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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7

137화 최후의 전투(1)

만신전의 중심.

도시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이곳에서 수십의 현자들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숲의 현자들이시여. 추출 의식이 준비되었습니다.”

대성녀 아냑이 숲의 현자들을 반긴다. 그녀의 앞에 다각다각 걸어와 어떤 잔을 놓는 야피.

성배기사 안토크가 목숨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련한 그것은 ‘성배’와 닮아있었다.

“그 성배기사가 제대로 만들었구나.”

숲의 현자 중 한 그루가 달의 파편으로 만들어낸 성배를 보고 감탄했다. 군라르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

“누구보다도 철을 잘 다루던 친구이네. 그 친구는 이제 역할을 다했으니 이제 우리의 차례지.”

“알고 있다, 어린 나무여.”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다할 것이니.”

“이제 남은 이들은 저마다의 역할을 다하라.”

숲의 현자들의 시선이 베아트리체와 야피. 그리고 한하리 일행들을 응시한다.

베아트리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와 야피 경은 전선을 지원해 최대한 시간을 끌겠어요. 하리 양과 나머지 분들은….”

“성물의 계승을 이을게요. 그러고…….”

-약속 포인트로 집결. 본기는 정수가 담긴 달의 성배를 확보 후 합류하겠음.

그들의 역할은 이 게이트의 역사를 바꿔 승리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어떤 존재도 해낼 수 없는 과업이었고, 그들은 주연이 아닌 조연일 뿐이다.

“저희들은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어요. 아냑 대성녀님…….”

베아트리체의 시선에 아냑은 자애로운 미소로 대답했다.

“여러분께 신들의 축복이 있기를.”

그 말을 끝으로 신전을 내려가는 이들을 보며 군라르가 말했다.

“대성녀. 알고 있겠지만, 우리들이 모든 것을 끝내면…….”

“새로운 성배에 담아낼 정수를 완성하기 위해선 신성이 강림해야지요.”

“레온은 전선을 지휘하기에 할 수 없다. 그러니 그 역할은 그대가 짊어져야겠지.”

군라르의 말에 아냑은 웃으면서 말한다.

“빛과 정의의 대성녀로서 당연한 역할이랍니다. 이렇게나마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지요.”

대성녀 아냑 프로텍시아.

그녀는 기사들처럼 영광스러운 전투와 명예로운 기사도를 떨치며 살아온 것은 아니다.

경전을 읽고 강령을 가르치며 오랫동안 신전에서만 살아왔다. 그것은 악마와의 대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도 마찬가지.

그녀는 항상 전사자들의 시신을 위해 기도하고 기다리기만 했다.

그 수많은 안타까운 죽음들.

무너져내린 수많은 삶들을 위로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기사들만큼 충분하지 않음을 슬퍼했다.

그렇기에 이 최후의 전쟁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음을 알고 안도한다.

사자심왕을 위해 자신이 대신할 수 있는 것이 기쁘다.

“빛과 정의의 축복이 그분과 함께하기를.”

앞으로 너무나 가혹한 싸움에 몸을 던질 왕을 위해.

성녀는 기도했다.

* * * *

끝없는 파괴의 군세였다.

지평선 너머까지 메운 끝없는 악의 군단.

악종들은 불태운 잿더미 위에 모멸스러운 신전을 세우고 문명의 흔적을 능욕했다.

제국이 무너지고, 숱한 왕국이 스러졌으며,

철산의 룬로드들도, 숲의 수호자들도 무너졌다.

기사도의 나라.

기사들의 왕국, 라이온하트.

사자심장을 이어가는 수호자의 땅조차도 이제 최후의 요새만을 남기고 있었다.

세상이 헤진 포도주 부대처럼 찢겨버릴 것만 같은 위태로움 속에서 레온은 쓸쓸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폐하..”

“아렌느 경인가.”

젊은 기사가 다가온다. 아버지의 죽음을 듣고도 임무에 충실하며 이제 막 귀환한 친구의 아들에게선 그의 젊을 적 용모가 남아있다.

“자랑스럽게 여겨라, 아렌느. 그대 아버지는 명예롭게 전사하여 신들의 만찬장으로 향했으니.”

“예…….”

죽은 아버지의 아들을 위로하고 레온을 바라보는 병사과 기사들을 본다. 그들에겐 죄스러웠다.

베아트리체와 야크트 스피너. 한하리와 한수호. 김재혁과 천소연.

그들이 전한 왕국의 마지막. 결코 뒤집을 수 없는 과거는 세상의 끝을 예고하고 있었다.

영광과 명예의 시대의 종말.

피할 수 없는 종말은 재현될 것이다.

레온은 무거운 마음으로 어느새 모여든 병사들을 응시했다.

그들의 귀를 장악한 것은 적들의 진군 소리가 자아내는 땅울림이었으며, 그들 눈에 차오른 것은 혼잡한 감정들이다.

공포, 두려움, 무력감, 절망감.

아아, 여신이시여.

이 부족한 피조물에게 사자심장을 잇게 하시고, 성검에 찬란한 불빛을 지피신 성배의 주인이시여.

여기 당신의 어린 양들이 두려워하며 떨고 있나이다.

여인들은 우는 아이를 달래며 눈물을 삼키고,

청년들은 꺼져가는 항전의 불씨를 애써 손에 담고,

기사들은 피로 젖은 황야에라도 희망의 씨앗을 남기려 하나이다.

그러나 그대, 성검과 성창과 성배의 주인이시여.

당신의 첫 번째 기사는 지평선 너머까지 뻗은 악을 막지 못할 것을 아나이다.

여신이시여.

나의 여신이시여. 이 어리석은 기사가 어찌해야 하나이까.

『그대 뜻대로 할지어다』

“…….”

『나의 기사여. 은애하는 나의 명예로운 기사여. 네 여신이 내 기사와 마지막까지 함께하리라.』

레온은 각오를 다졌다.

스물의 나이에 객사하여 이세계에서 환생했다.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사로, 왕으로 살았다.

그 끝이 종말일지언정, 그의 삶은 명예와 영광으로 가득 찼으니.

이 삶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들어라, 모든 명예로운 이들이여.”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요새의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왕국과 제국의 인간도, 엘프도, 드워프도, 파충류 비늘을 가진 리자드맨들도, 나무줄기로 얽힌 트리맨들도, 식칼 한 자루도 낑낑거리며 들어 올리는 페어리들까지도.

지금 이 순간, 이 한순간만큼은 오직 사자심왕을 응시했다. 침묵으로 응시했다.

“………….”

그러나 침묵이 길어질수록 땅 울리는 소리는 명료하게 귓가를 때리고 세는 것이 의미 없는 악의 군세를 다시금 뇌리에 새기게 했다.

그들 사이에 공포가 넘침을 알면서도 레온은 그들이 공포를 충분히 인지하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선택해야 하므로.

“보이는가?”

언제 소리를 질렀느냐는 듯 소곤소곤한 목소리였으나, 듣지 못하는 자는 없다.

“네, 보입니다.”

그들 눈에 보이는 것은 절망이다.

피할 수 없는 종말이었으며,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혼돈이었으며,

모든 것을 나락으로 떨굴 파멸이었다.

저들은 능욕자들이다. 죽이고 파괴하고 불태운 끝에 남은 잿더미 위에서조차도 능욕을 멈추지 않는 사악.

지평선 너머까지 뻗은 무량대수의 사악이 일으키는 땅울림은 웅성거림도, 레온의 목소리도 파묻어버렸다.

그들이 충분히 절망하고 있는 순간. 레온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병사들에게 말을 타고 나아가 얼굴을 보였다.

“우리의 모든 것을 유린하려는 저 악종들의 소리가 들리는가.”

레온은 젊은 기사를 향해 외쳤다.

“분노하라!”

“폐하…….”

“분노하라! 기사 아렌느! 영광스러운 철의 성배기사 안토크의 아들이자 어둠나무숲의 큰뿔거인을 쓰러뜨린 명예로운 기사여!”

분노하라!

“펠로르 평원의 영웅 워나이트 길두스와 그의 아들 갈베론! 분노하라!”

“끝없는 악의 군세에게서 시민들을 지켜낸 제국의 은사자들이여! 분노하라!”

“떡갈나무 숲을 수호하는 고귀한 엘프 순찰자들이여! 분노하라!”

“불 뿜는 용에게 대적한 철산의 아머 브레이커들이여! 분노하라!”

“이 시대의 모든 명예 있는 자들이여! 어찌하여 분노하지 않는가? 어찌하여 모욕을 받아들이는가!”

“”……?””

레온은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경멸 섞인 비웃음을 막지 않았다.

“저 무질서한 혼돈의 존재들을 보아라!”

“승리라는 착각에 빠진 저 오만방자한 무지렁이들에게 마땅히 분노하라! 무한히 분노하라!!”

“놈들이 우리를 두려워한다.”

“우리의 창검을 두려워하며.”

“우리의 굳건한 의지를 두려워한다.”

“이 방벽 위에 뭉친 명예 있는 자들을 보아라!!”

방벽 위에 선 병사들과 기사들. 모든 생존자들이 서로를 봤다.

국경을 가르며 서로를 소식만으로 알고 있던 이들이, 사자심왕의 깃발 아래 뭉쳤음을 깨닫는다.

“놈들은 가당찮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

“우리의 용기가 스러져, 형제를 저버리고, 존엄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두려움에 지쳐 절망하고, 공포에 사로잡혀 이리들의 흉수를 기다릴 것이라고.”

“그러나 나의 형제자매들이여. 오늘 우리가 시련에 굴종할 것인가? “

“삶이 우릴 버릴지언정, 우리의 존엄성을 스스로 훼손할 것인가?”

“악의 구도자들이 파멸을 외칠지언정, 우리의 명예가 스러질 것인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우리의 순수성은 놈들의 오욕에 더럽혀지지 않으며, 우리의 명예는 놈들의 악명을 압도한다!”

레온은 오른손으로는 검을 뽑고, 왼손으로는 성배를 들었다.

라이온하트의 오래된 건국왕 때부터 함께한 여신의 성유물. 그 위대한 성물이 발하는 찬란한 빛이 벽난로의 모닥불처럼 따스하게 그들을 감쌌다.

“내가 누구인가!”

수십 명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수만 명이 미처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이 내지 못한 목소리만큼 로드 레온의 우렁찬 목소리가 군중에 퍼져 나갔다.

“길링엄…! 내가 누구인가!”

하늘과 천둥의 성배기사 길링엄이 이에 대답했다.

“만신전의 의지를 대리하시는 살아계신 반신이시자 성배의 수호자이십니다!”

“록슬리…! 내가 누구인가!”

태양과 심판의 성배기사 록슬리가 이에 대답했다.

“혼돈의 군주 말루스의 목을 벤 라이온하트의 사자심왕이십니다!”

“나는 여신의 첫 번째 기사이며, 라이온하트의 사자심왕이며, 인류 최후의 요새에 남은 그대들의 형제노라!!”

군중의 눈가에 깃들었던 공포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성배 수호자는 기세를 놓치지 않았다.

“겨울이 오고 있다 형제들이여.”

“허나, 떨지 마라. 당당히 마지막 겨울을 맞이하라.”

“우리의 검과 방패는 혹독한 겨울을 지필 한 토막 장작이니.”

“마지막 불씨가 꺼드리기 전까지 끝없이 장작을 지펴라. 최후의 불꽃을 태워라!”

“오늘 우리는 이곳에서 싸운다.”

“이곳이 저들의 무덤이 될 것이며, 저들 무덤 위에 우리의 비석을 세우리라.”

“그 어떤 명예와 영광도 이에 비하지 못할지니!”

“나의 형제자매들에게 간곡히 청하노라. 나와 함께하겠는가!””

병사들의 함성이 땅울림에 필적했다. 그러나 로드 레온은 만족하지 않았다.

“나와 함께 싸우겠는가!!”

-WHAAAAAAAAAAA────!!!!

-WHAAAAAAAAAAA────!!!!

-WHAAAAAAAAAAA────!!!!

천둥 같은 함성소리가 기어코 땅울림을 압도했다.

“세계의 영웅들이여!”

“서로에게 등을 맡겨라!”

“명예로운 길을 지펴라!”

“나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가 귀공들의 검과 방패가 되리니!”

“최후까지 싸울 것을 명하노라! 명예로운 기사들이여!!”

“”로드 라이온하트! 로드 라이온하트!!””

인류 최후의 항전이 시작되었다.

[퀘스트 : 최후의 항전까지 생존하라.]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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