았다. 이곳 북부는 마수가 많아서 하나쯤은 더 찾을 수 있으리라 예상했는데, 다행이다.

아니지. 다행이라고 생각할 틈은 없다. 만약 노구화호가 사라진 게 지난 회차에서 잡았기 때문이라면…

레오의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 * *

“뭐? 대전사의 시련을 치르자고?”

제 방에 널브러져 있던 레나가 게슴츠레, 눈을 뜨며 되물었다.

첫 사냥을 다녀와 아이나르 부족의 어엿한 전사가 된 그녀는 어젯밤 술을 왕창 마셨다.

그동안은 어머니의 눈치를 봐야 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에 레나는 전사가 된 것을 자축하며 아버지와 대작했고, 그 결과가 이 모양이었다.

“아이고오- 머리야. 그보다 레오, 나 물 좀 갖다 줘. 아빠는 딸한테 무슨 술을 그렇게 멕이냐. 다른 대전사 아저씨들도 그래. 옆에다가 술을 두 잔씩 더 따라놓더라니깐. 꼭 나 먹으라는 듯이…”

그녀의 불평에 레오는 조금 황당해졌다. ‘그걸 넙죽넙죽 사양하지 않고 받아먹은 잘못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오드르 차를… 가져가려다 말고 물을 떠다 주었다.

이젠 장난이나 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윽고, 냉수 먹고 정신 차린 레나가 말했다.

“갑자기 대전사의 시련을 치르자니,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레오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전쟁}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서 지금 상단에 시련을 치르려 하는 전사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는데, 레나가 불쑥 말을 잘랐다.

“너 저번에 마수 못 잡아서 그러는 거야? 그때는 쇠꼬챙이로 덫을 놓으려 했던 모양이지만, 대전사의 시련은 덫 사용이 금지야. 쉽지 않을걸. 걔네들 실력이 어떨지도 모르고.”

“내가 봤을 땐 괜찮아 보이던데? 마수 잡으러 가자. 응? 시련이 별거냐. 만약 전사가 되자마자 대전사의 시련까지 치르면 너는 분명 전설적인 전사로 추앙받을…”

부정적으로 말하긴 했으나 레나의 말투엔 파고들 여지가 있어서 레오가 졸랐다.

다행히 레나는 대전사의 시련에 관심이 있어 보였다.

어쩌면 어젯밤, 데호르만을 포함한 아이나르 부족의 대전사들과 술을 마셨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갓 전사가 된 레나에게 대전사들은 덕담을 아끼지 않았을 테고, 레나는 의기양양해졌겠지.

물론, 아직 마수를 못 봤기에 나온 자신감일 것이었다.

이전 회차에서 노구화호를 본 레나는 덫을 깔자는 말을 듣고도, 어떻게 잡을지 알려줬음에도 우려를 표했었다.

마수를 잡는 건 어렵다. 두 번이나 잡아봤지만, 노구화호는 사냥할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압오안돈은 기사가 둘이나 있었기에 가능했다. 두 번 다 덫을 쓰기도 했고.

그러니 덫을 사용하지 못하는 대전사의 시련은 훨씬 어려울 터였다.

레나가 다칠 수도, 내가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수를 못 잡으면 우린 전쟁터에 나가야 한다. 거기에 가면 우린 반드시 죽는다.

레오 덱스터의 꼬드김이 이어졌다.

민서가 그랬던 것처럼 사탕발림을 살살 늘어놓자 흥미가 동하는지 레나의 귀가 움찔거렸다.

“좋아. 하지만 같이 시련을 치른다는 그 친구들이 어떤 애들인지부터 봐야겠어.”

레나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레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민서가 자주 그랬던 것처럼 휘유, 깊은 한숨을 뱉었는데, 그 숨에는 근심과 답답함이 가득했다.

회차의 제약.

사망의 위협.

레오 덱스터에게는 이와 다르지만, 비슷한 제약이 더 달려 있었다.

이번에는 어찌어찌 ‘설각사록’이란 마수를 잡아서 {전쟁}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다음 회차에서 그 마수마저 사라진다면… 그땐 어찌해야 하는가.

소꿉친구 시나리오에서 수도교회로 가는 {사제} 이벤트가 강요되는 것처럼, 더는 전쟁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럼 다음번의 레나 아이나르와 나는…

그때, 근심하는 레오 덱스터의 손을 레나가 잡았다. 뒤뜰로 그를 이끌더니 대련을 청해왔다.

사냥을 다녀와 느낀 바가 있었다나 뭐라나…

당연하게도 그의 상대는 못 되어서 간단하게 패했다.

레나는 “우쒸.” 착잡한 표정을 짓더니 숙취를 잊고 다시금 훈련을 시작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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