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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9

138. 약혼관계 – 시련

“…갔다.”

“장난 아니다. 마수. 달려들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화톳불을 피우며, 레나가 안도의 숨을 뱉었다. 란과 앤도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사람은 전투태세에 들어선 설각사록의 위용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았으나, 근접거리에서 본 녀석의 덩치는 거대했다.

푸른 뿔이 길게 자라나자 일반적인 순록의 두어 배 정도 되는 체구가 더욱 커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위압적인데 발이 땅에 붙어버리니 공포가 몰려들었다.

“뭔 수로 잡지? 아, 그러고 보니 레오, 너는 멀쩡하더라?”

“…그러게.”

[ 퀘스트 : 마법살해자 10/10 – {마법저항} 능력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

레오는 짚이는 점이 있었지만 아직도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검을 내려다보며 말을 아꼈다.

그는 발이 땅에 붙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설각사록의 뿔에 맞닿아 서리가 내린 검을 쥐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약간의 추위를 느낀 게 전부다.

지난 소꿉친구 시나리오는 끔찍하게 끝났으나, 얻은 것이 많았다.

{통솔}, {기품}, {왕의 피}, 그리고 {마법저항}… 모두 사람을 살해한 업적으로 얻은 능력들이었다.

{검술} 능력을 한 단계 상승시켜준다는 ‘듀얼리스트’ 퀘스트도 있었다.

972/1000, 어찌나 많은 기사를 죽였는지 거의 가득 차 있었다.

오른 왕국의 왕실 기사단과 귀족들의 기사들, 콘라드 왕국에서 파병한 두 개의 기사단, 교회의 토벌대를 몰살한 덕분이었다.

이 퀘스트들은 ‘공양’과는 관계가 없었다. 살해 업적들의 카운터는 공양하거든 줄어드는 것과 달리 그 퀘스트들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신기하네. 난 걷기도 힘들던데. 너 신발 봐봐. 잉? 나랑 같은 건데 왜 너는…”

“그보다도 어떻게 하면 녀석을 잡을 수 있을지 의논해보자. 모두 이리로 모여봐. 좋은 생각이 났어.”

레오는 얼른 말을 돌렸다. 레나의 관심을 떼어낸 그는 좀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말했다.

“녀석은 보기보다 힘이 약해. 덫을 쓰면 쉽게 잡을 수 있긴 한데… 아, 덫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건 알아. 하지만 약간의 도구를 쓰는 건 괜찮겠지?”

레오는 차분히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고, 네 사람은 그의 말에 수긍하기도, 반박하기도 하며 의논해 나갔다.

그 이후로 설각사록을 몇 번 더 찾아가 보았다. 온순한 녀석의 성질을 돋우며 약간의 실험을 거친 그들은 살랑살랑, 옅은 눈발이 날리는 날에 다시금 도전장을 내밀었다.

얼어붙은 시냇가를 가로지른 다섯 사람의 신발이 특이하다.

옆에서 보면 ‘ㅠ’자 모양의 나막신. 각자가 신고 있던 신발에 나무를 덧붙여 땅이 얼어붙어도 쉽게 뗄 수 있도록 레오가 고안한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뿔을 붙들 수 있는 창이나 그물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란과 앤의 격한 반대로 신발과 장비에 약간의 편의를 더하는 정도에 그쳤다.

“찾았다. 저기야.”

설각사록은 나무에 대고 뿔을 긁고 있었다. 우수수- 나무를 흔들던 녀석이 불청객을 발견하고 울었다.

– 옥! 오옥!

또 왔냐는 투레질을 들으며 레오가 앞으로 나섰다.

“조심해. 레오.”

“걱정하지 마. 모두 준비해. 간다.”

레오가 돌진했다. 설각사록의 뿔을 때리며 외쳤다.

“란이랑 앤은 왼쪽! 레나랑 우록은 오른쪽으로 가서 다리를 노려!”

설각사록이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전번과 같이 길어진 뿔이 휘둘리자 비정상적인 한기가 레오를 덮쳤다.

“가만히 있어!”

레오가 검을 들어 올렸다.

두툼한 장갑을 낀 손으로 검날을 쥐고, 뿔을 세게 밀자 놈의 목주름이 코에 닿았다.

– 오오오오오옥! 그오옥!

보기보다 힘이 약하다지만, 레오보단 강했다. 잠시 주춤거리던 녀석은 레오를 밀며 전진했다.

푸르게 빛나기 시작하는 발굽. 우록 아이나르가 외쳤다.

“뛰어!”

놈이 걸음을 디디자 땅에 새하얀 파동이 번졌다.

네 다리로 걷는지라 너댓 개의 동심원이 교차하며 퍼져나갔고, 레오를 제외한 네 사람은 펄쩍 뛰며 무기를 내리꽂았다.

피가 흘러내렸다. 새하얀 대지에 뜨거운 피가 닿자 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허나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가죽이 너무 두꺼워!”

“상처를 계속 노려! 내가 시간을 벌게!”

질질 밀려나던 레오는 얼기설기 솟아난 뿔에 검을 끼워 넣고선 뛰어올랐다. 검을 붙든 채, 양다리로 놈의 목을 휘감으며 매달렸다.

북슬북슬한 털이 뺨에 닿았다. 녀석의 주둥이에서 침이 질질 흘러내려 레오를 적셨다.

“흐아압!”

레오가 검을 세게 비틀었다.

검을 지렛대로 삼아 뿔을 부러뜨릴 작정이었으나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비틀.

그래도 목과 머리에 매달려 뿔을 잡아당기니 설각사록이 몸부림쳤다. 그를 떨어내려 고개를 사방으로 저었으나 효과가 없자…

우뚝 멈췄다.

다른 사람들의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내며 무시무시한 눈으로 쏘아보았다.

심연처럼 깊고, 푸르게 불타오르는 눈동자가 바짝 붙은 레오의 눈과 마주쳤다.

“이런…”

“레오!”

– 고옥! 그어어옥!

설각사록이 내달렸다. 제 몸의 단단함을 확신한다는 듯이 목을 치켜들며 나무를 들이받았다.

성가시게 달라붙은 날파리를 짓이겨버릴 요량이다.

– 쿵!

“으윽!”

육중한 몸무게에 눌려 나무가 우지끈, 기울어졌다.

레오는 충돌하기 직전에 검을 버리고, 목을 감쌌던 다리를 풀었다.

녀석을 걷어차 멀리 떨어졌으나 달리는 속력 때문에 낙법이고 자시고, 땅에 세게 처박혔다.

그래도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다. 레오는 아린 어깨를 감싸 쥐고 일어나려다가… 황급히 뒹굴었다. 설각사록의 뒷발이 그의 머리가 있던 허공을 찼다.

무기를 잃은 레오가 외쳤다.

“우록!”

이번엔 우록이 설각사록의 앞을 가로막았다. 두툼한 원형 방패로 녀석의 뿔과 시야를 밀쳤다.

놈은 가능한 한 움직이면 안 됐다.

{마법저항} 능력 덕분에 레오는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은 녀석이 걸음을 디딜 때마다 발이 땅에 달라붙었다. 잘 떨어지도록 신발을 개조했음에도 걷기가 쉽지 않았다.

우록이 녀석을 막은 사이에 레오는 후다닥 달려가 땅에 떨어진 검을 집었다. 바로 교대해 주려 했는데, 우록이 소리쳤다.

“이 정도면 버틸 만해! 빨리 쳐!”

“…란! 앤! 우록을 도와줘!”

우록의 외침은 다소간의 허세와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뿔에 닿은 방패가 얼어붙고 있다. 손잡이에 털가죽을 입히고, 두꺼운 장갑을 착용했음에도 우록의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그는 뿔에서 쏟아지는 한기를 억지로 견뎌내려 하고 있었다.

당장 교대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레오는 네 사람이 설각사록의 다리에 입힌 상처를 보고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너무 얕다. 그나마 레나가 찌른 것인지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상처가 있었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이래서는 승산이 없다.

레오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우록이 란, 앤과 함께 설각사록을 막아서고 레나가 반대쪽에서 칼질하는 사이, {검술.3v : 바르트류(流)}를 떠올리며 검을 굳세게 쥐었다.

바르트가 검을 양손으로 번갈아 가며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 그 독특함만이 그의 검술의 전부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완벽한 베기.

역설적이게도 바르트는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검격을 추구했다. 어쩌다 한 손으로 검을 휘두르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레오 덱스터는 오른손을 위로 해서 검 손잡이를 잡았다.

아직은 오른손이 더 편하다.

“하아아압!”

들이켠 숨을 허파에 담은 채, 검을 높이 치켜든 레오는 양발로 땅을 박찼다. 기합을 내지르며 숨을 단번에 쏟아부었다.

반치의 기울어짐도 없이, 검이 내리꽂혔다. 그 휘두름에 이끌린 레오는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돌았고, 착지하자 얼굴에 피가 튀었다.

설각사록의 등 너머, 반대쪽에 있던 레나는 어쭙잖은 칼질을 멈추고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와아……”

아름답다.

날카로운 검풍이 뒤늦게 날아와 그녀의 머리칼을 흔들었다.

살랑살랑 내리던 작은 눈송이가 그의 회전에 맞춰 둥글게 흩날리고 있다.

저런 수직 베기를 난 본 적이 없다. 정면에서 바라본 그 검격은 설령 자신을 향했다 할지라도 감탄할 만큼 완벽했다.

“레나! 물러서! 당장!”

“우왓!”

– 그옥! 옥! 옥! 옥! 옥! 옥!

옆구리가 깊이 갈라져 갈비뼈가 드러난 설각사록이 다급히 울었다.

뿔을 흔들어 란과 앤의 도끼를 쳐내곤 두 앞발을 들었는데, 여태껏 하던 행동과는 결이 달랐다.

“다들 피해!”

뿔이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마치 머리 위로 나무가 자라난 듯이 거대해지더니 무서운 한기가 다섯 사람을 덮쳤다.

돌개바람을 일으키며 몸을 일으킨 설각사록이 바닥을 찍었다.

– 쿠웅!

“아악!”

녀석의 푸른 발굽이 땅을 찍자 뾰족한 고드름들이 불쑥, 무릎까지 솟아올랐다. 몸이 꽁꽁 얼어붙어 미처 물러서지 못한 우록은 다리를 감싸 쥐고 뒹굴었다.

“발악한다! 이게 마지막이야! 레나는 우록을 끌어내! 란이랑 앤은…”

“하하하하! 그래! 이게 시련이지!”

란이 당당히 어깨를 폈다. 거칠게 투레질하는 설각사록 앞에서 크게 소리쳤다.

“이게 전부냐? 이 정도 추위는 내가 살던 ‘얼음섬’에선 여름이야!”

란이 방패를 버렸다. 도끼를 양손으로 붙들곤 뛰어올랐다.

“죽어라!”

그녀의 동생, 앤도 함께 뛰었다.

두 개의 중병기가 설각사록의 뿔을 찍었다. 뿔이 달린 부위가 찢어지며 녀석의 머리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레오도 틈을 놓치지 않았다. 검에 몸무게를 실어 심장이 있을 부위를 찔렀다.

– 옥! 옥! 그오오오옥! 옥옥!

검이 깊이 찔러 들어갔으나, 설각사록은 쓰러지지 않았다. 극한의 환경에서도 질기게 살아가는 그 동물은 생명줄을 쉬이 놓지 않았다.

눈에서 줄기줄기, 푸른 섬광을 번뜩이며 앞다리를 들었다.

“아까랑 같은 거다! 잠깐 물러서! 이제 녀석을 천천히 요리하면…”

“싫어!”

“뭐? 어엇!”

란이 다시 뛰어들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앤까지 설각사록을 향해 몸을 던졌다.

“우린 사냥을 나온 게 아니야!”

무모하게도 두 사람은 매서운 눈발이 섞인 돌개바람을 뚫고 들어갔다. 기합을 내지르며 넓게 열린 마수의 가슴을 찍었다.

이내 설각사록의 발굽과 몸뚱이가 그들을 덮쳤으나 란은 왼쪽으로, 앤은 오른쪽으로 뒹굴어 가까스로 피해냈다.

솟아난 고드름을 깨뜨리며 나뒹구는 그들을 레오는 어처구니없이 바라보았다. 야만인 전사들이란…

“에잇! 젠장, 그냥 물러서면 될 것을… 알았으니까 앤! 놈의 뒤에 있지 마! 거긴 위험해!”

란과 앤이 분전하는 꼴을 지켜만 볼 수 없어서 레오도 가세했다. 다리를 꽉 졸라매어 응급처치한 우록도 절뚝이며 합세했고, 레나도 “와아악!” 고함을 지르며 놈의 숨통을 노렸다.

어떤 꼼수도 없이, 다섯 명의 인간과 한 마리의 마수는 땀과 피를 흘리며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그리고 어둠이 깔릴 무렵, 얼음송곳이 난무하는 숲에서 업적이 떠올랐다.

[ 업적 : 마수 사냥 – ‘3’, 몸에 미약하게 마나가 깃듭니다. ]

[ 업적 : 엑스퍼트 – 레오의 육체가 강인해집니다. ]

“허억… 허억… 이, 이거 죽었지? 죽은 거 맞지?”

땀으로 범벅이 된 레나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내장을 모두 쏟아내고, 심장을 몇 번이나 관통당하고도 발악을 하던 설각사록. 레나는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쓰러진 녀석을 검으로 콕콕 찔러보았다.

미동도 하지 않는다.

“우아아아아아악!”

“우아아아아아-!”

란과 앤이 포효했다.

양 주먹을 들어 올린 채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지르는 그들은 원시적이었으나, 무언가에서 ‘해방’된 것만 같았다.

“우와아아아아아악! 우아아악!”

“아우, 시끄러워! 그만 좀 해! 무슨 동물도 아니고…”

“와아아아아아!”

“레나! 너까지 그러면… 아이고, 그래. 맘대로들 해라.”

레나를 말리려던 레오는 우록까지 엎어진 채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하자 이내 포기했다.

야만인들.

바르나울에서 태어나 소위 문명인으로 자란 레오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과거의 기억이 없다지만, 저런 건 그와 생리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짓이었다.

그래도 내심 저들의 외침이 개운하다 생각하며 레오는 땔감을 주웠고, 그날 밤, 다섯 사람은 뜨겁게 타오르는 화톳불에 둘러앉아 자신들이 이룬 업적을 자축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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