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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6

136화 신비로운 사내

136화 신비로운 사내

“네가 데미안 시니야카인가?”

교정을 걷던 나는 걸음을 멈추고 눈앞의 무리를 바라봤다.

푸른색 망토를 두른 남학생들. 3학년이다.

덩치를 보니 검술학부인 것 같은데.

“그런데요.”

내게 말을 건 장발 머리를 향해 답했다.

딱 봐도 이 녀석이 무리의 대장이다.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다면 조용히 따라와라.”

장발이 앞장섰다.

나는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고, 나머지 3학년들이 도주로를 막듯 내 주변을 에워쌌다.

잠시 후, 우리는 으슥한 공터에 와 있었다.

“1학년 수업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지?”

걸음을 멈춘 장발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법학부 신입생들이 너 때문에 한 달 가까이 불필요한 기초 수업을 듣고 있다더군.”

아. 그런 거였나.

“웃어?”

“아니요. 뺨에 벌레가 붙어서.”

“건방진 자식이······.”

장발의 얼굴이 험상궂어졌다.

나는 오랜만에 통찰 스킬을 발현해 녀석의 스테이터스를 살펴봤다.

장발은 40레벨 대 후반. 나머지는 40레벨 대 초반이다. 검기를 발현할 수 없는 기사급.

가만. 그런데 장발 녀석의 이름이.

“겁대가리를 상실한 녀석이군. 너,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나?”

장발이 나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옆의 3학년들이 키득키득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쟨 이제 죽었네.’ 하며 비아냥대는 소리도 들렸다.

“모르는데요.”

알지만 모르는 척 답했다. 그러면서 머리를 굴렸다.

건드려 봐야 득 될 것 없는 인물이다.

어떻게 해야 잘 빠져나갈 수 있을까.

“지금 뭐 하시는 거죠?”

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여 따라왔는데, 그쯤에서 그만두세요. 그러지 않으면 교수님께 알리겠어요.”

“호오. 플랑브아즈 가문의 아가씨인가. 가까이서 보니 더욱 아름답군.”

장발이 내 멱살을 놓으며 혀로 윗입술을 핥았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아리엘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곁에는 미아가 바들바들 어깨를 떨며 서 있었다.

“오해가 있는 것 같군. 나는 데미안 시니야카에게 중요한 충고를 하고 있었거든.”

“제 눈에는 이유 없이 신입생을 괴롭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하하하! 이유가 없지는 않지. 이 건방진 녀석 때문에 마법학부 신입생들의 수업에 문제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거든. 제국 신민에게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는 것이 황가의 도리이기도 하고 말이야.”

‘황가’라는 말에 아리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장발의 눈동자가 파충류의 그것처럼 번들거렸다.

“이제야 사태를 파악했나? 나의 이름은 카시우스 발로리우스. 이 광활한 발로리안 제국을 다스리는 황가의 일원이다.”

장발, 카시우스의 얼굴에 승리자의 거만함이 깃들었다. 진심으로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면상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이곳은 제국의 영역. 아무리 아르카넘 홀에서 신분이 무의미하고 해도 황가의 일원을 건드려서 좋을 일은 없다.

“무릎 꿇고 내 손에 입을 맞춰라, 아리엘라 플랑브아즈. 그러면 지금까지의 무례는 용서해 주지.”

그 순간, 내 손에는 카시우스의 멱살이 쥐여 있었다.

아리엘에게 호감을 사기 위한 계산적인 행동······이라고 믿고 싶지만 실은 나도 모르게 저지른 일이었다. 빌어먹을. 이런 실수를.

“감히!”

카시우스의 외침과 함께 번쩍! 눈앞이 빛났다.

나는 얼굴에서 무거운 통증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졌다.

“데미안!”

갑작스러운 타격에 머리가 핑핑 돌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아리엘의 손길을 느꼈다.

퉤, 피 섞인 침을 뱉으며 나는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육체 단련을 하지 않았구나.

“호오. 마법학부 약골 주제에 맷집이 있는 놈이었군.”

아리엘이 두 눈을 사납게 치뜨며 카시우스를 노려봤다.

그것을 넘어 그녀의 심장 주위로 마력이 일렁였다.

“설마 여기서 마법을 발현할 생각인가? 아리엘라 플랑브아즈. 마법학부의 학생이라면 알고 있을 텐데. 교수의 허락 없이 마법을 발현하면 어떤 불이익이 따르는지.”

“상관없어요.”

아리엘의 그 말에는 나도 놀랐다.

정말로 나를 구하기 위해서일까, 나를 통해 카인의 호감을 얻기 위해서일까.

어찌 됐든 이제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게 되었다. 이대로 두면 정말 큰일이 벌어진다. 가벼운 주먹다짐은 적당한 징계로 넘어갈 수 있겠지만, 마법을 발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렇게 나오겠다는 말이지. 좋아. 황가의 이름으로 너에게 채찍형을 내리겠다.”

저런 미친놈이.

아무리 녀석이 황가의 일원이라 해도 이런 일로 플랑브아즈 공작 가문의 후계자를 벌할 수는 없다. 황제나 황태자쯤은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저 미친놈은 정말로 등 뒤에서 채찍을 꺼내 들었다. 아니, 저런 걸 상시 가지고 다닌다고?

“오늘 너를 벌하고, 나의 애첩으로 만들겠다.”

카시우스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구깃구깃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것을 보니 화가 많이 난 듯했다. 아울러 그는 아리엘이 정말로 마법을 발현할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는 느꼈다. 아리엘의 심장을 휘돌던 마력이 그녀의 오른팔로 이동하는 것을. ‘애첩’이라는 단어가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린 거다.

카시우스가 채찍을 쥔 손을 치켜들었다.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아리엘을 감싸안으며 카시우스를 향해 등을 돌렸다. 내가 대신 맞는 수밖에 없다. 또한 이렇게 하면 아리엘은 마법을 발현할 수 없을 테니까.

“······데미안!”

아리엘의 당황한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내가 대신 맞아줄 줄은 몰랐던 걸까. 아니면 내가 허락 없이 그녀를 끌어안았기 때문에? 뭐, 둘 다일 테지.

그런데 나의 예상에 없던 일이 벌어졌다. 미아가 나와 카시우스 사이로 뛰어든 것이다. ‘미아!’ 아리엘이 외쳤고, 나는 등 뒤를 돌아봤다.

두 눈을 질끈 감은 미아.

그녀를 향해 뱀처럼 날아드는 채찍.

그리고 그 너머에서 일렁이는 카시우스의 연갈색 머리카락을 본 순간, 내 머리에서 번개가 쳤다.

촤악!

내 팔에 카시우스의 채찍이 부딪쳤다. 아리엘에게서 떨어진 내가 전력질주(Lv.4)를 발현해 미아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네놈······!”

카시우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럴 만도 하겠지. 마법학부에 입학한 내가 이 정도의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을 테니까.

팔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고통 감내(Lv.4) 덕분에 견딜만했다. 부릅뜬 카시우스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나는 내가 입가를 비틀어 웃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움켜쥔 내 주먹이 카시우스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크허억······!”

카시우스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적당히 힘을 조절했으니 뒈지지는 않겠지.

“카시우스!”

놀란 3학년들이 욕설을 뱉으며 내게 달려왔다. 그러나 40레벨 대의 그들이 내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나는 그들의 공격을 모조리 회피하며 급소를 한 방씩 가격해 모두 쓰러뜨렸다.

“달려!”

나는 아리엘과 미아의 손을 잡고 달렸다. 그러면서 크게 웃었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니 이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

.

.

학생들의 통행이 많은 곳으로 들어선 뒤에야 우리는 달리기를 멈췄다.

나는 괜찮았지만 아리엘과 미아는 가쁘게 숨을 헐떡였다. 그러면서 아리엘은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느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괘, 괜찮을까 데미안? 아까 그 선배, 분명 황가의 일원이라고······.”

숨을 고른 미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괜찮을 거야. 그 카시우스라는 녀석은 방계의 자식이니까.”

“방계?”

“너도 들어봤을걸? 황가의 직계들이 지닌 외형적인 특징 말이야.”

내 말에 아리엘이 ‘아······!’ 하며 동그랗게 눈을 떴다.

“황금빛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

“맞아. 내가 알기로 황가의 직계는 모두 그 특징을 가지고 있어. 반면 그렇지 않은 이들은 ‘제왕의 피’가 옅다고 판단되어 방계로 밀려났지. 너희들도 알다시피, 아무리 황가의 피를 이은 자라도 방계는 그 위세가 그리 대단치 않아.”

내가 소설에서 읽은 바로, 제국의 황제는 후계자를 정할 때 얼마나 ‘순혈’에 가까운지를 최우선으로 본다. 또한 그렇게 후계자가 된 황족은 다른 이들보다 확연하게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그런 제국이기에 직계들은 방계를 배척했다. 표면적으로는 적당히 대우를 해줬지만, 속으로는 같은 황족으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방계가 권력을 지닐 수 없는 구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즉, 카시우스는 플랑브아즈 가문을 건드릴 수 없다. 게다가 하는 짓을 보니 녀석은 방계 중에서도 머저리가 분명했다. 생각이 있는 녀석이라면 아리엘에게 ‘애첩’이라는 둥 헛소리는 하지 못했을 테지.

“확실히. 네 말은 알겠어 데미안. 하지만 나와 미아는 괜찮을지 몰라도, 너는.”

나는 대답 없이 웃으며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그러면 아리엘은 속으로 많은 생각을 할 테고, 그만큼 나를 향한 고마움과 호감도 커질 테니까.

물론 카시우스를 두들겨 팬 일에 대해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별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다. 누가 뭐래도 이곳은 신분에 구애받지 않는 아르카넘 홀이고, 나는 졸업 후에도 제국에 머무를 생각은 없으니까.

“카인까지 휘말리지 않은 게 다행이지.”

나는 친구를 염려하는 착한 동급생의 모습을 연기하며 웃었다. 카인은 또 책을 두고 왔다며 기숙사로 달려간 덕에 이 사단을 피했다. 사실 카인이 없었던 게 다행인 것은 맞다. 녀석이 있었다면 카시우스는 이 정도 선에서 끝나지 않았을 거다.

자, 어서 나에 대한 호감을 키워라. 아리엘.

***

아리엘은 신기한 눈으로 데미안을 바라봤다. 그는 정말로 귀족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리 방계라고 해도 황족은 황족이다. 플랑브아즈나 데본렉스 같은 대귀족이 아니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을 지녔다는 뜻이다.

그런데 데미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황족을 때렸다. 그때 데미안이 보인 움직임은 놀라웠다. 아리엘은 특별히 몸을 단련하지 않았지만, 앙투안이 훈련하는 모습을 어릴 적부터 봐왔기에 잘 알고 있었다.

데미안은 몸을 단련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마법사 중에 몸을 단련하는 이는 없다. 적어도 아리엘이 아는 상식선에서는 그랬다.

마법사는 마력의 본질을 탐구하고, 이 세계의 진리를 이해하는 것에 몰두하는 자들이다. 마법은 정신과 영혼의 힘이며, 마법의 길은 육체의 한계를 초월하는 여정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마법사의 육체가 단련될수록 마법의 미묘한 에너지는 저항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마법의 순수한 흐름을 방해하고 그 본성을 흐리게 한다.

게다가 데미안은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다. 아리엘과 같은, 고위 마법의 발현자다. 그런 특별한 존재가 검술학부의 3학년들을 쓰러뜨릴 정도의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다니.

아리엘은 자신을 감싸안던 데미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때의 그는 흡사 한 마리의 성난 늑대 같았다. 칼날처럼 빛나는 눈동자에서는 정제되지 않은 야생의 기운이 넘쳐흘렀다. 카인이 종종 그렇듯이.

‘신비로운 사내.’

아리엘은 아주 살짝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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