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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8

138화 악마, 그리고 악마 (2)

138화 악마, 그리고 악마 (2)

에스틸리아 교수는 학생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 보이는 외모의 소유자다. 거기에 더해 어깨 위에서 찰랑이는 다홍빛 머리카락과 루나처럼 자그만 체구는 그녀를 더더욱 우리 또래로 보이게 했다.

그러고 보니 루나는 아직 성장기가 끝나지 않은 듯하다. 무한회귀 설정집에 적힌 그녀의 키는 163센티미터인데, 아무리 봐도 지금의 루나는 160센티미터도 안 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가 에스틸리아 교수의 외모를 새삼스럽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까부터 그녀의 전신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교실에서는 교탁에 가려져 상반신 위주로 보였지만, 이 장소에서는 아니었다.

오늘 우리는 마법 실습을 한다.

“여러분이 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속성 마법 중 세 가지를 선택해 저를 공격하면 됩니다. 이곳은 마법으로 강화된 실내 훈련장입니다. 여러분이 최대 출력의 마법을 발현하더라도 이 훈련장을 파괴할 수는 없으니, 부디 최선을 다하시길.”

에스틸리아 교수의 하늘색 눈동자가 아리엘과 나를 바라봤다.

과연. 고위 마법을 발현해도 문제없다는 뜻인가.

“혹, 제가 여러분의 마법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멍청한 생각을 하는 학생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이번에는 카인을 바라봤다.

조금 의외였다. 물론 카인이 상당한 마법 실력을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아리엘의 고위 마법만큼은 아니니까. 게다가 카인은 입학시험 때부터 지금까지 제 실력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실습에서는 종종 부상자가 나옵니다. 가장 최근에 중상자가 나온 것은 작년이었고, 다친 학생은 폐인이 되었습니다.”

······저런 무서운 이야기를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하다니.

“호, 혹시 에스틸리아 교수님의 수업에서 있었던 일인가요?”

“그 교수는 그 일로 해임되었습니다.”

질문한 학생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니, 이곳에 모인 모든 학생의 얼굴이.

“동급생을 다치게 한 학생은 유급되었습니다. 그녀는 1학년을 마친 뒤 바로 4학년으로 월반할 정도로 재능 넘치는 학생이었지만 두 차례 유급해 여전히 4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부연하자면, 그녀는 최근 백년 동안 아르카넘 홀에 입학한 학생 중 두 번째로 뛰어난 자질을 지녔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두 차례 유급이라면······.”

“그녀가 동급생을 폐인으로 만든 것은 작년이 처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훈련장에 정적이 일었다.

아리엘이 손을 들며 물었다.

“그럼 최근 백년 동안의 입학생 중 첫 번째로 뛰어난 자질을 지닌 이는 누구죠?”

“그녀는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아리엘을 바라봤다.

아리엘의 귀가 붉어졌다.

“······지, 지금 갑자기 그런 말씀은.”

“그녀의 이름은 에스틸리아 벨라코트입니다.”

“······!”

“참고로 그녀는 불과 2년 만에 아르카넘 홀을 졸업하며 최연소 교수로 발탁된, 천재 중의 천재라고 하더군요.”

아리엘의 귀가 터질 것처럼 새빨개졌다.

“그럼, 호명된 학생은 앞으로 나오시길.”

첫 번째 학생이 준비하는 동안 나는 훈련장을 휘둘러봤다.

방대한 크기. 마치 거대한 마법 구체 안에 있는 것 같다. 창문을 통해 들이치는 햇빛이 마법 보호막에 굴절되며 바닥에 여러 갈래의 빛을 만들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마법의 입자들은 무지개처럼 반짝거렸다.

“시작.”

첫 번째 학생은 먼저, 커다란 불의 구체를 발현했다. 그러나 에스틸리아 교수가 손을 휘두르자 두 개의 작은 불꽃으로 쪼개지며 사라졌다. 두 번째로 발사한 얼음 기둥은 먼지처럼 흩어졌고, 세 번째도 비슷하게 소멸했다.

역시 에스틸리아 교수는 대단한 실력자였다. 그녀의 움직임은 우아하고 정확했으며, 마법 방어의 예술을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점은 그녀의 주문 영창이 작은 새의 속삭임처럼 작고, 또 순간적이었다는 것이다.

‘감지. 흡수. 정제. 발현.’

마법 발현의 네 단계.

그중 마지막 단계인 ‘발현’을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주문 영창이 필요하다. 아울러 주문의 내용이 구체적일수록, 또 시전자의 발음이 크고 명확할수록 보다 강력한 마법을 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에스틸리아 교수의 주문 영창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그 내용은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입술의 움직임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무영창(無詠唱) 마법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리엘라 플랑브아즈.”

아리엘이 호명됐다. 그녀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에스틸리아 교수와 일정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시작 신호를 보냈고, 아리엘은 첫 마법부터 불꽃의 티아라를 발현했다. 입학시험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욱 강력해진 불꽃!

‘기초 마법 이론을 복습하며 몸 안의 마력이 더욱 안정적으로 변한 것 같아. 네 말이 맞았네. 고마워 데미안.’

언젠가 아리엘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호오.”

에스틸리아 교수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쩌적, 에스틸리아 교수의 손끝에서 얼음의 벽이 형성됐다. 그 투명한 벽은 거대한 화염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그녀를 보호했고, 얼음이 불꽃과 충돌하는 순간 강렬한 빛과 열기가 훈련장을 가득 메웠다.

“마, 말도 안 돼······!”

아리엘이 놀란 이유는 간단했다. 에스틸리아 교수는 빙결 속성 중에서도 아주 기본적인 마법을 발현해 불꽃의 티아라를 막았다. 에스틸리아 교수의 마법은 쇄도하는 불꽃을 점차 누르며, 소멸시켰다. 불꽃과 얼음이 사라진 자리 위로 짙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부드럽게 손을 휘둘러 수증기를 밀어냈다. 이후 아리엘은 두 차례 더 마법을 발현했다.

“훌륭했습니다, 아리엘라 플랑브아즈. 더욱 정진하시길.”

에스틸리아 교수는 칭찬의 뜻을 담아 말한 것이겠지만 아리엘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아리엘은 어금니를 악다물며 주먹을 꼭 쥔 채, 아주 분한 얼굴로 자리로 돌아왔다.

***

아리엘은 카인, 데미안, 미아와 함께 식당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에스틸리아 교수 앞에서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단한 여자였어.’

한편으로는 에스틸리아 교수가 존경스러웠다. 그녀는 놀라운 실력의 마법사였다. 왜 ‘대마법사’라는 칭호가 붙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로.

그러나 아리엘은 그 생각을 머리에서 지웠다. 대마법사는 단지 뛰어난 마법 실력을 지녔다고 얻을 수 있는 칭호가 아니다. 대마법사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마법 세계가 있어야 한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군요. 제 실력을 발휘하지 않은 학생이 있었습니다.’

과연 에스틸리아 교수는 날카로웠다.

그녀의 말대로 아리엘은 자신의 모든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는 말이 정확했다. 아리엘에게는 ‘불꽃의 티아라’ 외에 또 하나의 고위 마법이 있었으나, 공격이 아닌 방어용이었으니까.

“오, 오늘 대단했어 아리엘라. 분명 에스틸리아 교수님께서 조금이라도 진심을 내보인 학생은 너 하나뿐이었을 거야.”

미아의 말이 아리엘의 기분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아리엘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미아.”

“아······.”

미아는 조금 실망한 얼굴로 변했지만, 이내 어색하게 마주 웃었다.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 멀리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루나가 보였다.

‘뭐, 뭐지?’

아리엘은 흠칫 놀랐다. 루나 옆에 있던 세실리아가 갑자기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리엘을 향해, 똑바로.

순식간에 아리엘의 코앞에 다다른 세실리아는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채, 땅만 바라봤다.

“뭐죠? 세실리아 크라소타.”

“할. 말이······.”

아리엘은 후우, 한숨을 뱉었다.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이 여자는 또 어떤 무례한 짓으로 나를 화나게 하려는 걸까.

“먼저 들어가 있을게.”

데미안이 말했고, 자리에는 아리엘과 세실리아만 남았다.

“할 말이 있으면 서둘러주세요. 세실리아 크라소타.”

“미. 미안해.”

생각지도 않은 세실리아의 말에 아리엘은 동그랗게 눈을 떴다.

아. 카인이 말한 거구나. 사과하라고.

“데미안에게. 들었어. 네. 네가. 데미안을.”

데미안이?

아리엘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서 조금 답답한 기분을 느꼈다. 이 여자는 왜 이렇게 단어를 나열하듯 말하는 걸까.

세실리아는 여전히 땅만 보고 있었다. 호흡도 살짝 거칠다.

“데미안을. 도. 도와줬다고.”

데미안이 사실을 이야기한 듯하다.

이유라면 이 무례한 여자의 행동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요?”

“고마워.”

세실리아가 돌연 고개를 들며 아리엘의 손을 잡았다. 아리엘은 뿌리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첫 번째 이유는 세실리아의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런 그녀의 얼굴이 심장이 뛸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고마워. 아리엘라.”

세실리아가 환히 웃었다.

아리엘은 두근거린 것이 부끄러워 짜증 내듯 내뱉었다.

“여, 여우엘라라면서요!”

“그. 그건. 마음속. 생각이······.”

세실리아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그러고는 재차 사과했다. 미안하다고.

치잇······, 아리엘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오만한 귀족이었지만, 이렇듯 진심으로 사과하는 이를 무시할 정도의 냉혈한은 아니었다.

“······이제 됐으니까 식사하러 가요.”

“사과. 받아주는. 거야?”

“알았다고요!”

아리엘이 빽 소리치자 세실리아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아리엘에게 팔짱을 끼더니, 그녀의 얼굴에 제 볼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꺄악! 뭐, 뭐 하는 거예요! 이런 이상한 행동······! 겨, 결례라고요!”

세실리아의 이상 행동은 식당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

달빛이 은은하게 흐르는 아르카넘 홀의 한적한 공원. 카시우스는 벤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시우스?”

잠시 후, 카시우스가 기다리던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달빛에 물든 여신처럼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그녀의 눈동자는 깊은 지혜로 가득한 우물 같았다.

하지만 카시우스는 그 눈빛 뒤에 숨겨진 포악함과 잔인함을 알고 있었다.

“나와줘서 고마워. 탈리야.”

“그런 말 말아요. 카시우스.”

탈리야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온화했으나, 카시우스는 그 안에 담긴 은은한 짜증과 노기를 알아차렸다. 그는 심호흡하며,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탈리야에게 털어놓았다.

탈리야의 눈이 잠시 번뜩였다. 그녀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마치 예상치 못한 재미를 찾았다는 듯이. 돌연 카시우스는 이 일에 탈리야를 끌어들인 것이 옳은 결정인지 불안해졌다.

“당신도 아시겠지만, 여러 교수가 저를 주시하고 있어요.”

“그렇다는 건······.”

“염려하지는 말아요. 교칙에 위배되지 않게, 아주 깔끔히 처리할 방법이 있으니까. 다만 시일이 걸릴 거예요. 하지만 기다릴 가치는 충분하겠죠.”

그녀의 입술이 길게 찢겼다.

“발악할 힘을 키운 먹잇감이 나를 더욱 즐겁게 해줄 테니까.”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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