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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8

137. 약혼관계 – 설각사록

– 그옥! 옥, 그오오오옥!

눈이 덮인 숲. 노구화호보단 작고, 평범한 말보다는 두어 배는 큰 마수가 텁텁한 저음으로 울었다.

그 둔탁한 울음에 두껍게 쌓인 눈을 힘겹게 받치고 있던 나뭇가지들이 우지끈, 부러지며 여기저기에서 눈이 쏟아졌다.

‘설각사록’이라는 순록이었다.

말 두 필에 짐을 싣고 동남쪽으로 사흘을 내려온 다섯 사람은 멀찍이서 그 위용을 구경하고 있었다.

“히야… 저게 마수야? 완전 괴물이잖아.”

레나가 혀를 내둘렀다.

레오는 마수를 몇 번이나 본 기억이 있는지라 그렇게 놀라지 않았지만, 이번 사냥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덩치는 작은 편이다. 마수치고는.

하지만 레오는 녀석의 뿔을 경계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얼음처럼 반투명한 뿔. 서리가 맺힌 듯 표면이 까슬까슬해 보였는데, 겨울임에도 그 뿔에서는 희뿌연 한기가 풀풀 내리고 있었다.

“어때? 근사하지? 저만한 녀석이면 목숨 걸고 도전할 가치가 있지 않아?”

란이 화통하게 말했다.

그녀는 의욕이 앞서는지 말에서 내려 도끼와 방패를 꺼내 들었다.

“잠깐!”

“잠깐! 어?”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레나와 레오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네가 먼저 말해. 뭔진 몰라도.”

“응. 마수를 잡을 때는 그렇게 막 달려들어선 안 된대요. 한 번에 잡으려 하지 말고, 몇 번이고 붙어보며 놈의 습성을 파악하는 게 좋을 거라고… 누가 그러더라구요.”

“습성?”

레나는 어머니께 전해 들은 아버지의 조언을 공유했다.

– “마수들은 각자 독특한 힘과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움직인다. 급박한 상황일수록 제가 주로 하던 행동을 답습하지. 위험할 때 물러설 줄 아는 것도 용기다. 한 번에 잡으려 하지 말고, 몇 번이고 붙어보며 놈의 습성을 파악하는 게 좋아.”

란과 앤, 우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련을 치른 대전사의 조언은 천금보다 값졌다. 아무리 물러서지 않는 걸 용기로 여기는 전사들이라지만 그들은 데호르만의 조언임이 분명한 레나의 말을 경청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관찰이라도 해야 하나?”

“내 생각엔 한번 붙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위험하다 싶으면 도망치면 되지.”

“저게 우릴 도망치게 내버려 둘까? 순록은 빨라.”

말을 멀찍이 매어놓고, 작은 캠프를 차린 그들은 한동안 토론했다.

저 괴물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독과 덫은 당연히 금지다. 그러면 물리적으로 때려잡을 수밖에 없는데, 성인 열 명에 달하는 저 덩치가 순순히 맞아줄 리 없었다.

“내 생각엔 뿔을 어떻게 막느냐가 관건일 것 같다.”

레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본… 아니, 들었던 것보다 덩치가 작아. 보통 마수들은 거대하다고 들었어. 아마 뿔을 주된 무기로 삼은 마수일 거야.”

“…큰데?”

“거대한데?”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끄응-

레오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여태껏 잡아본 마수들은 각기 뚜렷한 특징이 있었다.

노구화호는 신비로울 지경으로 가볍게 걸었다. 거대한 덩치로 하늘 높이 뛰어올라, 여우들이 으레 그러하듯, 사냥감의 이목을 속였다.

압오안돈은 돼지의 몸통을 가진 마수답게 육중했다.

태생이 ‘미가스’임에도 불구하고 집채만 한 덩치를 가졌고, 최후의 순간 산사태처럼 뒹굴었었다.

그러면 저 마수는? 뿔이 달렸으니 마땅히 뿔을 앞세워 돌격해오겠지만, 그게 전부일까?

그렇다고 보기엔 저놈의 덩치가 너무 작았다. 다른 마수들과 비교하면 만만해 보일 지경이다.

‘뭔가 있겠지. 하지만 나도 아는 게 없으니 데호르만의 말마따나 여러 번 맞부딪쳐볼 수밖에 없겠어.’

도흑포마처럼 달아나버리면 안 될텐데 ─ 라고 생각하며 레오는 설명하기를 포기했다. 이건 경험해본 사람만이 아는 감각의 영역이라 말로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마수를 잡아본 경험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레오는 싱겁게 말을 돌렸다.

“우선 도주로를 확보하자. 내 생각엔 땅을 깊이 파는 게 좋을 것 같아. 놈이 들어올 수 없는 동굴이 있다면 더 좋고.”

“이 겨울에 땅을 파기는 좀 힘들고… 동굴이라, 괜찮겠는데? 뿔 때문에 못 들어오겠네. 눈이 뒤집혀서 들어와 주면 고마운 일이고.”

동의했으나, 앤은 팔짱을 끼며 문제점을 짚었다.

“그런데 동굴이 멀면 안 되잖아. 찾아봐야 알겠지만, 너무 멀면 사용하기 힘들어. 녀석을 꾀어낼 방법이 필요해.”

“그렇겠지. 그러니까 좀 힘들더라도 근처에 땅을 파는 게…”

“내가 꾀어낼 방법을 알아.”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록 아이나르였다. 그는 나지막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우록의 말을 들은 레나가 감탄했다.

“진짜? 우와! 역시 우록이야.”

아이나르 부족의 차차기 족장이자 훌륭한 사냥꾼인 우록은 아는 게 많았다.

나이 차이도 있고, 데호르만이 이끄는 사냥팀과는 다른 팀에 속해 있어서 레나와는 접점이 적었지만, 그는 부족을 이끌어 갈 인재로 손꼽히는 사람이었다.

“좋아! 그럼 나랑 동생이 동굴을 찾아볼게. 레나는 근처 마을에 가서 그걸 구해오면 되겠다. 우록이랑 레오는… 아무래도 그건 남자가 하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 잘 부탁해.”

란이 짓궂게 웃으며 토론의 종지부를 찍었다. 계획이 모두 세워지고 탄력을 받은 사람들은 각자 할 일을 배정받아 뿔뿔이 흩어졌다.

캠프에는 우록과 레오가 남았다. 물을 마시며, 두 사람은 한담을 나누었다.

사냥은 잘 풀릴 것 같다.

하지만 레오는 사냥이 끝난 이후도 걱정해야 했기에 마냥 즐거이 잡담할 수가 없었다. 우록도 아이나르 부족원이 아닌 레오에게 필요 이상으로 말을 걸지 않아서 두 사람은 조용히 물을 마셨다.

– 그오오옥! 그옥… 그옥!

설각사록의 구슬픈 녹명(鹿鳴)이 겨울 숲을 울렸다.

* * *

“온다. 준비해.”

다섯 사람이 동굴 어귀에서 숨을 죽였다. ‘설각사록’이 뿔로 나뭇가지들을 밀치며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고 있었다.

녀석은 눈이 쌓인 땅바닥을 핥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레나는 우웩- 눈살을 찌푸렸다.

“진짜 오줌을 먹네.”

우록 아이나르가 제안한 방법은 오줌으로 설각사록을 꾀어내자는 것이었다.

야생동물들은 항상 소금을 찾았다.

생명체라면 무릇 염분을 필요로 했다. 몸에서 가장 소금기가 많은 심장은 탄력적이었고, 소금은 소화를 도우며, 염증과 질병을 막았다.

민물에 사는 물고기가 잦은 잔병치레를 겪는 반면,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병에 잘 걸리지 않는 까닭이 바로 염분 때문이었다.

육지에 사는 동물들도 절실하게 소금을 원했는데, 이는 초식동물의 경우 더 심했다.

육식을 하는 동물들은 사냥감의 내장을 먹어 염분을 충당했지만, 초식동물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에락트’ 같은 발 빠른 동물이 저들이 살기 좋을 초원을 버리고 종종 절벽을 오르는 이유가 절벽에 맺힌 암염(巖鹽)을 핥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설각사록’은 어떨까?

우록이 착안한 게 여기에 있었다. 순록은 절벽을 오르기 힘들 것이고, 저만한 덩치는 소금에 대한 욕구가 클 것이었다.

허나 소금 덩어리를 그냥 땅바닥에 둔다고 해서 설각사록이 알아챌 리 없어서 오줌을 이용했다.

소금기가 있을 게 분명한 지린내.

물을 거듭 마신 레오와 우록은 오줌을 모아 란과 앤이 찾아낸 동굴 주변에 뿌렸다. 그 오줌을 핥으며 다가온 설각사록은 동굴 앞에 놓인, 레나가 가져온 소금 덩어리를 발견하고는 길게 울부짖었다.

동료를 부르는 울음이었다.

사슴과(Cervidae) 동물들은 먹이를 발견했다고 허겁지겁 고개를 처박지 않았다. 무리를 이룬 동료들을 먼저 불러모은 뒤, 나눠 먹었다.

허나 꽤 오랫동안 울었음에도 찾아오는 순록은 없었다. 설각사록은 이내 고개를 숙이고 소금을 핥기 시작했다.

우록이 말했다.

“이 방법은 두 번은 못 쓸 거야. 실패하면 그때는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해.”

“이번에 잡으면 되지 뭘.”

“아니야. 너무 욕심부리면 안 돼. 위험하다 싶으면 동굴로 퇴각하자구. 좀 기다렸다가 다시 시도하면 되니깐. 그렇게 급할 건 없잖아? 쟤가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고.”

앤의 말이었다. 성격이 차분한 그녀는 언니를 만류했다.

이윽고 다섯 사람이 무기를 챙겨 들고 동굴에서 나왔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녀석의 지척에 이르렀는데, 설각사록은 달아나지 않았다. 고개 숙인 채, 소금을 핥으면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진짜 안 도망가네? 하긴, 저 덩치가 사람을 보고 놀랄 리 없지…”

우록이 놀랐다는 듯이 레오를 보았다.

그는 녀석이 달아나지 못하게 포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었으나 레오가 그럴 필요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마수들은 사람을 보고 달아나지 않았다. 도흑포마의 경우 한 대 맞고는 휭하니 도망쳐버리긴 했으나, 그 겁많은 마수도 처음에는 전의를 불태웠었다.

레오는 어깨를 으쓱해 예상한 게 맞아떨어져서 다행이라는 제스쳐를 돌려주었다.

“조심해. 달려들 수도 있어. 거리를 벌리자.”

그때, 묘한 느낌이 들었다.

{합격술}을 얻었을 때처럼, 명령함과 동시에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레오는 알아차렸다.

“란, 앤은 왼쪽으로, 우록이랑 레나는 오른쪽으로 돌아. 정면은 내가 맡을게. 한꺼번에 공격하지 말고 내 지시를 따라.”

[ 퀘스트 : 전쟁광 10000/10000 – {통솔} 능력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

네비스에서 하르베이 가이단 후작이 이끌고 온 군대를 몰살시켜 얻은 능력이었다.

란과 앤, 레나와 우록은 군말 없이 레오의 말을 따랐다. {통솔} 능력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는데, {왕의 피} 능력의 영향이 있는 것 같았다.

– 그오옥! 그옥!

다섯 사람이 살의를 드러내자 설각사록이 반응했다. 하지만 녀석은 그닥 위협을 느끼지 못했는지 여전히 소금을 핥고 있었다.

“왼쪽 먼저!”

외침과 동시에 레오가 달려들었다.

뿔을 잘라버리겠다는 일념으로 한 사선 베기, 다섯 발자국을 뛴 힘으로 강하게 내리그었다.

그러자,

– 그오오오오오오오오옥!

“어엇!”

뿔이 길어졌다. 비 오는 날 죽순이 자라나듯 빠르게 사방으로 뻗치더니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춥다. 녀석의 뿔을 강타한 레오는 한기를 느꼈다.

겨울이라 추운 건 당연했으나 기온이 더 떨어졌다. 뿔과 맞부딪친 검에 쩌저저적- 서리가 내렸으나, 레오는 녀석이 고개를 들지 못하게 있는 힘껏 뿔을 내리눌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다른 사람들이 우물쭈물 공격하지 않고 있어서 레오가 외쳤다.

“뭐해?! 공격하지 않고!”

“발! 바닥을 봐!”

레나의 외침이었다.

하지만 레오는 상황을 살필 여력이 없었다.

설각사록이 네 다리로 밀어붙이자 그의 발바닥이 얼어붙은 땅을 타고 드드드드득, 밀렸다.

– 그옥! 옥옥! 그오오옥!

“에잇! 저리 꺼져!”

레오가 순록의 뿔을 세게 밀쳤다.

녀석은 힘이 약했다.

이만한 체구에서 뿜어져야 할 힘보다 약해서 보기보다 비실비실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공격 안 하고 뭣들 하는…”

잠시간의 여유를 얻어 주위를 둘러본 레오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대지가 얼어붙었다.

눈이 쌓여 있기는 했으나 이렇게까지 서리가 앉아있지는 않았던 땅이다. 어째서 방금 땅을 디딘 발이 밀려나나 했다.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네 발굽.

뿔에서 뿜어지는 한기도 한기지만, 설각사록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하얀 파동이 퍼지며 대지에 얼음이 덧씌워지고 있었다.

“레나! 괜찮아?”

“응! 난 괜찮아. 발이 붙었을 뿐이야. 떼어낼… 수 있어!”

레나가 몸을 흔들었다.

몸을 기울이자 신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한쪽 발을 떼어낸 레나는 다른 쪽 발도 떼어내려고 애썼는데,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끙끙거리며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빌어먹을. 어쩐지 덩치가 작더라니… 이럴 줄 알았다.’

레오를 지나친 설각사록은 그들을 고고하게 돌아보았다.

‘더 할 거냐?’라고 묻는 듯 고개를 까닥이는데, 얼굴 한편의 맑은 눈동자는 레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레오는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쳤다.

비웃음처럼 짧게 옥옥거리는 녀석을 경계하며 동료들을 챙겼다.

“일단 후퇴하자.”

먼저 레나를 부축했다.

발을 떼어내기는 어렵지 않았으나, 한쪽 다리를 떼면 다른 발이 붙어버려서 어깨동무한 레나는 엉기적엉기적, 불편하게 걸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우록의 손을 잡아끌었고, 란과 앤은 서로를 부축하며 후퇴했다.

다행히 설각사록은 우리를 쫓지 않았다. 우리가 동굴로 달아나는 걸 멀뚱멀뚱 지켜보더니 바닥에 놓인 소금 덩어리를 마저 핥아먹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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